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의 사람시리즈 - 아브라함⑤
부르심의 자리로 돌아오다!
참고말씀: 창4:26; 12:5-8,16; 35:3-7; 마28:10,16; 계2:4,5
읽을말씀: 창13:1-13
주제말씀: 창13:4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 약속의 땅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창13:1,2)
아브람(이하,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 곧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여주신 땅을 벗어났을 때 큰 위기와 시험을 겪었습니다(창12:10-20). 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약속의 땅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그 곳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아브람이 애굽에서 그와 그의 아내와 그의 모든 소유와 롯과 함께 네게브로 올라가니.”(1절)
왜 올라가야 합니까? 왜 돌아가야 합니까? ‘올라갈 때’ 소망이 있고 ‘되돌아갈 때’ 하나님의 부으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아브라함이 올라갈 때 어떠했다고 말했습니까? 그의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했습니다.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더라.”(2절)
어떻게 해서 풍부해졌습니까? 물론 사래(이하, 사라)의 일로 바로에게 가축과 노비 등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이에 바로가 그로 말미암아 아브람을 후대하므로 아브람이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었더라.”(창12:16)
그가 ‘약속의 땅으로 올라가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하나님께서 그의 재산을 증식시켜주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즉 그가 일전에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했을 때 그의 재산을 증식시켜주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창12:5 상)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내려가면’ 실패와 절망뿐이지만 ‘올라가면’ 다시 소망을 얻게 되고, ‘떠나가면’ 환난과 시험뿐이지만 ‘돌아가면’ 회복과 채움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아브라함처럼 올라가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보여주신 그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을 이루기를 원합니까? 부르심의 삶에 충실하기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부르심의 영역으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부르심의 영역 가운데 있을 때에 비로소 우리의 부르심도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13:3,4)
아브라함은 올라가되 어디까지 올라갔습니까? 벧엘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벧엘과 아이 사이입니다. “그가 네게브에서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3절 상) 왜 이 곳으로 올라갔습니까? 그곳은 전에 그가 장막을 쳤던 곳이자, “...곧 전에 장막 쳤던 곳에 이르니.”(3절 하) 처음으로 제단을 쌓았던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쌓은 곳이라...”(4절 상)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창12:7,8)
왜 찾아간 것입니까? 처음 신앙을 회복하기 위함입니다. 즉 처음으로 제단을 쌓고 예배했던 그곳으로 올라가서 잃어버렸던 신앙을 회복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그의 손자 야곱도 하란에서 돌아와서 첫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서 어디로 올라갔습니까? 벧엘입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야곱과 그와 함께 한 모든 사람이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 곳을 엘벧엘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거기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이더라.”(창35:3-7)
그들은 거기서 무엇을 했습니까?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4절 하) / “그가 거기서 제단을 쌓고...”(창35:7 상) 하나님을 전심으로 예배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첫째, 신앙의 회복을 원한다면,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리 했고, 야곱이 그리 했으며, 예수님의 열한 제자들이 그리 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서워하지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 하시니라...열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께서 지시하신 산에 이르러.”(마28:10,16)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처음 사랑과 처음 행위를 잃어버렸습니까?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를 살펴보고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길 바랍니다. 즉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서 회개함으로써 처음 사랑을 회복할 수 있길 원합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2:4,5)
둘째, 예배를 통해서만 진정한 회복이 이루진다는 점입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은 벧엘로 올라가서 무엇을 했습니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곧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한 것입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4:26 하) 아브라함뿐만 아니라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어김없이 예배를 통해 진정한 회복을 맛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회복을 원합니까? 그렇다면 예배의 자리로 나아오기 바랍니다. 오직 예배를 통해서만 진정한 회복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부르심에로의 회귀를 원합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예배생활부터 회복할 수 있기 원합니다. 우리는 예배의 회복을 통해 부르심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명심하십시오. 본문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처음 제단을 쌓은 믿음의 장소 벧엘로 회귀하는 기록입니다.
* 하나님의 방식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 그러므로 아브람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고 또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도 그 땅에 거주하였는지라.”(창13:5-7)
신앙생활의 회복은 ‘문제없는 인생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즉 신앙생활이 회복되었다고 해도 문제가 전혀 생기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으며, 부르심의 자리로 돌아갔다고 해서 문제없는 인생을 보장받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본문의 경우를 통해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에게는 어떤 문제가 찾아왔습니까? 조카 롯과의 분규(紛糾)입니다. 그동안 아브라함이 그를 아비처럼 양육하고 후원해왔건만, 목초지 문제로 분쟁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5,6절)
그러나 모든 문제에는 그 원인이 있는 법, 무엇이 그들을 분쟁하게 했습니까? 첫째, 재산의 증식입니다. 두 사람의 소유가 이전보다 훨씬 더 많아졌던 것입니다. “...이는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니라.”(6절 하) 둘째, 한정된 목초지입니다. 그들의 가축들을 방목하기에 다소 한계가 있었던 듯합니다.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으니...”(6절 상)
참으로 역설적이지 않습니까? 재산이 많아지면 더 행복해져야 하고, 소유가 많아지면 감사가 많아져야 할 텐데 오히려 분쟁하고 못살겠다고 다투었으니 말입니다. 이로 보건대 우리의 행복은 재산의 증식이나 소유의 많음에 달려있지 않음이 분명합니다. 허면 무엇에 달려 있습니까? 방식의 전환입니다. 즉 내 방식대로 해결하려던 것을 하나님의 방식대로 전환함으로써, 비로소 우리는 행복해지고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습니까? 장유유서(長幼有序)나 양육의 대가 등 자신의 정당한 권한을 주장함으로써 그리 했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롯에게 우선권을 제공, 곧 자신의 당연한 이권을 포기함으로써 해결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그분의 뜻을 구하고 그 뜻에 따라 살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 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9절)
결과는 어찌 되었습니까? 롯은 세상적인 부요함을 좇아 비옥한 요단지역으로 향했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과 제단이 있는 그 땅에 남음으로써 평화롭게 해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롯이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으로 옮기니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11,12절)
결국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신앙생활의 회복이란 단순히 이전보다 열심을 조금 더 내는 차원이 아니라, 오히려 인생의 경영 방식을 바꾸는 것이며, 예배생활의 회복이란 또한 단순히 예배 횟수를 늘리는 차원을 넘어서서, 내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아가기로 다짐하고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문제 해결 방식의 전환을 이루는 것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신앙생활의 회복을 원합니까? 그렇다면 단순히 이전보다 열심을 조금 더 내는 차원이 아니라 인생의 경영 방식을 바꾸길 바라며, 또한 단순히 예배 횟수를 늘리는 차원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아가기로 다짐하고 실행해가길 바랍니다. 신앙의 체질을 바꿀 수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