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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이야기

테마로 보는 미술 : 명화 속 성서 이야기 그리스도의 세례

작성자숲향기|작성시간11.04.19|조회수501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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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마태오 3,16-17)

 

세례를 뜻하는 그리스어 밥티스마(βαπτεζω)는 ‘담그다’ ‘씻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로 물에 담그는 일이나, 씻어 깨끗이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교 뿐 아니라 보편 종교사에서 물은 정화와 생명의 상징으로, 새로 태어남과 재생의 의미를 지닌다. 예수가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은 이 사건은 하느님의 아들임을 확인받고 권능을 부여받는 동시에, 감추어졌던 생활에서 메시아로서 공적인 생애가 시작되는 전환점이다. 세례의 장면은 4대 복음서에서 모두 다루고 있으며, 구약에서는 요나의 이야기, 노아의 홍수, 그리고 홍해를 건너는 사건 등을 통해 물을 통한 세례를 예고한다. 물을 통한 죽음과 심판, 그리고 그 과정을 거쳐 구원과 부활에 이른다는 구조의 이 이야기들은 세례가 가진 심판과 구원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부각시킨다.

 

  • 1  [그리스도의 세례], 3세기 초, 카타콤 칼릭스투스. 로마
  • 2  [그리스도의 세례], 330년 경, 카타콤 산 피에뜨로 에 마르첼리노, 로마

 

 

죽음의 공간에 그린 희망


세례에 관한 최초의 이미지는 3세기 초, 카타콤 칼릭스투스(the Catacombs of St. Calixtus)에 나타난다. 화면 오른쪽, 세례자 요한은 수염이 없는 모습으로, 철학자의 망토를 입고 강둑에 서 있다. 그는 한 손을 뻗어 예수를 강에서 끌어 올리는 듯한 자세를 취한다. 한편 예수는 누드의 젊은이로 묘사되었으며, 침례(immersio)의 방식으로 세례를 받은 듯하다. 또 화면 왼쪽 상단에는 성령이 비둘기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또 다른 카타콤에 등장하는 벽화에서 예수는 요르단 강에 서서 정면을 향하고 있고, 세례자 요한의 손이 그의 머리에 놓여 있다. 카타콤 칼리스투스의 것과 비교하면 비둘기가 크게 묘사되었으며, 마치 하늘에서 내려오는 빛처럼 성령이 예수의 몸 전체에 뿌려지고 있다. 이처럼 예수의 머리에 손을 얹은 세례자 요한과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는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부터 세례 도상의 전형으로 자리 잡게 된다.

 

산타마리아 안티구아의 석관, 270년 경, 로마

 

 

270년 경에 제작된 석관(sarcophagus)에는 세례 장면이 요나의 이야기, 기도자상, 철학자의 모습, 착한 목자와 함께 나타난다. 석관 맨 오른쪽에 등장하는 세례에는 예수가 나신의 어린아이로 등장하는데, 이는 하느님의 아들이 자신을 낮추어 인간 세상에 온 것을 의미하며, 세례자 요한은 수염이 난 장년의 철학자 모습으로 강둑을 의미하는 돌 위에 서 있다. 화면 좌측에는 물고기 뱃 속에서 사흘 만에 구원된 요나가 조롱박 넝쿨 아래에 누워 있는 장면이 있다. 구원과 부활의 예표인 요나의 이야기를 세례 장면, 또 그 바로 옆에 있는 착한 목자 도상과 연결하면, 이 석관의 내러티브는 양이 착한 목자에 의해 구원을 받는 것처럼 박해시대의 그리스도교 인들이 세례를 통한 구원의 열망을 재현하고 있다. 요컨대, 313년 그리스도교 공인 이전의 세례 이미지는 카타콤과 석관이라는 죽음의 공간 속에서 희망을 그리고 있다.

 

 

세례당과 세례반을 장식하다

6세기 라벤나에 지어진 아리우스파를 위한 세례당의 천장 모자이크에서 강둑에 올라서 있는 세례자 요한은 성서에 묘사된 대로 낙타털 옷을 입고 있는 고행자의 모습이다.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의 작품에서처럼 세례 요한의 손은 예수의 머리에 놓여있고, 그리스도는 알몸으로 강 물 속에 반쯤 잠긴 모습이다. 무엇보다 이 모자이크에서 가장 흥미로운 점은 화면 왼쪽, 상의를 벗고 허리춤에 물통을 차고, 갈대를 들고 있는 흰 수염의 노인이다. 그가 지닌 물동이에 주목하면, 그곳에서 흘러나온 물이 강을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노인은 요르단 강을 의인화 한 것으로, 산, 물, 바람 등 자연을 의인화 했던 그리스인들의 방식이 그리스도교 문화에 여전히 남아있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또 비둘기는 원추형의 빛을 예수의 머리위로 뿌리고 있다. 한편 이 세례도상을 둘러싸고 있는 열 두 사도가 받치는 금빛 화환(wreath)은 로마 황제에게 신하들이 받쳤던 것으로, 예수의 권의를 드러내기 위해 로마의 전통에서 빌려온 것이다. 또 사도들 사이사이에 그려진 식물은 올리브 나무로, 늘 푸른 올리브 나무는 천국을 상징하는 모티브이기도 한다.

