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07 주일 설교말씀 / 여호수아 강해(13) - 한 사람 때문에(여호수아 7:1-5)

작성자forever|작성시간26.06.07|조회수61 목록 댓글 0

말씀 : 여호수아 7:1-5

제목 : 여호수아 강해(13) - 한 사람 때문에

 

(1절)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희들에게 귀한 날 복된 날 허락하시고 주의 전에 나와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고백하게 하시고 찬양케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가 말씀을 듣습니다.

성령 하나님, 예배당 안의 공기조차도 온전히 주관하시고 우리 각 사람에게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 들어가는 말 : 을왕리에서 생긴 비극

지난 2020년 9월에 있었던 일입니다. 아마 여러분들이 혹시 기억하는 분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날 새벽, 인천 을왕리 해수욕장 인근에서 음주 운전 차량이 치킨 배달하던 50대 남자를 치어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피해자는 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가장이었지요.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은 사람은 30대의 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너무나 비참했지요. 아내는 남편을 잃었고, 자녀들은 아버지를 잃게 되었고, 노 부부는 아들을 잃었습니다.

한 사람의 음주 운전이라는 잘못된 선택이 한 사람의 생명만이 아니라 한 가정 공동체의 삶을 완전히 파괴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죄를 내 개인적인 문제라고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소주 딱 한 잔만 하고 운전한다는 게 뭐가 문제겠어?'

'내가 조금 욕심낸다고 무슨 일이 생기겠어?'

'내가 조금 빼돌린다고 누가 알겠어?'라고 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희생과 헌신이 공동체를 살리기도 하고

한 사람의 탐욕으로 인한 죄가 공동체 전체를 무너지게도 합니다.

 

2. 본문의 이야기

오늘 우리가 읽은 여호수아 7장 1절부터 5절 말씀은 바로 그 사실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이야기로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보았듯이 가나안의 첫 성이고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세는

가나안 땅 전부를 금방 점령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여리고 성에 비하면 아주 작은 성에 불과했던 아이 성 전투에서 이스라엘은 너무나 어이없게 패배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패배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전쟁의 과정에서 유일무이한 패배였습니다.

여호수아서 말씀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요단 강을 건너서 가나안 서편 땅에서 31명의 가나안 부족의 왕을 진멸시켰습니다.

여호수아서 12장에 보면, 그 왕들의 이름이 쫙 열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31명의 왕들을 진멸한 것을 근거로 해서 이스라엘은 31전 30승 1패를 거두었다고 표현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서 31번의 전쟁이 있었다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31명의 가나안 부족들의 왕을 진멸한 것을 가리켜서 그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유일한 1패가 바로 아이 성 전투였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성 아이 성에서의 패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이었지요.

 

아이 성은 여리고에서 서북쪽으로 약 18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해발 800m의 험준한 고지대에 위치했던 작은 성이었습니다.

지도 볼까요.. 저 밑에 여리고가 있고 서북쪽으로 아이 성이 있는데,

거리가 한 18km밖에 되지 않지만 여리고에서 아이로 올라가려면 고바위로 올라가야 되는 겁니다.

여호수아 8장 25절 말씀에 의하면 아이 성에는 약 12,000명의 인구가 살고 있었고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성을 아주 쉽게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을 했습니다.

아이성의 총 인구가 12,000명이니까 그 중에 여자와 어린이들과 그리고 노인들을 제외하면

아마도 전쟁을 할 수 있는 군인의 수는 약 2~3천 명 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아이 성으로 정탐꾼을 보냈을 때 그들이 돌아와서

(수 7:3)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면 됩니다"라고 보고를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판이었지요. 당시 여리고는 해저 약 200m의 낮은 곳이었고,

아이 성은 해발 800m니까 거의 1000m의 고도의 차이가 납니다.

그러니 여리고에서 아이 성으로 올라가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고,

고지대에 살고 있던 아이 성의 군인들은 그 산지의 지리를 훤히 꿰뚫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정탐꾼들은 단지 아이 성의 숫자가 적다는 이유만으로

'이삼천 명만 올라가면 됩니다'라고 제안한 것은 안일하고 경솔한 판단이었지요.

