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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술이야기

서양미술의 걸작 / 녹색 배경 앞의 엄마와 아기 / 메리 카사트

작성자파랑하늘|작성시간11.01.18|조회수975 목록 댓글 0

많은 엄마들이 출산의 순간에 신생아를 보고 깜짝 놀란다. 쭈글쭈글한 얼굴을 한껏 찡그리고 버둥대는 아가는 라파엘로의 그림에서 보아왔던, 뽀얀 얼굴에 또랑또랑한 눈망울을 굴리며 토실한 팔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아기 예수와 영 딴판이기 때문이다. 평소에 라파엘로의 성모자상을 좋아했다면 곧 한번 더 놀라게 될 것이다. 아기 엄마의 현실은 티없이 맑고 아름다운 얼굴로 아기를 품 안에 보듬고 평온한 미소를 띠고 있는 성모 마리아와도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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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엄마들은 앙상한 팔다리를 휘저으며 온몸이 시뻘개 지도록 울어대는 아기를 제대로 안지도 못할 뿐 아니라, 세수 한번을 못하고 몇 날 며칠 잠을 설친 얼굴에는 미소 대신 망연자실한 표정이 묻어나기 마련이다. 상냥한 성격의 미남이었던 라파엘로는 비록 많은 여인들과 연애를 즐겼을지 몰라도, 불행히도 미혼인 채 요절했기에 육아의 현실을 알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 만일 자녀가 있었더라도, ‘육아의 현실’은 온전히 여성들의 몫이었고, 가사와 양육이 이루어지는 가정은 금남의 구역이었으니, 진짜 엄마와 아기를 화폭에 담기란 불가능했을 것이다.

 

 

여성 화가들에겐 금지되었던 파리라는 도시 공간

사정은 19세기 말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여성은 가정이라는 사적인 공간에 매여 있어야 했고, 남성들은 순전히 공적인 공간, 즉 사회의 일원이었던 것이다. 미술 역시 여성들의 접근이 지극히 제한된 직업의 영역이었기에 미술 작품 속에서 현실 속의 엄마와 아기를 찾아내기는 쉽지 않다. 인상주의 그룹의 일원으로 활발하게 작품을 제작하며 인상주의 전시에 성실하게 참여했던 두 여성 화가, 메리 카사트와 베르트 모리조의 작품은 이처럼 남성과 여성 사이에 존재하는 확연한 공간의 차이를 보여준다.

 

라파엘로 [세기올라의 성모] 부분 1514
판넬에 유채, 지름 71 cm, 피티 궁, 피렌체

메리 카사트 [벌거벗은 아이를 안고있는 여인] 1890
파스텔, 74.5x62.5cm, 오르세 미술관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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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는 19세기 파리라는 도시에 보내는 화가들의 열렬한 찬사나 다름없다. 19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거대한 도시 재건 사업으로, 중세로부터 내려온 비좁은 거리와 옛 건물들은 모두 철거되었다. 그 자리에 말끔하게 포장된 대로가 도심을 관통하고 양 옆으로 고층건물과 눈부신 가로등이 즐비한 근대 도시 파리가 탄생했다. 인상주의자들은 일상을 영위하는 장소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흥미진진한 볼거리이자 오락의 장소가 된 화려한 도시를 밤낮으로 누비고 다니며 화폭에 담았던 것이다.


모네는 쉴새 없이 오고 가는 마차들과 인파가 뒤섞여 북적이는 대로를 활보했고, 르누아르는 새롭게 단장한 강변 유원지의 카페에서 발랄한 오후를 보내곤 했으며, 드가는 한밤에도 대낮같이 불을 밝힌 공연장을 드나들었고, 마네는 다채로운 쇼가 펼쳐지는 바에서 음주가무를 즐겼다. 카사트와 모리조는 바로 그들의 동료 화가였다. 그러나 탁 트인 대로를 걷는 일, 카페에서 한담을 나누는 일, 바에서 술을 마시는 일, 그리고 야간 공연을 즐기는 일은 양갓집 부녀자인 카사트와 모리조에게는 철저하게 금지된 것들이었다.

