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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 읽기

개기일식 스캔들/ 강정이/ 반경환

작성자해라 정대구|작성시간22.06.05|조회수20 목록 댓글 0

개기일식 스캔들/ 강정이

 

저 궁창에서 흘레라니

 

대낮이 제 집인 태양과

별밤이 제 집인 달은

 

따가운 시선 따윈 안중에 없구나

 

밤이 그렇게 낮을 베어 먹고

온 하늘에 붉은 깃발을 흔드는가

 

금환일식

둘의 짓거리가 금반지라니

 

저 빛나는 테두리가 텅 빈 물음의 幻을 품고 있지 않은가

 

저 모든 합체가 수억 년 생명임을 어찌 아는지

 

‘저것 좀 보소 저것 좀 보소’

구관조가 노래한다

궁창이 내린 성전이다

 

우리가 그렇게 태어났다 한다

 

당신과 나는 어떤 스캔들의 답인가

----강정이 시집, {어제와 오늘 사이 신호등이 있나요}에서

 

만물이 부활하는 봄, 봄꽃 축제가 모든 사람들의 근심과 걱정을 다 씻어준다. 하늘은 맑고 따뜻하고, 너도 나도 손에 손을 잡고 봄꽃 축제를 즐기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꽃은 모든 생명의 결정체이며, 암수가 자기 짝을 찾아 종의 번영과 행복을 결정짓는 행위라고 할 수가 있다.

봄꽃 축제는 남녀노소할 것 없이 모두가 이처럼 즐겁고 기쁜 대사건이지만, 그러나 우리 인간들만이 유독 남녀간의 사랑을 ‘스캔들’이라고 족쇄를 채우고 그것을 억압하게 된다. 왜, 무엇 때문에 남녀간의 사랑을 그토록 찬양하고 미화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토록 더럽고 추한 스캔들로 죄악시하고 있는 것일까? 첫 번째로는 상호간의 무차별적인 경쟁심 때문일 수도 있고, 두 번째로는 가문이나 민족간의 적대 감정 때문일 수도 있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로는 종교나 사상 때문일 수도 있다. 이 세계는 사랑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세계이고, 사랑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세계에서는 종의 번영과 행복이 궁극적인 목적이 되는 세계라고 할 수가 있다. 나의 봄꽃은 꽃 중의 꽃이고, 너의 봄꽃은 최하천민의 꽃이다. 우리의 봄꽃은 꽃 중의 꽃이고, 당신들의 봄꽃은 최하천민의 꽃이다. 이 상호적인 경쟁심과 적대감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지만, 그러나 사랑은 자연스러운 생명의 봄꽃이지, 부자연스러운 어떤 것이 아니다.

‘황진이의 꽃-서경덕의 꽃’, ‘보봐리 부인의 꽃- 레옹의 꽃’, ‘춘양이의 꽃-이몽룡의 꽃’, ‘마틸드의 꽃- 줄리엥 소렐의 꽃’ 등----. 사랑은 봄꽃 축제이고, 봄꽃 축제는 “저 궁창에서의 흘레”와도 같은 축제 중의 축제라고 할 수가 있다. “대낮이 제 집인 태양과/ 별밤이 제 집인 달”이 그렇듯이, “따가운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고, “밤이 그렇게 낮을 베어 먹고” “온 하늘에 붉은 깃발을” 흔들고 있는 것이다. “금환일식”, 태양과 달의 흘레는 영원한 금반지로 미래를 약속받고, 모든 “물음의 幻을” 대청소해버린다. 강정이 시인의 [개기일식 스캔들]은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스캔들이 아니라 생명의 결정체인 봄꽃 축제와도 같은 것이다. 태양과 달이 하늘에서 낯 뜨거운 정사를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개기일식’을 ‘성의 향연’으로 바라보는 우리 인간들의 마음이 태양과 달의 개기일식을 연출해낸 것이다. 개기일식은 봄꽃 축제이고, 봄꽃 축제는 스캔들이고, 스캔들은 자기 자신의 모든 열정과 생명을 다 바치는 대사건이라고 할 수가 있다.

양가의 가문과 수많은 사람들의 축하 속에 이루어지는 전통적인 사랑도 있고, 만인들의 연인인 유명 인사들의 이상적인 사랑도 있다. 미녀와 야수, 혹은 고귀한 신분과 비천한 신분간의 반전통적인 사랑도 있고, 기존의 모든 역사와 전통을 파괴하고 기독교인과 이슬람교인, 또는 사상(영혼)과 사상(영혼)의 결합인 창조적인 사랑도 있다. 전통적인 사랑, 이상적인 사랑, 반전통적인 사랑, 창조적인 사랑 등은 수많은 사례와 그 유형들이 있겠지만, 그러나 이 모든 사랑의 유형들은 너무나도 고귀하고 거룩한 봄꽃 축제라고 할 수가 있다.

금환일식----. 당신도, 당신도, “저 모든 합체가 수억 년 생명임을” 알고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사랑이 하늘의 축복을 받은 것이듯이, 당신들의 사랑도 하늘의 축복을 받은 것이다. 사랑은 봄꽃 축제이고, 수억 년의 생명의 근본 동력이고, 모든 시대와 인종과 가문과 종교적 편견을 뛰어넘은 [개기일식 스캔들]이라고 할 수가 있다. 강정이 시인의 [개기일식 스캔들]은 하늘 성전에서의 일이고, 남녀노소, 적과 동지, 그 모든 사회적 천민들도 주연배우가 되는 창조적인 사랑이라고 할 수가 있다. “저것 좀 보소 저것 좀 보소”의 합창 소리가 그것이고, 우리들은 모두가 다같이 이 열화와도 같은 축복 속에 태어난 것이다.

강정이 시인의 [개기일식 스캔들]은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이 아닌 벌과 나비, 혹은 모두가 다같이 구관조처럼 떼창을 부르는 봄꽃 축제이다. 시인의 언어는 태양이 되고, 달이 되고, 하늘이 된다. 별이 되고, 붉은 깃발이 되고, 금반지가 된다. 풀이 되고, 나무가 되고, 꽃이 된다. 강정이 시인은 언어의 날개를 달고, 이 언어의 힘으로 천하제일의 [개기일식 스캔들]을 ‘창조적 사랑’으로 연출해 놓는다.

시인의 월계관은 언어의 월계관이다. 시인은 모두가 다같이 언어의 월계관을 쓰고, 이 세상의 모든 봄꽃 축제를 주재主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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