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불교신문 연재)
한국미술의 틀린 용어 바로잡기 (37회)
연화좌(蓮華座)→영기좌(靈氣座)(상)
작은 영기좌(靈氣座)라도 장엄한 여래의 영기화생 드라마
작은 금동불이라 하더라도 앞서 다룬 고구려 벽화에서와 같이 가능한 한 갖가지 영기문을 부여하려고 노력한다. 옛 장인들은 연꽃 모양에 온갖 영기문을 부여하여 영기꽃으로 승화시키기 위하여 전혀 다른 차원으로 조형화하여 여래나 보살을 화생시켰다. 여러분! 여래와 보살은 단지 연꽃 위에 서 있거나 앉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 작은 금동불은 영기좌를 단순화 했지만, 복잡한 예를 들어 설명하려 한다. 실은 더 나아가서 결정적으로 여래를 화생시키는 것은 바로 꽃의 씨방=보주이다. 여래와 보살은 막연히 연꽃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씨방 위에 있는 것이다. 그러면 모든 꽃은 씨방이 있는데 왜 하필이면 연꽃모양일까?
모든 꽃은 씨방이 자루 모양인데 연꽃만이 원추형(圓錐形)이어서 그 위에 서 있거나 앉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실제로 원추형 씨방에서 구체(球體)나 타원체(橢圓體)의 씨앗들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옛사람들은 만물의 근원인 씨앗을 형이상학적으로 변형시켜 보주(寶珠)로 인식하여 표현하였다. 그러므로 엄격히 본질적으로 말하면 여래의 보주화생(寶珠化生)이고, 영화된 꽃잎은 다만 보주화생을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인데 지금까지 사람들은 연꽃잎만 보아왔다. 그 까닭은 씨앗=보주 씨앗과 보주의 관계를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꽃잎에 갖가지 영기문을 부여하여 씨방과 더불어 강력한 영기꽃을 형성한다.
도 1-1. 통일신라 금동여래입상. 언뜻 보면 대좌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도 1-2. 영기좌
도 2-1. 영기좌 전체의 채색분석
도 2-2. 영기좌의 상대를 확대하여 채색분석
드믄 예이지만 통일신라초의 금제불상 영기좌(靈氣座)를 살펴보면 왜 그런 용어를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 총 높이는 불과 21. 8센티에 불과하니 대좌의 높이는 6센티미터 가량 밖에 안 되는 작은 작품이다.(도 1-1) 영기좌를 각도를 달리하여 보면 놀라운 도상을 볼 수 있다.(도 1-2) 5년 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통일신라불상 특별전을 열었을 때, 이 작은 작품을 살피다가 대좌를 찍고 사진을 확대하여 보고 깜짝 놀랐다. 이리저리 각도를 달리하여 대좌를 찍어두었다가 이번에 선묘하고 채색분석하니 감회가 깊다. 영기좌 전체를 채색분석한 것을 살펴보기로 한다.(도 2-1) 기단부에는 투각한 단순한 영기창(靈氣窓: 안상이 아니다)을 통하여 기단부 전체가 무한한 우주 공간인 허공을 상징하고 있다. 혹은 영화된 물[靈水]이 가득 찰 수도 있다. 한 가지 색으로 도금한 것이므로 채색분석해 보아야 한다. 하대(下臺)의 연꽃잎마다에는 복잡한 조형이 있다. 우선 제1영기싹을 면(面)으로 한 형태가 연이어 있으며 그 사이 중앙에 큰 보주가 있고 그 보주에서 생긴 무량한 작은 보주들로 가득 차 있다. 즉 무량보주의 영기화생이다. 그 잎 모양 사이마다에서 잎 모양이 아닌 형태가 나오는데 입체적 양감이 대단하다. 있다. 즉 이 꽃잎 역시 막(膜) 같은 얇은 잎에 영기를 한껏 불어넣어 영화(靈化)시킨 것이다. 중대(中臺)에도 영기창이 새겨져 있는데 투각하지 않고 수많은 작은 보주들을 새겼다! 이것은 ‘우주에 충만한 생명력 가득 찬 무량한 보주’를 나타낸 것이 아닌가. 상대(上臺)의 연잎마다에도 하대에서와 같이 무량보주의 영기화생을 나타냈다.(도 2-2) 이러한 과정을 거쳐 마침내 씨방이 화생하는데 씨방 안에는 씨앗=무량보주가 화생하고 있다. 즉, ‘이 전체의 조형은 무량한 보주가 영기화생하는 조형이지 연꽃 대좌가 아니다.’ 바로 이런 영기좌(靈氣座)에서 여래가 영기화생하는 것이다. 영기좌를 보면 오로지 무량보주의 영기화생이라는 실상(實相)이 있을 뿐, 연꽃이라는 것은 허상(虛像)에 불과하다. 상대(上帶)의 조형 전체를 잘 보이도록 올려다본 것을 다시 채색분석해 보면 전모를 더욱 확실히 파악해 볼 수 있다.(도 2-2)
매우 드믄 영기좌이지만 이 예로 보아 다른 모든 불상의 예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즉 다른 예들은 이러한 도상들을 생략한 셈이다. 마침내 전에는 전혀 보이지 않았던 영기문들이 분명히 보이니 여래의 장엄한 영기화생의 드라마가 눈앞에 펼쳐지지 않는가. 채색분석해 보면 영기좌의 실상이 매우 뚜렷하게 드러나므로 내 스스로 큰 충격을 받는 동시에 희열을 느낀다.
뒤돌아보면 젊은 시절 30대와 40대에 작은 금동불 연구에 몰두하여 왔었다. 한국은 물론, 일본과 유럽과 미국의 유명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작은 금동불에 열광하였었다. 물론 그와 관련된 중국과 일본, 그리고 인도의 불상도 조사 연구했다. 아마도 내 손 안에 놓고 조사한 것만 2000점은 될 것이다. 비록 총 정리하여 저서로 내지 못하였지만, 그 연구를 바탕으로 수많은 불상에 관한 논문들을 써왔다. 금동불상만 연구한 것이 아니다. 석불이나 소조불 등 더 나아가 모든 장르로 무섭도록 광범위하게 확장하여 갔다. 금동불은 크기가 작아서 생략이 많다. 그러나 그 작고 정교하고 단순함에서 무엇인가 진리를 읽어내려고 노력했다. 많은 궁금한 문제는 큰 석불이나 소조불에서 알아 낼 수 있었고, 결국 불상회화에서 모든 문제를 풀어낼 수 있었다. 이러한 긴 여정에서 지금 뒤돌아보면 그런 바탕이 있었으므로 오늘 날의 내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 다룬 금동불은 매우 작은 금동불이지만 대좌에 이런 중요한 상징을 정교한 솜씨로 자세하게 표현한 작품은 처음이었다. 전시실에서 처음 보았을 때 깜짝 놀라서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두었었다. 그러나 지금 영기화생론을 더욱 정교하게 정립하여 가는 과정에서 비로소 그 대좌의 조형에서 상징을 분명하게 밝혀낼 수 있었다. 사진을 프린트하고 선묘 뜨고 채색분석하여 가는 동안 나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희열과 동시에 슬픔이 교차했다. 아, 얼마나 수많은 작품을 관찰하여왔고 얼마나 많은 논문과 수필을 써왔고 얼마나 많은 강의를 해왔었는가. 60세 이전에 조사 연구한 그 모든 작품들의 세계가 이제 바야흐로 그 진리의 세계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인류가 이루어낸 일체의 조형미술을 읽어내고 있으니 기쁘지 아니한가. 내 삶과 학문의 중심에는 금동불이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