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6-12 치유금요성령집회 / 소녀야 일어나라(마가복음 5:21-24, 35-43)

작성자forever|작성시간26.06.13|조회수39 목록 댓글 0

말씀 : 마가복음 5:21-24, 35-43

제목 : 소녀야 일어나라

 

(41절) "그 아이의 손을 잡고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번역하면 곧 내가 네게 말하노니 소녀야 일어나라 하심이라"

 

아버지 하나님,

이 저녁에 또 저희들을 주의 전으로 향하게 하시고 함께 나와서 찬양하며 말씀 듣게 하시니

주님 감사합니다. 말씀 가운데 역사하시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친히 말씀하시고,

그 말씀 붙잡고 믿음으로 기도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님, 처음부터 끝까지 예배당 안의 공기조차도 온전히 주관하셔서

하나님께 정말 기쁨이 되고 우리 모두에게 은혜가 되는 복된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 들어가는 말 : 회당장 야이로의 믿음의 여정

몇 해 전에 한 병원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교회는 출석하지만 형식적인 신앙 생활을 하고 있던 한 아버지가 중환자실 의자에 앉아 밤을 지새우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어린 딸이 위독한 상태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유명한 의사들을 찾아다녔고, 할 수 있는 모든 치료를 다 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의사들을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 아버지는 깊은 절망에 빠졌지요.

그리고 그 절망의 자리에서 그는 처음으로 하나님을 절실하게 찾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단지 딸의 병만 고쳐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 아니라 생명과 죽음을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그는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도 종종 이와 같습니다.

처음에는 병을 고치기 위해,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거기서 멈추게 하지 않으십니다. 문제 해결의 믿음에서 생명의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인간의 가능성을 의지하는 믿음에서 부활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회당장 야이로가 바로 그런 놀라운 주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예수님을 위대한 의사로 믿고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딸의 죽음이라는 절망 앞에서 자신의 체면과 지위, 인간적인 생각까지 모두 내려놓아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하는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생명의 주님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밤 이 말씀을 통해 우리 역시 야이로처럼 믿음의 여정을 걸어가고,

문제 해결의 주님을 넘어서서 생명의 주님,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축원합니다.

 

2. 본문의 배경

이스라엘 북단에 있는 갈릴리 해변 옆에 가버나움이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유대인이 회당이 있는데 본문 사건은

바로 그 회당의 회당장이었던 야이로의 딸이 병들어 죽은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회당이 지금도 가버나움에 가면 남아 있습니다.

보통 유대교 회당에는 여덟 명의 장로가 지도를 하는데 그 장로들을 대표하는 사람이 바로 회당장입니다.

그러므로 회당장은 유대교에 철저히 헌신하고 율법에도 능통하고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그 회당장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야이로가 자기 딸의 병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온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그 당시의 사회 분위기나 역사를 살펴볼 때에 거의 보기 드문 일이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때였고, 정통 랍비 출신도 아니고 단지 시골 출신의 목수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상황에서 회당장인 야이로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그 발 아래 엎드렸다는 것은 그 당시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모습입니다.

어쨌든 회당장 야이로는 자신의 모든 체면을 뒤로 하고 딸을 살리기 위해서 예수님께 나아왔고

예수님께서는 그의 간청을 받아들여서 야이로의 죽은 딸에게 "달리다 쿰"(일어나라)

"달리다"는 '어린 소녀'라는 뜻입니다. "달리다 쿰" "소녀야 일어나라" 말씀하셔서 그녀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낮은 수준의 야이로의 믿음을

보다 큰 믿음의 경지로 일어나게 하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로 야이로의 믿음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는가를 살펴보면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3. 야이로의 원초적인 믿음 - 위대한 의사로 믿는 믿음

그렇다면 본문에서 볼 수 있는 야이로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먼저 야이로는 적어도 주님께서 자신의 딸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즉 그의 주님께 대한 믿음은 위대한 치유자에 대한 믿음, 위대한 의사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 당시에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수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가장 원초적인 믿음의 내용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는 먼저 야이로가 예수님께 나왔다고 하는 그 행위 자체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유대교에서 대표적인 위치에 있는 회당장 야이로가

이미 그 당시에 유대교로부터 이단자로 낙인 찍힌 예수님께 나와서 무릎을 꿇고 간청했다 하는 것은

그 당시의 사회적 통념상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는 마치 오늘의 대학 총장이 초등학교도 가지 않았던 시골 청년의 발 앞에 엎드려서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모습과 같은 모습입니다.

