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 강의 노트 (95)
세주묘엄품 2-46
46. 변주일체주방신(遍住一切主方神)이 얻은 해탈문
復次 遍住一切主方神은 得普救護力解脫門하고 普現光明主方神은 得成辨化一切衆生神通業解脫門하고 光行莊嚴主方神은 得破一切闇障하야 生喜樂大光明解脫門하고 周行不碍主方神은 得普現一切處不唐勞解脫門하고 永斷迷惑主方神은 得示現等一切衆生數名號하야 發生功德解脫門하고 遍遊淨空主方神은 得恒發妙音令聽者로 皆歡喜解脫門하고 雲幢大音主方神은 得如龍普雨하야 令衆生歡喜解脫門하고 髻目無亂主方神은 得示現一切衆生業無差別自在力解脫門하고 普觀世業主方神은 得觀察一切趣生中種種業解脫門하고 周遍遊覽主方神은 得所作事皆究竟하야 生一切衆生歡喜解脫門하니라
또 변주일체주방신은 널리 구호하는 힘의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보현광명주방신은 일체중생을 교화하는 신통의 업을 마련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광행장엄주방신은 일체 어두운 장애를 부수어서 기쁘고 즐거운 광명을 내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주행불애주방신은 널리 모든 곳에 나타나 헛된 수고를 하지 않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영단미혹주방신은 일체중생의 수대로 이름을 나타내 보여서 공덕을 발생하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변유정공주방신은 항상 미묘한 소리를 내어 듣는 이를 모두 기쁘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운당대음주방신은 마치 용이 비를 내리듯이 중생들을 기쁨에 젖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계목무란주방신은 일체중생의 업이 차별이 없음을 나타내는 자재한 힘의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보관세업주방신은 모든 갈래의 중생들 가운데서 가지가지 업을 관찰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부변요람주방신은 하는 일을 다 끝내고 일체중생을 기쁘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강설 : 방위를 맡아 있는 주방신들의 등장입니다. 보통 사방(四方), 팔방(八方) 시방(十方) 등으로 방향을 나누지요. 그러나 원(圓)이 가지는 각도인 360도가 공간의 수평적인 방향이고 위, 아래도 그와 같은 각도에 따른 방향이 있겠습니다. 알고 보면 이 방위가 전부 비로자나의 영역이고 동시에 중생의 영역이고 신들의 영역입니다. 모든 존재가 머물고 있는 위치가 주방신의 역할이 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리적으로 생각하면 먼저 공간이 있어야 존재가 가능하므로 그 공간을 관리하는 주방신이 모든 중생에게 붙어 있고 존재를 존재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주방신이 맡아 있는 공간이 법성의 성품 안이고 다시 이것은 중생의 마음입니다. 『대승기신론』에서는 중생의 마음을 대승(大乘)이라 하였는데 화엄경 도리와 같은 법문입니다.
주방신들이 얻은 해탈문 가운데 중생들을 기쁘게 한다는 말이 몇 차례 나왔습니다. 기쁨은 슬픔의 반대말입니다. 중생을 슬프지 않게 한다는 것이지요. 슬픔은 곧 괴로움입니다. 마음이 편치 않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아무런 즐거움이 없는 것이 괴로움입니다. 이 괴로움을 해결하자는 것이 불교의 목적입니다. 원래 한자 고(苦)는 범어 두카(duhkha)를 번역한 말입니다. 태어남에서부터 죽음에 이르는 인간존재의 근원적 현실을 고통이라고 본 것입니다. 불교에서 제시하는 이상적인 세계 열반에 네 가지 덕이 있는데 이를 상(常) ⸱ 낙(樂) ⸱ 아(我) ⸱ 정(淨)이라 합니다. 이것이 없는 것을 고통으로 본 것입니다. 또 괴롭다는 것은 두 가지 뜻이 있다 합니다. 혐오(嫌惡)와 공허(空虛)라고 합니다. 이는『청정도론』에 나오는 말로 혐오스럽고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이 고(苦)라는 것입니다.
악몽에 시달리며 잠을 자던 사람이 잠을 깨면 악몽에서 벗어나듯이 깨달음을 얻으면 혐오와 공허가 없어진다 합니다. 이래서 불교의 목적을 이고득락(離苦得樂)이라고도 표현합니다.
고(苦)를 구분하여 말할 때는 육체적인 고통을 신고(身苦)라 하고 정신적인 고통을 심고(心苦)라 합니다. 또 내고(內苦), 외고(外苦)로 나누기도 합니다. 내고란 자신의 몸과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고통을 말하고 외고란 밖으로부터 받는 고통입니다. 외를 들면 도둑을 맞았다든지 외출을 해 길을 가다 심한 추위를 겪었다든지 하는 것이 외고입니다. 전염병이나 천재지변 등도 외고입니다. 코로나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는 것도 외고입니다.
또 고통 자체의 성질을 두고 구분하는 3고설(三苦說)이 있습니다.
❶ 고고(苦苦) :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인데 어쩔 수 없는 환경으로부터 오는 고통입니다. 추위 더위 등이 그렇지요. 전쟁이 일어나거나 앞에서 말한 전염병이 발생하여 사회적인 두려움이 생기는 것 등이 모두 고고입니다.
❷ 괴고(壞苦) : 좋아하는 대상이 없어지거나 좋은 사이가 나쁜 사이로 변해지는 것 등이 괴고입니다. 아끼는 것이 파괴될 때 느끼는 괴로움입니다.
❸ 행고(行苦) : 세상의 무상(無常)함을 보고 느끼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노병사를 행고로 보기도 하지요. 이별의 고통도 행고입니다. 산다는 것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고 떠나가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사별(死別)이라고 말하기도 하지요. 해가 뜨고 지는 것도, 세월이 가는 것도 행고이지요. 무상한 것은 모두 괴로운 것이라 했습니다.
이러한 고의 문제는 인간이 살아가는 삶의 문제입니다. 이 고를 줄여 감소해 가고 결국은 소멸시키자는 것이 불교의 주장입니다. 그래서 안락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고를 극복하여 즐거움을 누리도록 하자는 것이지요.
이렇게 되도록 하기 위해서 서로 자비(慈悲)를 베풀고 살자는 것이 불교의 기본 윤리입니다. 자비의 자(慈)는 즐거움을 주는 것이고 비(悲)는 괴로움을 뽑아준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 글자입니다. 자비는 고(苦)를 치료하는 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