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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이야기

서양미술의 걸작 / 베르사이유와 파리의 무도회 / 절대왕정 미술

작성자숲향기|작성시간11.04.19|조회수939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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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이유 궁전은 지금도 그 자체 충분히 아름답지만 그러나 오늘날 방문자의 경험이란 당시에 살던 사람들의 것과는 많이 다르리라. 지금 볼 수 있는 것은 겉모습뿐이다. 그러나 건축과 장소는 그 장소의 기후 뿐 아니라 그 공간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이 묻어있어 아름답다. 한 장소는 그곳에서 일어났던 모든 사건, 행위, 말의 보이지 않는 흔적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베르사이유 궁전을 볼 때 가장 흥미로운 사실의 하나는 외관상 건물과 정원의 장려함뿐 아니라 건축, 조경, 미술, 조각, 음악, 무용, 연극을 망라한 종합적 성격이다(그야말로 ‘건축적’이다). 발레를 비롯한 모든 공연과 축연에 정원 조경, 불꽃놀이, 분수 같은 스펙터클한 요소들이 한데 어우러졌다. 그 모든 것들의 형상화가 예술품, 장식물로 구현되어 기록되고 이론화되었다는 것 또한 주목할 만하다. 몸과 장식적 구조의 결합이 퍼포먼스의 의미였고 모든 것은 함께 어우러져 효과적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건축과 정원 자체가 왕의 몸을 우주적 축으로 하여 문화가 자연과 그대로 공존재로 얽히는 거대한 상징적 확장이었다. 이러한 몸의 확장에는 왕과 귀족들의 참여가 포함되었다(멀리서 팔짱끼고 관람만 한 것이 아니라 직접 참여했다는 점이 놀랍다). 이 시대에 중시되었던 예술과 전례는 이처럼 삶과 불가분의 것이었으며 귀족들 자신의 신체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켰다. 프랑스 상류사회 문화의 특징인 몸의 규율, 훈육되고 다듬어진 이상적 인공적 신체의 추구가 베르사이유에서 구현되었다. 신체의 패턴을 통해 사회적 교환을 규율적 미학적으로 구현해내는 춤은 이 시대 귀족들이 가장 자연스럽게 교우할 수 있는 사회적 장을 만들어냈다.

 

 

몸에 적용된 규율 - 사랑의 몸짓, 우아의 권면


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춤을 ‘눈에 보이는 사유’라 말하는 것처럼 몸과 춤에 대한 이념적 이론적 탐구는 프랑스에서 깊이 연구되었다. 바르게 균형잡힌 신체로 우아하게 춤추는 기술은 이 시대 귀족이라면 반드시 익혀야만 할 신체적 기예로서 사냥, 승마와 함께 높이 평가되었다. 남과 여의 포지션, 바른 자세와 균형잡힌 몸 동작, 적절한 시선의 교환은 모두 중요했다. 모든 동작들을 힘들이지 않고 쉽사리 해낼 정도로 단련해야 했다. 그러나 귀족의 춤이 직업적 댄서의 춤과 혼동되면 곤란하다고 여겨졌다.

 

니콜라 랑크레 [춤추는 카마르고] 17세기경

정교하게 장식화된 미뉴엣의 춤 스텝 패턴 

 

 

춤에 대한 이론과 8자형, Z자형, S자형 아라베스크 등 열을 맞춰 추는 집단적 춤의 안무는 라모, 메네스트리에 등의 예술가와 이론가들에 의해 정교하게 구체화되었다. 라모는 무도회를 구조화하는 법을 추천하는데 기본적 규칙은 정식 무도(bal réglé)로 알려져 있다. 정식의 무도는 반드시 왕과 왕비가 먼저 춤을 주도해야만 하고 전체 진행은 그 자체의 일련의 정해진 규칙들을 따라야만 했다. 귀족들은 가보트, 미뉴엣, 지그, 여럿이 추는 콩트르당스, 단 둘이서 추는 커플 댄스 등 여러가지 춤을 익혀야만 했다. 콩트르당스에서 파트너들은 보통 열지은 일련의 후보들 가운데 만나게 되지만, 서로 대각선으로 스쳐지나가며 손을 맞잡고 시선을 교환하고 곧이어 다른 파트너와 바뀌며 춤은 공간적으로 구조화된다.


