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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6-19 금요성령집회 / 내 낡은 서랍 속 MP3(호세아 8:8-14)

작성자forever|작성시간26.06.21|조회수45 목록 댓글 0

2026-06-19 금요성령집회 / 김장훈 목사

 

말씀 : 호세아 8:8-14

제목 : 내 낡은 서랍 속 MP3

 

(14절)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이를 잊어버리고 왕궁들을 세웠으며

유다는 견고한 성읍을 많이 쌓았으나 내가 그 성읍들에 불을 보내어 그 성들을 삼키게 하리라"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 밤, 기도하는 은혜의 자리에 불러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이 밤 기도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붙잡을 때

우리의 마음과 인생의 여러 혈루의 근원이 마르고 회복되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께 귀한 예물 올려드립니다. 달아드리는 모든 기도의 제목 가운데 함께하여 주시고

오늘 이 밤 응답받는 은혜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모든 것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옵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제가 오늘 오후에 막 쏟아지는 폭우를 보면서 우리 퇴근하는 길이 참 나쁘시겠다,

금요성령집회에 오는 게 쉽지 않으시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와서 기도하겠다고 결단하시고 말씀 듣고 가시겠다고 결단한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고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예전에 제가 이사를 앞두고 낡은 서랍장을 한번 정리했던 적이 있었어요.

그 서랍장을 이렇게 열었더니 안에 여러 물건이 들었습니다. 제가 영업하던 시절의 제 명함과 명함 지갑도 거기 들어 있었고요.

어떤 사람이 저한테 써 줬던 손편지도 몇 장 들어 있고, 그리고 언제 만들었는지도 모를 통장도 몇 가지 그 서랍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물건들이 그 서랍 안에 들어 있어서 이제 얼른 이사하기 위해서 빨리 짐 정리를 해야 되는데 하나하나 보다 보니까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그 서랍 안에 있는 물건들을 살펴봤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유독 그 서랍 안에 제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하나 있었는데 MP3라는 것이었습니다.

어제 설교 제목에도 MP3라는 단어가 나오는데요. 이 MP3가 아주 오랫동안 그 서랍 안에서 박혀 있었을 걸 생각하니까

한편으로는 안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 MP3가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어떤 마음으로 아주 오랜 시간 이 서랍 안에 들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 MP3가 정말로 소중한 물건이었는데, 제가 대학생 시절에 그걸 사려고 아주 오랫동안 돈을 모았습니다.

여러분이 이 MP3라는 단어를 혹시 모르는 분들이 계실까 봐 설명해 드리자면

이 MP3가 카세트 테이프를 넣어서 누르면 노래 나오는 옛날 카세트 플레이어 같은 것처럼

파일을 넣으면 그 파일을 따라서 노래가 계속 나오는 MP3가 2000년대 초반에 아주 유행했었는데

제가 가지고 있던 그 MP3가 사진이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어서 인터넷을 뒤졌더니 그 사진이 있었어요.

사진을 보시면 좋겠어요. 이런 물건입니다.

이 안에 파일을 넣어 놓으면 노래를 수백 곡 들을 수 있다고 그래서 이게 'H120'이라는 모델이었는데,

이 당시에 '20기가'라는 용량이 아주 큰 용량이라 노래가 수백 곡 들어간다고 홍보하고 선전하던 물건이었습니다.

제가 이걸 사려고 몇 달간 돈을 모았어요. 이것이 그 당시에 중고 시장에서 한 20만원 언저리쯤 했었는데

제가 장신대 다니던 시절에 주일은 교회 가야 되니까 토요일이 되면 출장 부페 아르바이트를 했었습니다.

출장 부페 아르바이트에 가서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운전까지 하면 하루 일당으로 6만원을 받았습니다.

토요일에 그 6만원을 받아서 주일에 가서 6000원은 십일조 하고, 5000원은 감사 헌금하고,

5만원이 채 되지 않는 돈으로 일주일 동안 밥도 먹고 책도 사고 교통비도 하고 여러 가지 돈을 썼어요.