그들은 전략상으로도 신앙적인 면에 있어서도 잘못된 판단을 했던 겁니다.

결국 결과는 패전으로 인한 36명의 이스라엘 군인들의 죽음과 함께 도망쳐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여리고에서의 대승에 젖어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것은 큰 충격이었지요.

그래서 5절 말씀 보면 "백성들의 마음이 녹아져 내리고 있었다" 그랬어요.

그동안에는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가나안 족속들의 마음이 녹아내렸는데,

여호수아 2장 11절, 5장 1절 보면, "가나안 족속들이 정신을 잃어버리고 마음이 녹아내렸다" 그랬어요.

그런데 이제는 반대로 "이스라엘이 그들의 적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녹아져 내렸다"고 말합니다.

나중에 여호수아가 하나님 앞에 나가서 "왜 그렇습니까?"라고 울부짖으며 기도할 때에 보면

"왜 우리를 멸망시키려 하십니까?"라고 하는 말이 나와요.

그것을 보면 여호수아도 이스라엘 백성들도 다 두려움에 떨게 된 겁니다. 그것을 "마음이 녹아져 내렸다"라고 표현한 것이지요.

 

3. 한 사람 때문에

그렇다면, 왜 이렇게 된 것입니까?

그것을 오늘 본문은 아간이라고 하는 한 사람의 불순종의 죄악 때문이었다라고 말씀합니다.

(1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이스라엘의 패배의 원인은 오직 한 가지, 바로 여리고 진멸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여호와께 바쳐진 것(헤렘)을 몰래 자기의 것으로 취한 유다 지파 자손 아간의 죄 때문이었다라는 것입니다.

히브리 말 "헤렘"은 하나님께 바쳐진 것을 말합니다.

가나안 땅의 첫 열매인 여리고 성, 이스라엘 백성들이 첫 번째로 점령한 여리고 성,

그 첫 열매인 여리고 성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첫번째 것)들은 다 하나님의 것이기에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하나님께 온전히 받쳐져야만 했습니다. 헤렘되어야 한 것이지요.

하나님 말씀하십니다. (수 6:17-18) "이 성과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께 온전히 바치되(헤렘)..."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바치다" 하는 '헤렘'이란 단어가 5번 등장해요. 하나님의 명령이었어요.

따라서 여리고 성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 드려진 것, 헤렘 된 것으로서 사람과 가축들, 생명이 있는 것들은 모두 진멸돼야 되고,

무생물 금 은 동 철 기구들은 따로 구별해서 누구도 취하지 못하도록 여호와의 집 곳간에 들여놓아야만 했습니다.

그것이 6장 19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아간이 탐욕을 품고 '헤렘' 하나님께 바쳐진 것을 훔친 사건이 일어났고,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었던 언약이 파괴되고,

이스라엘을 향한 형벌이 주어졌는데 그것이 바로 아이 성에서의 패배였습니다.

 

이 때, 아간이 훔친 물건들을 보면 두 종류입니다.

(수 7:21)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그 무게가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

그런데 이 두 가지는 그 당시나 오늘이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탐심을 불러일으켜서 실족하게 만드는 것들입니다.

금과 은은 한마디로 온 인류 역사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앞에 무릎을 꿇는 황금 만능주의 우상을 상징하죠.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는 세상의 유행과 성공과 멋을 상징하는 세속주의의 우상을 의미합니다.

'시날'은 바벨론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그 당시에도 시날 즉 바벨론의 물품들은 뛰어났고 유행 그 자체로 간주되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K-POP이 세계적으로 지금 유행하고 있는데,

그것처럼 그 당시 시날 즉 바벨론의 물품들이 뛰어나고 유행 그 자체로 간주되었다는 거예요.

아간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바벨론 양식의 외투를 보았을 때에

그 당시 외향적으로 성공과 유행을 상징하는 그 외투에 대한 탐심이 생겼고, 그것을 취했던 겁니다.

