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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용어

오방색(五方色)

작성자참꽃마을|작성시간08.07.20|조회수595 목록 댓글 1
■ 오방색과 상징 의미

“오방색(五方色)은 무엇입니까?”


파랑, 빨강, 노랑, 흰색, 검정을 ‘정색’또는 ‘오방정색’이라 하고, 초록, 주홍, 벽색, 자색, 유황색을 ‘오방간색’이라 한다. 색상 또한 방위에 따라 오색을 배정하고 오행의 상관관계로 인하여 중간색이 나오며, 중간색에서 무한한 색조가 생성하는 것으로 보았다. 동양사상의 기저를 이루는 것은 음양오행사상(陰陽五行思想)인데, 우주를 형성하는 원리이자 질서의 원리로 인식되었으며, 우리나라의 모든 분야에 영향을 주었다. 이는 무속과 풍수 등의 논리적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이익의 『성호사설』에서는 ‘고공기’의 오행에 따른 색상과 중간색의 생성을 해석하고 있는데, 오행에는 오색이 따르고 방위와 계절이 따른다. 이것은 색과 방위와 계절을 오행에 맞추어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앙과 사방을 기본으로 삼아서 오방이 설정되고, 거기에서 8방과 16방이 생성한다고 보고 있다. 색상 또한 방위에 따라 오색을 배정하고, 오행의 상관관계로 인하여 중간색이 나오며, 중간색에서 무한한 색조가 생성되는 것으로 보았다.

[오방정색]의 의미
우리의 색동은 오방색을 중심으로 배열하여 색동옷, 까치두루마기, 오방주머니 등을 만들었다. 오방색과 오간색의 合인 색동옷은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있어 섣달 그믐날 아이에게 입혔다. 태극기도 음양오행사상에 의해 만들어졌고, 음식의 맛과 색상에서도 음양오행의 원리가 자리잡고 있다. 맛에서는 맵고, 달고, 시고, 짜고, 쓴 五味를, 색상에서는 五色을 조화시킨 예가 많다. 궁중음식으로 대표되는 우리의 전통음식은 음양오행의 원리에 따라 오방색의 조화를 중시하였다.

[청색]
청색은 동쪽, 목(木), 봄, 신맛, 기쁨 등을 상징하며 음(陰)에 해당한다. 오행사상에서 청색은 봄을 상징함에 따라 창조, 불멸, 생명, 신생, 희망을 상징하고, 양기가 왕성한 색으로 사용되었다. 현대에는 청색을 평화와 영원, 신뢰, 그리움, 평온, 용기, 진리 등의 의미로 사용한다.

[적색]
적색은 양기가 왕성하고 만물이 무성하여 생명을 낳고 지키는 힘으로 상징되어, 민속에 많이 쓰인 색이다. 또한 토속신앙의 주술적 의미로 귀신을 쫒는데 주로 이용하였다. 예를 들면, 동짓날 팥죽을 먹으면 팥의 붉은색이 액막이가 된다고 여겼고, 간장을 담글 때 발간 고추를 띄웠으며, 아들을 낳았을 대 부정한 것을 막기 위해 문밖에 붉은 고추를 단다든지, 부적은 반드시 붉은 색으로 글씨를 쓰는 등 우리민속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백색]
백색은 우리 옷에 가장 많이 사용된 색채로 우리 민족은 고대부터 흰옷을 즐겨 입어 ‘백의민족’이라 불리었다.

[흑색]
흑색은 음(陰)의 색으로 쓰여 일찍부터 백색과 함께 금지되기도 하였으며, 계절로는 겨울을 나타낸다. 이것은 흑색이 봄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소생을 상징함과 동시에 만물의 흐름과 변화를 뜻하고 있음을 말한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음의 색으로 사용을 꺼렸으나, 민간에서는 전복, 벙거지, 복건, 신부의 도투락댕기, 제복 등에 많이 사용하였다.