그러니까 5만원으로 빠듯하게 한 주를 살아야 되는데 저한테 20만원쯤 되는 돈으로 뭘 산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이걸 정말 제가 갖고 싶어서 몇 달 동안 돈을 모았습니다. 그때 한 서너 달 동안 돈을 모았던 것 같아요.

밥도 굶었고, 그리고 누가 조금씩 주시는 돈이 있으면 많지는 않았지만

그걸 다 모으기도 해서 돈을 차곡차곡 몇 달쯤 모으면서 뭘 했냐면 중고 장터에 계속 들어가 보는 거예요.

하루에 한 번씩 물건이 나왔나 안 나왔나 싼 물건이 있나 없나, 그걸 매일 하루에 한 번씩 들어가서 그 중고 장터를 확인하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날 보니까, 그 MP3가 22만원짜리가 중고 장터에 탁 나온 거예요.

그런데 제가 보니까 제 수중에는 돈이 19만원이 있습니다. 얼마가 부족한가요? - 3만원이 부족하죠.

그 3만원을 같은 기숙사에 사는 친구한테 빌려다가 22만원을 들고 그 물건을 사러 갔습니다.

엄청 오래된 일인데 그때 가서 그 물건을 봤던 그 장면이 그 장소가 아직까지도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그 MP3를 받아 와서 매일 품에 품고 있었어요. 진짜 매일매일 품에 품고 들고 다녔습니다.

가방에 넣고 이어폰을 빼서 이렇게 노래를 들을 거 아니에요. 그러면 누가 가방 열고 꺼내갈까 봐 이걸 매일 안주머니에 넣고 다녔어요.

진짜 안주머니에 넣고 다녔어요. 그런데 여름에는 안주머니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손에 땀이 찰 정도로 손에 들고 다녔습니다.

다른 MP3는 얇고 조그맣게 나오는 게 그 당시에 유행이었는데, 이것은 무식하게 엄청 큰 MP3인 거예요.

그래서 제 친구들이 이걸 벽돌이라고 불렀거든요. 그런데 저는 하나도 무겁지 않았습니다. 진짜 하나도 무겁지 않았어요.

도리어 그것을 손에 들고 사람들에게 슬쩍슬쩍 보이면서 가는 게 뿌듯하고 자랑스러웠어요.

'아, 나 이거 가지고 있어' 이런 마음이 도리어 제 마음속에 충만했던 것이지요.

그렇게 정말로 아끼고 사랑하던 그 아이가 언제부턴가 조금씩 조금씩 무거워지기 시작했어요.

그게 살이 찐 건 아닐텐데, 그게 언제부턴가 조금씩 무거워지기 시작합니다.

친구 만나러 갈 때 항상 들고 나갔던 것을 열 번 중에 세 네 번은 책상 위를 지키기 시작했어요.

2박 3일씩 떨어져 있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고향이 부산이었는데, 부산에 갈 때 무조건 기필코 반드시 그것부터 챙겨 내려갔는데,

언제부턴가 그 MP3는 혼자서 서울에 남아 책상을 지키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손에 들고 다녀도 하나도 무겁지 않고 정말로 사랑했었던 이 MP3가

제 마음속에서 조금씩 조금씩 무거워져 가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언제부턴가 조금씩 무거워지던 그 MP3를 대학교 졸업할 무렵쯤 되니까 완전히 잊어버렸습니다.

어느새 제 손에는 DMB라고 지상파 방송도 볼 수 있고, 음악도 들을 수 있고, 영화도 볼 수 있는 신문물이 제 손에 들려 있었고,

학교를 졸업하고 나니까 그 MP3가 어디로 가 버렸는지 이제 완전히 잊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자의가 아닌 타의로 '히키코모리'가 된 그 MP3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 낡은 서랍장 안에 들어가 있었던 겁니다.

제가 그걸 발견했을 때, 옆의 전원선을 꽂아서 전원을 아무리 켜 보려 해도 그 기기 전원이 켜지지 않았습니다.

