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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시사]김무경

작성자깨시오|작성시간26.06.10|조회수52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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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끝까지 본 기자회견

그 2시간 50분이 남긴 것

나는 역대 대통령 기자회견을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럴 이유를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 어디에선가 “요약해 드립니다”라는 자막이 붙은 뉴스 클립을 보면 충분했고, 대부분의 기자회견은 그 이상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대통령이 먼저 읽은 발표문, 기자가 건네는 예측 가능한 질문, 그에 대한 예측 가능한 답변. 그것이 우리가 지금껏 익숙하게 보아 온 대통령 기자회견의 문법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2026년 6월 8일, 이재명 대통령의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2시간 50분. 예정된 100분을 훌쩍 넘겨 거의 3시간에 이른 그 자리를, 나는 자리를 뜨지 않고 끝까지 보았다.

왜였을까. 아마도 이 사람에게는 뭔가 다를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내게는, 오래간만에 진심으로 기대를 걸어보고 싶은 대통령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2시간 50분은 그 기대가 섣부른 것이 아니었음을 대체로 확인시켜 주었다.

말이 길다는 것, 그것이 오히려 진정성이다

대통령은 말이 길었다. 때로는 스스로도 “말이 좀 길었네요”라고 인정했다. 부동산 정책을 물으면 투기 공화국의 구조적 문제부터 전세 제도의 역사까지 꺼냈고, 초과 세수를 물으면 현재 가치와 미래 가치의 비교론으로 들어갔다. 누군가에게는 장황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길이가 정직함의 증거로 다가왔다. 단답형 정치는 아름답게 들리지만, 현실은 단답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공급을 늘리겠습니다”라는 한 마디 뒤에는 어디에, 어떻게, 지방 소멸과의 충돌은 어쩔 것인지, 투기 수요와 실수요는 어떻게 가를 것인지가 따라붙는다. 대통령은 그 복잡함을 피하지 않았다. 그것이 때로는 산만하게 느껴졌지만, 동시에 이 사람이 문제를 실제로 들여다보고 있구나 하는 인상을 주었다.

경제: 씨앗이냐, 수확이냐

반도체 호황으로 생긴 초과 세수를 어디에 쓸 것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번 회견에서 가장 선명한 정책 방향 중 하나였다. 대통령은 세 가지 선택지를 스스로 나열하고, 하나씩 이유를 들어 걸러냈다. 들어온 돈을 그냥 쓰는 것은 “바보짓”이고, 빚을 갚는 것도 지금 국가 잠재성장률이 계속 떨어지는 현실에서는 정답이 아닐 수 있다고 했다. 결론은 미래 성장동력에 대한 장기 투자였다.

농사 비유가 인상 깊었다. 매년 씨를 뿌려 그해 거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당대에는 수확이 없더라도 30년, 50년 뒤 후손들이 쓸 수 있는 숲을 가꾸는 것이 지금 해야 할 일이라는 뜻이었다. 다음 세대를 이야기하는 정치인의 말이 선거 수사로 들릴 때가 많지만, 초과 세수의 틀을 잠재성장률 회복과 연결한 논리는 단순한 구호로 들리지 않았다.

기업의 초과이윤을 둘러싼 발언도 흥미로웠다. 노동자의 몫, 투자자의 몫, 국가 연구개발과 세제 지원의 몫, 국민이 감당한 지원의 몫이 함께 얽혀 있다는 문제의식은 분명했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만 앞서 성급하게 접근하면 기업 투자와 산업정책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신중함도 보였다. 피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쉽게 결론 낼 수도 없는 문제라는 인식이었다.

코스피 8천 돌파에 대해서도 대통령의 설명은 흥미로웠다. 그는 주가 급등을 기적이라 부르지 않았다. 오히려 “비정상의 정상화”라고 했다. 그동안 한국 주식시장이 너무 눌려 있었고, 신뢰 회복이 그 억눌린 에너지를 터뜨렸다는 것이다. 동시에 “이 말을 매매 결정의 참고 자료로 쓰지 말라”고 즉각 단서를 달았는데, 그 자기검열의 반사신경이 오히려 신뢰를 주었다.

부동산: 솔직함과 현실 사이

부동산 발언은 이번 회견에서 가장 길고 가장 복잡했다. 대통령은 “부동산 투기 공화국을 탈피하는 것이 이 나라가 살아남는 길”이라고 단언했다. 모든 국가 자산이 부동산에 묶여 있는 구조, 일하는 사람이 패자처럼 느끼게 되는 사회, 언젠가 반드시 터질 수밖에 없는 비정상적 가격 거품. 그 진단에는 용기가 있었다.

그러나 솔직함은 때로 불안도 함께 데려온다. 세제 개편은 7월 이후라 했고, 공급 확대도 “조만간 발표”라고 했다. 방향은 선명했지만, 타임라인은 여전히 뿌옇다. 진단의 선명함과 처방의 모호함 사이 간극을 국민은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부동산을 단순한 가격 문제가 아니라 노동 의욕, 자산 구조, 지방 소멸, 금융 위험, 청년의 미래와 연결해 설명한 것은 의미가 있었다. 집값을 잡겠다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부동산에 묶인 나라 전체의 욕망 구조를 바꾸겠다는 말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문제는 그 말이 실제 정책으로 얼마나 이어질 것인가이다.

민주주의: 가장 진솔했던 대목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대통령의 발언은 이번 회견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나도 처음에는 몇 명이 투표를 못 했다는데 투표 결과에 영향도 없고, 라고 생각하는 측면이 없지 않았다.”

이 고백은 보기 드문 자기 성찰이었다. 선관위가 독립기관이라 행정부가 개입할 수 없는 구조임을 설명하면서도, “주권 감수성이 둔해져 있었던 것 아닌가”라고 스스로를 반성했다. 청년들이 표의 숫자와 결과를 넘어 국민주권의 근본 문제로 이 사태를 제기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고까지 했다.

