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6 주안 온가족새벽기도회 / 윤형진 목사(위클레시아교회)
말씀 : 에베소서 5:14-17
제목 : 깨어나라
(14절)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저는 위클레시아 교회를 섬기고 있고, 위러브에서 메신저로 사역하고 있는 윤형진 목사입니다.
주안장로교회 온 가족 새벽기도회라는 아주 귀한 자리에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함께 앞뒤 양 옆에 계신 분들과 함께 인사하도록 하겠습니다. "깨어납시다!"
우리 뒤에도 보시고 "깨어납시다!"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게 뭘까요?
우리 몸이 건강하려면 뭐가 제일 중요해요? - 잠자는 것, 맞습니다. '잠', '수면'
요즘 사람들이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또 정신적으로 많이 상처를 받는 가장 큰 이유가 잠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다이어트할 때도 운동보다 중요한 게 수면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권장 수면 시간인 8시간 9시간씩 자면,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으로 취급하지요.
실제로 1990년도에 '4시간 수면법'이라는 책이 소개된 적이 있는데 혹시 아시나요?
우리 어르신들, 아시나요? '4시간 수면법' - 엄청난 열풍이었는데,
'4시간만 자면 정신이 맑아진다. 하루가 깨어나다. 인생을 아낄 수 있다.' 뭐 이런 책의 내용이었어요.
그런데 90년대 그 책을 철석같이 믿고 따랐던 분들은 지금 어떻게 됐을까요? 결국 몸이 버티지 못하고 건강이 많이 무너졌습니다.
세월을 아끼는 것 같았지만, 사실 미래의 건강을 당겨서 쓴 거였어요.
우리 새벽 기도에 나오는 거 너무 귀한 일이죠. 그런데 네 시간도 못 자고 새벽 기도에 나오면 어떤 거예요? 좋은 건가요?
좋은 거죠. 우리 주님 빨리 만나러 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 육신은 충분한 휴식도 필요하고 잠도 많이 자야 됩니다.
그런데 우리의 영혼은 더 깨어 있어야 됩니다. 세상이 너무나도 혼란하고 어둡기 때문이죠.
사탄과 악의 무리가 우리를 끊임없이 넘어뜨리려 하고
또 조금만 삐끗해도 저 밑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떨어지는 그런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어요.
이런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육신은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 하지만 우리의 영혼은 그 어떤 때보다 맑게 깨어 있어야 됩니다.
여러분의 영혼은 지금 깨어 있습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영혼은 지금 잠들어 있습니까?
'영혼이 잠들었다' 이런 말을 하면, 우리는 신앙적으로 게으른 것을 먼저 떠올려요.
말씀을 묵상하지 않는 것, 기도 시간 구분하지 않는 것, 봉사에 참여하지 않는 것,
성실하게 살아가지 못하는 것, 그때 우리는 잠들어 있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잠들어 있다는 것은 게으름이나 열심의 부족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잠에 들면 모든 감각이 둔해집니다.
긴장감도 떨어지고 영적으로 잠들었다는 것도 이런 거랑 똑같습니다. 영적인 모든 감각들이 둔해지고 방향이 흐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디로 인도하시는지 보이지도 않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도 않고,
내면의 감각이 무뎌져서 영적인 자극이 들어오지 않는 상태,
이 세상을 하나님의 시선이 아니라 나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
이 상태를 우리가 영적으로 잠들어 있다라고 말합니다.
주님 안에서 쉬는 것, 주님 안에서 나의 영혼이 평안이 쉬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주님 없이 잠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주님 안에서 쉬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회복시키지만, 영적으로 잠들게 되었을 때 우리는 무너집니다.
빛이신 주님이 보이지 않고 그 틈에 삶의 어둠이 찾아오지요. 방황하고, 길을 잃고, 고난에 무너지고, 낙심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지금 한국 교회를 보면 많은 세대가 신앙의 자리를 떠나고 있어요. 전 세대의 인구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우리 함께 볼까요? 우리 10대 어디 있나요? 10대, '나 10대다' 손 들어 보세요..
