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존중히 여기세요!
참고말씀: 삼상2:12,17,23-25,34; 4:11,17,18; 마6:9; 눅10:38-42; 12:5; 요4:23; 롬13:7
읽을말씀: 삼상2:30 하
주제말씀: 삼상2:30 하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첫째,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2:30 하)
신앙생활의 첫걸음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어째서입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존중하는 사람을 귀중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삼상2:30 중) 참고로, 여기서 ‘존중히’(히, 아카베드)는 ‘유력하게 하다’, ‘무겁게 하다’의 ‘카바드’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를 귀중히 여기신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존중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멸시치 않는 것, 즉 하나님을 대놓고 무시하거나 하찮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2:30 하) 어째서입니까? 존중(尊重)은 높이어 중하게 여기나, 멸시(蔑視)는 교만하게 깔보거나 하찮게 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관계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어떤 것이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입니까? (상대방을) 교만하게 깔보지 않는 것이요, 하찮게 여기지 않는 것이며, 멸시하지 않는 것 등입니다. 우리가 이 같이 할 때, 상대방도 비로소 우리로부터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니 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길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존중히 여겨주시지만,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삼상2:30 중) 만일 하나님을 멸시하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경멸하실 것입니다.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2:30 하)
어째서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로부터 마땅히 존중받으셔야 할 우리의 하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눅12:5)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6:9 하) /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롬13:7 하)
그러니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무의식적으로라도 하나님을 멸시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우리가 어찌 멸시할 수 있겠냐고 반문하겠지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자체가 곧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위이며,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삼상2:12)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멸시하는 것이 곧 그분을 멸시하는 행위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삼상2:17)
참고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제사를 멸시했던 홉니와 비느하스 두 사람은 어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엘리에게 경고한 대로 전쟁터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 그 둘이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삼상2:34) /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삼상4:11)
둘째, 하나님을 존중하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삼상2:30 하)
하나님을 존중하는 사람은 어떻게 예배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존중받는 느낌이 들도록 예배해야 합니다. 즉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4:23)
구체적으로 어떤 예배가 하나님을 존중하는 예배입니까?
① 예배 시간에 늦지 않아야 합니다.
‘약속은 곧 신뢰’라고 할 수 있는데,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 예배 시간에 습관적으로 늦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드릴 수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상대방이 매번 약속 시간에 늦으면, ‘상대방이 나를 무시하나?’, ‘나를 이래도 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가?’라고 여기게 되는데, 하나님의 경우는 얼마나 더욱 그러하겠습니까? 이제라도 하나님을 존중히 여긴다면, 예배 시간에 늦지 않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② 예배 시간에 자꾸 들어왔다 나갔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중요한 손님과 만나고 있는데 중간에 자주 들락거리는 것은 예의에 어긋한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상대방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예배 시간도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친히 만나는 시간인데, 만일 우리가 중간에 자리를 비우거나 자꾸 들락거린다면, 하나님은 우리로부터 전혀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고 여기실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라도 어찌해야 합니까? 급한 용무는 가급적 예배 전에 다 처리하고, 일단 예배가 시작되면 예배가 끝날 때까지 함부로 자리를 이탈하거나 중간에 들락거리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③ 예배 시간에 음료수를 들고 오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므로, 음료수(飮料水)나 간식(間食)을 예배의 자리로 가지고 들어오는 것을 삼가야 합니다. 어째서입니까? 하다못해 학교 수업 시간에도 음료수를 가지고 들어가지 않는데, 하물며 하나님을 만나는 엄숙한 자리에 어디 음료수가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사실 음료수나 간식을 자유롭게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영화관이나 스포츠 경기장 등일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팝콘이랑 콜라를 가지고 영화관에 들어가듯이, 음료수를 들고 예배당에 들어간다면, 이는 예배당을 영화관처럼 여기고 있으며, 우리의 그러한 인식이 행동으로 고스란히 다 드러나고 있는 셈이 됩니다.