그러므로 이 황금만능주의, 물질만능주의와 세속주의는

오늘 우리도 정말 조심하고 멀리해야 될 두 가지 우상인 것을 늘 기억해야만 합니다.

'아간'이라는 이름의 뜻은 '괴롭히다', 혹은 '골치 아프다' 그런 뜻입니다.

아간은 그 이름의 뜻대로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에 괴롭힘을 준 존재, 골치 아픈 존재가 되고 말았어요.

 

4. 하나님은 왜 아간의 죄를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에 물으셨나?

여기서 우리가 정말 주목해야 할 것은 이렇게 아간 한 사람이 지은 죄를

하나님께서는 오늘 1절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범죄하였다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7장 11절에도 똑같은 표현이 반복되는데, 거기에는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나의 언약을 어겼다"라고 말씀합니다.

(수 7:1)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여러분 이상하지 않아요? 죄는 아간이라고 하는 한 사람이 지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이스라엘 자손들의 범죄라고 말씀하셨고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 전체를 향해서 진노하셨습니다. 즉 아간 한 사람과 이스라엘 전체를 동일시한 겁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아간의 죄를 아간 개인의 죄로 간주하지 않으시고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죄로 간주하셔서 그 책임을 이스라엘 백성 전부에게 물으신 겁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이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서로가 서로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만 하는 운명 공동체이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언약을 맺은 언약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간의 범죄는 아간 개인의 범죄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에 있는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의 범죄가 되는 것이고,

또한 그 범죄에 대한 책임도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가 져야만 했던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은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새로운 언약 관계에 있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영적인 원리를 분명하게 볼 수 있어야 됩니다.

즉, 교회 역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있는 언약 공동체로서

교회 공동체에 속해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의 고통과 책임을 함께 나누어야 하는 운명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교회의 특성을 사람의 몸에 비유했던 거예요.

(롬 12:4-5)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그렇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엡 1:23)는 머리 되시는 예수님(엡 4:15)을 중심으로

모든 성도들이 각 지체를 이루어서(엡 4:16, 고전 12:27) 서로의 사랑과 고통과 책임을 함께 나누어야만 하는 언약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된 우리 성도들은 서로를 무시하거나 경시하면 안 되고

팔이 다리를 보고 '너 필요 없어'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고,

서로를 경쟁의 상대로 생각해서 시기하거나 다투어서도 안 되는 겁니다.

오히려 우리는 서로의 짐과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누어야만 되지요.

서로를 사랑으로 섬기고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서로를 세워주는 그런 사랑의 공동체가 되어야 됩니다.

부족함을 보고 책망하고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채워주고 도와주고 보완해 주고 세워주는 그런 사랑의 공동체가 돼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나 하나의 무심한 행동과 말이 교회 공동체에 큰 아픔과 고통을 가져다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고 조심해야 됩니다.

더 나아가 성도인 나 한 사람의 언행심사가 내가 속해 있는 교회와 한국 교회에 큰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도 명심해야 됩니다.

성도 한 사람의 비신앙적이고 불의한 삶이 안 믿는 자들에게 교회와 기독교 전체에 대한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고,

일부 목회자들의 성적인 타락과 물질욕과 명예욕 때문에

한국교회 전체가 안 믿는 이들에게 욕을 먹고 하나님의 이름과 명예가 실추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 한 사람의 범죄와 타락이 교회와 한국교회와 더 나아가 나라와 민족의 큰 어려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늘 명심하고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에 힘입어 우리 마음속에 있는 모든 탐심, 우상 다 몰아내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그 한 사람 되어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나라와 민족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나 한 사람이 우리 가정과 더 나아가 믿음의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력과 파괴력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은

아간의 조상들의 면면을 보면 더 분명히 깨닫게 됩니다.

성경에서 흔히 사람을 소개할 때는 '누구의 아들' 또는 '누구의 손자' 정도로 소개하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볼 수 있듯이, 지파, 증손, 손자, 아들인 'ㅇㅇ'라고 소개하는 경우는 거의 드뭅니다.

