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겨진 곳에서 꽃을 피우세요!
참고말씀: 창39:1~23; 40:3; 45:7,11; 행23:11; 27:14~26
읽을말씀: 시105:17~22; 행27:24
주제말씀: 시105:19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 언제까지 이곳에 머물러야 하나요?
“그가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시105:17~19)
우리는 하나님께 종종 이런 질문을 하곤 합니다. ‘언제까지 제가 이곳에 머물러야 합니까? 어느 때까지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까?’ 각기 상황은 달라도 질문은 모두 비슷비슷할 것입니다.
요셉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역시 애굽에서 종살이 하는 내내 하나님께 그런 질문을 드렸을 것입니다. ‘하나님, 언제까지 제가 애굽에 있어야 합니까? 언제까지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해야 합니까? 어느 때까지 억울한 감옥살이를 해야 합니까?’
이에 대해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답변하셨구요?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입니다.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그의 발은 차꼬를 차고 그의 몸은 쇠사슬에 매였으니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시105:17~19) 오직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만’ 그리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그곳에 보낸 사명을 다 이루기까지 그곳에 계속 머물러야 한다는 말일 것입니다. 사명(使命) 중(中) 불동(不動) 말입니다. 즉 ‘사명 중에는’ 움직일 수 없으며, ‘사명 중에는’ 자리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어째서입니까? 하나님께서 이곳에서 하라고 하신 임무를 아직 다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요셉이 이 같은 점을 깨닫지 못한 채 보디발의 집에서 도망가거나,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에서 탈출하려고 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를 애굽의 총리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일련의 계획에 큰 차질이 빚어졌을 것입니다. 만일 요셉이 보디발에 집에 없었다면,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에 못 들어갔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감옥은 보디발의 집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두니 곧 요셉이 갇힌 곳이라.”(창40:3) 또한 그곳에 들어가지 못했다면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요,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왕에게도 천거를 받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명 중에는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는 보디발의 집이나 감옥에서 어떠한 자세로 살아가야 했습니까? ‘하나님이 일부러 옮기시기 전까지는’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라고 하신 임무들을 다 이루기까지’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여전히 계속 그 자리입니까? 몇 년째 계속 똑같은 자리에 머물고 있습니까? 너무 조급해하거나 서두르지 마십시오! 이는 하나님께서 이곳에서 이루라고 하신 일들이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옮기시기 전까지 맡은 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십시오!
* 심겨진 자리에서 꽃을 피우십시오!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석방함이여 뭇 백성의 통치자가 그를 자유롭게 하였도다 그를 그의 집의 주관자로 삼아 그의 모든 소유를 관리하게 하고 그의 뜻대로 모든 신하를 다스리며 그의 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게 하였도다.”(시105:20~22)
사명(使命) 중(中) 불동(不動), 곧 ‘사명 중에는’ 움직일 수 없음을 알았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어떤 자세로 여기에 서 있어야 합니까? ‘심겨진 자리에서 꽃을 피우겠다’는 자세입니다.
요셉의 경우를 보십시오.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을 때에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창39:2,3)
보디발의 가정총무가 되었을 때도,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창39:4,6)
옥중 사무를 맡았을 때에도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창39:22,23)
한 결 같은 자세로 임했습니다. 어떤 자세였습니까? 심겨진 자리에서 꽃을 피우리라, 곧 장소나 상황을 불문하고 맡은 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자세입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모든 일들을 탁월하게 해내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결국 그는 감옥에서 나와서도 더 큰 꽃을 피울 수 있었습니다. 즉 총리의 자리에 올라 애굽 전역을 통치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왕이 사람을 보내어 그를 석방함이여 뭇 백성의 통치자가 그를 자유롭게 하였도다 그를 그의 집의 주관자로 삼아 그의 모든 소유를 관리하게 하고 그의 뜻대로 모든 신하를 다스리며 그의 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게 하였도다.”(시105:20~22)
자신의 가족과 애굽 전역을 무시무시한 7년 대기근으로부터 건져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창45:7) /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과 아버지께 속한 모든 사람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하겠나이다 하더라고 전하소서.”(창45:11)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심겨진 자리에서 꽃을 피우고 있습니까? 장소 불문! 상황 불문! 지금 이 자리에서 꽃을 피우시기 바랍니다. 그러다가 우리를 다른 곳으로 옮기시면 그곳에서 또 꽃을 피우시기 바라고요.
* 사명 중에는 죽을 수 없습니다.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행27:24)
또한 사명(使命) 중(中) 불사(不死)입니다. 즉 ‘사명 중에는’ 마음대로 죽을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을 위시한 믿음의 선진들이 그리 확신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바울을 태운 배는 그레데 인근에서 광풍(狂風)을 만나 하염없이 망망대해(茫茫大海)로 떠밀려 나갔습니다. “...유라굴라 라는 광풍이 크게 일어나니 배가 밀려 바람을 맞추어 갈 수 없어 가는대로 두고 쫓겨 가다가.”(행27:14,15) 풍랑은 여러 날 동안 계속되었고 해나 별들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여러 날 동안 해도 별도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행27:20 상) 구원의 소망마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더라.”(행27:20 하)
이처럼 모든 사람이 절망하고 있을 때 오직 한 사람만큼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누구입니까? 바울입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도 어떻게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까? 사명(使命) 중(中) 불사(不死), 곧 ‘사명 중에는’ 죽을 수 없다는 사실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에게는 아직 어떤 사명이 남아 있었습니까? 로마의 가이사 앞에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명입니다. 일전에 주께서 말씀해주셨고,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내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행23:11)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자를 보내 재차 확인해주셨듯이 말입니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행27:23,24)
그러므로 그는 풍랑 중에라도 낙심하지 않을 수 있었으며, 폭풍 속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그는 누구를 위로했습니까? 배에 있던 모든 사람들입니다. 자신에게 주신 사명 때문이라도 모두가 반드시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그런즉 우리가 반드시 한 섬에 걸리리라 하더라.”(행27:25,26)
참고로, 아프리카 선교의 개척자 데이빗 리빙스턴(영국, 1813~1873)은 선교 탐험 중 사자에게 물려 큰 부상을 당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가 죽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당시 그는 다음과 같은 말했다고 합니다. “사명자는 그 사명을 이루기까지 죽지 않는다” 결국 그는 자신의 확신대로 죽지 않았고 살아서 주어진 사명을 다 마칠 때까지 아프리카 선교 탐험을 계속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명자는 그 사명을 이루기까지 절대로 죽을 수 없습니다. 어째서입니까? 사명자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그 운명을 같이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다 이루어지기까지 죽을 수도, 죽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사명(使命) 중(中) 불사(不死)임을 깨닫고 있습니까? ‘사명 중에는’ 결코 죽을 수도, 죽어서도 안 된다는 점을 알고 있느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