(막 5:22) "회당장 중의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 아래 엎드리어 간곡히 구하여 이르되"

발 아래 엎드렸대요. 간곡히 구했대요.

회당장 야이로는 왜 이렇게 예수님 앞에 나와서 그 발 아래 엎드려 간곡하게 구하게 된 것입니까?

그는 도대체 얼마나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기에 이렇게 체면이고 위신이고 다 제쳐놓고 예수님 앞에 엎드려 간구한 것입니까?

그 절박한 상황을 23절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막 5:23)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결국 문제는 그의 딸에게 있었습니다. 그 당시 최고의 지위와 지성을 가지고 있던 그로서도 도저히 어찌 할 수 없는

사랑하는 딸의 죽음의 문제가 그로 하여금 이렇게 예수님께 나와 엎드리게 만들었던 겁니다.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누가는 누가복음 8장 기록에 보면 지금 죽어가고 있는 그의 딸은 12살 된 외동딸이었습니다.(눅 8:42)

그 딸이 어떤 병에 걸렸는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그 딸의 생명이 경각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그 전날 밤 그는 밤새도록 딸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워했을 겁니다.

죽어가는 딸의 얼굴에는 핏기가 사라지고, 숨소리는 점점 더 작아지고, 그 입술은 파랗게 파랗게 변해갔을 겁니다.

그는 아침이 되자 만사를 제쳐두고 예수님께 달려와 지금 엎드린 거예요.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을 어떻게 알고 이렇게 달려나왔는지는 본문이 정확하게 설명해 주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 과정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모릅니다. 다만 우리가 충분히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그는 분명히 예수님께서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앉은뱅이를 일키시고, 눈 먼 자를 보게 하시고,

모든 병을 고치시는 분이시라는 소문을 듣고 그렇게 나왔을 것입니다.

그 가버나움에서 있었던 일 가운데 하나가,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신 사건이지요.

성경에 보면, 회당에서 귀신을 쫓아내는 일들이 곧 벌어집니다.

그 다음 날, 사람들이 그 소문을 듣고 예수님 앞에 엄청 많이 몰려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루 종일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시고 또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낸 그런 기록들이 있어요.

바로 그 가버나움에서 일어난 일이에요. 소문이 금방 퍼진 것이지요.

그러므로 야이로도 충분히 그런 소문을 듣고 나왔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는 그런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 나아가면 자신의 딸이 병이 나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나왔겠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어떻게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달려왔든지 간에

그가 이런 절박한 상황에서 자기 지위와 체면과 편견을 다 버리고 예수님 앞에 나왔다는 것,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앞에 엎드렸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야이로의 믿음 아닌 믿음, 사실 아직은 믿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믿음? - 치유자 예수님께 나오는 믿음.

비록 그의 믿음은 예수님께서 모든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구세주 메시아이심을 믿는 믿음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에게는 예수님께 나아가면 자신의 딸이 나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믿음이 없었다면 어떻게 나이도 지긋한 회당장이 시골 청년 앞에 엎드리겠습니까?

사실 이런 믿음은 그 당시에도 그리고 오늘날에도 누구에게나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믿음의 모습입니다.

아마 우리 가운데도 어떤 어려운 문제가 계기가 되어서 믿음생활을 시작하게 된 분도 분명히 있을 거예요.

또는 어떤 질병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온 분들도 분명히 우리 가운데는 있을 겁니다.

지금도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예수님은 그런 믿음이라도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4. 야이로의 적은 믿음 - 모든 것을 포기하는 믿음

그런데 야이로의 믿음이 거기서 그치지 않았어요. 그는 자신의 딸의 병 고침을 위해서

자신의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는 믿음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는 그동안 용하다는 의사에게 다 가 보았을 겁니다. 그러나 어떤 명의도 그의 딸을 고칠 수 없었어요.