기스도 많이 났고, 세월의 흔적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낡은 서랍을 열어서 그걸 보자마자

그것이 얼마나 오랜 시간 이 안에서 혼자 서럽고 외롭고 힘들었을까 이런 생각이 드니까

서랍을 열고 그 MP3를 딱 보는데 짠한 마음이 들었던 겁니다.

 

여러분, 제가 한번 여쭤볼게요. 여러분의 서랍에는 뭐가 들어 있습니까?

여러분은 회사에서 일하는 책상 서랍에, 혹은 집에 있는 어떤 서랍에 뭐가 들어 있나요?

여러분에게도 저와 같은 이 MP3 같은 것이 한 두 개씩은 분명히 있으실 거라 생각됩니다.

사람은 좋아할 때는 필요할 때는 절대 잊어버리지 않고 그것을 쥐고 살지만,

점점 자기 마음속에서 그것들이 정리되고 나면, 필요 없는 물건이 되고 나면, 마음속에서도 잊혀져 가고 삶에서도 잊혀져 갑니다.

그래서 마음이라는 서랍장에, 생각이라는 서랍장에 다른 모든 게 들어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핸드폰을 한번 잊어버렸던 적이 있었는데, '어, 핸드폰 어디갔지? 핸드폰, 핸드폰' 하면서 바로 핸드폰 찾으러 뛰어나갔어요.

여러분, 제가 '핸드폰 없네' 하고 나서 바로 첫 번째 하는 행동이 바로 핸드폰 찾으러 가는 거예요.

필요하니까 기억하는 거죠. 가치가 있으니까 기억하는 겁니다.

그런데 가치가 없으면, 필요하지 않으면 점점 점점 잊혀져가기 마련입니다.

사실 우리 주변에는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지만 우리에게서 잊혀져가는 것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지금도 지구 곳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는 일상을 살면서 그걸 잊고 삽니다.

주유소에 가서나 '전쟁 중이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되고, 높은 물가 볼 때나 '그렇구나. 요즘 전쟁 중이었지'라는 걸 다시 기억하게 되고,

뉴스나 봐야 지구 곳곳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구나 하고 다시 떠올리게 되는 것이지,

내 삶에, 내 피부에 직접 느껴지지 않으면 점점 잊혀져가는 것이 우리의 모든 삶이자 우리의 마음일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설교를 준비하면서 찾아 봤습니다.

작년에 경북 산불 때문에 거기 수많은 분들이 참 어려운 피해를 입으셨잖아요.

우리 교회도 다 마음을 모아서 그곳에 마음을 잘 전달했는데, 일 년 지난 지금 이제 복구가 시작단계라고 합니다.

경북도지사가 아직까지 정말로 해야 할 일들이 많이 남았답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피해가 가득 삶을 에워싸고 있는데

우리는 그게 언제 있었던 일인지도 모른 채로 잊어버리고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세상을 살면서 무언가 잊혀져가는 것은 사실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가치가 있고 중요한 물건이라면 모든 일들을 제쳐두고 찾아내겠지만, 필요 없는 물건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다들 잘 삽니다.

 

그런데 오늘 여러분들과 제가 함께 읽었던 이 성경 말씀 속에도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어딘가에 넣어 놓고 잊어버린 사람들이 오늘 본문에 등장합니다.

(호세아 8:14)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이를 잊어버리고"

*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이를 잊어버렸답니다. 잊어버렸대요.

여러분, 여기서 이 '잊어버렸다'는 단어가 아주 아주 의미심장한 단어입니다. 이 '잊어버렸다'는 단어가 어디다 두었는지 모른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없어져 버리거나 사라져버린 게 아니라 어딘가에 있는데 찾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뜻이에요.

하나님은 없어지거나 사라지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계셨어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낡은 서랍 속에 먼지가 켜켜이 쌓인 물건처럼

마음속 서랍장 안에 하나님을 넣어놓고는 어디 있는지조차 잊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디 계신지조차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찾을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먹고 사는데 별 쓸모가 없으니까, 잘 먹고 잘 사는 일에 큰 지장이 없으니까, 말 그대로 찾을 필요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마음의 서랍장 안에 하나님을 깊이 넣어 두고는 하나님을 잊어버렸대요.