그러니 어찌해야 합니까? 목마르거든 예배 전에 미리 마시고 들어오고, 가급적 예배 시간에는 음료수를 들고 들어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단, 선천적으로 목이 자주 건조해지거나 원래부터 기침이 잦은 사람은 물병이나 텀블러 등을 준비했다가 사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④ 예배 시간에 그릇된 자세를 삼가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 면전(面前)에 서는 자리’이므로, 예배 시간에 다리를 꼬고 앉거나, 예배 시간에 종이접기를 하거나 주보에 낙서하거나, 팔짱을 끼고 있거나, 의자에 거의 누워 있거나, 고개를 돌려 옆 사람과 이야기하거나, 엎드려 있거나, 고개를 숙인 채 무엇인가를 하는 행동 등을 삼가야 합니다.
어째서입니까? 이런 행동들을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태도가 전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바른 자세에서 바른 예배가 시작될 수 있음’을 깨닫고, 예배 시간 내내 바른 자세를 유지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⑤ 예배 시간에 스태프처럼 돌아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자와 스태프는 염연히 다릅니다. 어떻게 다릅니까? 예배자는 말 그대로 아버지께 참되 게 예배하는 자를 의미하지만,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4:23)
스태프(staff)란 예배자라기보다는 단순히 예배를 돕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간혹 어떤 사람은 하라는 예배는 안 드리고 예배 시간에 스태프처럼 돌아다니기만 합니다. 물론 찬양팀이나 안내위원 등은 예배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서 꼭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들도 자기의 소임이 끝나면 곧바로 예배자로 복귀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만일 예배가 이미 시작되었는데도, 계속 스태프처럼 돌아다니면 어떻게 됩니까? 예배를 온전히 드릴 수 없게 됩니다. 교회에 오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인데, 그 중요한 예배 시간을 놓치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자매 마르다가 범했던 실수처럼 말입니다.
“그들이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마을에 들어가시매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합니다. 예수게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눅10:38-42)
⑥ 예배 시간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 시간은 대체불가(代替不可)입니다. 즉 예배 시간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고, 또한 대체하려고 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이는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만남의 시간’이요, 내 영혼이 새롭게 변화되는 ‘변화(變化)의 시간’이자, 내 영혼이 살아나는 ‘소생(甦生)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간혹 어떤 사람들은 이 같은 예배 시간을 어떤 것들로 대체하려고 합니까? 식사 시간, 유희(遊戲, 즐겁게 놀며 장난함), 개인 교습(레슨, lesson)이나 연습(演習) 등입니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어찌해야 합니까? 예배 시간은 대체불가의 시간임을 깨닫고, 예배 시간에는 다른 모든 일을 멈추고 오로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전심을 다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존중하는 예배를 하고 있습니까? 즉 예배 시간에 늦거나 들락거리지 않고, 예배 시간에 음료수를 마시지 않으며, 예배 시간에 다리를 꼬고 앉거나, 종이접기나 낙서를 하지 않으며, 팔짱을 끼고 앉아 있거나 엎드려 있지 않으며, 고개를 돌려 옆 사람과 이야기하지 않으며, 예배 시간에 스태프처럼 돌아다니지 않으며, 예배 시간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려는 시도를 중단하고 있습니까?
한편, 왜 이 같은 것을 가르쳐야 합니까? 제사장 엘리의 전철(前轍)을 밟지 않기 위함입니다. 엘리는 어떤 과오를 저질렀습니까? 자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예배를 멸시하고, 또한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않았어도,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삼상2:17) 단순히 나무라기만 할 뿐, 단호하게 징계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내 아들들아 그리하지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는도다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만일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그를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자기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삼상2:23-25)
그 결과는 그는 어떤 비극을 맞고 말았습니까? 자식들도 망하고 자신도 망하게 되었습니다. “소식을 전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였고 백성 중에는 큰 살육이 있었고 당신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도 죽임을 당하였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나이다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에 엘 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삼상4:1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