 

  • 1  [그리스도의 세례], 500년 경, 모자이크, 아리우스파 세례당, 라벤나
  •  세례반, 1240-50년 경, 청동, 힐데스하임 대성당, 힐데스하임

 

 

세례당의 천정 모자이크 뿐 아니라, 중세에는 실제로 세례를 주는 물을 담았던 세례반(font)에도 세례는 즐겨 다루어지는 주제로 등장한다. 1240-50년 경 힐데스하임 대성당에 놓여진 청동 세례반에는 새로운 모티브들이 나타난다. 우선 화면 우측, 예수 그리스도의 왼편에 그리스도의 옷을 들고 있는 천사의 등장이다. 이는 비잔틴에서 유래한 전통으로 천사들은 세례를 축하하는 동시에 세례의 증인이기도 하다. 또 요르단 강이 의인화되거나, 허리나 어깨까지 몸을 담그는 단순한 침수가 아니라 추상화된 장식처럼 되어 마치 ‘물로 된 산’처럼 표현했다. 이는 10세기 이전 카파도니아에서 종종 나타나던 것이 서방 교회에 전해진 것이다. 한편 이 세례반을 지탱하는 네 개의 다리는 천국의 네 강인 피손, 기혼, 티그리스, 유프라테스를 의인화 한 것이다.

 

 

침수에서 관수로 표현하다


14세기에 이르면 이전까지 침수로 표현되었던 세례의 장면이 세례자 요한이 직접 물을 흘려 붓는 관수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는 요르단강을 성스러운 강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보다는 사실적인 풍경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데서 기인한 것이다. 또 예수의 몸도 완전한 나체에서 로인클로스(loincloth)가 감기게 되고, 인체미를 강조하는 표현이 속속 나타난다. 또 중세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세례 대기자들이 등장하여 사실감을 증대시킨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그리스도의 세례] 1440년경
패널에 탬페라, 167cmx116cm, 내셔널 갤러리, 런던

베로키오 [세례받는 그리스도] 1475년경
패널에 유채, 151cmx177cm, 우피치 미술관
작품 보러가기

 

 

1440년경에 그려진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의 [그리스도의 세례]는 당시 이탈리아의 평원과 산을 배경으로 한다. 수학자이기도 했던 화가는 이 작품에 엄격한 수학적 비례를 적용했다. 화면 중앙, 예수의 머리와 성령의 비둘기 사이의 공간의 비례는 너무나 완벽해서 세례자 요한이 붓고 있는 그릇의 물이 멈출 것 같은 정적을 만들고 있다.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의 작품에서는 무릎을 굻은 천사들로 인해 수평의 균형은 깨지고 있으나, 손으로 표현된 성부, 비둘기로 표현된 성령, 그리고 성자로 이어지는 중심축은 삼위일체를 강조하고 있다. 특히 예수가 입은 로인클로스는 당시 피렌체에서 수출되어지던 직물을 그대로 사용하여, 화가가 사는 현실의 시간을 종교적 시간과 함께 표현하고 있다.

 

 

세례, 수난의 시작

1500-2년, 조반니 벨리니가 제작한 [그리스도의 세례]는 비센챠의 영주 지안밧티스타 그라지아노 가르자도리(GianBattista Graziano Garzadori)가 산타 코로나 (Santa Corona)의 제단화로 주문한 것이다. 그는 당시로서 쉽지 않았던 성지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떠나면서 그의 수호 성인인 세례자 요한에게 여행에서 무사히 돌아오면 성인을 기리는 채플을 헌정할 것을 맹세하였고, 무사히 성지순례를 마친 가르자도리는 약속대로 세례자 요한을 위한 채플을 헌정하고, 그의 가족용 무덤으로 사용한다.

 

하늘과 산과 강이 하나로 이어지는 듯한 배경과 콘트라포스토 자세로 서 있는 그리스도의 몸은 자연과 인간이 얼마나 조화롭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표현하려했던 전성기 르네상의 이상을 한껏 들어낸다. 뿐만 아니라 베로키오의 작품에서 손으로 그려졌던 성부의 모습이 이제는 자비로운 아버지로 표현 되어 마치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고 말하는 듯하다. 성부와 성령 성자는 삼위일체의 세로축을 이룬다.

 

벨리니는 성령의 황금빛을 해지는 비센챠의 노을로 바꾸어 자연 안에 존재하는 신성을 들어냈다. 세례자 요한은 한 손에 “Ecce Agnus Dei” 즉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구절이 쓰여진 두루마리를 들고, 예수의 머리에 물을 부어 세례를 주고 있다. 물그릇에서 떨어지는 작은 물방울들은 숨이 멎을 듯한 긴장을 일으킨다.

 

무엇보다 화면 전경,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화려한 색감의 방울새는 그리스도 수난의 상징이다. 이 수난의 방울새와 그리스도의 양손을 가슴에 모은 순명의 자세는 세례 이후 그에게 닥칠 수난을 암시한다. 이는 예수 세례를 수난의 시작으로 보는 당시의 종교관을 엿볼 수 있는 측면이다. 그래서 고개를 숙인 세례 요한의 모습이 더욱 숙연해 보인다


조반니 벨리니 [그리스도의 세례] 1500~1502년
캔버스에 유채, 400cmx263cm, 산타 코로나, 비센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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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진 / 문학박사 | 서양미술사 
중세 및 르네상스 미술사 전공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강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 등에서 서양미술사를 가르친다.

 

 

발행일  2011.01.28

이미지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Wikipedia, Yorck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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