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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채만한 파도가 몰아친다. 파도 끝의 흰 포말은 마치 손톱을 세우고 달려드는 악마의 손가락처럼 위협적이다. 사공들은 배바닥에 몸을 납작 붙인 채 필사적으로 노를 젓고 있지만 어마어마한 폭풍우의 위용 앞에 인간의 운명은 위태롭기만 하다. 저 멀리 수평선 너머로 보이는 후지산 조차 수그러든 듯 작아 보이는 이 절경은 카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 1760-1849)의 채색 목판화 시리즈 [후지산 36경] 중, [카나가와의 큰 파도]다. 이는 서구 세계에서는 일본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이미지이자, 마네와 모네를 비롯한 인상주의 화가들과 반 고흐, 고갱 등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 된 미술품이다. 살아 생전 호쿠사이는 그가 19세기의 유럽 미술을 완전히 바꾸어 놓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서양의 화가들에게 영감을 준 호쿠사이의 ‘후지산 36경’
 호쿠사이는 채색 목판화, 즉 우키요에(浮世絵) 전문화가였다. ‘둥둥 떠다니는 세상의 그림’이라는 뜻의 우키요에는 에도 시대(1603-1867) 말기에 폭발적으로 성장한 대중 문화의 대표적인 매체였다. ‘떠다니는 세상’이란 원래 인간의 삶이 유한하고, 물질은 덧없을 뿐이라는 불교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우키요에는 오히려 그처럼 덧없는 세상에서 한 순간 살다 가는 가벼운 인생인 바에야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하며, 말초적인 향락과 자극을 추구하는 저자 거리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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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부터 일본에서는 오늘날의 도쿄인 에도를 중심으로 도시가 발달하고, 상공인이 증가하며 고향에 가족을 두고 홀로 상경한 사무라이들이 모여들면서, 그들을 위한 유희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발달했다. 거리엔 춤과 노래에 능한 게이샤들이 손님을 기다리는 유곽이 즐비했고, 스모 경기장은 열띤 응원을 하는 관객들로 가득했다. 가부키 극장에서 울고 웃던 청중들은 집으로 돌아가면 밤을 새워 이야기책을 탐독하는 독자들로 변모했다. 처음에 목판화는 바로 그 유흥업계를 사로잡은 관능적인 미인들과 유곽 여인들의 은밀한 일상을 여과 없이 담은 그림이었고, 가부키 배우와 유명 스모 선수들의 초상화이자, 극장의 포스터였으며, 소설 속의 짜릿한 연애담을 감각적으로 다룬 삽화였다. 18세기 중반부터 다양한 채색이 가능한 다색 목판화, 니시키에(錦絵)가 발달하면서 우키요에는 회화처럼 독립적인 이미지로 생산되어 대중들의 인기를 누렸다.
우키요에를 예술의 장르로 끌어올린 호쿠사이
 우키요에의 제작 방식은 대단히 단순하다. 화가가 그린 밑그림을 바탕으로 판각공이 각 색깔 별로 한 장씩의 목판을 파낸 후, 한 장의 종이에 각각의 목판을 순서대로 찍어내면 된다. 그림에 열 가지 색깔이 쓰인다면, 열 장의 목판을 파내면 되는 식이다. 밑그림과 판각, 그리고 찍어내는 공정은 분야별로 전문가가 나뉘어져 있었고, 오늘날의 출판사처럼 화가와 전속 계약을 맺고, 일정한 수준의 품질을 유지하도록 공정을 관리하여 판화를 찍어내고 판매하는 공방들이 성업을 이루었다. 출판이 전문화한데다 대량 생산이 가능했던 우키요에는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가게들에서 저렴한 가격에 팔려, 라면 한 그릇 사 먹을 수도 있는 서민이라면 누구나 충분히 구입하고 수집할 수 있는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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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와 까치] 1834년 판화, 24.5cmx18cm, 기메 국립아시아미술관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작품 보러가기 |
[코하다 코헤지의 유령] 1931년 판화, 25.8cmx18.5cm, 기메 국립아시아미술관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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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새와 벚나무] 1834년 판화, 25.3cmx19cm, 기메 국립아시아미술관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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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일시적이고 값싼 오락물로 소비되고 버려지기 마련이었던 우키요에를 현대인의 눈까지도 단번에 사로잡는 세련된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화가들 중 하나가 바로 호쿠사이다. 그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었다. 그는 도회적인 삶 속 평범한 이들의 일상을 솔직하게 담아내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대범하고 호방한 시선으로 일본의 자연풍광을 그려냈고, 꽃과 동물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한편, 기발한 상상력으로 보는 이를 오싹하게 하는 요괴와 유령들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그 중 가장 유명하고 상업적으로 성공했던 작품이 바로 1826년, 그가 육십 중반일 때 착수하여 근 십 년에 걸쳐 완성한 판화집 [후지산 36경]이다. 그는 계절의 변화와 기상 상태에 따라 다채롭게 변모하는 후지산을 여러 방향과 거리에서 바라보고 그 모습을 담았으며, 후지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인간사의 이모저모를 섬세하게 포착하여 이미지로 풀어냈다. [후지산 36경]은 큰 인기를 끌어, 차후에 10경을 더해 실제로는 46점의 판화가 묶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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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아침의 신선한 바람 또는 붉은 후지산] 1830년~1832년경 니시키에 판화, 판화, 25.5cmx37.9cm, 기메 국립 아시아 미술관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작품 보러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