콩트르당스 및 커플 춤의 모든 선과 모든 움직임은 안무가와 이론가들에 의해 장식적으로 아름답게 기획되고 패턴화되었다. 당대의 문사였던 콩디약, 디드로, 안무가 장 노베르 등은 각기 춤과 소통적 몸짓으로서의 무언극에 대해 철학적, 역사적 고찰을 동반한 논고를 썼다. 춤은 신체가 만들어내는 그림으로서 동작과 행위를 통한 말없는 말로 간주되었다. 당시 발레와 회화의 표현력은 종종 등가로 취급되었다. 궁정 발레의 목적은 무대 위에 스펙터클한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춤의 형식 자체가 하나의 대화로서 육체의 귀족적 훈련과 귀족적 사회성을 위한 권장항목이었을 뿐 아니라, 규정된 몸짓 하나하나가 철학적 성찰의 색채를 띠었다. 서사가 깃든 춤에서 사랑은 언제나 끝에 (최후의) ‘승리하는 힘’으로서 나타난다. 1690년대 이후로는 새로운 장르인 오페라의 유행과 함께 (전쟁이 아니라) 사랑을 찬미하는 목소리가 더욱 고조되었고 그자체의 디베르티즈망 대화체의 노래로 이루어진 오페라-발레의 형식이 발달되었다.

 

샤를 니콜라 코셍 2세 [베르사이유에서 왕이 주최한 무도회] 18세기경
판화, 48.5cmx79cm, 루브르 박물관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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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사이유에서는 태양왕 모티프가 궁전 곳곳에 표현되었을 뿐 아니라 건축과 공연이 혼융되었다. 태양왕과 관련된 발레의 내용뿐 아니라 안무된 춤의 패턴들이 장식 모티프로서 그대로 형상화되어 장식적 요소로 건축물 곳곳에 새겨 넣어졌다. 이곳에서 삶과 예술, 건축과 장식, 퍼포먼스가 만들어낸 흔적은 일체였다. 예술품들에서 인간의 신체적 충동과 확장 움직임은 장식적 구조와 자연 안에서 공히 유희한다. 장식구조 자체가 신체적 유희였고, 신체적 유희 자체가 장식이었다. 모든 것은 몸의 움직임을 통해 서로 아름답게 보고, 보여지기 위해 존재했다. 누군가 지적했듯 베르사이유에서 보는 것은 하나의 명령이었다.


본래 루이 14세 치하 궁정 발레는 서열적, 위계적이며 남성적, 호전적이라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다. 태양왕을 비롯한 귀족 전사의 춤은 군사적 성공과 국가 번영을 기원하는 전례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극적 장면 전환을 위해서는 거대한 커텐과 당시의 최신 물리학을 원용한 정교한 기계장치가 사용되었다. 이에 대한 반-경향이 일찍이 17세기 중반에 이미 싹텄고 공존하였다는 것은 또한 흥미로운 일이다. 베르사이유의 무도회는 정원의 구조와 갖가지 예술품과 상응의 조화를 이루는 장관이었고 매혹적인 장면이었지만, 서열과 위계를 엄격히 지켜야만 하는 구속으로 인해 사람들은 점차 자유로운 무엇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 1  베르사이유의 오페라 극장, 18세기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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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베르사이유 오페라 극장, 18세기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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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들의 인기를 끌었던 파리의 가면무도회


수많은 예술가들과 기계장치, 불꽃놀이, 분수를 동원하여 정신을 잃을 정도의 스펙터클한 축연이 계속되었지만, 루이 14세가 군주로서 안정되게 정착하던 시기인 1660년대 중반부터 이미 귀족들은 파리의 가면무도회에 보다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궁정 무도회는 장려하고 아름다웠으나 신분 서열에 따라 춤 조차 정해진 자리에서 줄을 맞추어 움직여야만 하는 등 엄격하고 위계적이었다. 귀족이라 해도 베르사이유에 거처를 마련하기는 대단히 어려운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신분과 재산이 안정된 사람들은 궁정 생활을 즐기면서 자유로운 장소였던 파리 나들이를 놓치지 않았다.