정치인이 자신의 무감각을 이 정도로 드러내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투표하지 못한 사람이 몇 명이냐가 문제가 아니다. 민주공화국에서 한 사람의 주권 행사라도 행정의 무능으로 막혔다면, 그것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원칙의 문제다. 이 점을 대통령이 뒤늦게나마 정확히 짚은 것은 중요했다.

장애인 참정권에 대한 답변도 같은 맥락에서 들렸다. 발달장애인에게 후보 사진이 들어간 투표용지가 필요하다는 요구, 농인에게 수어와 쉬운 정보가 필요하다는 요구, 시각장애인과 재외국민 투표권의 현실적 제약까지 대통령은 한꺼번에 언급했다. 물론 답변은 완전하지 않았다. 현실적 어려움을 말하는 대목도 있었다. 그러나 소수자 보호가 사회의 수준을 드러낸다는 인식 자체는 분명했다.

나는 이 대목이 중요하다고 본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열기로만 완성되지 않는다. 가장 약한 사람, 가장 느린 사람,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도 주권자로 설 수 있어야 민주주의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장애인 참정권 문제는 서로 다른 사안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 나라가 국민 한 사람의 권리를 얼마나 무겁게 여기는가.

청년과 지역: 서울공화국을 넘을 수 있을까

대학생 기자의 질문도 오래 남았다. 상경 청년들이 겪는 시간 불평등에 관한 질문이었다. 본가가 서울인 청년과 지방에서 올라온 청년은 같은 하루를 살아도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다르다. 월세를 벌어야 하고, 생활비를 감당해야 하며, 스스로를 돌보는 일까지 혼자 떠안아야 한다. 그 차이는 결국 스펙의 차이, 기회의 차이, 계급의 차이로 굳어진다.

대통령은 이 질문을 지방균형발전과 청년 문제의 결합으로 받아들였다. 수도권은 폭발하고 지방은 소멸하는 구조, 서울로 와도 답이 없지만 지방에 남아도 희망이 없는 구조를 동시에 짚었다. 지역화폐 차등 지원, 지방대학 육성, 5극 3특 체제, 공기업 이전, 지방 기업 유치 같은 정책도 언급했다.

정책 하나하나가 곧바로 해답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문제의 방향은 정확했다. 청년 문제는 단지 청년수당의 문제가 아니다. 어디에서 태어났는가, 어디에서 학교를 다녔는가, 어디에 일자리가 있는가, 어디에 집을 구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청년의 삶은 지역의 운명과 이미 깊이 묶여 있다.

외교와 비핵화: 현실주의의 선언

북한 비핵화 문제에 대한 답변은 조심스러웠지만 분명했다. 장기 목표는 비핵화이되, 단기적으로는 핵물질 추가 생산 중단과 ICBM 기술 개발 중단이라는 현실적 목표부터 협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현상을 방치하면 더 나빠진다, 그게 더 무책임하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있었다.

한일 군수지원협정에 대해서는 “현실적 필요성은 있지만 국민 정서상 아직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때린 사람이 진심으로 사과해야 진정한 협력이 가능하다는 비유도 인상적이었다. 돈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와 진정성의 문제라는 규정은, 한일 관계를 실용적 이해관계만으로 풀려는 시도에 브레이크를 거는 발언이었다.

이스라엘과 중동 문제에 대해서도 대통령은 주권, 인권, 국제규범이라는 세 가지 원칙을 말했다. 세계 모든 문제에 대한민국이 개입할 수는 없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인권과 주권이 걸린 문제라면 침묵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조심스러운 표현이었지만 방향은 분명했다.

언론에 대한 솔직한 경고

회견 말미, 언론 정책에 관한 질문에서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고의적인 팩트 조작은 헌정질서 파괴 행위다.”

강한 표현이다. 동시에 이런 말이 권력자의 입에서 나올 때는 더 세심하게 지켜봐야 한다. 대통령은 언론을 보호해야 한다는 전제를 분명히 했고, 특정 매체를 지목하지 않으며 원칙론을 말했다. 그러나 기자들 앞에서 가짜뉴스를 “헌정질서 파괴”로 규정하는 말이 언론 자유에 어떤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는지는 계속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말한 문제의식 자체를 가볍게 넘길 수는 없다. 의견은 자유로워야 한다. 그러나 사실을 조작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누군가의 주장을 따옴표로 옮겨 놓고, 마치 사실인 것처럼 유통시키는 방식도 언론의 책임을 피해갈 수 없다. 언론 자유와 언론 책임은 서로를 무너뜨리는 말이 아니라, 함께 서야 하는 말이다.

2시간 50분 후에 남은 것

회견이 끝날 무렵,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더 자주 하고 싶다고 했다. 청와대 사람들이 “사고 날까 봐” 말린다는 농담도 덧붙였다.

그 말이 진심이기를 바란다. 2시간 50분은 길었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국가가 어디로 가려 하는지, 그것을 이끄는 사람이 무엇을 고민하는지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자리였다. 물론 말이 모두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방향을 제시하는 것과 실행하는 것 사이에는 언제나 험준한 산이 있다. 부동산 세제도, 초과 세수 투자도, 비핵화 협상도, 지방균형발전도 아직은 말의 세계에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 나라의 대통령이 복잡한 문제를 복잡하게 다루고 있다는 것, 단순한 구호 뒤에 숨지 않는다는 것은 확인했다.

역대 대통령 기자회견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만큼 거는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그 기대가 쉽게 배신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 이 칼럼은 2026년 6월 8일 이재명 대통령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직접 시청한 소감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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