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 여호수아 7:16-26
제목 : 여호수아 강해(15) - 아골 골짜기
(26절) "그 위에 돌 무더기를 크게 쌓았더니 오늘까지 있더라
여호와께서 그의 맹렬한 진노를 그치시니 그러므로 그 곳 이름을 오늘까지 아골 골짜기라 부르더라"
†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귀한 날 복된 날 저희들 주의 전에 나와서 우리를 강하게 하신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찬송케 하시고 주의 말씀을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아버지, 우리가 말씀 듣사오니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 들어가는 말 : '부름받아 나선 이 몸'(찬송 323장)
찬송 323장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2절의 가사가 이렇게 돼 있습니다.
♬ 아골 골짝 빈 들에도 복음들도 가오리다
소돔 같은 거리에도 사랑 안고 찾아가서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
이 찬송은 감리교회의 이호은 목사님이 작사한 것인데
이 목사님은 일제 강점기에 평안남도에서 태어나셨고,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많이 활동하던 간도의 용정에서 중학교를 졸업하셨어요.
그리고 서울에서 감리교 신학대학교를 졸업한 분입니다.
강원도에서 목회를 하다가 미국 감리교회의 장학금을 받고 미국 시카고에 있는
'게렛 신학교'라고 하는 유명한 신학교가 있는데 감독교 신학교로 아주 유명합니다.
거기에 유학을 하고 귀국을 해서 감신대와 또 목원대학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는 게렛 신학교의 채플에서 예배 시간에 하나님의 강한 부르심을 경험하게 되었고
그때 헌신을 다짐했던 고백이 바로 "부름 받아 나선 이 몸"이라는 그 찬송의 가사입니다.
그는 "인생의 가을"이라는 그의 설교에서
"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으나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상속받고
돈 한 푼 없었어도 남들이 가지 못하는 유학도 갔고,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주님께 부름 받은 사실이다"라고 설교했습니다.
그는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시고 아간과도 같은 자신을 멸망의 길에서 구원하사
소망의 문으로 나아가게 하시고 그 소망의 복음을 전하는 일꾼으로 세워진 것이 너무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유학 시절 채플(예배) 시간에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아골 골짜기와 소돔 같은 거리에도 복음 들고 가겠노라"고 결단을 했답니다.
아골 골짜기는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아간이 돌에 맞아 죽은 곳, 괴롭힘과 저주의 골짜기입니다.
소돔은 죄악이 관영해서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곳이었습니다.
오늘 이 아골 골짜기의 유래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가를 깨닫고
우리도 이호은 목사처럼 "아골 골짝 빈 들에도 복음 들고 가겠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2. 본문의 이야기
우리가 그동안 본대로 이스라엘은 조그마한 아이 성과의 전투에서 어이없이 패하고 말았습니다.
여호수아는 장로들과 함께 자신의 옷을 찢고 그 머리에 재를 덮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패배의 원인을 여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범죄하였는데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진 것(헤렘된 것)을 도둑질하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긴 범죄를 지적하셨고, 그 바친 물건을 온전히 제거하지 않으면
더 이상 그들과 함께하지 않겠다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에 여호수아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모든 이스라엘 지파를 나오게 하였고
여호와의 것을 도둑질한 자를 찾기 위해서 제비뽑기를 시작합니다. 그래서 열두 지파 가운데 제일 먼저 유다 지파가 뽑혔지요.
열두 지파 중에 으뜸 가는 유다 지파가 범죄에 연루되었다는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계속 제비 뽑기를 진행해서 유다 지파 중 세라 족속이 뽑혔고,
세라 족속의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삽디가 뽑혔고,
그리고 "삽디의 가족 각 남자를 가까이 나아오게 하였더니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이요 삽디의 손자요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 뽑혔더라"
이 제비를 뽑는 일은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종종 사용된 방법이었고, 그 제비뽑기에서 정확하게 아간이 적발된 것입니다.
