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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년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는 역사의 무대에 함께 오르게 된다. 미켈란젤로에게는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를 완성해야 하는 역할이 주어졌고 라파엘로는 교황의 집무실 벽화를 그려는 임무가 주어졌다. 미켈란젤로는 이 모든 일이 자신을 파멸시키기 위해 경쟁자인 브라만테가 꾸민 일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진정한 연출자는 아마도 교황 율리오 2세였을 것이다. 율리오 2세는 군사적 야심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야심도 대단했다. 경쟁관계에 있는 두 명의 젊은 예술가를 한 곳에서 일하게 한다면 두 사람은 혼신을 다해 일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교황 율리오 2세의 부름을 받기 전에 미켈란젤로는 피렌체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일종의 예술적 결투를 벌인 적이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대결했을 때에는 미켈란젤로는 도전자적 입장이었지만 라파엘로와 함께 교황 밑에서 일하는 시점에서는 사정이 완전히 뒤바꿔 버렸다. 8살이나 어리고 우르비노와 페루자 같은 변방에서 그림을 배운 라파엘로 같은 애송이와 한 무대에 섰으니 그리 기분이 좋았을 리 없었을 것이다. 잘 해야 본전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라파엘로의 주특기가 ‘베끼기’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더 초조했을 것이다. 라파엘로가 피렌체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화풍을 받아들이면서 급성장했다는 것을 미켈란젤로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피렌체에 와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린 성모자상을 보면 부분적으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을 연상시키지만 전체적인 효과는 놀라울 정도로 우아하고 아름답기 때문에 결국 그가 여기서 얻은 모든 효과는 라파엘로 자신의 것이라고 충분히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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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의 인체 모티브를 모방한 라파엘로

기록에 따르면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일할 때 모든 것을 비밀로 했다고 한다. 심지어 조수를 쓰는 것도 꺼려 물감 게는 작업도 혼자서 고독히 했다고 알려져 있다. 엄청나게 방대한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알려진 것처럼 혼자서만 했을 가능성은 실제로는 거의 없지만 그가 이 시기 보안에 아주 민감했던 것은 사실처럼 느껴진다. 훗날 바사리(Vasari)가 남긴 기록에 따르면 미켈란젤로는 예배당 문을 꼭꼭 잠가놨지만 브라만테가 몰래 열쇠를 훔쳐 라파엘로에게 미켈란젤로의 작업을 보고 배울 수 있게 해주었다고 한다. 바사리의 글을 곧이 곧대로 믿을 수는 없는데 왜냐하면 시스티나 예배당은 미켈란젤로가 작업할 때 몇 번 씩 공식적으로 일반인에게 공개되었기 때문이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의 작업을 얼마든지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1508년 로마에서 맞붙기 전에 라파엘로는 이미 미켈란젤로 작품의 핵심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미켈란젤로처럼 신이 내린 천상의 재주는 부족했을지 모르지만 라파엘로에게는 베끼면서 배워나가는 ‘추격 능력’이 비상했다. 라파엘로는 1504년부터 피렌체에서 일하면서 미켈란젤로의 작업을 주목해서 보고 있었고 이미 그의 많은 부분이 라파엘로에게 노출되어 있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 |

[도판 1] 라파엘로 [성모자상] 1502, 베를린 국립박물관 / [도판 2] 라파엘로 [성모자상(목장의 성모)] 1508, 비엔나 미술사박물관
[도판 1]은 라파엘로가 19살 때 페루자에 그린 것이고 [도판 2]는 6 년 후 25살 때 피렌체에서 그린 것이다. 두 그림을 살펴보면 라파엘로가 얼마만큼 빠르게 성장해 나갔는지를 알 수 있다. [도판 2]는 안정된 정삼각형 구도 하에서 우아한 눈짓과 손짓으로 이어지는 심리적 연대감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성모자상 [도판 3]을 강하게 연상시킨다.
[도판 3] 레오나르도 다 빈치, 동굴의 성모자상[부분], 1483~1486, 루브르 박물관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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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아들로 태어난 라파엘로는 스승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면서 그것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시켜내는 놀라운 능력을 어렸을 때부터 보여주었다. 라파엘로는 고향 우르비노에서 아버지 밑에서 그림을 배우다가 11살 때 아버지가 죽자 페루지아의 페루지노 공방에서 그림수업을 받았고, 21살이 되는 1504년부터는 피렌체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는 피렌체에서 당시 최고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뿐만 아니라 미켈란젤로의 작품도 재빠르게 익혀 나갔다. | |

