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초상화의 사명은 무엇보다도 주인공의 실제 모습과 닮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누구나 손쉽게 찍을 수 있는 사진과 달리, 화가를 고용해 고가를 지불하고 주문 제작하는 초상화가 너무나 정직하게 주인공의 외모를 반영한다면, 연예인급 인물이 아닌 이상 유쾌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초상화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주인공과 닮았으면서도, 실제보다는 아름답고 멋있게 이상화하면서, 외모 만이 아니라 내적인 성품과 능력, 부와 권력을 세련되게 과시하는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줄 알아야 했다. 그러나 주인공이 초상화를 통해 널리 선전하고자 하는 ‘성품과 능력’이란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이상적인 외모’에도 일률적인 기준은 없다. 나아가 초상화를 주문할 수 있는 재력이 있는 이들의 사회적 배경 또한 천천히 변화해왔다.
위대하고 장엄한 초상화를 만들어낸 레이놀즈

18세기 영국의 초상화는 이처럼 변화하는 이상적인 인물상과 그 배경이 되는 사회의 변혁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초상화가로는 조슈아 레이놀즈 경을 들 수 있다. 그는 영국 왕립 아카데미의 초대 원장으로, 제자들을 향한 오랜 강의를 통해서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와 같은 르네상스의 거장들을 따라 ‘위대하고 장엄한’ 미술로 되돌아갈 것을 설파하며, 18세기 영국 미술의 고전주의적인 전통을 확립한 인물이다.
위대하고 장엄한 미술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고전적인 미의 이상을 따라야 하고, 도덕적인 교훈을 주는 역사화여야 했다. 그러나 정작 레이놀즈가 실제로 주력했던 것은 역사화가 아니라 초상화였다. 초상화 시장은 부귀한 고객들의 수요가 늘 차고 넘치는 풍요로운 시장이었던 만큼, 유명한 역사화가든 저명한 아카데미의 교수든 영국의 화가들이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초상화 주문이었던 것이다.
| |
|
레이놀즈는 ‘위대하고 장엄한’ 역사화의 이상을 초상화에 적용하여, ‘위대한 초상화 Grand Manner Portraiture’를 만들어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비극의 뮤즈, 시돈스 부인]이다. 사라 시돈스(Sarah Siddons)는 사실 그 스스로도 ‘위대한’ 연극 배우였다. 특히 그녀가 셰익스피어의 레이디 맥베드를 연기할 때에는, 시돈스와 극중 인물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흡인력을 가졌다고 한다. 무대 위에 선 그녀에 대해, 당대의 한 평론가는 “폭력적인 분노로부터 자아도취적인 무관심으로의 급격한 전환은 연기의 ‘걸작’이다. 그 어느 누구도 감정의 양 극단을 이토록 잘 표현할 수는 없다”고 극찬했다.
레이놀즈의 작품은 이러한 그녀의 신들린 연기를 염두에 둔 것처럼, 연극 배우가 아니라 ‘비극의 뮤즈’라는 고전적인 알레고리로서의 그녀를 그려냈다. 시돈스 부인은 폭풍우를 몰고 올 듯 격렬하게 소용돌이치는 구름 위에서, 왼쪽에 서있는 ‘연민’의 알레고리와 오른쪽의 ‘공포’의 알레고리 사이에 앉아 깊은 감정에 빠져있다. 이와 같은 구도와 권좌에 앉은 그녀의 자세, 장엄하면서도 우아한 인물상은 미켈란젤로가 바티칸의 시스티나 천정화에 남겨둔 지적인 예언자, 이사야의 모습과 닮았다. 물론 레이놀즈가 가장 존경했던 거장은 미켈란젤로였다.
| |
|
미켈란젤로 [이사야] 바티칸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정화 일부 | |
|
감각적 디테일과 성격 묘사에 치중한 게인즈버러

레이놀즈와 함께 당대의 초상화 시장을 양분했던 화가는 토마스 게인즈버러다. 그의 [사라 시돈스 부인의 초상]을 보면, 레이놀즈와는 조금 다른 스타일을 볼 수 있다. 붉은 커튼이 무겁게 드리워진 실내 배경은 전통적이지만, 게인즈버러는 그 속에서 대단히 능숙하고 화려한 붓놀림으로 시돈스 부인이 입고 있는 실크 드레스, 벨벳 모자와 깃털, 모피와 레이스 등의 서로 다른 질감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면서, 극적인 감정보다는 감각적인 디테일과 인물의 성격 자체에 치중하고 있다. 이처럼 게인즈보로는 전통을 따르면서도 로코코 양식에서처럼 서정적이고 풍부한 디테일로 자연스럽게 인물의 특성을 드러내는 초상화로 부유한 영국 귀족들의 사랑을 받았다. | |
|
그의 초기작인 [앤드류스씨 부부]는 풍요로운 황금빛 들판을 배경으로, 마치 산책을 나왔다가 잠시 벤치에서 휴식을 취하는 듯 포즈를 취한 젊은 부부를 보여준다. 결혼 직후에 제작된 이 부부의 초상화는 자연스러워 보일지라도, 현실적이라기 보다는 대단히 전형적인 구도에 맞추어 설정한 그림이다. 장총과 사냥개를 대동하고 사냥에 나선 남편과 반짝이는 새틴 드레스에 하이힐을 맞춰 신은 부인이 들판에서 만날 일은 사실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게인즈버러의 작품은 이 부부에게 사냥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그 권리를 보장하는 넓은 영지가 있으며, 세련된 드레스를 마련할 수 있는 부와 사회적인 지위가 있음을 최대한 우아하게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 |