전통적으로 가면무도회는 카니발 때 행해지던 것이지만 17세기 중반 이후 파리의 밤축제는 가면무도회에 집중되었다. 파리에서 열리는 가면무도회는 베르사이유의 공식 무도회와는 다른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지금 시대도 그렇지만 사람들을 (특히 특권계층을) 붙들어 두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형편이 허락하는 한 새롭고 자극적인 즐거움을 찾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서 자신을 숨긴 채 다양한 계층의 매력적인 사람들과 보다 자유롭게 유희할 수 있었다. 국왕과 가장 신분이 높은 귀족들 마저도 가면무도회에 비공식적으로 참석했고, 정체성을 숨기며 숨막히는 의무와 위엄에서 벗어났다. 귀족이 목동이나 평민으로 가장했던 것처럼 부나 작위가 없는 이들도 가면과 분장을 통해 일상과는 한 차원 다른 세계의 분위기를 경험할 수 있었다.

 

  • 1  니콜라 랑크레 [춤추는 카마르고] 18세기
    캔버스에 유채, 45cmx54cm, 낭트 미술관 소장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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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니콜라 랑크레 [파빌리온의 무도회] 1730~1735년
    캔버스에 유화, 130cmx97cm, 샤를로텐부르그 성, 베를린

 

 

프랑스의 배우이자 극작가인 당쿠르는 희극 [궁정의 밤축제]에서 가면을 쓰고 가장하고 등장한 일군의 남녀들이 벌이는 유희를 그렸다. 이들을 이끄는 이는 무도회의 정령이자 춤의 악마인 시뇌도르 Cynoedor인데 그는 그 자체 라무르(큐피드, 육체적 사랑)의 대역이며 ‘악마의 춤’과 ‘모든 가면무도회’의 보호자이다. 시뇌도르는 영화 [마스크]에서 사람들을 춤추게 만드는 기이한 가면과도 같다. 그는 무도회의 정령이자 ‘밤 축제’ 신이며 ‘저항할 수 없는’ 악마적 존재이다. 극작가는 등장인물의 말을 빌려 무도회 정신이란 사회적 아방튀르(모험)이자 (가면과 대역을 통한) 사랑의 성취라고 언급한다. 루이 14세는 [즐거운 발레](1655)에서 실제로 저항할 수 없는 유혹자 시뇌도르를 맡았다. 시뇌도르가 이끄는 춤은 사람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어 카니발 때처럼 한시적으로나마 위계질서를 완전히 섞어버린다. 춤의 움직임 속에 사람들은 잠시나마 서열과 위계를 잊었다. 무도회의 정령이 이끄는 춤은 고대의 제례에서처럼 사회 통합의 힘으로서 작용했던 것이다. 건전하며 창조적인 사회적 상호작용이 무도회의 목적이었다.

 

 

아침까지 지속되는 환상적인 무도회 열기


성대한 행사와 축연이 열리지 않을 때의 베르사이유는 다만 섬처럼 고립된 시골에 불과했다. 베르사이유의 쇠퇴는 이미 궁을 한창 호화롭게 건설해가며 태양왕 치세가 빛나던 1660년 중반~70년대 초창기부터 잠재되어 있었고 말년에 이르면 현저히 그 빛을 잃어갔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이즈음 파리에서 오페라가 유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파리에서 살롱에 들러 오페라를 보고 밤새 가면 무도회에 참석하고 동틀 새벽녘에서야 베르사이유로 돌아오는 마차의 행렬이 점차 늘어났다. 유행의 변화에 따라 남성적이며 권위적인 륄리의 음악은 곧 낡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사람들은 보다 감미롭고 개성적이며 자유로운 것을 원했다.

