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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이유 궁전은 지금도 그 자체 충분히 아름답지만 그러나 오늘날 방문자의 경험이란 당시에 살던 사람들의 것과는 많이 다르리라. 지금 볼 수 있는 것은 겉모습뿐이다. 그러나 건축과 장소는 그 장소의 기후 뿐 아니라 그 공간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이 묻어있어 아름답다. 한 장소는 그곳에서 일어났던 모든 사건, 행위, 말의 보이지 않는 흔적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베르사이유 궁전을 볼 때 가장 흥미로운 사실의 하나는 외관상 건물과 정원의 장려함뿐 아니라 건축, 조경, 미술, 조각, 음악, 무용, 연극을 망라한 종합적 성격이다(그야말로 ‘건축적’이다). 발레를 비롯한 모든 공연과 축연에 정원 조경, 불꽃놀이, 분수 같은 스펙터클한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졌다. 그 모든 것들의 형상화가 예술품, 장식물로 구현되어 기록되고 이론화되었다는 것 또한 주목할 만하다. 몸과 장식적 구조의 결합이 퍼포먼스의 의미였고 모든 것은 함께 어우러져 효과적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건축과 정원 자체가 왕의 몸을 우주적 축으로 하여 문화가 자연과 그대로 공존재로 얽히는 거대한 상징적 확장이었다. 이러한 몸의 확장에는 왕과 귀족들의 참여가 포함되었다(멀리서 팔짱끼고 관람만 한 것이 아니라 직접 참여했다는 점이 놀랍다). 이 시대에 중시되었던 예술과 전례는 이처럼 삶과 불가분의 것이었으며 귀족들 자신의 신체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켰다. 프랑스 상류사회 문화의 특징인 몸의 규율, 훈육되고 다듬어진 이상적 인공적 신체의 추구가 베르사이유에서 구현되었다. 신체의 패턴을 통해 사회적 교환을 규율적 미학적으로 구현해내는 춤은 이 시대 귀족들이 가장 자연스럽게 교우할 수 있는 사회적 장을 만들어냈다.
몸에 적용된 규율 - 사랑의 몸짓, 우아의 권면
 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춤을 ‘눈에 보이는 사유’라 말하는 것처럼 몸과 춤에 대한 이념적 이론적 탐구는 프랑스에서 깊이 연구되었다. 바르게 균형잡힌 신체로 우아하게 춤추는 기술은 이 시대 귀족이라면 반드시 익혀야만 할 신체적 기예로서 사냥, 승마와 함께 높이 평가되었다. 남과 여의 포지션, 바른 자세와 균형잡힌 몸 동작, 적절한 시선의 교환은 모두 중요했다. 모든 동작들을 힘들이지 않고 쉽사리 해낼 정도로 단련해야 했다. 그러나 귀족의 춤이 직업적 댄서의 춤과 혼동되면 곤란하다고 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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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 랑크레 [춤추는 카마르고] 17세기경 |
정교하게 장식화된 미뉴엣의 춤 스텝 패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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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에 대한 이론과 8자형, Z자형, S자형 아라베스크 등 열을 맞춰 추는 집단적 춤의 안무는 라모, 메네스트리에 등의 예술가와 이론가들에 의해 정교하게 구체화되었다. 라모는 무도회를 구조화하는 법을 추천하는데 기본적 규칙은 정식 무도(bal réglé)로 알려져 있다. 정식의 무도는 반드시 왕과 왕비가 먼저 춤을 주도해야만 하고 전체 진행은 그 자체의 일련의 정해진 규칙들을 따라야만 했다. 귀족들은 가보트, 미뉴엣, 지그, 여럿이 추는 콩트르당스, 단 둘이서 추는 커플 댄스 등 여러가지 춤을 익혀야만 했다. 콩트르당스에서 파트너들은 보통 열지은 일련의 후보들 가운데 만나게 되지만, 서로 대각선으로 스쳐지나가며 손을 맞잡고 시선을 교환하고 곧이어 다른 파트너와 바뀌며 춤은 공간적으로 구조화된다.
콩트르당스 및 커플 춤의 모든 선과 모든 움직임은 안무가와 이론가들에 의해 장식적으로 아름답게 기획되고 패턴화되었다. 당대의 문사였던 콩디약, 디드로, 안무가 장 노베르 등은 각기 춤과 소통적 몸짓으로서의 무언극에 대해 철학적, 역사적 고찰을 동반한 논고를 썼다. 춤은 신체가 만들어내는 그림으로서 동작과 행위를 통한 말없는 말로 간주되었다. 당시 발레와 회화의 표현력은 종종 등가로 취급되었다. 궁정 발레의 목적은 무대 위에 스펙터클한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춤의 형식 자체가 하나의 대화로서 육체의 귀족적 훈련과 귀족적 사회성을 위한 권장항목이었을 뿐 아니라, 규정된 몸짓 하나하나가 철학적 성찰의 색채를 띠었다. 서사가 깃든 춤에서 사랑은 언제나 끝에 (최후의) ‘승리하는 힘’으로서 나타난다. 1690년대 이후로는 새로운 장르인 오페라의 유행과 함께 (전쟁이 아니라) 사랑을 찬미하는 목소리가 더욱 고조되었고 그자체의 디베르티즈망 대화체의 노래로 이루어진 오페라-발레의 형식이 발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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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니콜라 코셍 2세 [베르사이유에서 왕이 주최한 무도회] 18세기경 판화, 48.5cmx79cm, 루브르 박물관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작품 보러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