네 번에 걸친 제비뽑기를 통해 범죄자 아간이 색출된 것은 심판관이신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간의 태도에 대해서 잠시 눈여겨 보아야 되는데, 사실 200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 다 참여해서
네 번에 걸친 제비를 뽑아 한 사람 아간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겁니다.
200만 명이 다 참여해서 지금 제비뽑기를 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많이 걸렸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아간이다' 하는 이름을 밝히지 않으시고
이렇게 길고 복잡한 제비뽑기의 과정을 거치게 하신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스라엘 백성 모두에게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긴 범죄가 매우 엄중한 사건임을 알게 하신 것이었고,
또 한 가지는, 아간에게는 회개와 용서의 기회를 주신 것과도 같았습니다.
그러나 제비뽑기가 네 단계를 거쳐서 오랜 시간을 두고 진행되는 동안에도
아간은 자기가 먼저 죄를 자복하거나 돌이키지 않았어요. 많은 기회와 시간이 있었어요.
그는 자신의 범죄 행위를 회복하고 돌이킬 기회를 계속 외면했던 겁니다.
아마도 그는 자기의 범죄가 완전 범죄라고 착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죄도 숨길 수 없지요.
결국은 자기가 제비뽑기에 의해서 지명이 되자 어쩔 수 없이 뒤늦게 죄를 자복하게 되었는데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금 은을 보고 탐내어 가졌다'라고 고백했어요.
그는 여리고 성의 아름다운 물건들을 바라보았고, 바라보니까 마음에 욕심이 생겼고, 그래서 취했습니다라고 했어요.
* 아간의 죄 : [보고], [탐내어], [가졌다] 하는 이 세 가지 동사는
하와가 에덴 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께 범죄했을 때에도 사용되었고, 순서도 똑같습니다.
* 하와의 죄 : "본즉" "탐스럽기도" "따먹었다"
역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본즉 - 봤어요. 그 마음에 탐심이 일어났어요. 결국은 열매를 "따먹었다"(취하였다) - (창 3:6)
인류 최초의 죄와 아간의 죄가 이렇듯 평행을 이룬 것은 아간의 죄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범한 최초의 범죄행위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안목의 정욕이 얼마나 위험한가 하는 것을 새겨볼 수 있어야 됩니다.
이렇게 아간의 자복을 들은 여호수아는 사람을 보내서 아간의 장막을 뒤졌고, 거기에는 그가 말한 대로 숨긴 물건들이 나왔습니다.
이에 여호수아는 온 백성에게 그 증거물을 보게 한 뒤에 그 물건들을 여호와 앞에 쏟아놓게 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백성들과 함께 아간과 그에 속한 모든 가족들과 짐승들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오늘 너를 괴롭게 할 것이다라고 선언하고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물건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그 위에 돌무더기를 쌓았습니다.
그리고 그곳 이름을 아골 골짜기라 했습니다. '아골 골짜기'는 '고난의 골짜기', '괴로움의 골짜기'란 뜻입니다.
아골은 고통 괴로움을 뜻하는데, 아간이 돌에 맞을 때에 여호수아는
25절에서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아간) 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오늘 너를 괴롭게(아골) 하시리라"(수 7:25) 그랬는데,
여기 보면 아간과 아골의 철자가 비슷해요. 뿌리가 같아요. 그런데 뜻도 같습니다.
"아간"은 '괴롭히다'라는 뜻이고, "아골"도 "고통, 괴로움"이라는 뜻입니다.(언어적 유희)
이게 일종의 워드 플레이죠. '언어적 유희'라고 합니다.
문학 작품을 쓸 때 이런 걸 많이 써요. 똑같은 단어를 쓰는데 의미가 달라지는,
그러면서 뭔가를 풍자할 때 이런 언어적 유희를 많이 쓰는데
결국 지금 비슷한 발음을 통해 자기가 뿌린 대가를 자기가 받게 돼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골" 골짜기는 개인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언약 공동체 전체를 괴롭게(아간) 한 자는
결국 자기도 괴로움(아골)의 형벌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곳입니다.