이제 마지막입니다. 딸의 체온은 식어가고 있고 숨이 가빠오기 시작합니다.

결국 그는 최고의 지성인으로서의 선입견, 자부심, 그리고 회당장으로서의 위신 체면 다 버리고 예수님 앞에 나왔던 겁니다.

그 순간의 상황이 얼마나 절박하고 긴급했는가 하면, 나중에 나오지만

그가 지금 예수님 앞에 와서 엎드려서 도움을 요청하는 사이에 그의 딸은 기어코 죽고 말았다는 거예요.

사실 그 당시 유대교에서 최고로 존경받는 위치에 있던 회당장이

예수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은 커다란 위험도 내포하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이미 예수님을 이단자요 죄인으로 낙인 찍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런 거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왜냐하면 지금 그 딸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었죠.

그 당시의 상식과 편견으로는 초라한 30대 목수의 아들인 예수라는 청년 앞에

위엄 있고 나이도 지긋한 회당장이 무릎을 꿇는다, 엎드린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이는 다른 동료들이 그를 크게 비웃을 수도 있는 상황이지요. 아니, 비웃는 정도가 아니라 그는 회당장의 자리를 박탈 당할 수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사회적으로도 매장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지금 이런 것들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예수의 발 앞에 가서 모든 체면 위선 다 뒤로 하고 아예 납작 엎드렸어요. 그리고 간곡히 구했습니다.

옛날 성경에는 "많은 말로 구했다"라고 돼 있어요.

사실 말이 쉽지, 그 당시의 사회 제도나 모든 환경을 비추어 볼 때 이런 행동은 참 발견하기 어려운 모습입니다.

그에게는 딸의 치유를 위해서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할 정도의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이런 행동을 귀하게 보셨어요.

비록 그에게 아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구세주라는 확실한 믿음이 없었다고 할지라도

딸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와서 예수님 앞에 엎드린 그의 그 믿음과 겸손을 주님께서 귀하게 보신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가 회당장 야이로의 모습 속에서 배우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도 우리가 가진 문제가 어떤 것이든 그 문제를 가지고 생명의 근원 되시는 주님 앞에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체면이 문제가 아니에요. 위신이 문제가 아닙니다. 남의 이목이 문제가 아닙니다. 환경이 문제가 돼서도 안 됩니다.

고침받고자 하는데는 어떤 것도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오는데 방해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진정 우리의 아픔과 실패와 절망을 고침받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모든 것 다 내려놓고 모든 것 다 물리치고 주님 앞에 나오셔야 됩니다.

우리의 모든 인간적인 생각, 체면, 위신 뒤로 하고 겸손에게 주님 앞에 나와 무릎 꿇고 그의 도우심을 간구하셔야 됩니다.

 

제가 지난 주에 한 권사님을 만났는데,

필립 멘토바 목사님 오셨을 때 집회 첫날 저녁에 앞에 나와 기도를 받고 허리 디스크를 깨끗하게 치유 받았어요.

그래서 제가 교구 목사님들을 통해서 이번에 치유받은 분들 보고하라 그랬는데 보고를 안 하셨어요.

그래서 '왜 보고 안 하셨어요?' 그랬더니, 보고하면 간증하라 그럴까 봐 안 했답니다.

친구 권사들하고 같이 네 분이 앉아 있었는데, 둘은 막 달려 나왔는데 둘은 체면 때문에 안 나왔다고 그러더라고요.

나오셔야 됩니다. 체면이 문제입니까?

그래서 제가 권사님에게 저도 이번에 허리 치유 받았다고 그랬어요.

병원까지 갔어요. 제가 확인했어요. 사진을 찍어 보니까 큰 차이는 없대요. 그런데 희한하게 통증이 싹 사라졌어요.

그날 목사님들도 먼저 나오라고 하셔서, 멘토파 목사님이 기도해 주셨지요.