(수 7:1)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 이렇게 소개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성경에서 아주 예외적으로 그 족보를 무려 28대까지 자세히 소개하면서

마침내 "ㅇㅇ"라고 소개하는 분이 계신데, 그분이 누군가요? - "예수님",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이 예수님과는 비교가 안 되지만, 그 다음으로 길고 자세하게 선조들의 이름이 소개된 사람이 바로 이 아간입니다.

이 소개에 의하면 아간은 먼저 유다 지파 출신이에요. 유다 지파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중에서 최고의 지파입니다.

왜냐하면, 이 유다 지파를 통해서 메시아가 오실 것이 예언되었고, 예언대로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유다" - '찬송하리로다' 하는 뜻입니다. 이 뜻대로 유다 지파는 하나님께 찬양으로 영광을 돌리는 복된 지파였어요.

그 다음 아간은 세라의 증손이었다 그랬어요. "세라"는 '씨를 뿌리다' 하는 뜻입니다.

풍성한 열매를 거둬들일 것을 기대하면서, '씨를 뿌리는 복된 사람'이라는 뜻이지요.

또 아간은 삽디의 손자라 그랬어요. "삽디"는 '기쁨의 선물'이란 뜻입니다.

나의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으로 선물로 나누어 주는 사람, 베풀어 주는 사람이란 뜻이지요. 참 귀한 이름입니다.

마지막으로 아간은 갈미의 아들이라 그랬어요. "갈미"는 '포도 열매'를 뜻합니다.

'갈미'는 '포도 열매가 주렁주렁 맺힌다' 하는 뜻의 이름입니다.

그러므로 아간은 대단하고 은혜가 넘치는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아간의 가문은 메시아가 오실 구별된 지파로서 [씨를 뿌리는 대로 열매를 거두며], [아낌없는 기쁨의 선물을 나누어 주고 베풀어 주고],

[포도송이처럼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은총의 역사가 이어진 가문이었다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 은총이 이어질 아간에게는 영광만이 남아 있었어요.

즉, 아간은 구세주를 잉태할 지파로서 뿌리는 대로 열매를 거두고 기쁨의 선물을 나누어 주고

포도송이처럼 탐스러운 열매를 받아누릴 주인공이 될 사람이었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너무나 충격적이게도 안타깝게도 이 모든 은총의 사슬이 아간에게 와서 완전히 끊어져 버리고 말았어요.

그리고 그와 그의 가족, 심지어는 그의 소유의 가축들까지도 다 아골 골짜기에 묻혀 버리고 말았어요.

그 유명한 아골 골짜기가 여기에 처음 등장합니다.

(수 7:24-26)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과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그 외투와 그 금덩이와 그의 아들들과 그의 딸들과 그의 소들과 그의 나귀들과 그의 양들과 그의 장막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여호수아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

 

자 보세요.

'아간'의 이름의 뜻이 '괴롭게 하다'입니다.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 아간의 이름대로 백성들을 괴롭게 했다 그 말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오늘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물건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그 위에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의 맹렬한 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이 얼마나 안타깝고 슬픈 결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명문 가문에서 태어나 이제 믿음의 조상들로부터 내려온 그 모든 복과 은혜를 누릴 수 있었는데

그 모든 것들이 그의 작은 탐심으로 인한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하루 아침에 물거품으로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자신만이 아니라 그의 온 가족과 짐승과 땀 흘려 모았던 모든 재산이 한순간에 불태워지고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탐욕의 죄가 이렇게 무섭습니다.

이는 탐욕으로 눈 먼 한 사람으로 인하여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하나님의 은총의 사슬이 끊어지고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 가운데 가장 많은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되었던 한 집안이 완전히 몰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았던 사람이 여리고 성에 있었는데, 그가 누구죠? 기생 라합입니다.