(수 7:25)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 할 때, '괴롭게 했느냐'는 '아간'입니다. '아르칸'이죠.
그런데 "여호와께서 오늘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는 것은 '아코르'란 말입니다. 비슷하죠.
우리말로는 번역하고 똑같이 괴롭게 했다는 단어를 썼는데
결국은 '네가 죄를 보면서 우리를 괴롭게 했듯이 하나님께서도 너를 괴롭게 할 것이다.'
이 아골 골짜기는 여리고 성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오늘날에는 '엘부케아'라는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진 아골 골짜기
그러므로 여러분, 아골 골짜기는 어떤 곳인가?
범죄한 자를 향해서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 부어진 곳이고, 고난과 괴로움의 골짜기요 죽음의 골짜기를 의미합니다.
즉 아골 골짜기는 하나님의 준엄한 공의가 나타난 곳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범죄한 아간과 그의 가족과 그가 취한 물건,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을 다 멸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명령은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조금 심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간이 범죄하였으면 아간 한 사람만 벌 하면 될 것 같은데 굳이 그 가족들까지 다 죽여야만 했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나 이 사건에는 우리의 짧은 생각과 어설픈 감정으로는 다 이해할 수 없는 깊은 신앙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 사건에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이 담겨 있어요.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따라서 죄를 미워하시고 죄를 결코 용납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아골 골짜기는 하나님의 준엄한 공의가 실현된 자리입니다.
즉 아골 골짜기는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진 장소입니다.
여러분, 지금 이 사건이 진행된 시기와 상황을 한번 생각해 보세요.
400년 전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을 따라 이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돌아와서
약속의 가나안 땅에 들어서서 이제 땅을 점령하기 시작한 시작점, 초입입니다.
만약 이때, 이스라엘 공동체 내에서 시작부터 조그만 죄라도 용납해주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라요. 아마도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지요.
그러므로 지금 이 상황에서는 하나님의 공의가 절대로 훼손되어서는 안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이스라엘의 범죄에 대해서 강력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었지요.
아간의 심판을 보면, 초대교회에서 떠오르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서의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입니다.
망각의 은사를 가지지 않은 분이라면, 제가 사도행전 설교할 때에, 아나니아와 삽비라에 대해서 설교한 것을 여러분들이 기억하실 겁니다.
성령의 충만하신 임재 가운데 시작된 초대 예루살렘 공동체는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넘치는 교회였고 유무상통하는 교회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소유를 다 팔아서 사도들 앞에 갖다 놓았고 그래서 그들 가운데서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이 없을 정도였어요.
그런데 바로 그때, 사탄이 한 부부의 마음속에 스며들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자신들도 체면상 소유를 팔아 바치기로 했는데, 다 바치자니 아까운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소유 중 일부는 감춰두고 모든 걸 드렸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일부를 드리면서 전부를 드린 것처럼 성령을 속이는 행위를 한 것이었지요.
그때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통해서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사도행전 5장 4절)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을 하던 그 부부는 바로 그 자리에서 차례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했다고 사도행전 5장 11절은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엄하게 그들을 심판하신 것이었을까?
그것은 이제 막 탄생해서 이 땅에서 천국 공동체를 이루면서 성장하고 있는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사탄이 한 부부를 통해 교회를 거짓으로 공격했던 매우 위험한 사건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루살렘 교회가 새롭게 출발하는 바로 그 중요한 시점에, 지금 교회의 역사가 시작되는 그 시점에,
사탄은 자신의 가장 주 무기인 거짓의 씨앗을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마음의 밭에 뿌려 놓으므로 시작부터 교회를 흔들려고 했던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죄악의 씨앗이 더 이상 자라지 못하게 아예 잘라 버리고 뿌리째 뽑아 버리셨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토록 엄하게 그 부부를 있는 그 자리에서 심판하신 겁니다. 그러므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은
하나님께서 아골 골짜기에서 아간과 그의 모든 가족들에게 진노를 쏟아내신 사건과 똑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아간의 사건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이제 시작되는 부분입니다.
