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향한 극한의 몸부림,"메두사의 뗏목"
안녕하세요, 검토리 가족여러분!
오늘은 19C 프랑스 당시의 비극적 실화를 그린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에 관해 이야기 해 볼까 합니다.
▲테오도르 제리코 (Gericault, Theodore ; 1791-1824)
Oil on canvas,(490.2 x 716.3cm) -<메두사의 뗏목>
2007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루브르전 당시, 원본이 아닌 습작으로 만나볼 수 있었던 이 그림! 바로 위의 보고 계신 그림이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이라는 제목의 그림입니다. <메두사의 뗏목>의 그려진 배경은 제리코 자신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는 당시 사회상황과 큰 관계가 있습니다. 19세기 초 아프리카 식민지를 개척 할 목적으로 프랑스는 군함 3척을 마련하였습니다. 정부는 군함을 지휘할 함장을 선발하였고, 3척의 군함중 "메두사호"의 함장은 귀족출신에 항해 지식이 부족한 무능력한 인물이었죠. 그리고 불행하게도 1816년 7월 2일, 세네갈을 향하여 항해하던 도중 아프리가 연해에서 메두사 호는 난파 당하고 맙니다. 배에 타고 있던 400여 명의 인원 중 149명만이 급조된 뗏목에 의해 구조되었습니다. 그러나 비극은 여기에서 끝이 아니었습니다. 구명정에 이 뗏목을 연결시켜 끌고 가던 도중, 비겁한 함장은 자신만의 안전을 위하여 뗏목에 연결된 밧줄을 끊고 달아나 버리죠. 이들은 무려 12일 동안 난파당한 채로 바다를 떠다니게 됩니다. 남은 사람들은 추위와 공포, 그리고 굶주림과 싸워야 했으며 149명의 인원 대부분이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그들과 같이 출항 했던 ‘아르귀스호’에 의하여 구출은 되었지만, 구조되는 순간 5명이 죽었으며 나머지 생존자들도 정신이상증세를 보였다고 해요. 살아남은 사람은 15명. 배에 타고 있던 400명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생존한 것입니다. 이후 사람들에게서 잊혀져 가던 이 사건은 당시 생존자 중 의사였던 자가 충격적인 고백을 하면서 다시 수면위로 올라오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배고프고, 목이 마르고, 굶주림에 지친 조난자들이 죽은 동료의 인육과 피로 연명을 했다는 증언이었죠. 제리코는 이 희대의 사건을 모티프로 <메두사의 뗏목>을 탄생시켰습니다. 제리코는 이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생존자를 찾아다니면서 취재하고 시체안치소에 찾아가 시체를 연구하기도 했다고 해요. 이 작품은 당시 구조되기 직전의 절박했던 사람들의 상황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 테오도르 제리코-<메두사의 뗏목> 부분 시체와 사람들이 뒤섞인 채 절박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는 화면속에는 아들의 시체를 안고 넋을 놓은채 팔을괴고 있는 노인의 모습도 보입니다. 절망에 빠진 사람치고는 사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도상입니다. 알브레히트 뒤러의 <멜랑꼴리아 Ⅰ>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는군요.
▲ 알브레히트 뒤러 -<멜랑꼴리아 Ⅰ> 예술가의 고독과 우울을 상징하는 이 도상은 얼핏 <메두사의 뗏목>속 노인과 흡사해 보이기도 합니다.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역시 그 모습이 메두사의 뗏목 속의 노인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듯해요. 예술가의 고독과 우울을 상징하는 이 도상은 얼핏 <메두사의 뗏목>속 노인과 흡사해 보이기도 합니다.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역시 그 모습이 메두사의 뗏목 속의 노인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듯해요. ▲오귀스트 로댕 - <지옥의문>&<생각하는 사람>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이 사실 <지옥의 문>을 위해 만들어진 조각이라는 사실을 알고계시나요? 로뎅의 걸작품인 <생각하는 사람>은 단일로만 존재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각품은 아니었습니다. <생각하는 사람>의 원형은 로뎅의 또다른 걸작품인 <지옥의 문>속에 들어가 있는 도상중 하나이지요. 지옥에서 몸부림 치는 듯한 생생한 인물군상이 자리잡은 문의 윗부분에는 아래의 군상을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의 형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단테의 《신곡》을 주제로 한 <지옥의 문>의 가운데 시인을 등장시키려 한 로댕의 시도는 벗은 채로 바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여러 인간의 고뇌를 바라보면서 깊이 생각에 잠긴 남자의 상을 만들게 되었다고 해요. <메두사의 뗏목>속의 노인은 마치 지옥의 한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인의 모습과 같습니다. 비록 자신의 무릎위에는 죽은 청년의 시체가 올려져 있지만 노인은 슬픔도 애도도 표하지 않고 고뇌하고 있습니다. 노인은 죽음이라는 것의 허무함과 생존을 위해 동족을 잡아먹은 아이러니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 테오도르 제리코-<메두사의 뗏목> 부분 하지만 이런 슬픔과 고뇌, 그리고 처절함의 도상으로만 그림이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위에 보시는 부분도 처럼 <메두사의 뗏목>속에는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고 있지요. 두 남자가 자신의 웃옷을 손에 들고 힘차게 흔듭니다. 저멀리 수평선위로 작은 점이 삐죽 솟아있습니다. 보이시나요? 저 작은 점이 바로 이들을 구출 해줄 아르고호입니다. 비록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과 절망의 순간을 절절하게 담고있는 <메두사의 뗏목>입니다만, 조금씩 밝게 비춰오는 노란 빛깔의 햇살과 콩알만한 점(=배)의 존재가 생존자들에게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절망과 희망 사이의 극한의 교차는 이 작품을 더 웅장하고 극적으로 보이게 합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잠깐! <메두사의 뗏목>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는 법률적 상황에 대해 잠시 짚고 넘어가 볼까요?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생존자들은 죽은 동료의 인육과 피로 목숨을 연명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이 법률상으로 죄가 되는 일일까요? 우선 현행법상 '인육을 먹는 행위' 자체는 처벌규정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시신을 먹기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시신의 일부를 잘라내는 등의 훼손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경우, 형법 제161조(사체손괴죄)가 적용되어 처벌받게 됩니다. '사체손괴죄'란 원래 사체, 유골, 유발 기타 관속에 함께 매장한 물건을 손괴, 유기, 은닉하거나 이런 맥락에서 보면 인육을 먹기위해 시체를 훼손한 경우에도 이 법이 마찬가지로 적용되게 됩니다. 특히 묘지를 파헤쳐서 사체를 손괴한 경우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가지 맹점이 있다면, 제 3자에 의해 훼손된 시신을 건네받아 자신이 먹게 되면 이에 관한 법률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처벌받지 않는 다는 점일 듯 하네요. 지금까지 낭만주의 회화의 걸작 <메두사의 뗏목>과 이에 관련한 이야기들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이전의 두편 <베아트리체 첸치>이야기와 <살로메>이야기를 보고싶으신 분이 있으시다면 아래의 '검토리가 본 검찰이야기'의 문화살롱란을 참고해 주세요~! 그럼 다음에 새로운 걸작과 이야기로 찾아뵙도록 할게요!! 정유진 기자
또는 가로채는 행위를 처벌하기위한 규정입니다.
사체손괴죄의 법정형은 7년 이하의 징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