[황색]이것은 금색으로 오행에서 중앙을 상징한다. 모든 색의 근원으로 숭상되었으며, 중국에서는 천자(天子)의 색으로 여길 정도로 가장 존귀한 색이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일반인의 사용을 금지하기도 하였다.

 
 

■ 의생활에서의 오방색
 
적의
색동이나 오색비단으로 지어 까치 설빔으로 유아들이 많이 입던 옷
까치
두루마기
색동이나 오색비단으로 지어 까치 설빔으로 유아들이 많이 입던 옷
조복
임금께 하례(賀禮)를 드릴 때나 국경일에 문무백관이 입던 공복(公服)
심의

덕망 높은 학자, 노재상의 예복으로 송에서 들어왔으며 복건과 대대, 조대를 늘인다.

중치막
&
전복

유생(儒生)의 평상 예복. 중치막은 무가 없고 옆이 트였으며 색은 옥색, 백색, 청색, 남색 등 다양하다. 임진란 이후에 조복 밑받침이나 외출복으로 사대를 매고 태사혜를 신었다.

홍원삼

원삼은 여자 예복의 하나로 신분에 따라 색과 문양이 달랐다. 황후는 황원삼, 왕비는 홍원삼, 비빈은 자적원삼, 공주?옹주?사대부가의 부인은 초록원삼을 입었고, 각 신분에 따라 용, 봉황, 꽃 등으로 장식되는 무늬도 각각 달랐다. 원삼을 입을 때 머리는 어여머리로 하고 장식용 떨잠을 꽂았다.

노의
노의는 왕비의 상복이며 4품 이상 정처의 예복으로 착용되었다.
면복
&
면류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국왕이 종묘와 사직에 제사지낼 때, 즉위시, 정월 초하루, 왕비를 맞이할 때 입던 법복(法服)으로 면류관과 곤복으로 이루어져 있다.

익선관포

국왕이 평소 집무를 볼 때 입던 옷으로 면복과 조복보다 많이 입었는데, 익선관, 곤룡포, 옥대, 화로 이루어진다. 특히 곤룡포는 용포라고도 하는데 왕을 상징하는 다섯 개의 발톱이 달린 용무늬를 수놓아 가슴, 등, 양어깨에 붙였다.

오색
주머니

우리 의복에는 주머니가 없으므로 실용적인 면에서 만들어 차게 된 것이 장식화 되는 한편, 만복을 기원하는 상징물이기도 하였다. 주머니의 대표적인 형태는 주머니 둘레가 둥근 염낭과 양 옆이 모가 나 있는 귀주머니가 있는데, 사용한 천과 색 부금에 따라 신분의 존비, 귀천, 상하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궁중용은 오방낭자가 있으며 임금님이 정월 첫 해일에 종친에게 하사하기도 하였다.

 
 


■ 식생활에서의 오방색

음식의 색도 음양오행설에 따라 조화시켜 왔다. 궁중 음식의 오훈채나 오색고명, 김치 등도 모두 오행의 원리를 적용한 음식들이다. 무병장수를 기원하는데 사용된 팥죽은 잡귀를 물리치는 음식으로 적색이 상징색이다. 식생활에서 간장항아리에 붉은 고추를 끼운 금줄을 두르는 것은 나쁜 기운의 근접을 막기 위한 것이며, 팥죽, 시루떡도 음의 기운을 물리치고자 하는 것이다. 또 잔치상에 오르는 국수는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국수위에 올려진 오색고명은 오행에 순응하는 복을 비는 의미가 더하여져 있다.
한국의 떡 색은 흰색의 바탕에 오방간색을 사용하기도 했으며 팥이나 쑥 등 곡식이나 나물의 색이 많다.

김치
다식
구절판
신선로
비빔밥
오색송편
 



■ 주생활에서의 오방색
“단청은 무엇입니까?”

