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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젤동차][일반형] 키하10계 - 국철

작성자787-ARIAKE|작성시간08.02.25|조회수3,768 목록 댓글 0
오오미야 철도박물관에 동태보존중인 키하11형 25호차. 본래 이바라키교통(현재의 히타치나카카이힌 철도)에 있던것을 인수해 동태보존한 것으로 가끔 엔진 가동 시연회를 하기도 한다. 

 

 

일본국유철도 일반형 디젤기동차 키하 10계의 제원


운용주체 : 일본국유철도

운용노선 : 일본 각지
운용기간 : 1953년~1981년
차체 : 마일드 스틸
주엔진 : DMH17B형 직렬 8기통 디젤엔진 (160마력/1500rpm) - 키하50,51형은 2기장착
변속기/기어비 : 신코조기 TC2형, 니가타철공소 DF115형 유체변속기(변속1단, 직결1단)
대차형식 : 윙스프링 - 내부고무블럭 방식 스윙행거 볼스터대차 DT19-TR49
제동방식 : DA1 자동공기제동
냉난방기기 무냉방, 독립연소식 스토브 

편성 : 형식에 따라 편운전대, 양운전대, 20미터 대형기동차

 

 

 

일본 내연동차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


 내연기관을 사용하는 동력분산식 차량, 일본에서는 기동차(気動車)라 불리는 철도차량은 1920년의 얘기로 가솔린 엔진을 대대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시험차 수준에 가까웠던 증기동차를 제치고 1930년대까지 전국에 보급되었다. 그리고 1930년대부터 가솔린 엔진보다 안전성과 우수한 출력을 가진 디젤엔진을 사용한 디젤동차의 연구가 시작되어 2차대전이 한창 진행중이던 1942년이 되어서야 니가타철공소가 개발한 DMH17엔진이 일본 국철의 동차용 제식 엔진으로 채택되어 전국에 보급되었다. 하지만 이 엔진이 개발되었을 때엔 이미 전시체제가 되어 기름을 사용하는 철도차량 자체의 제작이 중지되어 있었다가 2차대전이 끝난 1950년대가 되어서야 디젤동차가 급속도로 보급되기 시작됐다. 이는 1940년 오사카 니시나리선(현재의 사쿠라지마선)의 아지카와구치역에서 발생한 가솔린 동차 탈선전복 및 화재로 189명이 사망하는 대형 참사를 겪은 사례가 있어 연료 자체의 안전성이 양호한 디젤엔진을 우선적으로 표준화 하게 된 것이다.

 

 

 

본격적인 디젤동차의 현대화


 이 다음의 과제는 바로 엔진의 출력을 차륜에 전달하는 구동계통의 변화가 있었다. 디젤동차야 자동차의 구동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처음에는 수동변속기를 썼기 때문에 운전기기에 클러치페달과 변속레버가 달려있었다. 문제는 두량 이상 연결해서 운행할때엔 수동변속이니 각 차량의 운전실에 기관사를 두고 부저나 경적신호로 변속타이밍을 잡아 변속하는 그야말로 곡예에 가까운 운행을 해야만 했다. 이런 폐단을 개선하고 디젤동차의 장대화를 이룩하는것이 2차대전 이후 1950년대 디젤동차의 과제라 할 수 있었다. 이 연구는 2차대전 전부터 시작되어 1940년대 독일의 기술을 전수받아 디젤엔진-발전기-견인전동기로 이어지는 전기식 디젤동차 키하43000형을 개발했다. 이 차량은 소형 디젤기관차에 쓰던 370마력급 DMF31S엔진을 탑재하였지만 조괘식 구동장치에 150kW의 무거운 전동기를 돌리기엔 엔진 출력이 부족했고 이 이상의 엔진을 탑재할 공간이 부족해 개발은 사실상 실패, 차량은 하마마츠공장 구내에 보관되어있다가 1945년 미군의 공습으로 소실되었다. 

