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꿈꿔왔던 철도 대국을 만든 세계 최초의 고속철도. "꿈의 초특급"은 현실로.
꿈의 초특급. 그 결실을 보다.
1964년 10월 1일, 도쿄 올림픽을 기념하여 도카이도 신칸센 도쿄 - 신오사카 간에 투입된 세계 최초의 고속철도 차량, 신칸센(新幹線)이 바로 0계이다.
1964년 개통당시의 최고속도는 210km/h로서, 사람들이 모두 빠른 속도에 혀를 내둘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개통 당시에는 도쿄-신오사카를 3시간 10분에 연결, 일본의 교통 코스트 절약에 일조하였으며 자동차와 항공기의 발달로 점점 쇠퇴해가던 철도에 한줄기 빛을 보여줌으로써 세계 철도사에 기여하는 한편 2021년 현재까지도 차량이나 시설 결함에 의한 사상사고 건수 0을 기록하는 안전성을 보여주고 있다.
0계는 1969년 히카리편성을 도입, 1972년에는 고다마 16량 편성 도입을 했으며, 더욱 활동범위를 늘려, 1972년 3월 15일, 산요신칸센(山陽新幹線) 신오사카-오카야마(岡山)의 부분개통, 1975년 3월 10일 오카야마-하카타(博多) 구간 개통으로 산요신칸센 전구간 개통이 되면서 계속 활동범위를 늘려가며 국철 시대를 대표하는 주력 고속철도 차량으로 오랜 기간 활약하게 되었다.
기존 기술의 활용으로도 가능한 세계 최초의 영업용 고속철도 차량
0계 신간선 전동차는 사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전동차를 고속에 맞도록 확장한 형태로서 불안정안 신기술 보다는 60년대까지 축적된 여러 가지 기술을 혼합하고 장래의 확장성을 감안하여 1962년부터 시험차 1000형을 바탕으로 여러 가지 기술시험을 거쳐 양산으로 이어졌다.
차체는 강철차체로서 1435mm 궤간 내에서 제작될 수 있는 사이즈의 한계까지 사이즈를 늘렸다. 이를 위해 고장력 강판을 적절히 사용해 평균 공차중량 52톤 정도로 억제했다. 선두부는 항공기처럼 둥근 캡이 달린 유선형 선두부가 큰 특징으로 흰색에 푸른 라인을 넣어 현재 신간선의 이미지 컬러를 이룩했으며 많은 사람들의 인상을 사로잡았다. 기존 전동차와 똑같은 M'-M구조이지만 200km/h이상의 고속 성능을성능을 발휘하기 위해 전동기 출력은 당시 최고급인 185kW급의 전동기를 채용하고 풀 모터카 편성으로 1개 유닛이 고장 나도 25 퍼밀의 구배에서 160km/h이상의 주행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제어기기는 그 당시 교류차량의 제어 방식으로 전기기관차 등에서 채용된 25단계 제어 방식의 저압 탭 제어(주변압기의 2차 권선 수를 조절)를 사용해 교류차량의 특성을 최대한 활용했다. 보조전원은 각 차량별로 20kVA급의 전동발전기로 교류220V와 직류 100V를 뽑아내 객실 조명과 냉난방을 유지하는데 사용하며 식당차의 경우 35kVA급을 사용해 조리 설비들을 운영했다.
제동계통은 당시 전동차의 주류 제동방식인 전자직통제동과 더불어 별도의 저항기를 사용한 발전제동과 유압식 캘리퍼를 사용하는 차륜 디스크 제동을 채용해 고속 영역에서의 페이드 현상을 억제하고 빠른 제동 응답성을 바탕으로 최고속도에서도 제동거리 2000m를 확보하고 있다. 대차는 토부 8000계에서 실용화된 민덴식 대차를 적절하게 개량해 IS 식 대차를 새로 만들어 채용했으며 축간거리 2.5m, 경량화된 볼스터와 에어스프링, 유압 댐퍼 등을 사용해 안정적인 승차감을 확보했다.