 

그런데 하나님만 잊어버린 게 아닙니다. 여러분 본문 12절 말씀도 다시 한번 볼까요..

(호세아 8:12) "내가 그를 위하여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하였으나 그들은 이상한 것으로 여기도다"

보세요. 내가 내 율법을 만 가지로 기록했대요.

그런데 그들은 그걸 어떻게 여긴답니까? 여러분 그들은 그것을 이상한 것으로 여겼답니다.

하나님이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는데, [만 가지]라는 것은 많이 주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 하나님 명령, 하나님의 율법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많이 주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이상하게 여겼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한 후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율법)을 주셨습니다.

두 돌판에 율법을 기록해서(새겨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셨어요.

처음에는 하나님께 받은 그 율법, 하나님께 받은 그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온통 모여서 광야 생활할 때 그들의 진 한 가운데 성막이 있고, 그 성막의 가장 중요한 곳에 지성소,

그 지성소 한 가운데에 하나님의 법궤가 있고, 그 법궤 안에 하나님의 말씀(율법)이 들어 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동하면 이동의 가장 중심에 법궤가 섰고,

그들이 멈추면 그들 진영의 한 가운데, 하나님의 율법이 새겨진 그 두 돌판이 든 법궤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걸 아주 중요하게 여겼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걸 점점 이상하게 여겼대요.

이들은 처음에 율법을 하나님과 동일시 했어요.

전쟁에서 한참 싸우다가 질 것 같으면 '야, 법궤 들고 나가' 이랬어요. 법궤를 들고 나가면 하나님이 가시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과 법궤가 동일하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씩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속에서 율법이, 말씀이 이상한 것이 되어 갑니다.

아까 점점 무거워졌던 저의 MP3처럼, 두 돌판이 든 법궤를 멘 제사장들이 처음에는 하나도 그 법궤가 무겁지 않았을지 몰라도

나중에는 그 제사장들조차 그 말씀을 무겁게 여겼을지 모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할 규칙이나 귀찮은 명령처럼 여기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잘 먹고 잘 사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의 율법(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필요 없는 것이 돼 버렸어요.

그래서 서랍 저 깊은 곳에 쳐박아 버린 거예요. 그리고 찾을 생각도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제가 여러분에게 진지하게 한번 질문해 보겠습니다. 스스로에게 한번 답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을 마음속 어딘가에 두고 어디에 두었는지 모른 채로 살 때가 있지 않으세요?

참 소중했던 그 말씀이 하나님의 율법이 이상한 것으로 여겨지는 때가 여러분에게는 있지 않으십니까?

십자가가, 복음이, 내가 교회 다니는 일이, 내가 하나님을 믿는 이 일이

정말로 자랑스럽고 정말로 거리낌없이 사람들에게 전파할 수 있는 무언가라고 여겨지십니까?

여러분은 율법을, 말씀을, 신앙을 이상한 것으로 여기고 살고 있지 않으십니까?

 

요즘 세상은 교회가, 복음이 이상한 것이 돼버린 것처럼 느껴집니다.

유행 지난 옷들이 옷장에 쌓이고, 시대를 지나 낡아버린 촌스러운 물건들이 서랍 속에서 잊혀져 가듯이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의 십자가가, 복음이, 이상한 것이 되어서 사람들의 마음 저 깊은 곳에, 세상 사람들 저 깊은 서랍장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복음이, 십자가가, 교회가 이미 처박혀 버려 있는지도 모릅니다.

 

요즘 교회 다닌다는 것은 그렇게 세련된 일이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신앙을 가지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 시대 사람들이 원하는 매력적이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일이 아닌 것처럼 여겨집니다.

한국 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하고 성장하던 그 시대에는 교회 다니는 것이 사람들에게 좀 있어 보이고,

세련되고 멋지게 보일 때가 있었는지 모르지만 요즘에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요.