10대 이하 초등학생부터~ 오!
자 그럼 우리 20대, 20대는 어디 있죠? 네~
그럼 50대 이상인 분들 손 들어 보세요~
이제 제일 핫한 우리 3~40대.. 야~ 주안장로교회 살아 있네요..
우리가 다들 그 세대마다 삶의 무게가 있습니다. 그렇지요..
그런데 모든 세대가 공통으로 마주하고 있는 위기는
사람들이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서 하나님을 찾는 감각이 무뎌지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보통 죄를 짓거나 내가 망가졌을 때, 영적인 잠에 빠져든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넘어졌을 때, 넘어져서 무너져서 실패를 경험해서 내가 잠든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아요. 우리가 잠들게 되는 것은 내 삶이 너무 잘 돌아갈 때입니다.
삶이 안정되고 계획도 잘 실천되고 성적도 잘 나오고 기도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을 때,
하나님이 나의 인생에 필요하지 않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영적인 잠에 빠져듭니다.
사탄이 우리를 잠들게 하는 방법을 바꿨어요.
예전에는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있지 못하게 하려고 핍박하고 억압하고 믿음을 지키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어떻게 됐죠? 그렇게 핍박하니까 힘들면 힘들수록 더 열심히 믿는 거예요.
숨어서 예배드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순교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사탄이 작전을 바꿨어요. 핍박 대신 편안함과 안락함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하나님이 없어도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걱정 근심이 없도록,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이 더 필요한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어요. 하나님을 바라볼 이유가 없도록 만든 거죠.
이 방법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먹히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어요.
누가 복음 12장을 보면, 한 부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부자가 농사를 지었는데 아주 풍년이 들어서 곡식을 보관할 곳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새로운 창고를 지어서 거기에 깊게 쌓았습니다.
이 부자가 뭔가를 잘못했나요? - 아닙니다.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을 했지요.
농사가 잘 됐고, 수확이 풍성했고, 계획을 세워서 잘 준비를 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정말 성실하고 지혜롭고 자기 인생을 철저하게 준비한 사람이지요.
그런데 누가복음 12장 19절 말씀을 보면 이 부자는 창고를 짓고 나서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고백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나의 삶에 필요한 분이 아니라는 굉장히 무서운 고백이에요.
추수를 많이 했고, 창고가 든든하게 채워졌으니
하나님이 없어도 내가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나의 미래도 내가 책임질 수 있다는 겁니다.
이 부자는 하나님께 묻지 않았어요. 하나님 앞에 서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없이도 삶이 잘 돌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이것이 영적으로 잠든 삶입니다.
이 사람의 영혼이 잠들게 된 것은 인생을 잘못 살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생을 너무 잘 살았기 때문에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을 믿고는 있지만 하나님이 없어도 잘 굴러가는 그 상태, 그때가 우리 영혼의 가장 위험한 상태입니다.
우리는 이 부자와 같은 삶을 살아갑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깨어있고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내가 무언가를 쌓아서 무언가를 채워서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내 미래를 책임질 수 있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엄청 치열하게 살아갑니다.
우리 10대 친구들은 좋은 대학에 가야 인생이 안전해질 것 같아서 불안 속에서 살고 있지요.
우리 2~30대는 좋은 직장에 들어가야 삶이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아서 애씁니다.
40대 50대는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그 무게감 때문에 재정과 미래를 끊임없이 계산하지요.
우리 60대 이상 분들은 '노후를 준비해야 된다. 노후를 안전하게 해야 된다'는 그 현실적인 부담을 계속해서 안고 살아갑니다.
모든 세대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자기의 창고를 채우고 있는 거예요.