이제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시작되는 순간이었어요. 그 순간에, 사탄이 아간을 통해서 공격을 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간과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범죄를 돌아볼 때, 이들에게서 공통적인 것을 한 가지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안목의 정욕으로 인한 탐욕입니다.
[보고 탐내어 취했다] - 이 패턴은 인류의 조상부터 시작된 죄의 모습입니다.
아간의 죄도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고, 하와의 범죄도 보지 말아야 할 선악과를 봄으로써 시작되었어요.
다윗의 범죄도 밧세바의 목욕하는 장면을 보면서 시작됐어요.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처음에는 재산을 팔아 하나님께 드리고자 했지만 막상 물질을 보니까 아까운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넘어졌어요. '견물생심' - 물건을 보면 탐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는 것을 조심해야 됩니다.
특별히 요즘 영상 시대가 돼서, 이 보는 것이 우리를 얼마나 유혹하고 넘어뜨리는지 몰라요.
보면 유혹에 넘어가고, 바라보면 욕심이 생기고, 우리 마음을 둔하게 만들어서 우리가 죄악에 빠지게 만듭니다.
이렇게 욕심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지요. 돈에 대한 욕심으로 사람을 죽이기까지 합니다.
권력과 명예에 대한 욕심으로 선거 때 돈을 뿌리고 온갖 불법을 자행합니다.
심지어는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리더들인 장로님들도 장로회장 선출하는데 보니까 돈을 뿌려요.
이게 얼마나 지금 안타까운 모습인지..
그래서 성경은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는다"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간의 죄였습니다.
여러분은, 우리에게 있는 바라봄으로 가지게 되는 이 탐심의 문제가 누구의 문제라고 생각하십니까?
아간의 문제인가요? 우리의 문제입니다.
우리가 이 시간 알아야 될 것은, 아골 골짜기의 유래에 대해서 전해지고 있는 오늘 본문의 사건은
우리 중에도 있을 수 있는 잠재적 아간(Potential Agan)들에 대한 경고의 사건이기도 하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오늘 본문은, [아간의 일을 교훈 삼아 결코 아간과 같은 탐욕의 죄를 짓지 말라]는 경고를 우리에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아간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이 말이 여러분은 기분 나쁘게 들릴지 모르지만,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날, 계시록 1장 10절에 나와 있는 주의 날로 불리는 주일을 때때로 도둑질하고 있지는 않나요?
주일은 주님의 날로 거룩하게 구별지어서 주님 앞에 나와 예배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찬송하며 하나님께 드리는 날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일을 구별되게 지키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주일에 아이들 데리고 놀러도 가고, 여행도 가고, 등산도 가고, 골프도 치고, 장사도 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나의 만족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는 오늘의 아간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십일조는 어떻습니까? 십일조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의 최소를 드리는 행위입니다.
십일조는 신약의 대표적인 '헤렘'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쳐진 것입니다.
그런데 말라기를 보면, 구약 시대의 교인들이 십일조와 하나님께 당연히 드려야 될 헌물들을 도둑질했습니다.
4.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소망의 문으로 바뀐 아골 골짜기(호 2:15)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온전한 십일조와 감사의 예물을 드리고 있습니까?
만일 우리가 온전한 십일조를 하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아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어요.
만일 우리 가운데 이런 아간의 모습이 숨어 있다면, 우리는 아골 골짜기에서 멀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오늘 설교가 만일 여기서 끝난다면 우리에게는 당황스러움과 안타까움밖에 남지 않습니다.
여러분,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26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골 골짜기에서 아간을 심판하자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가 그쳤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아골 골짜기는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진 장소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진노가 그친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가 끝난 곳에서 하나님이 사랑이 시작된 곳이기도 합니다.
즉, 하나님은 하나님의 진노가 끝난 아골 골짜기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시작하셨어요.
바로 여기에 오늘 우리가 들어야 될 복음이 있어요.