기도하는데 그날 얼떨결을 보니까 목사님이 제 앞에 오셔서 제 허리를 위해서 기도해 주시더라고요.

나중에 그게 기억이 났어요. '아, 그때 그랬구나!'

그래서 의사한테 물어봤어요. 다시 가서 제가 체크하면서, MRI 다 찍어 보면서..

왜냐하면 송전도사님, 저를 도와주는 전도사님은 너무 잘 알아요.

제가 허리가 아프고, 경추 디스크가 같이 와 가지고 너무 힘들었는데, 어떻게 앉아도 아픈 거예요.

자세를 어떻게 해도 허리가 아프고, 너무 힘들었어요.

한 번은 퇴근하고 가다가 앉아 있는데 이렇게 해도 아프고 저렇게 해도 아픈데 견딜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제가 전도사님한테 '그냥 곧바로 병원 가자' 해서 병원에 갔어요.

그리고 동네 정형외과에 가서 허리에 주사를 맞았어요. 그럼 주사라도 맞아야지요. 일종의 진통제니까, 너무 고통스럽더라고요..

 

그런데, 그 통증이 싹 사라졌어요. 오른쪽 다리는 저릿저릿 하고...(아마 경험하신 분들은 다 아실 거예요..)

그 저릿저릿 한 것도 사라져 버렸어요.

여러분, 우리가 치유 받고 주님 앞에 나오는데 체면이 문제가 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오는데 어떤 것도 방해가 되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참된 치유와 회복의 역사는 내가 가진 문제와 영육 간의 질병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와 겸손하게 무릎 꿇는 믿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겁니다.

여러분, 오늘 밤 우리가 기도할 때 모든 인간적인 생각, 체면, 위신 다 뒤로 하고 주님 앞에 믿음으로 나아오십시오.

주님께서 목사님들을 통해서 여러분들을 만져주시고 역사하실 줄 믿습니다. 아멘!

 

5. 야이로의 믿음 -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

그런데, 우리가 본문을 계속해서 읽어 보면 문제가 이렇게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야이로는 큰 맘 먹고 모든 위신 체면 무릅쓰고 나와서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지금 엎드려 도움을 청하고 있는데, 연락이 오기를 딸이 죽었다는 거예요.

(막 5:35)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그의 마지막 소망마저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어요. 이제 어떻게 해야 됩니까?

딸이 죽어가는 걸 보고 마지막 방법으로 모든 체면 뒤로 하고 예수님 앞에 나와 호소하고 모시고 가고 있는데,

도중에 딸이 죽었다는 거예요. 이제 어떻게 해야 됩니까? 예수님을 계속해서 모시고 가야 됩니까? 말아야 됩니까?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사실 죽음은 모든 것의 끝 아닙니까?

모든 것이 살아 있을 때 이야기지, 숨이 끊어지면 그걸로 끝난 거 아닙니까?

여러분, 우리 인생의 한계가 여기에 있습니다.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납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들의 능력의 한계지요.

이렇게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의 한계가 바로 죽음인데, 야이로는 지금 바로 그 인생 최대의 절망의 벽에 부딪히게 된 겁니다.

결국 딸이 죽었다는 연락을 받은 야이로는 이제 인간적인 생각과 판단과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야만 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여기서 끝났어요. 인간의 지적 판단과 경험적 판단에 의한 가능성은 여기서 '제로' - 끝났어요.

그런데 바로 여기서 우리는 이 사건의 결정적인 순간으로 넘어가야 됩니다.

그것은 바로 야이로가 지금까지는 예수님을 위대한 의사로 모시려고 했지만

이제는 구세주로, 생명의 주님으로, 부활의 주님으로 고백해야만 하는 단계에 이른 거예요.

만일 야이로가 예수님께서 생명의 주인이심을 믿는 신앙을 가졌더라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지요.

그러나 야이로의 믿음은 아직 거기에 이르지 못하고 있어요.

지금은 단지 예수님을 한 위대한 유능한 의사로 알고 모셔 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메시아가 아니고,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아니고, 다만 위대한 의사로 알고 있을 뿐입니다.