우리의 삶을 이끄시고 인도하시고 책임지실 분은 우리 하나님이신데
다른 것이 나의 삶의 목적이 되고 목표가 되고 그것이 나의 인생을 책임져줄 것이라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그 삶 속에서 가장 큰 목적이 돈이 되는 것입니다. 다 돈으로 귀결됩니다.
돈을 싫어하시는 분은 아마 없을 것입니다. 그럼 돈은 선한 건가요? 그럼 악한 건가요?
그런데 돈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어 있습니다.
요즘 초.중.고 학생들이 직업 선택하는 조건의 압도적인 1위가 돈 많이 버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 뭐냐라고 물었을 때, 건물주가 그 직업 순위 1위입니다.
혹시 자기 꿈이 건물주인 친구 있어요? '나 건물주 되고 싶습니다.' 없어요? 손들기 부끄러운가요...
그런데 왜 건물주가 돼야 되는지 모릅니다. 막연하게 그렇게 생각하지요.
돈이 있으면 내 인생을 책임져줄 것이라는 그 막연한 생각 때문에 자기의 꿈이 건물주인 거예요.
사실 우리가 돈을 붙잡는 이유는 무언가를 더 누리고 싶은 그런 욕심 때문이 아닙니다. 내가 돈이 없어서 무너질까 봐 걱정돼서 그럽니다.
돈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내 가족의 삶을 책임져야 된다는 그 두려움 때문에 우리가 돈을 더 붙잡게 됩니다.
제가 처음에 결혼했을 때는 돈에 대한 걱정이 없이 살았어요.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때는 아내가 돈을 벌기도 했고 저희 부부가 물욕이 굉장히 없습니다. 그래서 걱정이 없이 살았습니다.
제가 교회에서 한 150만원 정도 사례비를 받았을 때인데, 그 돈을 심방하고 청년들 먹이는데 다 사용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생기니까 이게 상황이 완전히 바뀌더라고요.
우리야 그냥 어떻게든 먹고 살면 되는데, 아이는 어떻게 해야 되나? 이 고민이 들기 시작하는 겁니다.
앞으로 대학도 보내야 되고, 시집도 보내야 되고, 남들보다 뒤처지게 키우면 안 되는데
코도 저 닮아 가지고 뭉툭하고 콧구멍도 커요. 그럼 나중에 AS도 해 줘야 되는데 이거 어떡하나? 이런 두려움이 저에게 생기는 거예요.
그리고 그때 딱 든 생각이, [아, 하나님께 모든 걸 맡기고 기도해야겠다]가 아니었습니다.
'돈을 모아야 된다. 돈을 아껴야 된다' 이 생각이 저한테 먼저 왔어요.
제가 하나님을 믿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순간에는 하나님보다 돈이 훨씬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여러분들도 돈을 좋아할 순 있어도 돈 자체를 사랑하지는 않을 거예요.
돈 자체를 사랑하는 분 있나요? 돈을 보면 막 기분 좋고 냄새 맡고 이런 분 있어요?
막 몸에 바르고 다니고 이런 분 있어요? 없지요..
그런데 돈이 나에게 기쁨과 안정과 평안과 보장된 미래를 줄 것이라는 그것을 기대하고 있는 거예요.
'이 정도만 모으면 괜찮아. 한 달에 이 정도 수입이면 괜찮아'
'이것들이 나의 생명과 인생을 책임져줄 거야' 이 믿음이 하나님을 우리 안에서 밀어냅니다.
우리가 내려야 될 것은 돈 자체가 아닙니다. 돈은 필요하지요. 우리가 버려야 할 것은 하나님이 없이도 괜찮다는 그 마음입니다.
우리는 교회도 나오고, 예배도 드리고, 하나님을 부정하지도 않아요.
그런데 '기도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 예배가 없어도 인생은 굴러가더라'
'하나님을 찾지 않아도 결과는 나오더라'라는 생각이 깊게 박히게 될 때, 우리 영혼은 깊은 잠에 빠지고 우리 영혼은 말라버리게 됩니다.