우리가 그동안 본대로 죄를 미워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은 아간의 죄에 대해서 아골 골짜기에서 맹렬한 진노를 보이셨어요.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될 것은, 하나님의 진노가 맹렬하면 할수록 하나님은 그만큼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맹렬할수록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기도 합니다.
즉, 아간과 아골 골짜기의 이야기는, 죄가 하나님 앞에서는 결코 용납될 수 없고
죄를 범한 자에게 임하는 것은 죽음 이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바로 여기에 하나님의 불가해한(이해할 수 없는) 은혜와 자비가 개입되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버리고 범죄한 자들을 신실하게 처리하고 나면 그들이 다시 하나님의 은혜로 회복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수 7:12) "제거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은 뒤집어서 말하면 무슨 뜻입니까? 너희들이 그 모든 범죄한 것을 다 제거하면 내가 너희와 함께 하시겠다는 말씀이지요.
그렇습니다. 죄는 분명히 공의의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합니다.
이것이 창세기 첫 장부터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까지의 성경의 변함없는 교훈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결코 죄를 가볍게 다루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때로 그 심판을 은혜롭게 사용하셔서 우리를 변화되게 하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죄에서 돌이키게 해서 가장 무서운 심판이 가장 복된 소망이 되게 하십니다.
구약의 호세아서가 이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선포하고 가르치고 있어요.
(호세아 2:14-15) "그러므로 보라 내가 그를 타일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아골 골짜기를 소망의 문으로 바꿔 주시겠대요.
여러분, 호세아서 잘 아시지요?. 호세아의 아내 고멜이 계속해서 집을 떠나죠. 음행을 합니다.
그러나 호세아는 계속해서 그 아내를 데리고 오지요. 하나님께서 계속 데려오라고 합니다.
"호세아"는 '구원'이라는 뜻입니다. 호세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끊임없이 끊임없이 다시 죄악 된 길에서 돌이키게 하고 또 데려오고 또 데려오고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이야기입니다.
그 말씀의 핵심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이 되게 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을 제거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다시 은혜를 베풀어
아골 골짜기가 소망의 문이 되게 역사하여 주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에게 아골 골짜기가 변하여 소망의 문이 되게 하신 이가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는 그 호세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상징적 인물이라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 호세아를 통해서 이미 예언의 말씀이 주어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아골 골짜기가 소망의 문이 되게 한다!]
여러분, 보세요..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그리고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고통과 괴롭힘을 당하셨어요.
예수님께서 심판의 음침한 골짜기로 내려가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부활 소망의 문으로 들어가게 만들어 주셨어요.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스스로 아간이 되신 겁니다. 예수님이 아간이 되셨다는 것은 그에게 죄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아간이 되신 것은 예수님은 전혀 죄가 없지만 우리 때문에(저와 여러분 때문에) 스스로 아간이 되셨다는 뜻입니다.
(고후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예수님)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전혀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위하여 아간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아골 골짜기로 끌려가셨습니다. 예수님에게 아골 골짜기는 골고다에 세워진 십자가였습니다.
아간이 아골 골짜기에서 자신의 죄로 인하여 돌에 맞아 무참하게 죽었듯이
예수님은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무참하게 죽으셨어요. 우리는 아간과 아골 골짜기를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가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희생하지 않고는 우리를 구원하실 수가 없었던 겁니다.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골 골짜기로 보내신 겁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아간이 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골 골짜기는 죄를 향한 하나님의 엄청난 진노와
그 진노를 완전히 덮고도 남을 만큼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이 동시에 나타난 곳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할 만한 어떤 능력도 힘도 권세도 없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그 모든 진노를 다 받으심으로 우리는 죄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구원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로 인한 진노를, 주님이 다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그 순간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골 골짜기에서 외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롬 5:8)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롬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아멘!
사랑하는 여러분, 이 사실을 믿으십니까? 아멘!
그렇다면, 이제 더 이상 죄와 사망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아간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죄와 사망의 법에서 완전히 해방되고
부활 생명의 참된 소망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골 골짜기를 통과하고 참된 소망의 문을 통과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자들입니다.