그녀는 멸망할 수밖에 없는 여리고 성의 주민이고, 가나안 족속이고, 게다가 자신의 몸을 팔아 생계를 꾸리던 기생이었습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은총에서 완전히 벗어난 여인이요 하나님의 언약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던 여인,

한마디로 진멸될 수밖에 없던 여인이었습니다. 명문가 출신 아간과 비교하면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는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그녀는 오직 하나님의 언약을 믿는 믿음으로 자신은 물론이요 그녀의 아버지와 모든 가족들을 살리는 역할을 하였고,

인류 역사상 최고의 명문가로 메시아를 출생케 한 유다 지파의 일원이 됩니다.

그녀는 유다 지파의 살몬과 결혼을 하고 그 사이에서 보아스를 낳습니다. 룻의 남편도 보아스

마태복음 1장 5절에 예수님의 족보 가운데 그녀의 이름이 올라갔어요.

(마 1: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를 통해서 다윗이 나왔어요.

저주 받아 마땅한 가나안 여인이 영광스럽게 이스라엘 왕가의 조상이 되었고,

더 나아가 영원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녀의 허리에서 나셨으니

그녀는 축복의 통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보잘 것 없던 그녀의 가문에서 은총의 사슬의 첫 번째 조상이 되었어요.

아간이 받아 누려야 될 축복을 이방의 진멸 받아 마땅한 한 여인이 받게 된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래서 잠언 기자는 (잠언 18:12)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라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 마음이 교만하여 탐심을 품은 자는 자신과 그의 가족과 그의 가문까지도 멸문지화를 당하게 했지만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은혜만을 겸손히 구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한없는 자비와 은총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과거에 삶이 아무리 죄악되고 수치스럽고 우리 가문이 보잘 것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오직 주님의 은총만을 구하면 우리도 라합처럼 모두에게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고

하나님 앞에서 새로운 믿음의 명문 가문을 세워 갈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오늘 봅니다.

이런 은혜가 우리 주안의 모든 성도들의 가정에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예화 / 故 주기철 목사의 며느리 이정남 권사

이 시간 제 어머님에 대해서 잠깐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제가 그동안 제 어머님에 대해 자세히 나눈 적이 없는데,

제 모친은 대대로 불교를 믿는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교회 학교에 다니면서 교회에 출석을 하게 됐습니다.

이상하게도 불교를 믿던 저희 외조부와 외조모께서는 딸이 교회 다니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고

그래서 저희 모친은 자연스럽게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희 모친께서는 당시 정부에서 운영하던 부산시립병원에서 세운 간호전문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간호사로 훈련을 받았고,

태평양 전쟁이 한참 진행되던 때에 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시립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병원에서 마침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에 저의 선친과의 운명적인 만남이 이루어졌지요.

어느 날 병원에서 모친께서 일하고 있는데 한 젊은 청년이 응급실에 실려 왔습니다.

그는 매우 초췌한 모습에 바짝 말라 있었는데, 폐병이 심각한 상태로 진행되었고 심한 영양 실조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 불쌍한 청년을 보는 순간 저희 모친은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를 정성껏 간호했습니다.

훗날 그 청년과 결혼하게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채 말이지요.

모친께서는 그냥 순수하게 한 인간을 향한 연민과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기꺼이 그를 돌봐 주었습니다.

사실 처녀 시절에 저희 모친은 총각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다고 합니다.(제가 확인은 못 했지만, 들은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똑똑하고 건강하고 가문 좋은 청년들의 모습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모친의 눈에는 그저 저 불쌍하고 볼품없는 그 청년이 계속 눈에 밟혔다는 거예요.

그 청년이 바로 저희 선친이자 당신의 남편이 된 '영'자 '해'자 故 주영해 장로입니다.

저희 선친은 순교자 故 주기철 목사님의 3남으로 태어나서 말할 수 없는 고난 가운데 지내게 되었습니다.

