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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조각가 에듬 부샤르동의 이 큐피드는 ‘매혹’ 그 자체다. 대리석으로 물 흐르듯이 조각한 이 작품은 몸을 수그린 채 살아 움직일듯 날렵한 활을 깎고 있는 해사한 소년을 표현했다. 이 소년은 몸을 수그려 작업에 열중하다가 흘끗 시선을 돌리며 어렴풋한 미소를 날리고 있다. 그의 무심한 매력은 에티엔 팔코네의 조각인 [침묵을 명하는 큐피드]처럼 거의 악마적으로 보일 지경이다. 큐피드의 화살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고 한다. 금화살을 맞는 자는 걷잡을 수 없이 사랑에 빠져들고, 납화살을 맞는 자는 납덩이처럼 마음이 굳어져 어찌할 길 없는 미움으로 전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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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라클레스 곤봉과 큐피드 활의 의미는?
 활을 깎는 재료는 무엇인가? 그가 활을 깎는 재료는 곤봉으로 헤라클레스의 상징물 중 하나다. 헤라클레스의 다른 상징물은 네메아의 사자를 죽이고 난 후 항상 걸치고 다닌 사자가죽이다. 사자가죽은 조각상 뒷편에 마르스의 무구와 함께 놓여있다. 곤봉은 본래 Y자 상징과 함께 초기 기독교 시대부터 선악의 기로에 선 선택의 상징을 나타낸다. 또한 ‘갈림길의 헤라클레스’ 도상에 항상 동반되는 모티프이다. 나중에 한번 더 다루겠지만 이 도상의 계보는 대단히 뿌리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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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기로에서 선의 선택, 옳고 그름을 가르는 판단력, 악을 물리치는 힘을 나타내는 이 곤봉으로 큐피드는 사랑의 활을 깎고 있다. 헤라클레스는 곤봉을 무기로 삼아 12가지 임무를 해결했다. 그는 곤봉으로 카커스를 때려잡았고, 숲을 황폐화시키는 광포한 네메아의 사자를 목 졸라 처리한 후 사자 가죽을 항상 걸치고 다닌다.
그렇다면 큐피드가 지닌 활의 의미는 무엇일까? 큐피드가 날리는 화살을 맞은 자는 자신도 모르게 불가항력적인 힘에 복종하게 된다. 그 욕망의 힘 앞에서 판단력은 무화된다. 사랑은 그 힘이 진실로 실현될 때 법 이전의 법이 되며, 지상의 잣대로 판단하는 옳고 그름을 넘어선 차원에 존재한다. 큐피드의 화살은 합리적 이성을 무력화시키며, 선악을 이분법적으로 판가름하는 대립구조 자체를 무너뜨린다. 성서에서 ‘법은 죽게 하나 사랑은 살게 한다’고 말하듯 사랑의 논리는 역설이다(큐피드의 사랑은 아가페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육욕이긴 하지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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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샤르동의 큐피드는 반드시 조각상 주위를 걸어다니며 사방에서 보야야만 하는 조각이다. 부샤르동의 큐피드는 각도에 따라 표정과 매력이 다르다. 또한 일견 사악해 보일만큼 무구하게 웃고 있는 앞모습 만큼이나 뒷모습이 전해주는 함의가 남다르다. 뒤를 볼 때 ‘전쟁의 신’ 마르스의 무기와 방패에 걸쳐진 사자가죽이 드러나 보이기 때문이다. 마르스의 언급으로 볼 때 그가 활을 깎는 도구는 전쟁신 마르스의 검으로 추측된다. 그가 깎고 있는 무기는 아직 활이 아니며, 사랑의 활이 되어가는 중의 과정, 곤봉과 활 사이에 있는 과정 중의 무엇이다. 그는 작업 중 어딘가 바깥을, 다른 쪽을 바라보고 있다. | |

[헤라클레스의 곤봉으로 사랑의 활을 깎는 큐피드] 측면과 후면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NM) 지엔씨미디어 작품 보러가기
사랑받는 소년, 활을 깎는 큐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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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피드는 누구일까? 그는 ‘욕망’이며 프쉬케의 연인이자 비너스의 아들이다. 플라톤의 [향연]에서는 에로스의 출생과 본질에 대해 디오티마를 통해 플라톤의 견해가 피력되기도 하지만 큐피드는 다른 신화 속 신성과는 달리 아버지가 누구인지 명확히 알 수 없다. 아버지가 명시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욕망의 대상을 겨냥할 때, 아버지라는 매개를(혹은 장애물이자 금지를) 필요치 않으며, 법을 초월한 존재라는 뜻이다. 큐피드의 화살은 이유가 없고, 신과 인간을 가리지 않는다. 그는 어머니 비너스와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으며, ‘어머니의 아들’로서 반드시 어머니와 한 쌍으로 존재한다.