몇 년 전에 Netflix에서 '나는 신이다'라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나는 신이다' - JMS를 비롯한 수많은 이단 교주들의 만행이 그 다큐멘터리에 나왔어요. 저도 그걸 보다가, 차마 다 못 보고 꺼버렸습니다.

당시에 '더 글로리'니, 뭐 '일타 강사'니, 엄청 유명한 드라마들을 다 제치고

'나는 신이다'라는 이단 교주들의 만행을 담은 그 다큐멘터리가 한참 동안 Netflix 시청 순위 1위에 있었어요.

그만큼 사람들한테 이슈가 많이 되었다는 뜻이겠지요.

그 다큐멘터리를 다룬 기사 밑에 댓글이 하나가 있었는데 제가 그 댓글을 아직까지도 기억합니다.

거기 어떤 사람이 뭐라고 썼느냐면,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곳'

여러분, 그게 어딜까요? -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서 이상한 행동을 하는 곳..' 누군가가 그 기사 밑에 교회를 그렇게 댓글을 썼습니다.

제가 그걸 보고 나니까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 말이 정말로 충격적이었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이 시대를 사는 세상 사람들에게 교회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지 모릅니다.

교회는 세상 사람들에게 필요 없는 것이 되어버려서 낡은 서랍 속에 처박혀서 잊혀져가는 철 지난 물건이 돼 버렸는지도 모르고,

그래서 사람들이 점점 교회를 떠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왜 그럴까? 설교를 준비하며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먼저, 말씀을 준비하는 내가 말씀을 이상한 것으로 여기고 있지 않았나, 말씀을 전하는 내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지 않았나,

목사인 내가 교회 와서는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처럼 살다가

삶의 자리에서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말씀을 이상한 것으로 여기고 사니까 세상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겠구나.

'어쩌면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 이상한 행동을 하는 곳이라고 여기는 것은 내 탓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말씀을 이상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자기반성이 되었습니다.

본문에서 읽은 것처럼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말씀을 필요 없는 것, 이상한 것으로 여기니까

결국에는 하나님도 똑같이 이스라엘을 서랍장에 넣어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8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호 8:8) "이스라엘은 이미 삼켜졌은즉 이제 여러 나라 가운데에 있는 것이 즐겨 쓰지 아니하는 그릇 같도다"

여러분, 이 말씀을 잘 보세요..

"이스라엘이 여러 나라 가운데에 있는 것이 즐겨 쓰지 아니하는 그릇 같다"고 말씀했어요.

[즐겨 쓰지 않는 그릇 같다.] 여러분, 이 한 구절에서 오늘 모든 설교가 시작됐어요.

[즐겨 쓰지 아니하는 그릇 같다.] 이 한 문장에서 오늘 모든 설교가 시작됐습니다.

여러분도 보통 집에 그릇이 들어 있는 싱크대 위아래 그리고 찬장 같은 선반들이 있으시죠..

그 서랍장을 열어보면, 몇 년 동안 한 번도 쓰지 않은 그릇들이 분명히 많이 있습니다.

어떤 그릇은 저 깊숙이 들어 있어서 거기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는 그릇과 컵들도 있어요.

그런 컵과 그릇들은 아마 평생 동안 빛을 보지 못하고 거기에만 있다가 폐기돼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렇게 보시겠다는 거예요. 하나님도 이스라엘을 서랍장 속에 넣어 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진짜 무서운 것은 내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게 아닙니다.

진짜 무서운 것은 내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잊어버리시는 거예요. 그게 훨씬 더 심각한 일입니다.

하나님의 서랍 안에 어딘가에 들어가 있지만 오래되어서 쓰지 않는 그릇이 되고 잊혀져 가는 것이 진짜 무서운 심판입니다.

나중에 집에 가셔서 이 본문을 다시 한번 읽어 보시면 좋겠는데,

호세아 8장 9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홀로 떨어진 들나귀처럼 앗수르로 갔고"

[홀로 떨어진 들나귀처럼 앗수르로 가 버렸다.]

