동시주의Simultanisme(Simultanism)
색채를 사용하여 형태를 만들고 공간을 암시하는 양식을 동시주의Simultanisme(Simultanism)라 하는데, 로베르 들로네(1885~1941)가 창안한 용어이다.
파리 태생으로 장식적 상업회화를 공부한 뒤 1904년부터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들로네는 1906년에 신인상주의와 외젠 슈브뢸의 색채 이론에 관심을 가지며 모티프가 될 색채 이론의 미적 응용에 대한 연구에 전념했다.
인상주의보다 더욱 합리적으로 빛과 색채를 과학적으로 접근한 신인상주의는 평론가 펠릭스 페네옹(1861~1944)이 1886년에 만든 명칭이다.
조르주 쇠라(1859~91)는 신인상주의 운동의 제창자로 대표적인 화가였고 친구 폴 시냐크는 이 운동의 대표적인 이론가였다.
신인상주의의 이론적 토대는 점묘법을 사용한 분할주의로서 순색의 색점으로 그리는 것인데 작품의 규모와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점의 크기를 조절한다.
쇠라 작품에서 이런 접근 방식은 강렬한 빛의 효과를 주는 동시에 형태를 견고하고 명확하게 한다.
쇠라의 분할주의는 20세기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고 앙리 마티스가 주로 영향을 받았다.
들로네는 쇠라의 분할주의 기법을 채택하는 대신 대조되는 인접한 색채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탐구했으며, 특히 색채 공간의 분할을 위한 빛의 효과, 색채와 움직임의 상호 연결에 관심을 기울였다.
들로네는 1912~13년에 <원반>과 <우주의 원형> 연작을 발표했는데, 이것들은 <동시적 창>에서 시작한 색채의 동시적인 상호작용에 대한 실험을 더욱 심화시킨 것들로 구체적인 시각 인상에 근거를 두지 않은 순수 추상이었다.
그는 자율적인 색채 구조를 구축하고 있는 순수 색면들이 서로 침투하고 회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
그는 말했다.
“오로지 색채만이 형태이자 주제이다.
회화가 대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는 한 묘사적이고 문학적일 수밖에 없으며, 불완전한 표현수단으로 인해 점차 타락하여 노예 상태나 모방물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예술가가 빛을 강조한다 할지라도 사물에 비친 빛이나 여러 사물 사이의 관계에 의해 파생되는 빛을 그리는 데 급급하여 빛에 회화적 독립성을 부여하지 않는다면 결과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들로네의 작품들은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가 오르피즘Orphism이라고 명명한 ‘색채 입체주의’ 운동을 불러일으켰다.
아폴리네르는 1912년 섹시옹 도르Section d'Or 전시회와 1913년 베를린의 슈투름 화랑에 전시된 들로네의 작품을 설명하기 위해 오르피즘이란 명칭을 만들어냈다.
섹시옹 도르는 프랑스어로 ‘황금 분할’을 의미한다.
아폴리네르는 오르피즘을 비재현적 색채 추상으로 이해했고, 자신의 저서 <입체주의 화가들>(1913)에서 이를 가시적인 영역으로부터 빌려온 요소가 아닌 전적으로 예술가 자신이 창조한 요소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구조를 그리는 회화라고 설명했다.
그는 오르피즘을 입체주의의 범주에 속하는 운동으로 보고 여기에 들로네 외에 들로네의 아내 소니아 들로네-테르크, 프랑시스 피카비아, 마르셀 뒤샹, 페르낭 레제, 쿠프카 등을 포함시켰다.
비재현적 추상의 발전에 선구적인 역할을 한 프란티셰크 쿠프카(1871~1957)는 유럽에서 최초로 추상적 색채와 형태 속에 내재된 정신적 상징주의를 탐구한 후 이를 과감히 작품에 사용한 화가 중 한 사람이며 음악에서 유추한 시각예술 작품을 제작하는 데 성공한 최초의 화가 중 하나이다.
그가 수년 동안 습작을 통해 연마하고 발전시킨 아이디어들은 <무정형: 두 가지 색의 푸가>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었으며, 이 작품은 1912년 살롱 도톤에 그의 다른 작품 <따뜻한 색채 이론>과 함께 전시되어 일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유럽 미술사에서 의도적으로 제작된 최초의 비재현적 추상화로 일컬어지는 이 작품들은 아폴리네르가 오르피즘이라는 명칭을 창안해낼 때 오르피즘의 예로서 들로네, 피카비아 회화와 더불어 인용되었다.