부샤르동이 만든 ‘큐피드’는 상징지물을 통해 헤라클레스와 마르스를 동시에 언급하고 있다는 점 외에, 비너스를 환기하는 상징물이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대문자 아버지’가 없으며 따라서 법이 없다. 모든 신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장난꾸러기 사춘기 소년. 그가 날리는 화살엔 이유가 없다. 어떤 학자는 이 큐피드는 비너스 자체로서 어머니의 가면이자 그 확장이라고 주장한다. 비너스로서의 큐피드라는 것이다. 어쨌든 이 조각이 사랑의 표상이자 은유로서 기능하는 것은 확실하다.
이 큐피드의 모델이 된 것은 매너리즘 시대의 화가 파르미지아니노의 그림일 것으로 생각된다. 파르미지아니노의 유명한 [큐피드] 복제품이 18세기 오를레앙 콜렉션에 ‘코렛지오 전칭작’으로 소장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샤르동은 파르미지아니노의 작품 보다는 보데가 제작한 복제 동판화를 보았을 가능성이 더 높다. 또한 프란체스코 알바니의 [대장간의 비너스]에서 볼 수 있듯이 활 깎는 큐피드의 도상적 전례도 존재한다. 대장간의 비너스를 다룬 일련의 그림에서 무기를 다듬으며 바쁘게 움직이는 천사들을 볼 수 있다. 날개달린 천사들은 마치 공방에서 바삐 작업하는 소년 도제들을 그대로 모델로 삼은 듯 하다.
이 큐피드 조각은 뒤에서 볼 때도 표정이 풍부해 색다른 체험을 안겨준다. 아이들은 마음에 드는 사람을 뒤로부터 다가와 살며시 껴안는다고 한다. 부샤르동은 ‘사랑’을 껴안는 듯한 느낌을 조각의 뒷면에 새겨 넣었다. 이 조각상에는 조각가가 느낀 애초의 느낌과 생각, 대리석의 표면을 다듬고 매만지는 노고, (사랑받는) 연인을 찬미하는 듯한 느낌이 부여되어 있다. 그러나 살갗처럼 따스한 피부는 실제로는 차가운 대리석일 뿐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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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미지아니노 [큐피드] 1523~1524년 목판에 유화, 135cmx65.3cm,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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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는 자’는 ‘사랑하는 자’로부터 무엇인가를 상실케 만든다. 이것이 사랑하는 자를 전통적으로 여성으로 묘사하는 이유이다. (사랑하는 자, 조각가의 눈으로) 뒤에서 바라본 큐피드는 아마도 그 ‘사랑받음’의 모습을 보이는 것이 아닐까? 조각의 뒷면에 존재하는 것은 일에 열중한 큐피드의 뒷모습 외에 사자가죽과 마르스의 무구이다. 그는 현재 활을 깎는 큐피드의 모습이지만 아마도 이전에는 마르스와 같은 전사 혹은 헤라클레스, 혹은 공방의 소년들처럼 일하는 자였을지도 모른다. 큐피드, 즉 라무르 l’Amour는 ‘사랑받는 자, 연인’에 대한 남성 환타지였다. 사랑은 상대방의 결함을 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부족함과 미숙함이 나의 욕망의 원인이 된다. 사랑은 눈멂, 사랑은 어린아이다. 이성이 결핍된 아이인 것이다. 그리고 큐피드의 날개는 지상을 초월하는 가벼움이다. 비록 눈이 묶이진 않았으나 큐피드는 개별자를 초월해 영원을 응시하는 조각상의 관례에 따라 동공없는 텅 빈 응시를 드러낸다. 네메안 사자가죽의 움푹한 안구 자리는 큐피드의 텅 빈 눈과 앞뒤로 조응하는 요소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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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드리크 콜치우스 [파르네제 헤라클레스] 약 1592 동판화, 41x30cm, 뮌헨 국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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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시포스 원작 ‘파르네제 헤라클레스’의 모방작 [파르네제 헤라클레스], 브론즈, 루브르 미술관,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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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샤르동이 조각한 큐피드의 눈은 대단히 독특하다. 