[도판 4] 라파엘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을 그린 드로잉], 1506~1507
런던 대영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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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가 이 시기 피렌체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드로잉에는 이미 미켈란젤로의 영향이 강하게 담겨 있다. 미켈란젤로의 [다윗 상]이나 [성 마태오 상]을 모방한 드로잉이 바로 그것이라고 볼 수 있다. 남성 인체가 미켈란젤로 미술의 핵심이라는 것을 라파엘로는 이때부터 주목했던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성 마태오 상]의 드로잉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의 미완성 조각상에서 몸을 좌우로 비틀면서도 머리를 좌측 위로 치켜세우는 자세를 아마도 흥미롭게 살펴봤던 것 같다. 그의 드로잉에는 바로 이 점이 아주 정확하게 표시되어 있다.
놀라운 점은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받은 드로잉으로부터 시작해서 훗날 아주 멋진 새로운 인물들을 만들어 나간다는 사실이다. 미켈란젤로가 천장화로 분주하던 시기에 라파엘로는 바로 옆에서 작업하면서 이 모티브를 버젓이 사용하고 있다. [아테네 학당]의 정면 좌측에 서있는 고대 철학자 파르메니데스(Parmenides)의 자세가 바로 그것이다. 왼쪽 한 다리를 상자 같은 돌 위에 올려놓고 왼손으로 책을 들고 있는 몸동작은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성 마태오를 강하게 연상시킨다. 여기서 얼굴의 방향은 아래를 향하게 해서 약간의 변화는 주고 있으나 전체적인 분위기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의 영감이 없이는 불가능해 보인다. 많은 부분에서 미켈란젤로를 암시하지만 미켈란젤로는 이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대놓고 주장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켈란젤로의 마태오 조각상이 미완성이었던 것에 비해 라파엘로의 것은 완성작이기 때문이었다. 미켈란젤로가 미완성 조각상에서 암시만 했던 것들을 라파엘로가 회화적으로 멋지게 완성시켜 놨으니 도리어 라파엘로에게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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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5] 미켈란젤로 [성 마태오(미완성)], 피렌체 아카데미아
[도판 6] 라파엘로 [미켈란젤로의 성 마태오상을 그린 드로잉] 1506~1507, 런던 대영박물관
[도판 7] 라파엘로 [고대 철학자 파르메니데스], 아테네 학당 (부분)
[도판 8] 라파엘로 [갈라테아](부분), 1511, 로마 빌라 파르네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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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기가 막힌 것은 라파엘로가 미켈란젤로에게서 따온 모티브를 가지고 완전히 색다른 세계까지 그려 내고 있다는 점이다. 라파엘로는 1511년부터 율리오 2세 교황의 은행 업무를 관할하던 아고스티노 키지(Agostino Chigi)의 별장에 고대 신화의 이야기를 벽화로 그리게 된다. 이 그림의 주인공 갈라테아(Galatea)의 몸동작에서 라파엘로는 성 마태오의 자세를 또다시 보여준다. 특히 갈라테아의 왼쪽을 향해 치켜 오른 얼굴과 눈은 그가 마태오 상을 그린 드로잉과 거의 일치한다. 그러나 이번에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가 보여준 남성적 힘을 아름다운 여성의 몸짓에 부여하였다. 미켈란젤로의 육중한 중량감을 라파엘로는 여성의 신체에 적용하여 우아하면서도 힘 있는 인체를 창조해 낸 것이다. 사실 갈라테아의 몸은 너무나 완벽하고 자연스럽게 보이기 때문에 그것이 굳이 누군가에게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별로 잘못되었다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다 빈치, 미켈란젤로의 모방을 통해 최고에 도달한 라파엘로

20세기 미술의 거장 피카소는 “좋은 작가는 베끼지만, 위대한 작가는 훔친다(Good artists copy, great artists steal)”라고 말했다고 한다. 아마도 이 말은 라파엘로의 경우에 잘 맞아 떨어질 것 같다. 라파엘로는 모방과 창조가 종이 한 장의 차이를 가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좋은 것을 받아들이는 것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사실 그의 작품에는 미켈란젤로의 영향뿐만 아니라 자신의 후견인 브라만테의 영향도 보이고, 무엇보다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영향도 강렬하다.
[아테네 학당]을 살펴보면 웅장한 전체적인 원근법적 구도와 함께 건축적인 구성은 분명히 브라만테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그룹별로 이루어진 사람들이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심리적 연대감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비교될 만하다. 등장인물들의 영웅적인 신체 표현에서는 미켈란젤로의 영향을 충분히 읽어 낼 수 있다. 이렇게 여러 개를 베낀 작품들은 대부분 산만한 결과를 낳게 되지만 라파엘로는 전례 없이 안정적이고 조화로운 세계를 펼쳐 보여 주고 있다. [아테네 학당]의 부분들은 차용된 것들이지만 그것이 만들어내는 전체적인 효과는 어느 누구의 것이 아니라 라파엘로 그만의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결국 라파엘로는 이전의 많은 양식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종합하여 어느 누구도 이뤄내지 못한 새로운 통합적 양식의 길을 열어냈다고 말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연구자들은 르네상스 미술의 완성을 말할 때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미켈란젤로보다 라파엘로의 작품을 손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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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9] 라파엘로 [아테네 학당] 1510~1511
프레스코, 바티칸, 스탄차 델라 세나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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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가 천부적인 재능 덕분에 독자적으로 창작의 길로 나선 반면 라파엘로는 타인의 좋은 장점을 철저히 자기 것으로 습득하는 ‘융합형 천재’였다고 말할 수 있다. 어쩌면 다른 작가의 신적인 능력을 제대로 알아봤다는 점에서 라파엘로도 결코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라파엘로가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천재의 모델일 수 있을 것 같다. 결과적으로 역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세 명 모두를 모두 똑같이 위대한 작가로 기억하고 있다. 소위 1등만 기억하는 세상에 1등이 하나가 아닌 셋이기 때문에 우리들 마음에 위안이 된다. 베끼면서도 최고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 놨으니 우리 같은 범인에게도 구원의 희망이 열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
피타고라스의 메모장을 베끼는 인물의 의미는?