당신의 아버지 주기철 목사님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조상신을 섬기는 신사참배를 끝까지 반대하다가

7년의 환난세월 끝에 감옥에서 옥사하셨습니다. 일제는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는 핍박을 했는데,

학교에서 다 퇴학시키고 음식 배급도 다 끊어버리고 아무도 도와주지 못하게 감시를 했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온갖 고문 끝에 1944년 4월 21일 순교하셨고,

해방 후에 북한의 공산 정권이 들어선 후에 저희 선친께서는 6.25 때 홀로 부산으로 피난을 내려와서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이 운영하던 고아원에서 밤에는 잠을 얻어 자고

낮에는 부산의 한 통나무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겨우 겨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그는 영양실조에 폐병까지 걸리게 되었고, 마침내 노숙자처럼 길거리에 쓰러지게 되었는데

누군가 그를 발견해서 부산시립병원의 응급실에 실어다 주는 바람에 살게 된 겁니다.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은총 가운데 저희 모친을 만나게 된 것이지요.

생각해보면, 만일 그때 누군가가 길거리에 쓰러져 있던 제 선친을 업어다가 병원 응급실로 데려다 주지 않았더라면,

또 만일 저희 모친께서 그때 그 병원의 간호사로 일하고 있지 않았다면,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없을 겁니다.

이렇게 저의 모친은 선친을 통해 주기철 목사님의 불굴의 신앙에 대해서 듣게 되었고,

당신의 부모님들과 모든 가족들에게 기독교 신앙과 주기철 목사님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고,

결과적으로 친정의 모든 가족들이 주님께 돌아오도록 인도했습니다.

당신 집안의 첫 열매로서 그녀를 통해 그녀의 가문에 하나님의 은총의 사슬이 시작된 것입니다.

앞서 소개했듯이, 저희 모친은 본래 불교 집안에서 태어난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에베소서 2장 12절의 바울의 표현대로라면 그녀는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었고,

약속의 언약들에 대해서는 외인이었고,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었던 이방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님의 자녀가 되었고, 마침내 라합처럼 약속의 언약이 있는 집안에 며느리로 들어오게 되었고,

그녀를 통해 부모를 비롯한 외가 쪽의 가족들 거의 전부가 이스라엘 나라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녀의 허리를 통하여 믿음의 대가 이어지게 되었지요.

그래서 그녀를 통해서 저를 포함해서 현재 목사가 여덟 명이 배출되어서 하나님의 은총의 사슬이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방 여인이었던 라합이 다윗의 고조 할머니가 되었듯이,

저희 모친께서는 하나님을 모른 채 이방신을 섬기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순교자의 가정에 시집을 와서 많은 믿음의 자녀들과 주의 종들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된 겁니다.

여러분, 이렇게 하나님께서 오늘도 이런 한 사람을 통해서 은총의 사슬을 이어가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여호수아 7장을 통해서 한 사람의 죄가 공동체 전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나를 보았습니다.

아간 한 사람의 탐심은 자신 뿐만 아니라 가족과 공동체를 아픔과 패배로 이끌었어요.

반면에, 라합 한 사람의 믿음은 자신과 가족을 살렸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사의 통로가 되는 놀라운 은혜를 누리게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이 시간 우리에게 묻는 질문은 이것입니다.

"너는 아간의 길을 가겠느냐? 아니면 라합의 길을 가겠느냐?"

아간처럼 탐심과 교만을 따라 살아가며 은총의 사슬을 끊어 버리는 어리석은 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아니면, 라합처럼 믿음과 순종으로 살아가며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되시겠습니까?

이 시간 우리 자신을 돌아보기 바랍니다. 혹시 내 안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탐심과 우상은 없는지,

교회와 공동체를 힘들게 하는 불순종은 없는지, 주님 앞에서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시다.

그리고 라합처럼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믿음으로 순종하기를 결단합시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가 믿음과 순종으로 살아감으로

가정과 교회와 다음 세대를 살리는 복된 그 한 사람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나 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은총의 사슬이 더욱 풍성하게 이어져서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그리고 이 나라 이 민족에게까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저와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서 흘러가는 놀라운 축복의 역사가 함께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아멘!

 

주님,

저 한 사람을 통해 은혜의 사슬이 이어지게 도와주옵소서.

저 한 사람을 통해 우리 가정이 살고, 교회가 든든히 서 가고, 우리의 다음 세대가 복을 받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안의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아간이 아니라 라합처럼, 저주가 아니라 축복의 통로로 쓰임받게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감사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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