집전장치는 2량에 한 개소씩 크기를 최소화한 하부프레임교차식 팬터그래프를 채용했으며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지붕에는 팬터그래프와 방음 커버만 설치하고 그 외의 고압 기기(주차단기, 피뢰기 등)는 모두 차량 하부에 모아두었다.
신호체계 또한 고속 영역에서는 지상의 신호기를 보기 어렵기 때문에 궤도회로를 통해 차내에 직접 신호를 전달 운전실의 차상신호장치로 신호를 보며 운전하는 ATC가 채용되어 고속 철도 차량의 기반 기술로 자리 잡게 되었다.
수송력 중시의 실내 구성
0계 신간선은 길이 25미터, 폭 3.4미터로서 표준궤를 사용하는 철도차량 중 가장 큰 규격으로 현재의 신간선 차량 사이즈를 확립하였다 실내는 넓은 차체를 바탕으로 도입 당시부터 2+3의 전환식 크로스시트를 채용해 고속 성능에 의한 강력한 수송력을 중시한 대신 거주성을 약간 희생하였다. 하지만 그린샤(도입당시 1등차)는 2+2의 리클라이닝 시트를 채용했다. 공조장치는 차량 상부에 있었으며 터널 진입 시에 환기장치를 자동으로 차단하는 등 기압변동 방지에도 신경 썼다. 도입 초기에는 기존 특급형 차량과 비슷한 대형 창문을 사용했지만 고속주행 중 파손되는 경우가 많아 1열 1개의 소형 창문으로 변경되었다. 계열은 0계지만 실제 차량 형식명을 보면 1등차(그린샤)는 10번대, 보통차(선두차 포함)는 20번대, 식당차와 뷔페카는 30번대 형식명을 부여받았다. 선행 양산차에서는 그린샤 1량과 뷔페카+보통차 합조차 1량을 포함한 6량으로 시험운행을 했지만 개통과 함께 그린샤 1량, 뷔페카 2량이 포함된 12량 편성으로 운행을 시작했다. 69년 오사카 만물박람회 때엔 "고다마"와 "히카리"의 편성을 나누었으며 72년 산요 신간선 개통부터는 "히카리"편성에 한해 그린샤 2량, 뷔페카 2량이 포함된 16량 편성으로 증비 되었으며 74년부터는 히카리 편성에 한해 제대로 된 식당차 또한 추가되었다.
26년 38차 3,216량. 국철의 정체기를 대변하다.
0계는 고속철도 차량인지라 수명이 다소 짧아 1976년부터 단계적 폐차가 이루어지며, 증비용으로 견인전동기 출력을 225kW로 늘리고 주제어기 등을 변경한 0계 1000번대가 투입되기 시작했다. 개통때부터 혹사되다시피 한 차량운용으로 차체의 피로도가 심각해 초기에 제작된 차량들은 12년 만에 교체되었으나 당시 국철의 경영상태가 크게 악화되어 새로운 차량의 개발에 힘을 쓸 여력도 없을 정도로 기술발전이 정체되어 있었으며 당시 노동조합에서도 기술적으로 불안정한 신형 차량의 도입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게 되어 신형 0계가 0계를 대체하는 웃지 못할 상황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이렇게 0계는 일본 철도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당시 국철의 정체기를 대변하는 아쉬움의 차량이기도 했다.
