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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강의 노트 (97)

작성자지정 (20기야간)|작성시간26.06.17|조회수18 목록 댓글 0

화엄경 강의 노트 (97)

 

세주묘엄품 2-48

 

48. 주공신(主空神)들이 얻은 해탈문

 

復次淨光普照主空神은 得普知諸趣一切衆生心解脫門하고 普遊深廣主空神은 普入法界解脫門하고 生吉祥風主空神은 了達無邊境界身相解脫門하고 離障安住主空神은 能除一切衆生業惑障解脫門하고 廣步妙髻主空神은 普觀察思惟廣大行海解脫門하고 無碍光焰主空神은 得大悲光으로 普救護一切衆生厄難解脫門하고 無碍勝力主空神은 得普入一切호대 無所著福德力解脫門하고 離垢光明主空神은 得能令一切衆生으로 心離諸蓋淸淨解脫門하고 深遠妙音主空神은 得普見十方智光明解脫門하고 光遍十方主空神은 得不動本處하고 而普現世間解脫門하니라

 

또 정광보조주공신은 여러 갈래에 있는 일체중생의 마음을 아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보유심광주공신은 널리 법계에 들어가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생길상풍주공신은 끝없는 경계의 몸 모습을 아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이장안주주공신은 일체중생의 업과 미혹의 장애를 제거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광보묘계주공신은 광대한 수행의 바다를 관찰하고 사유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무애광염주공신은 큰 자비의 광명으로 널리 일체중생의 액란을구호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무애승력주공신은 널리 모든 것에 들어가되 집착하지 않는 복덕의 힘을 얻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이구광명주공신은 일체중생이 마음에 모든 번뇌를 여의고 청정해지게 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심원묘음주공신은 널리 시방의 지혜 광명을 보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광변시방주공신은 본래의 처소에서 움직이지 않고 세상에 어디든지 나타나는 해탈문을 얻었습니다.

 

 강설 : 주공신은 허공을 신으로 묘사한 말입니다. 이미 말했습니다마는 화엄경에서는 이 세상 모든 것이 신도 될 수 있고 사람도 될 수 있고 부처도 될 수 있습니다. 어느 특정 하나의 존재물이 모든 존재물의 의미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동충하초(冬虫夏草)란 말을 들어보셨지요. 바카스병처럼 음료수로 나온 것도 본 적이 있습니다. 원래는 식물인데 겨울에는 벌레가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충하초입니다. 이 예를 드는 것은 현상의 모든 존재가 다른 것으로 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돌이나 쇠가 물 곧 액체가 될 수 있고 나무가 재가 되는 것이 과학적으로 가능하듯이 모든 존재는 우선 가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생(生) ⸱ 주(住) ⸱ 이(異) ⸱ 멸(滅)의 네 가지 상태를 거치는 과정에서 보면 매우 분명한 일입니다.

 

 그러나 비록 변화무쌍한 현상의 존재들이 어느 것도 법성(法性)을 떠나서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 법성이 현상의 작용을 나타내는 것이 천태만상(千態萬象)이지만 모양을 떠난 성(性)에서는 아무 차별이 없이 서로 같아질 수 있습니다. 화엄도리를 설명하는 상즉상입(相卽相入)이라는 말을 이미 설명한 것처럼 하나에서 전체를 보고 전체에서 하나를 봅니다.

 

 주공신은 허공신(虛空神)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허공신이 『유마경』에도 나오고 『지장경』에도 나옵니다.

  또 <법성게>의 ‘십불보현대인경(十佛普賢大人境)’의 구절에서 십불을 해경십불(解境十佛)과 행경십불(行境十佛)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해경십불에 허공신(虛空身)이 들어 있습니다. 허공이 부처님 몸이라는 것이지요. 이는 온 세상이 부처로 보이는 것을 말하는데 중생도 부처님의 몸이고 국토도 부처님의 몸이라 하여 중생신(衆生身), 국토신(國土身)이라는 말도 들어 있습니다. 차별이 없는 평등한 지혜로 보면 온 법계가 모두 부처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주방신들의 해탈 경계를 여러 가지로 설명해 놓은 이 대목의 이야기도 다른 신중들의 해탈문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자기 전공의 분야들을 한 가지씩 말해 놓은 것입니다.


 해탈이란 용어를 현대적 개념으로 응용해 생각해 본다면 사람이 살아가면서 많은 일을 겪으며, 어떤 문제에 직면할 때 그 문제가 나를 힘들게 하며 또 괴롭게 할 때가 있겠지요. 자나 깨나 신경을 쓰고 사는 문제가 있다면 그건 분명히 내 삶의 짐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건강을 잃어 어떤 병을 앓고 있을 때 치료를 받아 건강을 회복해야 할 급선무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몸이 건강하다면 일단 치료받을 문제는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문제를 가지고 있다가 그 문제가 해결되어 문제가 없어진 것이 바로 해탈의 상태입니다. 또 한 가지의 예를 든다면 어떤 일을 능숙하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 전혀 힘들이지 않고 수월하게 할 수 있다면 일을 하는데 문제가 없는 것이지요. 이처럼 아무 문제가 없는 상태의 수월하고 편함이 곧 해탈의 경지입니다.


 아시다시피 불교의 근본 문제를 생사 문제라 합니다. 이게 바로 인생의 근본 문제이지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가 죽는 것. 이것을 두고 우리는 운명이다, 숙명이다, 하기도 합니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는 것, 이것을 근본 문제로 인식할 때 바로 불교가 시작된다 할 수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어렸을 때 고오타마 싯달타로 있었을 때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생사(生死)의 문제에 의문을 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생모 마야부인이 고오타마를 낳은 지 이레 만에 돌아갔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이 고오타마가 자라면서 생사에 의문을 품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요. 인생 문제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이 의문은 호구지책(糊口之策)의 지말적인 문제에 의해 묻혀버리거나 망각 되는 경우가 있겠으나, 그러나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이상 이 근본 문제는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살 것이냐 하는 것은 죽음을 생략한 말일 뿐 실은 어떻게 살다가 죽을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중생이란 말 자체가 생사를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불교에서는 생사를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분단생사(分段生死)와 변역생사(變易生死)가 그것입니다.


 ❶ 분단생사 : 육도에 윤회하는 범부들의 생사를 말합니다. 선악을 지은 업을 인(因)으로 하고 번뇌를 연(緣)으로 하여 과보를 받는 생사로 수명의 장단과 신체의 크고 작음 등 정해진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분단(分段) 혹은 분단(分斷)이라 합니다. 이 분단생사는 업력에 끌려가는 생사입니다.


 ❷ 변역생사 : 번뇌가 없는 선정의 힘(定力)이나 원력(願力)에 의해 분단의 한계를 극복 분단을 변화시켜 바꾸어 불가사의하게 생사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분단생사와는 달리 변역생사는 몸의 형태의 구별이나 명의 길고 짧음이 없고 다만 심신(心神)이 찰나마다 서로 전해지면서 앞에서 변하고 뒤에서 바꿔진다 합니다. 주로 보살들의 생사를 말하기도 합니다. 보살들은 윤회를 벗어나 생사를 여위었으나 중생을 교화제도 하기 위하여 생사의 몸을 받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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