 

 

가정이라는 공간에만 묶여 있었던 인상파 여성화가들

카사트와 모리조가 그나마 미술 교육을 받고 화가로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카사트의 경우 반드시 결혼으로 생계를 보장받을 필요가 없을 만큼 경제적인 여유가 있는 집안에 태어난 덕분이고, 모리조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랬듯이 취미로 그림을 배우다 마네의 동생과 결혼하면서 새로운 미술의 조류를 가까이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여성은 여전히 권위있는 관립미술학교에 입학할 수 없었고, 그나마 그들이 동료 화가들과 만나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곳은 미술관뿐이었다. 결국 여성이자 화가인 그들이 주로 머무는 곳은 여전히 가사와 육아만이 일어나는 곳, 집안에 한정되어 있었다. 카사트와 모리조는 ‘인상주의자’라는 같은 명함을 갖고 있었더라도, 다른 화가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시각적인 경험을 가질 수 밖에 없었으니 그들이 다루는 주제 또한 다를 수밖에 없었다.

 

메리 카사트 [리디아 카사트 양의 초상] 19세기경
캔버스에 유채, 92.5x65.5cm, 아비뇽 프티팔레 미술관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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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트 모리조 [화장하는 젊은 여인] 1877
캔버스에 유채, 46x30cm, 오르세 미술관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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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사트와 모리조는 주로 어머니와 언니, 여동생 등 가까운 친지와 친구들의 모습을 그렸다. 정원에서 사색을 하거나, 신문을 읽거나, 차를 마시고, 바느질을 하는 여인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단정하면서도 세련된 풍모를 지녔다. 그 누구의 시선에도 구애 받지 않은 채, 온전히 자신 만의 공간인 가정, 그 평온하고 잘 정돈된 실내에서 마땅히 해야 할 일들에 조용히 몰입해 있는 파리의 중산층 여인들은 그 동안 미술작품에 수도 없이 많이 등장했던 여성들과 확연히 달랐다. 그들은 아름다움을 뽐내며 남성들의 욕망 어린 시선에 몸을 맡긴 비너스도 아니고, 유혹과 살의가 뒤섞인 에너지로 보는 이를 위협하는 팜므 파탈도 아닌, 평범하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실 속의 여인들이다.

 

 

여성의 일상적인 경험이 배어있는 엄마와 아기 그림들

그 중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엄마와 아기를 그린 그림들이다. 카사트의 [녹색 배경 앞의 엄마와 아기]에서 부드럽고 온화한 파스텔의 색감은 잠투정을 하는 아기의 나른한 눈에 더할 수 없이 잘 어울린다. [물통과 대야가 놓인 테이블 앞의 여자와 아기]는 졸린 눈을 하고 천진하게 손가락을 빨고 있는 아기와 발그레한 아기의 볼에 얼굴을 붙인 엄마, 그 둘의 체온이 뿜어내는 따뜻한 공기를 잘 전달하고 있다. 파스텔은 드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던 카사트가 자연스럽게 선택한 매체였다. 그러나 드가는 화려한 무대 위에서 형광빛 조명을 받으며 날아오르는 발레리나의 깃털처럼 가벼운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해 파스텔을 활용했다. 카사트의 파스텔은 차분한 공기가 감도는 집안, 그 중에서도 아이를 키우고, 가사일을 하고, 신문을 통해 바깥 세상을 경험하다가, 때때로 상념에 잠기는 여인들의 감정을 담아냈다.

 

 

메리 카사트 [물통과 대야가 놓인 테이블 앞의 여자와 아기] 1889
파스텔, 65x50cm, 오르세 미술관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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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트 모리조 [요람] 1872
캔버스에 유채, 56x46cm, 오르세 미술관
© Photo RMN, Paris - GNC media, Seoul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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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기를 그린 그림 중 가장 유명한 것 중 하나가 모리조의 [요람]이다. 화가의 언니 에드마는 부드러운 베일로 가려진 요람 속에서 평온하게 나비잠을 자는 아가를 내려다본다. 엄마의 눈에 곤히 잠든 아가처럼 아름답고 사랑스런 존재는 이 세상에 없다. 그러나 지금 막 갓난아기를 돌보고 있는 내 입장에서는 이 순간이 오기까지 그녀가 얼마나 오랫동안 아기를 어르고 달랬을 것이며, 또한 매일같이 똑같은 노동 아닌 노동을 밤낮으로 하는 날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반복되었을지도 보인다. 모리조가 본 에드마의 모습에는 틀림없이 젖먹이를 둔 많은 엄마들이 경험하는 피로와 아기로 인해 얻는 큰 행복에도 불구하고, 문득 마음 한 구석을 외롭게 만드는 고립감이 배어 있다. 출산을 앞둔 엄마들에게는 라파엘로의 성모자상보다는 카사트나 모리조의 그림을 추천하는 것이 확실히 나을 듯하다.

 

관련링크 : 메리 카사트 그림 더 보기 

 

 

우정아 /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미술사 석사,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주립대학 (UCLA)에서 현대미술사를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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