훗날 일흔이 다된 미켈란젤로는 과거를 회상하며 라파엘로가 이룬 모든 업적은 자신의 것을 모방한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이 때문에 라파엘로는 브라만테와 힘을 합쳐 자기를 파멸시키려 했다고 적고 있다. 이 같은 미켈란젤로의 회상을 들여다보면 분명 그는 라파엘로에게 불타는 질투와 분노를 오랫동안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라파엘로의 경우 그가 미켈란젤로에 대해 남겨놓은 말이 전해오지 않기 때문에 그가 미켈란젤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아테네 학당]을 자세히 살펴보면 라파엘로가 미켈란젤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어느 정도 추측해 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 |

[도판 10] 라파엘로 ‘플라톤 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아테네 학당] 부분
[도판 11] 라파엘로 ‘헤라클레이토스 또는 미켈란젤로’ [아테네 학당] 부분
[도판 12] 미켈란젤로 ‘예레미아’ [시스티나 천장화]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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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살펴본 파르메니데스의 오른쪽에 비딱하게 앉아 있는 인물은 고대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로 알려져 있다. 흥미롭게도 이 인물은 미켈란젤로의 초상으로 알려져 있기도 한다. 가죽장화부터 옷 입은 매무시는 분명 고대인이 아니라 라파엘로가 살던 당시의 인물 모습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특히 턱수염과 뭉툭한 콧등은 오늘날 남아 있는 미켈란젤로의 초상과 많이 닮아 있다. 이 때문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 인물을 미켈란젤로의 초상으로 믿고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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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아테네 학당] 화면 정 중앙에 서 있는 흰 수염의 플라톤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실제 모습을 기초로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고대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미켈란젤로의 모습을 기초로 그려졌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아테네 학당]에서 플라톤의 모습을 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플라톤 철학의 형이상학적 가르침을 조형적으로 형상화한 것이지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추구한 공상적 세계를 우회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라파엘로가 그린 헤라클레이토스의 모습이 미켈란젤로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그의 모습이 고독한 창작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왼손으로 턱을 괴고 오른손으로 글을 쓰고 있지만 그의 찡그린 얼굴을 보면 글이 쉽게 풀려 나오고 있지 않는 것 같다. 턱을 괴면서 다리를 꼬고 있는 자세는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에 그린 예레미아의 모습을 많이 닮아 있지만 라파엘로의 작품에서 번민과 고독감이 더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에서 놓치지 않고 봐야 할 명장면이 바로 이 그림 옆에 그려져 있다. 여기서 피타고라스가 열심히 공식을 써 내려가고 있는데 바로 옆에서 한 사람이 그것을 능숙히 베끼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피타고라스는 자신의 임무에 열중하고 있지만 모방자는 바로 뒤에서 잽싸게 피타고라스의 것을 자신의 메모장에 옮겨 놓고 있는 것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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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판 13] 라파엘로 ‘피타고라스’ [아테네 학당] 부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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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는 왜 굳이 없어도 될 만한 이야기를 이처럼 크게, 그것도 눈에 잘 띄는 문 바로 옆에 그려 넣은 것은 것일까? 그는 베끼는 것도 능력이라는 것을 코믹하게 보여주기 위해 이 장면을 장황하게 그려 넣은 것은 아닐까? 추측은 미술사학자가 반드시 피해야 할 유혹이지만, 이번 만큼은 나의 추측이 사실일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싶다. | |
- 글 양정무 /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
-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런던대 유니버시티 컬리지 박사. 미술을 좋아하고 역사를 좋아하기 때문에 두 영역이 결합된 미술사 공부를 천직으로 생각한다. 르네상스 미술을 시작으로 서양의 시각문화를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하는 글을 구상하고 있다.
발행일 2010.11.17
이미지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