하나님의 울타리 안에 들어 있지 못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린 채로 홀로 세상에 나가 살면,

10절 말씀처럼 "그들은 지도자의 임금이 지워 준 짐으로 말미암아 쇠하기 시작하리라"

'세상 왕들이 지워 준 짐 때문에 쇠하고 소진되어 버릴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경고하고 무섭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진짜 무서운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잊어버리시는 겁니다.

 

그런데 여러분, '서랍에 넣어 즐겨 쓰지 않는 그릇처럼 그들을 내버려 두고 잊어버리시겠다'고 하신 이 말씀은 하나님의 진심이 아닙니다.

어디 처박아뒀는지 모를 가치 없는 물건처럼 이스라엘을 대하시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진심이 아닙니다.

그들을 끝내 서랍장에 넣어 놓으셨다가 다시 꺼내서 품에 안고

그들을 다시 살리고, 다시 치유하고 회복시키려고 하셨던 하나님께서 호세아 11장 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호세아 11: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하나님을 서랍 속에 쳐박아두고

하나님의 말씀은 교회 나가면서 라커에 맡겨놨다가 주일에 나올 때 먼지나 대충 털어 들고 나오고 있는 것처럼 살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를 다시 찾으시려고 절규하고 자기 아들을 보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 아들 목숨값을 들여서라도 우리를 다시 찾으시겠다고

[내가 너를 어떻게 놓겠느냐? 내가 너를 어떻게 버리겠느냐?] 하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평상시에 십자가가 하나도 필요 없는 사람처럼 살다가 소원 빌 때만 요슬램프 찾듯 십자가를 찾았지만,

하나님은 그런 우리가 없으면 안 된다고 우리에게 매달리시고 십자가에도 매어달리셨습니다.

쓰지 않는 그릇처럼 어딘가에 넣어버리겠다고 잊어버리겠다고 말씀은 하셨지만,

다시 마음을 돌이켜서 여러분을 고치시고 싸매시고, 여러분을 일으켜서 다시 살리시려는

그 긍휼한 마음이,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 하나님의 진심이에요. 그게 하나님의 진심입니다.

자신의 전부를 걸어서라도 자기 목숨을 내어 놓아서라도 여러분을 다시 붙드시겠다는 처절한 각오가 하나님의 진심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삶의 자리에서 여러 가지 일로 힘들고 기도의 제목이 하루도 끊어지지 않는 버거운 인생을 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딘가에 넣어두었던 하나님의 이름을 다시 꺼내어 들고,

어딘가에 쳐박아버렸던 십자가와 복음을 다시 꺼내어서 들고 복음 앞에 서겠다고 결단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실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기도하실 때, 각자의 기도의 제목과 소원과 아픔과 눈물도 올려드리겠지만,

그보다 앞서, 십자가 다시 붙잡고 하나님 앞에 복음 앞에 서겠다고 결단하는 기도도 꼭 반드시 드리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도 무겁지 않고, 하나님 말씀이 하나도 부담되지 않던 그때로 돌아가 보겠다고

짧더라도 소리 내어서 결단하며 기도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셨으면 참 좋겠습니다.

그렇게 마음속 저 깊은 어딘가의 서랍에 쳐박아버렸던 여러분의 복음의 열정을 다시 꺼내어 들고

삶의 자리에서 복음 붙들고 우리의 영혼을 세워 일으키실 주님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이 예배의 자리와 기도의 자리를 늘 지켜가는 주안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아멘!

 

우리 같이 찬양할 텐데요, 이 찬양의 가사를 잘 살펴보시면서

하나님께 우리의 결단을 올려드리며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겠습니다.

 

♬ 다시 복음 앞에

많은 이들 말하고 많은 이들 노래는 하지만~

정작 가진 않는 길

두려운 생각보다 많이 힘들고 험한 길보단

그저 말로만 가려기에~

점점 멀어져만 가네 내게 생명 주었던 그 길

점점 이용하려 하네 내게 사랑 주었던 그 길~

다시 복음 앞에 내 영혼 서네

주님 만난 그때~

나 다시 돌아가 주님께 예배드리며

다시 십자가의 길 걸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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