 여튼 2차대전 종전 후 1950년부터 전국 철도의 무연화 정책에 의해 증기기관차를 대체할 디젤동차의 개발이 시급해짐에 따라 표준적인 디젤동차의 개발에 몰두하게 되었다. 이때도 다시 전기식인 키하44000형이 제작되었는데 150마력짜리 DMH17A 엔진에 100kW급 발전기를 붙이고 45kW급 견인전동기 두대를 돌리는 방식으로 차륜과 직각 방향으로 설치된 직각 카르단 방식을 채택 일본 최초의 카르단 구동방식 철도차량의 타이틀을 얻었다. 하지만 적정 출력을 내기 위해선 막대한 엔진 출력이 필요했고 그만한 엔진을 탑재할 공간이 부족해지며 복잡한 전기장치로 인해 유지보수의 문제가 커지게 된 것이다. 따라서 1953년 유체식 변속기(토크컨버터)를 사용한 키하 44500형이 표준형 차량으로 채택되면서 30년에 걸친 디젤동차의 표준화가 겨우 완성된 것이다. 

 

 

 

디젤동차의 개발 역사를 소개한 다큐멘터리 영화. 3:21부터 디젤동차의 변천사를 소개하고 있다. 

 

 

기계식 변속기를 사용한 마지막 동차라 할 수 있는 키하 07계.(큐슈철도기념관 보존) 1930년대에 가솔린 차량으로 제작되어 천연가스엔진->디젤엔진(기계식)->유체변속기 개조등을 거친 역사의 산증인이다. 

 

 

고효율, 고출력, 표준화를 위해


 지금부터 소개하는 키하10계 이전에는 가솔린을 대체하였으나 석유를 쓸 수 없어 목탄가스, 천연가스 엔진과 같은 대체연료를 사용한 수준의 내연동차나 기계식 변속기를 사용한 동차정도박에 없었고 이 키하 10계에 와서야 제대로 된 디젤동차의 시대를 열게 되었다. 가솔린에 비해 안전성이 뛰어나고 연료효율이 좋은 디젤엔진 DMH17엔진은 1942년 개발되었으나 전후 복구가 어느정도 진척된 1951년부터 본격적으로 양산되어 70년대까지 국철 표준의 디젤엔진으로 자리잡는데 성공했다. 유체변속기는 고베제강소를 중심으로 1930년대부터 연구가 시작되었다. 토크컨버터를 사용하는 변속기 방식에는 독일의 호이트(Voith)식, 스위스의 리홀름 스미스식(Lysholm-Smith), 메키드로식이 있는데 이중 저속대역에서 토크 컨버터를 사용하며 고속대역에선 유성기어(락업 클러치)라는 특수한 기어로 고정시켜 엔진과 직결시키는 자동차의 자동변속기 원리를 그대로 적용한 리홀름 스미스식이 채택되었다. 이에따라 변속기의 조작은 전기신호로 대체하게 되어 운전실 한곳에서 한편성 전체의 변속기 조작을 행할 수 있어 기계식 수동변속기의 폐단을 개선하고 장대화를 이룩하게 된 것이다. 또한 엔진과 변속기를 일체형으로 구성하여 엔진과 변속기를 함께 점검할 수 있도록 하는 파워팩 형태의 설계도 적용되었다. 

 한편 비전철화된 지방의 로컬선 위주로 운용하기 위해 당시 쇼난전차에서 유행되던 관통형 선두부와 양운전대 등이 고안되었는데 이 당시에는 차체 제작기술 부분이 아직 미흡했기 때문에 객실 창문은 이른바 "버스 창문"이라 불리는 윈도우 쉴드가 포함된 상승식 창문이었고 차체 폭도 2.6미터로 매우 좁았다. 실내는 보통 크로스시트를 사용하나 러시 타임의 혼잡률을 낮추기 위해 앞뒤는 롱시트를 갖춘 형태의 세미 크로스시트가 적용되었다. 대부분의 내장재는 화재를 고려한 불연재를 적용하였다. 실내의 난방은 아직 냉각수 순환식의 설계가 미흡하여 독일의 기술지원을 받은 독립식 스토브난방이 채택되었으며 제동장치도 전동차에서 많이 사용되던 자동공기제동 등을 채용하여 기동차의 현대화를 이룩하게 된다.