그는 이제 예수님을 향해 죽은 자를 살리시는 구세주로 고백해야만 하는 단계에 이른 거예요.

생명의 주관자를 믿어야만 하는 단계에 이른 겁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으로 믿어야 하는 단계에 온 거예요.

(야이로는) 문제의 해결사가 아니라, 병을 고쳐 주시는 분 정도가 아니라,

우리를 절망에서 소망으로 이끄시고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시는 참 생명의 주님으로 고백해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감사하고 너무나 감격스러운 것은, 여기에 오늘 본문의 정점이 있습니다.

여기에 복음이 있어요. 이 결정적인 순간에, 이 절망의 순간에,

예수님께서는 야이로의 그 절망과 그 딜레마를 아시고 이런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막 5:36)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의사 누가는 이 말씀을 좀 더 풀어서 더 자세히 기록했어요.

(눅 8:50)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야이로야, 그러면 딸이 구원을 얻을 거야." 복음이지요.. 죽음을 앞에 놓고 하신 예수님의 이 말씀은 놀라운 복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 말씀은 인간의 모든 고민과 갈등과 절망과 한계를 넘어서는 예수님의 초월적인 능력을 보여주신 말씀이었지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아멘!

이 깊은 절망의 순간에, 이 숨막히는 갈등의 순간에 놀라운 예수님 말씀을 들은 야이로는

결국 그 말씀을 붙잡고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계속 모시고 갑니다.

야이로는 그 순간에 예수님의 말씀이 무슨 뜻인지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그 순간에 그는 그 약속의 말씀을 믿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죽지 않게 하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죽은 자를 살리시는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병들지 않게 하시는 예수님이 아니라 부활시키는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합니다.

그래서 그는 비록 그 순간에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다 깨닫지는 못했지만, 모든 것을 예수님께 맡기기로 결단을 합니다.

그가 이렇게 모든 걸 예수님께 위탁하기로 결단하지 않았다면 그는 분명히 이렇게 말했을 거예요.

'예수님, 제 딸이 죽었다는군요. 죽었다는데 이제 더이상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돌아서야지요. 그게 상식이지요.

그러나 야이로는 돌아서지 않았어요. 야이로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네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 말씀을 붙잡았어요.

여기에 그의 순수한 믿음이 있어요.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네 딸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그 순간에 다 깨닫지 못했지만, 그대로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따랐어요. 그리고 예수님을 모시고 갔어요.

[여기에 우리 주님께서 귀히 보시는 그의 믿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딸을 죽음에서 불러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달리다 쿰" - "소녀야 일어나라." 말씀하심으로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 본문의 이 사건이 좀 황당하게 느껴지세요?

'죽은 자를 살리시다니,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그렇게 생각되십니까?.

물론 인간적인 상식으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겠지요.

그러기에 오늘 본문 40절에 보면,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죽은 아이를 보고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라고 말씀했을 때 '비웃었다' 그랬어요.

상식적으로 예수님의 이 말씀은 비웃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지요.

죽은 것을 잔다고 하니까,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 될 거 아닙니까..

그러나 이제 야이로는 이런 인간의 생각과 상식과 이성을 넘어서야만 했어요.

그리고 그는 그 모든 것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주님의 말씀을 믿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모시고 갔어요. 예수님은 그의 이런 순박한 믿음을 귀하게 보셨어요. 그래서 그에게 생명의 기적을 베풀어 주셨어요.

 

6.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여러분, 여러분은 아직도 이런 사실이 먼 이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나 있었던 사건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이야기를 들어 보세요. 제가 전에 이 책을 소개한 적이 있어요.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이 책이 지금 절판된 것 같은데, 나오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멜 태리'라는 평신도 선교사가 쓴 간증입니다.

여기 보면, 한 평신도 선교팀이 선교 활동을 하면서 겪은 수많은 죽음의 위협, 강의 위협, 독과 정글과 맹수, 미개인들의 위협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놀랍게 역사하신 21세기의 기적, 21세기 사도행전이 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많은 역사 가운데 죽은 자가 살아난 사건도 기록돼 있습니다.(제가 전에 이 이야기를 한번 소개한 적이 있는데),

한번은 이 전도팀이 '암호앙'이라는 마을에 가서 죽은 사람을 앞에 두고 찬송을 부르는 동안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놀라운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 때문에 그 지방의 2만 1000명 이상이 되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일이 벌어졌어요.