우리의 삶이 깨어난다는 것은 다 내려놓고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시험에서 1등 할 수 있어요. 대학 합격할 수 있어요. 중요한 시험 통과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여러분들을 지켜주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영혼을 붙들어 주지도 않아요.
여러분의 미래를 책임지지도 않습니다. 우리를 책임지시는 분은 [오직 우리 아버지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삶의 깨어남은 내 인생의 주인이 누구인지, 나의 삶을 책임지시는 분이 누구인지를 똑바로 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을 똑바로 바라볼 때, 우리의 영혼이 깨어나기 시작합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15절을 통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라"
깨어난 사람은 아무렇게나 살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붙들고 있는지, 내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하나님 앞에서 주의하고 살피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어서 말합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이 말은 단순히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 흘러가던 나의 삶을 주님 앞에 다시 가져오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일단 성공하고 나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지. 합격하면 본격적으로 믿기 시작해야지.
이것만 해결되면 더 열심히 믿어야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깨어있는 삶은, [지금 오늘 내 하루], [지금 당장 그 한가운데서]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모든 상황 속에서 "주님 내가 어떻게 합니까? 주님의 뜻은 무엇입니까?"라는 것을 물으며 하루의 중심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삶입니다.
그리고 영혼이 깨어난 사람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른 시선으로 살아갑니다.
시편 90편 14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우리를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 아멘!
세상에서의 만족감은 항상 조건부 학습입니다. 우리 영어 좀 하시는 분 - "If then"이죠?
"만약에 네가 이걸 하면 이렇게 될 거야"라는 것을 우리한테 계속 교육시킵니다.
'시험에 1등하고 대학에 가면 너는 만족할 거야.' '네가 성공해서 집을 사고 차를 사면 네가 만족할 거야'
'네 자녀가 잘 크면 네가 만족할 거야', '노후가 보장되면 만족할 거야' 이렇게 우리를 계속해서 교육시킵니다.
우리는 그 만족의 자격을 갖추기 위해 이 세상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세상의 만족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언제나 그 기쁨이 결과에만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걸 했을 때 그 뒤에 오는 잠깐의 만족에 우리가 취하게 된다는 겁니다.
세상의 만족은 하루를 마치고 저녁에 정산을 받듯이, 시험을 보고 성적표를 받듯이,
그 결과로 따라오는 보상입니다. 이 구조에서는 우리가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취와 만족의 기쁨은 아주 잠깐입니다. 그 잠깐의 기쁨이 끝나면 곧바로 결핍이 옵니다.
결과에만 모든 시선이 쏠려 있기 때문에 그 결핍을 우리가 이겨낼 수가 없어요.
여러분, 교회에서 열심히 찬양제 준비하고 선교 준비해서 다녀오시고 나면 나중에 오래 기억남는 게 뭔가요?
갔다 온 결과가 기억에 남나요? - 아닙니다..
함께 준비하고 울고 웃으면서 기도했던 그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들어 가셨던 그 과정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런데 영혼이 잠들어 있으면 과정은 보지 못하고 결과만 바라보게 되는 거예요.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세상의 만족은 하루의 일을 다 끝낸 저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만족은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에서 온다는 겁니다.
내가 오늘 무엇을 하기 전에, 어떤 성과를 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나를 채우셨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만족입니다.
만족은 내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내가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힘입니다.
그래서 잠든 사람은 나의 상황, 나의 조건, 나의 환경, 나의 결과가 나를 만족시켜주길 바래요.
하지만 깨어있는 사람은, 나를 변치 않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만족합니다.
내가 오늘 이 일을 해야 만족스러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미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만족한 사람이기에 오늘을 살아간다" 이것이 삶이 깨어난 자, 영혼이 깨어난 자의 하루입니다.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 있다면, 이제는 우리가 깨어나야 됩니다. 우리의 영혼은 우리의 결단과 노력으로 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깨어남은 우리의 열심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먼저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잠들어 있는 우리를 깨우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없이 괜찮다고 말하며 살아갈 때, 십자가에서 우리의 어둠을 대신 지셨고,
부활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새 아침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영혼의 깊은 잠을 깨우기 위해서 스스로를 몰아붙입니다.