 

 

DMH17 엔진과 DF115형 변속기의 모습. 이때만 해도 수평설계 같은건 없어서 차체에 수직 프레임을 사용한 엔진마운트 위에 엔진을 얹는 식이었다. 좌측의 변속기와 함께 이들을 몽땅 내려 점검의 용이성을 확보한것이 특징이다. (Wiki :  NEXT-EXIT /  CC 表示-継承 3.0)

 

 

오오미야 철도박물관에 동태보존중인 키하11형의 엔진 시동 모습(2017년까지 엔진 시동을 거는 시연회를 하기도 했다). 8기통 엔진이지만 예연소실 방식이라 소리가 꽤 경쾌한 편이다. 

 

 

신코조기 TC-2형 유체변속기의 내부모습. 왼쪽의 판은 락업 클러치, 오른쪽의 터빈같은 부위가 토크컨버터로 현대의 자동변속기 원리와 같다. (Wiki : Comyu  / CC 表示-継承 3.0)

 

 

 키하 10계의 대차. 2차 완충장치는 스윙행거에 고무블럭 등을 사용한 아주 기초적인 수준의 대차. (Wiki :  NEXT-EXIT / CC 表示-継承 3.0)

 

키하 11계의 실내. 당시에는 차체 제작기술 수준상 이 정도의 실내가 전부였다. (Wiki :  Toshinori baba /  CC 表示-継承 3.0)

 

 

다양한 바리에이션으로 전국에 퍼져


 먼저 키하 44500형으로 시작되어 이후 국철의 차호 변경 정책에 의해 키하 10계로 합쳐진 형식은 총 9가지의 형식이 있다.

키하 17형 : 가장 최초의 형식. 편운전대, 크로스시트, 화장실을 갖춤. 54년까지 402량이 생산되었다
키하 16형 : 편운전대, 세미크로스 시트, 화장실 없음. 혼슈 이남지역에서 운용되었다.
키하 10형 : 양운전대, 화장실. 55년부터 57량까지 70량이 생산되어 혼슈 이남지역에서 운용되었다. (구)남부종관철도에 한량이 동태보존되고 있다.
키하 11,12형 : 양운전대, 화장실, 훗카이도에 배치된 내한내설 적용 타입. 소설 "철도원"에 등장하는 기동차가 키하 12형(영화에서는 키하 40계를 개조했다) 오오미야 철도박물관에 1량이 동태보존중이다.

키하 18형 : 중간차, 크로스시트, 화장실 없음
키로하 18형 : 2,3등 혼합차, 세면실과 화장실을 갖춘 중간차
키하 50,51형 : 출력강화(엔진 2기)형. 준급열차등에 사용될 목적이었으나 실상은 혼슈지역의 급구배선의 보통열차로 활약했다.

이렇게 1957년까지 총 762량이 생산된 이후에는 차체 설계를 개선하고 엔진을 수평으로 재설계한 키하 20계가 등장하였고 국철에서는 1981년까지 운용하였다. 

 

 

일본 현대식 디젤동차의 기원


 키하10계는 일본 철도차량의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차량이다. 비전철로 이용객이 적은 로컬선에 증기기관차를 대체하여 최대한 소형, 경량의 차량을 투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전쟁 통에 먼 길을 돌아야 했지만 이 키하 10계로서 일본 현대식 디젤동차의 표준화를 달성, 국철 시대 디젤동차 기술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차량이 되었다. 

 키하 10계는 노후화가 뚜렷하게 진행된 80년대 이후엔 모두 퇴역하고 일부가 3섹터 지방철도로 양도되어 운용되었는데 이 중 아오모리의 남부종관철도가 노선 폐선 후에도 차량만큼은 동태보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이바라키교통이 가지고 있던 차량을 오오미야 철도박물관이 인수하여 동태보존 하는 등 아직도 움직일 수 있는 차량이 소수 존재하고 있기도 하다. 이외에도 나고야의 리니어 철도박물관, 카야 SL광장 등에도 정태보존 차량이 전시되어 있다. 

 

 

 (구)남부종관철도 시치노헤역에 동태보존중인 키하 10형. 노선은 폐선되었지만 역사적 가치가 있는 차량은 계속 보존하는 드문 사례. (Wiki :  まも /  CC 表示-継承 3.0)

 

리니어 철도관에 전시중인 키하 11형. 

 

- 글 : 송승학(부운영자, 787-ARIAKE)

- 사진 : 본인, 김성수, Wikipedia

- 동영상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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