이 전도팀이 이 마을에 갔는데 초상집이 있어요. 죽은 사람은 그 마을의 유지였고, 죽은지 이틀 됐다 그랬어요.

유가족들이 장례식에 그들을 초청했는데 이미 거기에는 많은 사람들, 약 1000여 명의 사람들이 초청되어 있었습니다.

그 남자의 시신은 죽은 지 이틀이 지나서 이미 부패해 있었습니다. 열대 지방에서는 사람이 죽고 6시간이 지나면 썩기 시작한다고 그러지요.

이틀이 지나면 구역질이 날 정도고, 죽은 후 이틀이 지난 시신들은 보기에도 참혹하다 그래요.

그들이 그 집에 도착해서 조객들 앞에 서 있는데, 갑자기 성령님이 한 형제에게 말씀하십니다.

'지금 저 관 곁에 가서 죽은 사람 주위에 둘러서서 찬송해라. 내가 그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길 거다.'

한 형제를 통해서 성령께서 말씀하니까 그들이 한숨을 쉽니다.

'오! 주님, 이 사람이 죽은지 이틀이 지났습니다. 그건 불가능합니다.'

이 전도팀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할 거냐 말 거냐를 가지고 고민하고 당황합니다.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주님, 저에게 당신의 말씀을 믿을 수 있는 단순한 믿음과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을 주옵소서."

마침내 전도팀은 주님께 순종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들은 죽은 사람 있는 곳에 가서 둘러 서서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 순간 사탄은 그들에게 속삭이기 시작했어요.

'야, 이처럼 썩은 사람을 두고 찬송하는 것은 바보 짓이야. 썩는 냄새가 30m 밖에서도 나지 않니?

너희가 시신 곁에 가까이 둘러서며 너희가 입을 열 때마다 악취와 독한 냄새가 너의 숨을 꽉꽉 막을 거야. 이건 정말 바보 짓이야.'

그건 사실이었어요.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주님께 순종합니다.

그들은 찬양을 시작했는데 첫 번째 찬양을 했어요.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죠. 다소 동요합니다.

'주님, 만약 이 사람을 살리시려거든 빨리 일으켜 주세요.

저희는 이 시신 주위에 서 있기조차 너무 어렵습니다. 악취 때문에 찬송 부르기도 힘듭니다.'

두 번째 찬송이 끝났어요.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찬송이 끝날 때까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여섯 번째 찬송을 부르는데, 시신의 발끝이 꿈틀 하고 움직였어요. 사람들은 공포에 휩싸였습니다.

왜냐하면, 인도네시아에서는 가끔 가다가 죽은 사람이 깨어나서 관 근처에 있는 사람을 꽉 껴안고 다시 관으로 넘어져서 죽는다는

'전설 따라 삼천리'가 있다 그래요.

그들은 더 가까이 가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일곱 번째 찬송이 끝나고 여덟 번째 찬송을 부르는데, 그 형제가 눈을 뜨고 일어납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면서 미소를 짓습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말하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저를 살리셨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생명이 죽는다고 끝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틀 동안 죽어서 그것을 체험했습니다.

또 한 가지,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릴 것은, 천국과 지옥이 실제로 있습니다.

나는 그곳도 가 보았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마지막 한 가지는,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하면 결국 천국에 가지 못합니다. 오직 지옥에 가서 죄값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가 여기까지 말하고 난 뒤에 이 전도팀이 성경을 열어서 그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확인시켜 주고 복음을 전합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이 사람, 예수님을 그 자리에서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하고,

뿐만 아니라 그의 간증으로 말미암아 그 지방의 2만 1000명의 사람들이 예수를 구주로 믿고 돌아오는 역사가 벌어졌어요.