0계는 1986년 11월 1일, 도카이도-산요신칸센의 대폭적인 다이어 개정으로 인해서, 영업운전속도를 220km로 더 높여 운행하게 된다. 1985년 신형 100계 차량이 투입되기 시작했지만 편성수 조정으로 인해 1986년 투입의 38차 인도분까지 제작되어 26년간 총 3,216량이라는 무지막지한 양이 제작된다. 이는 국철 시절엔 103계에 이은 최다 생산량 2위였으며 현재는 E233계에 밀려 3위를 기록하고 있다. 제작사도 일본차량, 도큐차량, 긴키차량, 카와사키중공업, 기차제조(72년 카와사키중공업에 합병), 히타치제작소 등 내로라하는 일본의 차량 제작사들이 총동원되었다. 거듭 차량이 제작되고 접수대가 늘어가면서 실내나 실외에 많은 변경점들이 보인다. 특히 1981년(30차 인도분)에 제작된 2000번대의 경우 외형은 바뀌지 않았지만 객실 거주성을 크게 개선했다. 그래서 시트 피치(폭)의 확대, 좌석이 전환식에서 리클라이닝식으로 변경되었다. 이 외에도 종합 검측차인 922계 "닥터 옐로" 도 제작되었다.
44년간 장수를 누리다.
후계 차량인 100계로 이어지면서 1986년 생산이 종료된 0계는 1987년, 국철이 JR로 민영화되면서 JR동해는 1339량, JR서일본은 715량을 인수하여 운행하였으며 1992년부터 견인전동기를 모두 225kW급의 전동기로 교체하기도 하며 "고다마"를 중심으로 운용되었으나 JR동해의 경우 300계, 700계로 빠르게 대체되어 1999년 9월 18일 마지막 퇴역식을 끝으로 도카이도 신칸센에서는 자취를 감추게 된다. 35년간의 업적을 마무리하는 뜻깊은 자리였으며, 0계 은퇴 기념상품(오렌지카드, 티셔츠, 트럼프, 클리어 파일, 에키벤)도 불티나게 팔렸다. 0계가 차량기지로 회송되는 순간, 엄청난 카메라 플래시가 터져 0계의 마지막 운행의 아쉬움을 달랬다. 하지만 JR서일본은 짠돌이 정신을 바탕으로 4,6,8량의 단편성으로 변경되어 단거리 "고다마"에 계속 투입하는 것도 모잘라 0계의 리뉴얼을 단행, 히카리 레일스타와 같은 기본 도색으로, 창문 부분에 후레쉬 그린의 띠를 넣어 한층 신선한 느낌을 주며, 2+3 시트를 모두 2+2 시트 배열로 바꿔 버린 신형 0계 6량 편성을 투입해서 2002년부터 운행을 개시했다. 이 리뉴얼 편성은 2004년까지 30개 편성 156량이 리뉴얼되어 운행하였다.
일본 철도역사의 상징으로 기억된 0계
그렇게 새로운 고속철도 시대를 열었던 0계도 44년의 긴 시간을 뒤로하고 2008년 11월 30일 산요신간선의 0계도 모두 퇴역함으로써 도카이도-산요 신간선의 모든 0계가 퇴역하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운행된 0계 6개 편성은 리뉴얼색에서 다시 오리지널 도색으로 변경하여 운행하였으며 11월 30일 정기 운용 퇴역에도 불구하고 12월 14일 다시 한번 마지막 운행을 가지며 그 44년의 긴 역사를 마무리했다. 역시 여러 가지 한정상품도 발매되어 아쉬움을 달랬다. 이후 0계는 사이타마 JR동일본 철도박물관을 비롯 여러 철도 전시관에 전시되어 있으며 심지어는 만리타국의 영국 국립 철도박물관에까지 전시되기까지 했다. 0계 신간선은 꿈의 초특급, 탄환열차, 고속철도라는 새로운 개념의 철도를 구축함으로서 세계 철도사에 기여하였으며 이후 프랑스, 독일과 같은 유럽의 철도 선진국들이 앞다투어 고속철도를 도입하게 되는 계기를 만들게 되었다. 0계의 둥근 선두 모양은 앞으로도 수많은 일본인들의 꿈의 상징으로서 현대 역사에 함께할 것이다.
글 - 김성수 / 송승학
사진 - 김성수, Cassiopeia님, 순정소년님, Wikipedia, 영국국립철도박물관 홈페이지
동영상 - Youtube(JR서일본 0계 은퇴 기념 홈페이지 발췌)
Last Update 2021.08.05(신에디터 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