그의 1912년작 <누턴-원반>은 여러 개의 원이 서로 겹쳐지고 스펙트럼같이 다양한 색상으로 분할된 추상 구성 작품으로 서로 대비되는 색상들을 이용하여 색채의 추상성을 실험한 들로네의 시도와 일치했다.
오르피크orphique라는 단어는 이전에 상징주의자들이 사용한 적이 있는데, 아폴리네르는 여기에 낭만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엄격한 입체주의에 서정적 색채를 가미하려는 시도나, 쿠프카처럼 순수 색채 추상과 음악의 유사성에 관심을 갖는 경우를 지칭하는 데 사용했다.
마케와 같은 독일 표현주의자들이 오르피즘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낭만적인 연상 때문이었다.
들로네는 동시주의라는 용어를 미셀-외젠 슈브뢸의 저서 <색채의 동시 대비와 채색된 대상의 배열에 관한 법칙>(1839)에서 따왔으며, 이 책은 쇠라와 신인상주의 화가들의 색채 이론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들로네는 말했다.
“1912~13년경 나는 오직 색채와, 색채의 대비로만 이루어지면서도 어느 순간에 갑자기 동시에 지각되는 회화 형태를 생각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슈브뢸의 과학 용어인 ‘동시 대비’를 사용했다.”
그러나 슈브뢸에게 있어 이 용어는 인접한 두 색채가 대비를 이루면서 각각의 특성을 상호 고취시키는 시각적인 효과를 설명한 것으로 순전히 과학적인 성격의 용어였다.
반면 들로네는 이 용어를 부정확하고 다소 모호하게 사용했다.
즉 색채는 추상화 내에서 회화적 형태는 물론 움직임의 환영까지도 만들어낼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며, 거의 유일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자신의 이론을 이 용어를 통해 나타내고자 했다.
들로네의 이론과 작품은 색채가 단순히 드로잉을 보조하는 장식적인 종속물이 아니라 형태를 만드는 데 있어서 중요한 구성요소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1900년경부터 유럽 회화에 널리 펴져 있던 이런 경향은 들로네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추상 색채 형태들 사이의 리드미컬한 상호작용을 미적으로 적용한 들로네의 작품은 추상의 발전, 특히 1930년대 막스 빌이 주창한 구체 미술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조화를 이룬 색채는 느린 움직임을, 조화되지 않는 색채는 급격한 움직임을 암시하는 것을 비롯해 색채 대조를 통한 움직임의 표현에 대한 그의 생각은 또한 이후 키네틱 아트의 발전의 토대가 되었다.
동시주의는 아폴리네르가 채택하여 일반화시켰다.
그는 이것을 통해 시어를 배열하여 일정한 형태를 만들어낸 자신의 ‘칼리그람 Calligramme’의 토대와 당시 유행하던 예술의 원리를 설명했다.
이 원리에 의하면 서로 무관하거나 대비되는 부분들이 임의적이고 부적절하게 병치되었을 때 구성의 각 요소들은 논리적 혹은 관습적 방식보다는 오히려 충돌과 대비를 통해 상호작용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동시성’의 개념은 제1차 세계대전 진적엔 문학, 음악, 조형 예술에서 가장 논란이 많았던 개념 중 하나였다.
그것은 다양한 인식의 표현, 여러 장소에서 동시에 일어난 일들에 대한 즉각적인 직관, 혹은 시간 속에서 펼쳐지는 연속된 사건들에 대한 순간적이며 집중된 직관을 의미했다.
그것은 ‘계속되는 현재’라는 심리적인 개념을 미술과 문학에까지 확대시킨 것이다.
동시성은 아폴리네르의 칼리그람의 토대를 형성한 것 외에도 상드라르, 르베르디, 거트루드 스타인의 글과 사티의 음악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동시주의에 대해 가장 예리하게 설명한 사람 중 하나인 로저 섀턱은 <연회 시대>에 “후안 그리스의 정물화, 아폴리네르의 시, 프루스트의 시구나 심지어 다음조 음악 등 어떤 경우에도 예술작품은 다양한 시대와 장소 및 다양한 의식의 상태를 대등하게 통합하기 시작했다”고 적었다.
1976년 3월 ‘시간과 공간은 어제 죽었다’ 전시회가 케임브리지의 케틀스 야드에서 열렸는데, 이는 제1차 세계대전 전 문인들과 예술가들이 이해했던 방식 그대로의 동시주의 개념을 포괄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