 

  • 1  장 코텔 2세 [베르사이유 정원 내 무도회실] 17세기경
    캔버스에 유채, 200cmx140cm, 베르사이유와 트리아농궁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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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장 앙투안 와토 [무도회의 즐거움] 18세기경
    에칭, 루브르 박물관 소장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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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라 파예트와 마담 뒤 느와예는 신앙심 깊은 마담 드 멩트농 부인이 루이 14세의 마지막 정부가 된 이래 베르사이유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따분해졌다’고 1689년에 쓰고 있다. 그녀들은 시시할뿐더러, 그나마 왕이 등장하면 ‘썰렁’해지고, 밤 열두시가 다 되서 시작해 두 시 정도에 금방 끝나는 궁정 무도회와 비교해 1713년 5월 21일 베네치아 대사 관저에서 열린 호화로운 축연을 언급한다.


귀부인들의 관심을 온통 빼앗은 것은 특히 파리 특히 베네치아 대사관저에서 열렸던 1713년 5월 21일의 ‘올해의 가장 아름다운 무도회’이다. 마담 뒤 느와예와 작가인 드 네메이츠의 기록에 의하면, 이 무도회는 오렌지 정원에서 열렸다(드 네메이츠는 가면무도회 및 파리의 황금기를 1710년대로 기록한다). 무도회 당일 인기 극작가 당쿠르의 새 작품이 공연되었고, 나무들은 사이사이 무수히 많은 등불로 장식되었으며, 사람들은 모두들 자신이 원하는 가면을 쓰고 무도회에 입장했다. ‘정원은 오렌지꽃 향기로 가득했을 뿐 아니라 오렌지 꽃잎이 가득 뿌려진 네 개의 분수가 휘황한 물줄기를 뿜어내서 사람들을 꿈같은 황홀경에 빠뜨렸다. 그 파티는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그 해의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었고 언어를 넘어선 것이었으며 환상적인 무도회는 아침 여섯시까지 지속되었다.’

 

 

 

 

  1. 콩트르-당스 contre-dance

    커플들이 둘씩 짝지어 마주한 가운데 길게 열을 지어 추는 일련의 춤형식을 말한다. 콰드릴이나 스퀘어 댄스 미뉴엣등 각 나라마다 많은 민속적 춤들이 콩트르 당스에 기반을 두고 있고 커플댄스로서 그 변형태를 가진다. 18세기 프랑스에서 가장 유행한 춤으로 기원은 17세기 프랑스 궁정으로 도입된 영국의 민속무용이라고 말해진다. 템포가 빠르고 경쾌하며 2/4박자·6/8박자 등 2박자 계통의 춤이다. 넓게는 왈츠나 폴카도 콩트르 댄스에서 나왔다고 말하기도 한다.

  2. 디베르티즈망 divertissement

    17~18세기 연극·오페라에서 극의 구성상 전개나 등장인물의 성격을 보여주기 위해 주로 막간에 추던 인터류드interlude: 'intermèdes와 같은 짤막한 발레·무곡을 의미한다. 프랑스어로는 ‘기분전환’ 'diversion' or 혹은 ‘놀이, 오락amusement, entertainment’에서 나왔고 이탈리아의 소규모로 모인 연주자들이 연주하는 가벼운 소곡 디베르티멘토 divertimento와 유사한 의미를 지닌다. 이 용어는 때로는 느슨하게 연결된 춤의 모음곡을 지칭하는데 사용되었다.

 

 

 

최정은 / 미술 칼럼니스트
홍익대학교에서 회화 및 미술사학을 공부했다. 주요 저서로는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에 대한 책 [보이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 [트릭스터: 영원한 방랑자], [동물, 괴물지, 엠블럼]이 있다.

 

발행일  2011.02.16

이미지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Wikipedia, Yorck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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