'하루에 기도는 몇 분 이상 해야지, 잠은 못 자더라도 새벽기도는 가야지, 매일 말씀 묵상해야지,
교회에서 더 열심히 봉사해야지'라고 계획을 합니다. 이것도 너무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영혼이 깨어나는 것은 나의 결단과 노력이 아니라 오늘 말씀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비추심에서 시작됩니다.
아무리 무기력하고 피곤하고 일어나기 싫어도 주님의 빛이 나를 비추실 때, 우리의 영혼은 자연스럽게 깨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결혼하고 10년 가까이 살았던 집에는 햇빛이 들지 않았어요.
남향이 아니었던 적은 없는데 항상 빌라들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어서 햇빛이 들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 이번에 이사 간 집에는 햇빛이 너무 잘 들어요. 잠에서 깨기 싫어도 깰 수밖에 없을 만큼 햇빛이 많이 듭니다.
그래서 전날 잠을 못 자거나, 너무 피곤할 때는 많이 자고 싶잖아요. 그런데 그 햇빛이 너무 세게 비쳐서 너무 괴로웠어요.
그래서 사람들한테 물어보니까 암막 블라인드를 달라고 해서 암막 블라인드를 달았어요.
이제는 잘 수 있으려니라고 생각했는데, 그 창문과 암막 블라인드 사이에 딱 요만큼 틈이 있거든요.
요만큼 틈으로 햇빛이 들어와요. 그리고 정확하게 제 얼굴을 비춰요. 그래서 너무 괴롭잖아요.
그래서 베개로 얼굴을 가려 보기도 하고, 막 몸을 굴려서 벽으로 붙어서 자 보기도 했는데,
정말 거짓말같이 고 틈으로 빛이 제 얼굴을 비춥니다. 그래서 알람 없이도 일어날 수가 있어요.
우리 안에 있는 작은 그 틈, 우리 인생에 있는 그 작은 틈으로 그리스도의 빛이 들어옵니다.
침대에 누워 있을 때 일어나고 싶지 않은 것처럼 우리의 영혼도 죄와 어둠의 무게에 눌려서 일어나기 싫어하지요.
사탄은 우리의 영혼이 깨어나는 것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우리의 눈을 가리려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빛은 우리 안에 작은 틈을 통해 들어옵니다. 그리고 그 빛이 우리를 비출 때, 우리의 영혼은 깨어납니다.
내가 원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비추심이 우리의 영혼을 깨우십니다.
여러분, 잠들어 있던 우리의 영혼 깨워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굉장히 영적으로 미지근해요. 차지도 뜨겁지도 않습니다.
대놓고 죄를 짓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하나님께 딱 달라붙어서 살고 있지도 않아요.
예배를 드리고는 있는데, 다시 오실 주님의 임재를 기다리진 않습니다. 기도는 하지만 하나님을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많은 사람들이 적당히 눈치껏 애매하게 신앙 생활을 합니다. 하나님과 눈치 게임 하듯, 줄다리기 하듯, 혼나지 않을 정도만 하고 있어요.
교회 안에서는 신앙인으로 살고 있지요. 하지만 저 교회 문 밖을 나가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기도 합니다.
치면 밀리고, 때리면 넘어지고, 똑같이 분노하고, 똑같이 정죄하고, 똑같이 미워하기를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영적으로 우리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이지요.
우리 10대, 20대 친구들한테 한번 묻고 싶어요. 여러분은 다 모태신앙이죠?. 그런데 왜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지 않습니까?
왜 예배를 하는 데서 멈추고, 착한 학생으로 사는 수준에서 멈춥니까?