#존 뉴턴의 "나 같은 죄인 살리신"(305장)
우리가 불렀던 찬송가 305장을 작사한 존 뉴턴은 아프리카에서 사람들을 끌어다가 노예로 파는 악덕 노예상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경건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목사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지요.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뉴턴이 6살 때 세상을 뜨고 말았습니다. 뉴턴은 아버지가 재혼한 후에 새어머니 밑에서 자라게 됩니다.
뉴턴은 어릴 때 계모로부터 많은 상처를 받았고, 그로 인해 성격이 비뚤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뉴턴은 성장해서 영국과 아프리카를 오가는 무역상이 되었는데,
그 당시에 돈을 가장 많이 벌 수 있는 장사가 바로 노예 무역상이었습니다.
악덕 노예상이 되고 말았지요. 아간과 같은 죄인이 되고 만 것입니다. 어느 날 뉴턴이 영국으로 돌아오는 중에 큰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본능적으로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자신의 죄가 너무나 커서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틀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습니다.
그때, 그는 정말 간절히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기도했지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그를 풍랑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 사건 후에 뉴턴은 하나님의 사랑에 온전히 사로잡히게 되었지요. 마침내 그는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고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가 됩니다.
그는 아간처럼 죽어 마땅한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신 그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너무 감사해서
그 유명한 찬송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작사를 그 고백을 한 겁니다.
그는 그야말로 아간처럼 하나님과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돌에 맞아 죽어 마땅한 나쁜 죄를 너무 많이 저질렀습니다.
재물에 대한 탐심으로 인해서 수많은 아프리카의 흑인들을 강제로 팔아넘기면서
그들의 가정을 파괴했고, 그들의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뉴턴을 대신해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흘리고 죽으심으로 뉴턴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를 다 받으셨어요.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뉴턴을 죄와 사망의 아골 골짜기에서 온전히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존 뉴턴에게 아골 골짜기는 소망의 문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5. 나가는 말 : 아간에서 뉴턴으로
사랑하는 주안의 성도 여러분,
아간의 이야기는 단지 오래 전 한 사람의 실패담이 아닙니다. 어쩌면 그 이야기는 오늘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르지요.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바라보고, 하나님보다 세상 더 좋아하고, 하나님의 것보다 내 욕심을 더 붙들고,
때로는 그 죄를 숨긴 채 살아가는 우리 안에도 아간의 모습이 때로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우리의 이야기가 아간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아간으로 끝날 인생을 존 뉴턴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저주와 심판의 아골 골짜기를 은혜와 소망의 문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역시 죄 때문에 아골 골짜기로 끌려가야 될 사람들이었지만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아골 골짜기로 가셨어요.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버림을 받으셨고, 우리 대신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에게 아골 골짜기는 더 이상 절망의 장소가 아닙니다. 부활과 영생을 향해 나아가는 소망의 문이 되었지요.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의 죄 때문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부족함 때문에 포기하지 마십시오.
예수님 안에서는 아간도 존 뉴턴이 될 수 있습니다. 심판의 골짜기도 소망의 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번 한 주간도 주님의 십자가, 은혜의 십자가 붙들고 감사함으로 살아갑시다.
그리고 존 뉴턴처럼, 이호은 목사님처럼,
♬ 나 같은 죄의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고백하며 소망의 복음을 전하는
우리 주안의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우리 결단하는 마음으로 305장, 다시 한번 찬송하겠습니다.
♬ 나 같은 죄인 살리신~
†
아버지,
제가 아간이었습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했고, 세상의 것을 보는 것을 더 좋아했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슬프게 했던 것이 바로 저였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 날 위하여, 우리 모두를 위하여 아간 되셔서
아골 골짜기로 내려가셔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흘리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진노를 다 받으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신 은혜 감사합니다.
아버지, 그래서 우리의 삶의 아골 골짝이 변하여 소망의 문이 되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이 사랑, 이 은혜 먼저 받은 우리가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나아가 이 복음 전하는
우리 주안의 모든 성도님들의 복된 발걸음 발걸음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