미소짓는 듯한 텅 빈 눈이 나타내는 ‘눈멂’은 다른 사람들의 느낌, 타자의 매력에 대한 그의 무관심을 지시하기도 한다. 그는 아무렇게나 화살을 날리며, 자신이 어떤 열망과 고통을 초래하는지에 대해 눈 멀어 있다. ‘눈멂’은 또한 큐피드의 사랑없는 자기 충족성을 표현한다. 영원을 응시하는 텅 빈 눈은 초시간적이며 완벽하게 자기을 향해 있는 것이다. 그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시선을 돌리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내면으로 침잠해 있다. 그는 화살을 날리는 행위를 통해 세속적 차원으로 개입해 들어가며, 영웅들이 극복하고 ‘가로지르기’ 해내야 할 ‘오물투성이 운명’을 전개하는 신비한 끌개 역할을 한다.
사랑의 두가지 승리 – 사랑의 사원, 헤라클레스의 승화
 이 작품은 국왕 루이 15세의 시종관인 바티망 드 르와에 의해 1739년 이전에 주문되었을 것이라 추측된다. 1730년대 말에 완성된 이 작품은 베르사이유 궁전에 배달되었다. 그리고 1750년 8월 19일, 루이 15세의 공식 아파르트망의 한 끝이자 ‘거울의 방’ 전실(ante-room: 본실로 이끄는 곁방이자 대기실)이었던 ‘전쟁의 방 salon de la guerre’에 놓였다. 후일 이 조각은 ‘헤라클레스의 방 salon d'Hercule’으로 이전되었다. 이후 조각상은 다시 국왕의 한시적 체류지 중 하나였던 드 슈와지 성의 오렌지 정원으로 옮겨졌다. 그곳에서 1778년까지 놓였다가 최종적으로 파리 루브르 미술관의 그랑 갤러리에 놓이게 되었다. 또 복제상이 베르사이유 궁전 프티 트리아농 내의 ‘사랑의 사원’에 놓였다. ‘사랑’을 놓는 적절한 위치에 대한 국가적 고심을 보여주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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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샤르동의 조각상이 놓여있던, 1730년대에 새롭게 완성된 ‘헤라클레스의 방’은 새로운 통치 기예를 선보이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장소였다. 호화로운 벽 장식은 청동 도금된 주두 capital로 장려하게 장식되었다. 천장에는 화가 프랑소와 르무안의 [헤라클레스의 예찬]이 그려졌다. 이 그림은 질투하는 아내 데이아네이라에 의해 독이 묻은 옷을 입은 헤라클레스가, 뼈와 살이 타오르는 고통에 못이겨 불 살라 달라고 부탁한 후, 장작불에 타버려 신이 된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영웅의 신성화는 ‘갈림길 위에서의 선택’이 가져온 궁극적 결과이다. 신성화된 영웅의 천장 아래에 비너스의 아들이 조각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헤라클레스와 큐피드는 어떤 연관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까?
큐피드와 헤라클레스는 그들의 상반된 본성상 서로 무관한 캐릭터로 보인다. 장난삼아 방탕한 사건을 일으키는 큐피드와는 달리 헤라클레스라는 이름 자체가 ‘헤라의 영광’이며, 여주인 헤라를 ‘명예롭게’ 섬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헤라클레스의 일생에는 온통 힘겨운 노역 뿐이고 여자운이라고는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부인(데이아네이라)은 옷에 독을 발라 그를 태워 죽이기까지 한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헤라클레스의 여성편력은 많지만, 연애는 대부분 불행하며 코믹하거나 잔혹하게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헤라클레스는 큐피드가 의미하는 사랑과 별 관련성이 없어 보인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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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이유 궁전 내 [헤라클레스의 방과 천장]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작품 보러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