인도네시아 티모르 지역에 있는 선교 현장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이고,

저는 마침 그때 인도네시아에서 8년 동안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던 제 막내 매형 이윤호 목사님에게 제가 연락을 해서 확인을 했어요.

그리고 제가 선교사님으로부터 인도네시아 티모르 지역에서 실제로 그런 사역들이 일어났다 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오늘 21세기에도 선교의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입니다.

오늘도 계속되는 21세기 사도행전의 역사입니다.

여러분, 제가 지난번에 사도행전 강해를 마치면서 말씀드린 대로 사도행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은 안 끝났어요.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을 소유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받으리라" 말씀하십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비록 놀라운 믿음은 없었지만 그 절망의 상황에서 치유의 주님 앞에 나아갔어요.

자기의 모든 지성과 지위와 체면 다 내려놓고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더 나아가, 자기의 딸이 죽었다는 인간의 한계에 도달했을 때에도 그는 체념하지 아니하고 포기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모시고 갔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네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 말씀 붙잡고 갔어요.

마지막 소망까지 완전히 사라진 상태에서 희망이란 전혀 보이지 않는 인류 최대의 원수 죽음의 벽 앞에 부딪힌 상태에서도

그는 돌아가지 아니하고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이 말씀만 붙잡고 생명의 주님을 모시고 갔어요.

그리고 마침내 그는 생명의 주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7. 나가는 말 :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여러분,

그렇다면 오늘 우리 믿음의 현주소는 어디입니까? 오늘 우리는 어디까지 믿고 있는 것입니까?

문제에 봉착할 때,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식이라고는 부정과 부패와 절망과 죽음의 소식 뿐일 때, 우리는 무엇을 믿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이 능력의 주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 우리들도 생명의 주님께 대한 산 소망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들도 인간의 가능성과 한계를 넘어서는 진정한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생명의 능력이 오직 주님께 있음을 믿고 이제 그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나 기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절망과 질병의 자리에서 이제는 일어나 찬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들려오는 소식이 하나같이 '이제는 끝났어. 이젠 더 이상 소망이 없어. 이제는 가능성이란 전혀 없어'라는

절망적이고 부정적인 소식만 들려 온다 할지라도, 그런 절망적인 소리 듣기는 거부하고,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는 생명의 주님 말씀을 듣고 [일어나라!]고 이 시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 속에 있는 모든 의심과 이성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비판은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하면 네가 모든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이라고,

네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라고, 네가 생명의 주님을 오늘 밤 만나게 될 것이라고, 이 시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저녁, 우리 주님께서 "주안의 성도들아 일어나라. 주안의 성도들아 두려워 말고 나를 믿으라. 이제 일어나 내 손을 잡으라" 말씀하십니다.

"주안의 성도들아, 이제는 너의 그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나라!"

"너의 그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라!"

"너의 그 의심의 자리에서 일어나라!"

"너의 그 질병의 자리에서 일어나라!" 말씀하십니다.

이 주님의 음성이 들리십니까? 생명의 주님의 손잡고 일어서고자 하는 우리에게 주님께서 다시 한 번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네 딸이(네가) 구원을 받으리라"(눅 8:50)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요 11:40) 아멘!

 

이 시간, 우리 함께 다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통성으로 함께 기도할 때

"하나님, 이제 저희에게 들려오는 어떠한 절망의 소리, 부정적인 소리 다 뒤로 하고, 주님의 손 잡습니다.

실패의 자리에서 일어나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절망의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의심의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질병의 자리에서 일어나 내 손을 잡으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 듣고 일어나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주님, 이 시간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시옵소서"

 

우리 함께 통성으로 주님 부르고 같이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

 

아버지 하나님,

귀한 형제 자매들을 주님의 손에 올려 드립니다. 아버지, 암 환자들이 많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하지만 아버지, 의술로도 안 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 앞에 올려 드리오니 주님 저들을 받으시고 만져 주시옵소서.

치료의 광선을 베풀어 주시옵소서. 더러운 암세포들 다 태워 주시고 제거하여 주시옵소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사오니 주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그래서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바라보고

할렐루야!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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