공부는 더 잘하려고 애쓰고, 게임은 항상 일등하고 싶고, 아이돌은 더 그렇게 깊이 파고드는데, 왜 하나님을 더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까?
'지금은 이 정도면 충분해. 나중에 졸업하고 더 열심히 믿어야지. 나 취업하고 더 열심히 믿어야지'라는 생각이 우리의 영혼을 잠들게 합니다.
우리 3~40대 여러분, 너무 바쁘시죠? 회사 가랴, 애 키우랴, 부모님 모시랴, 너무 바쁜 것 잘 알고 있습니다.
기도가 사라진 자리에 일정이 들어차고, 예배의 자리가 가족 행사와 약속들로 채워집니다.
'이 시기만 넘기면, 애들만 조금만 더 크면 다시 열심히 하지' 그 생각이 우리의 영혼을 서서히 잠재웁니다.
우리 50대 이상 어른분들, 하나님이 너무 간절해서 눈물로 기도하던 신앙이 어디로 갔습니까?
뜨겁게 하나님을 부르짖던 그 믿음은 어디 갔습니까? 하나님만으로 만족하고 배불렀던 그 마음은 어디로 갔습니까?
신앙의 연륜이 쌓였지만 어느 순간 주님께 더 나아가려는 열정과 갈망이 식어버리진 않았습니까?
'나는 평생 교회를 섬겼으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지'라는 그 익숙함이 주님을 향한 간절함을 덮어버릴 때, 우리의 영혼은 잠들게 됩니다.
우리의 영혼은 스스로 깨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빛이 우리를 비추실 때 우리는 깨어납니다.
하나님을 만날 때 삶의 방향이 바뀌고 기준이 바뀌고 만족이 바뀌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 모여 '우리 깨어나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아보자' 그 마음으로 모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 힘으로 억지로 눈뜨게 해서 모인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깨우시는 주님 앞에 다시 똑바로 서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깨어난 자로 산다는 것이 때로 두려울 수 있어요. 하나님과 가까워지며 세상에서 뒤처질까 봐 낙오될까 봐 두려운 마음 생깁니다.
세상의 속도와 다른 속도로 사는 것 같고, 남들이 붙드는 것 내려놔야 될 것 같고,
내가 손해 보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움에 주를 위하여 산다는 것을 결단하기 힘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빛 안에서 깨어난 길을 살다 보면 이곳에 진정한 만족과 기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깨어난 자로 산다는 것은 구질구질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힘들고 어렵고 버티며 사는 것도 아닙니다.
잠들어 있을 때 보지 못했던 것을 새롭게 보는 삶입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만족을 얻고 흔들리는 상황 속에서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맛보는 삶입니다.
가장 복된 삶이고 행복과 평안과 진정한 자유가 있는 삶입니다. 오늘 우리가 구해야 될 것은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가 아닙니다.
"주님, 저를 비춰 주십시오. 잠들어 있는 제 영혼을 깨워 주십시오.
제가 붙들고 있던 헛된 만족에서 깨어나 주님 안에 있는 참된 기쁨을 맛보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간절히 붙들고 기도할 때, 주님을 만나 달라고 간절히 부르짖을 때, 주님께서 우리를 비추실 것입니다.
그 빛이 우리의 무뎌진 마음을 깨우고 잠들어 있던 우리의 영혼을 다시 일으키실 것입니다.
더 이상 잠들어 있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빛으로 깨어난 자로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 이 시간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함께 기도할 때, 두 가지 가지고 기도할 건데요.
가장 먼저 기도하기 원하는 것은, 우리 회개하며 기도합시다.
"하나님, 저희가 주님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영혼이 잠들어 있던 자로 살았습니다."
"하나님, 주님의 빛을 구하기보다는 세상의 다른 것을 구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만족감으로 안위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 주님을 따르기보다는 나의 교만함이 먼저 앞섰고, 세상의 것들이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헛된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 이 시간 간절히 고백하오니 저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라고
우리 주님의 이름 부르신 후에 함께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