‘단청’이란 말은 일반적으로 집의 벽, 기둥, 천장 같은 건축 가구부재에 여러 가지 빛깔로 그림이나 무늬를 그려 놓은 것 또는 그 일을 가리키고 있으나, 좀더 넓은 의미로서는 조각 형상이나 공예품 등에 채화(彩畵)하는 것과 서(書), 회(繪), 화(畵)의 개념을 통틀어 하는 말이다.
‘단청’은 목조건물에 여러 가지 색으로 무늬를 그려 아름답게 장엄하는 장식을 말한다. 이런 단청의 역사는 원시 인류가 미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신비한 힘을 비롯하여 맹수, 맹금, 독충 등의 침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 온몸에 여러 가지 색을 칠하거나 혹은 문신하며 그들이 일상에서 사용하던 도구에도 여러 모양의 무늬로 장식하던 때부터라고 말할 수 있다.

“단청은 왜 했을까요?”

건축물에 단청이 필요하게 된 요인은 다음과 같은 4가지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첫째, 건축물의 영구보존을 위한 목적이며, 둘째, 재질의 조악성을 은폐하기 위한 방법이며, 셋째, 궁전 위풍과 또는 법당의 화엄장엄을 위한 목적이며, 넷째, 기념물인 성격으로서 전시, 기록을 위한 목적이다.
이상과 같은 몇 가지 단청의 발생 요건 가운데 건축물의 표면과 세부 구조물에 칠, 도장(塗裝)을 하는 것은 목재의 부식을 방지하는 목적이 가장 크게 작용하였던 것이며 아울러 표면을 아름답게 장식하는 효과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특히 동양의 건축 양식이 주로 목조 가구식으로 발달되면서 군주의 권위와 신성(神聖)을 과시하기 위하여 많은 비용과 인력을 들여 국가적인 차원에서 조영되었던 것이므로 우선 그 영구적인 보존 문제가 당연히 강구되었을 것이다. 동양에서 건축재로 많이 사용되었던 소나무는 재질적인 특성은 내강(耐强), 내구(耐久), 내곡성(耐曲性)을 지니고 있어서 건축재로는 매우 적합하다 하겠으나 이러한 장점에 비하여 목질이 강하므로 제재(製材)된 목재의 표면은 거칠고, 건조되면서 열상(裂傷)이 크다는 점이 단점이라 하겠다. 이렇듯 목재의 표면을 은폐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표면을 도장하는 방법이 발달하게 되었으니 단청이 발달된 가장 큰 요인이 된다.
구석기시대 말기 원시 인류의 동굴벽화나 바위에 새긴 그림들은 지상 건물에 그렸던 도식화된 단청과는 목적이 다르긴 하지만 그것이 일정한 장식적인 역할을 하였던 의미에서는 뒷날 단청다운 단청이 생기게 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인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예컨대 원시미술에서 채색 토기의 출현과정을 보거나 목칠공예에서 표면을 은폐하기 위한 방법으로 칠의 발달을 보게 된 것 등을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표면의 조악성을 은폐하기 위한 방법과 아울러 외모를 아름답게 꾸미는 의장적 효과를 보게 됨으로써 더욱 더 발전을 보게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단청이 발생하여 발달을 보게 된 이러한 여러 가지 요인은 단지 건조물에 한하여 이루어질 수 있는 요소가 아니라 회화, 공예, 조각 등 조형미술의 발생 근원이 되었던 점에서 매우 주목되는 것이다.


--------------------<백련사 대웅전> -----------------<경복궁 근정전>

 

주생활에서 우리 선조들은 건축 재료로서 붉은 빛이 나는 황토를 사용하였으며, 새해가 되면 한해의 안녕을 빌고 재앙을 물리친다는 기복과 벽사의 의미에서 붉은 부적을 그려 붙였다. 또 목조건물에는 단청을 칠하여 건물의 보존과 장식은 물론 왕궁과 사찰의 위엄을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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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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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추억여행 | 작성시간 08.07.26 많은것을 알게 됐어요. ++^^++ 감사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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