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 미술이야기

파리 베르사이유궁전 마리 앙뚜아네트(Marie Antoinette)의 침실

작성자나루터|작성시간11.12.11|조회수1,126 목록 댓글 0

 

 

베르사이유궁전내에 있는 마리 앙뚜아네트(Marie Antoinette) 왕비의 침실이다.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듯한 침실이였다. 이백년전에 만들어 졌음에도 불구하고 침실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녀의 인생은 화려했던 삶과 아름다운 침실모습만큼이나 그녀가 콩고드광장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어야 할만큼 너무도 비참하게 생을 마감해야 했던 불행한 왕비이기도 했기에 결코 침실의 모습이 아름다움으로만 느껴지지 않았던 것만은 사실이다.

 

 

마리 앙뚜아네트(Marie Antoinette)왕비는 이시대에서도 충분히 일어날수 있는 인간의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준 그런 불행한 여인의 대표적인 여인이였던 것 같다.

 

 

합스부르크가의 상속녀이며 토스카나대공의 공주로써 자유분방한 하게 살다가 프랑스의 루이16세와 정략적으로 결혼을 하게 된 그녀는 남편 루이14세와 취미나 기질 성격이 맞지 않았던 모양이다. 심지어 루이16세가 성불구자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부부의 금실 또한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였을까,,,그녀는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사치에 몰두했다는 설이 있으며, 밤마다 베르사유 정원 한 구석에 있는 프티 트리아농에서 호화 파티나 가면무도회를 자주 열었고 그 파티를 통하여 그간 쌓인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한다. 그녀의 몸을 치장하는 의상, 장신구,  보석 등에 소요되는 비용은 엄청났으며 이는 모두 국민의 세금부담으로 이어졌으니 국가의 재정이 힘들었을 것이다.

 

  

마리 앙뚜아네트(Marie Antoinette),,!!!

 

마리 앙뚜아네트(Marie Antoinette)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프란츠 1세와 마리아 테레지아 사이의 11번째 딸로 태어나 1770년 프랑스 루이 15세의 손자 루이 왕세자와 결혼했다. 그녀는 경박하고 무분별하고 방탕했으며 개혁에 적대적이였으며 백성들이 먹을 빵이 없다고 하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기도 했다고 한다.

 

"그럼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 (Qu'ils mangent de la brioche!)"

 

그 유명한 '다이아몬드사건'을 일으키는 등 프랑스 혁명과 1792년 8월 왕정 타도로 이어진 민중 소요사태가 일어나도록 자극한 장본인이기도  하며 여생을 파리의 감옥에서 보냈다고 한다.

 

그녀의 남편 루이 16세는 1793년 1월 국민공회의 명령에 따라 처형되었고, 그해 8월 마리 앙뚜아네트(Marie Antoinette)는 콩시에르즈리의 독실 감방에 감금되었다가 1793년 10월 14일 혁명재판소에서 재판을 받고 2일 뒤 10월16일 남편 루이 16세의 뒤를 따라 콩고드광장에서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는 특별 죄수로서 거름통을 싣는 짐수레에 실려 처형장으로 끌려갔으며(루이 16세의 경우는 마차였다). 콩세르쥬리 감옥에서 나올 때 그녀는 머리카락이 짧게 깎여져 있었으며 두 손은 뒤로 묶여져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은, 사형 집행인의 발을 실수로 밟아버렸을 때에 내뱉은 “미안해요.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었어요.” 였다는 설이 전해질정도로 그녀는 인간적으로는 예의가 바르고 착한 여자였던 것 같다.

 

[에필로그]

 

생각해보라,,,그녀의 삶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다면 이세상 어느 누가 프랑스의 비운의 왕비 마리앙뚜아네트(Marie Antoinette)에게 돌을 던질수 있단 말인가,,,,

 

전대미문의 가문 오스트리아 합스브르그가의 막내딸인 마리 앙투아네트(Marie Antoinette)공주가 국가적 정략결혼의 희생양이되어 16살이란 어린나이에 프랑스로 시집을 와서 7년동안이나 작업실에 쳐박혀 열쇠따위의 아무 영양가도 없는 일에 빠져있던(항간엔 성불능자라고도 전해지고 있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다) 남편 루이왕자에 의해 저 화려한 침대에 내팽게졌을때 가진건 돈밖에 없었던 마르세이유궁전에서 부잣집 막내딸이며 영혼이 자유로웠던 마리 앙뚜아네트(Marie Antoinette)가 무엇을 할수 있었을까,,,나 같아도 돈쓰는 재미로 살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화려함이 절망스럽게 보일수 있다는 것을 저 눈이 부실정도로 화려한 침대를 보며 느꼈던 것 같다. 파리 콩코드광장에서 하늘을 보며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지 216년이나 지난 오늘,,, 조금 아니 많이 늦은감은 있지만 삼가 마리 앙뚜아네트(Marie Antoinette)왕비의 명복을 빌어본다

 

참고로 나폴레옹의 영원한 사랑 '조세핀' 도 나폴레옹이 황제로 있던 시절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