토마스 게인즈버러 [앤드류스씨 부부] 1748~1749
캔버스에 유채, 70x119cm, 런던 내셔널 갤러리
|
개인적 감수성의 초상화와 산업혁명 시대의 초상화

18세기 중반까지 대부분의 초상화는 부유한 런던의 귀족들을 그린 실물 크기의 전신상으로써, 그들의 부와 권력과 사회적인 지위를 강조하는 것이 최대의 목적이었다. 이러한 전통에 새로운 변화를 몰고 왔던 화가가 조지 롬니(George Romney, 1734-1802)였다. [사라 로드바드 아가씨의 초상]에서 롬니는 레이놀즈가 추구했던 개념적인 인물상이나 게인즈보로가 따랐던 격식과는 전혀 다른 주인공의 모습을 보여준다.
로드바드 아가씨는 정원 산책 중에 기둥에 몸을 기대고 애완견을 끌어안은 채, 멍하니 백일몽에 빠져있다가 지나가는 사람, 즉 초상화의 관람자인 우리를 알아채고 막 정신을 차린 듯한 모습이다. 당시 런던에서 귀족 아가씨들의 세련된 초상화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롬니의 작품에서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기둥에 기대거나 팔을 얼굴에 괸 채 감상에 젖은 사랑스런 모습으로 그려졌다. 비록 우리의 눈에 진부하게 보일지라도, 재력이나 신분이 아니라, 개인적인 감수성을 내세운 초상화는 당대로서는 대단히 새로운 트렌드였다. | |
|
18세기 후반, 산업혁명과 함께 초상화 시장에는 귀족 못지 않은 유력한 고객층이 새롭게 등장했다. 출신이 아니라 사업에 의해 부를 일군 산업가들이었다. 그들 중 어떤 이들은 귀족처럼 그려지길 원했지만, 다른 이들은 우아한 라이프 스타일이 아니라 그들의 성공을 불러온 근면 성실한 노동과 사업수완을 강조한 새로운 초상화를 요구했다.
더비의 조셉 라이트가 남긴 [리처드 아크라이트 경의 초상]이 그러한 예를 보여준다. 랭커셔의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이발사로 일하던 리처드 아크라이트(Richard Arkwright)는 섬유업의 대부로 자수성가하여, 기사 작위를 받고 전설적인 금액의 유산을 남긴 인물이다. 라이트의 초상화에서 그는 전통적인 귀족의 초상화와 마찬가지로 큰 기둥이 있고 무거운 커튼이 드리워진 방 안에 앉아있다. 그러나 그의 흐트러진 자세와 캐주얼한 복장, 정직하게 튀어나온 배와 축 늘어진 얼굴은 기존의 초상화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사실성이다. 그러나 사실적이라고 해서 그가 ‘이상화’를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다. 아크라이트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땅이 아니라 그가 일군 사무실에서 일하던 중이었고, 테이블 위에는 바로 그가 발명한 무명방적기의 핵심부품인 롤러가 놓여있다. 그는 권위적인 귀족이 아니라 새로운 과학 기술의 발달을 적극적으로 응용할 줄 아는, 자신감과 패기를 갖춘 사업가로 그려지길 원했던 것이다. 물론 그의 부가 순전히 성실한 노동과 기술력으로만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당대 대부분의 공장들이 그랬듯이, 그의 공장 역시 열악한 환경에서 저가의 임금에 시달리는 어린이들의 노동력에 의존하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초상화란 주인공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법이다.
후세에 길이 남을 초상화를 통해 과연 어떤 나를 보여줄 것인가는 시대에 따라, 그리고 각 개인이 품고 있는 이상에 따라 다르다. 요즘 우리는 수많은 경로를 통해 초상화를 남긴다. 더 정확하게는 ‘셀카’라는 이름의 자화상이겠고, 디지털 카메라와 포토샵은 ‘이상화’를 향한 주인공들의 열망을 빠르고 쉽게 채워주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은 깊이 있는 인격이나 성실한 노동을 설정하기 보다는 도자기 피부와 브이-라인 얼굴과 바둑알 같은 눈망울을 남기고 싶어한다.
| |
관련링크 : 초상화 더 보기
- 글 우정아 /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미술사 석사, 이후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주립대학 (UCLA)에서 현대미술사를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