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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삶

9/12(토) 찬양을 위해 세워진 레위인들

작성자Helen|작성시간09.09.14|조회수11 목록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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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이며, 그것은 적절한 방법으로 항상 표현돼야 한다. - A. W. 토저
 
2009.09
12
 
찬양을 위해 세워진 레위인들
[ 역대상 16:1 - 16:6 ]
 
오늘의 말씀 요약
하나님의 궤가 다윗이 준비한 장막 안으로 옮겨집니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 후에 백성을 축복하고 음식을 나누어 줍니다. 다윗은 레위 사람을 세워 언약궤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며 찬양하게 합니다. 제사장은 언약궤 앞에서 나팔을 붑니다.

☞ 하나님께 드린 제사

1 하나님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두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 앞에 드리니라
1 They brought the ark of God and set it inside the tent that David had pitched for it, and they presented burnt offerings and fellowship offerings before God.

2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2 After David had finished sacrificing the burnt offerings and fellowship offerings, he blessed the people in the name of the LORD.

3 또 이스라엘 무리의 무론 남녀하고 매 명에 떡 한 덩이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병 하나씩 나누어 주었더라
3 Then he gave a loaf of bread, a cake of dates and a cake of raisins to each Israelite man and woman.

☞ 하나님만을 칭송하는 사람들
4 또 레위 사람을 세워 여호와의 궤 앞에서 섬기며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칭송하며 감사하며 찬양하게 하였으니
4 He appointed some of the Levites to minister before the ark of the LORD, to make petition, to give thanks, and to praise the LORD, the God of Israel:

5 그 두목은 아삽이요 다음은 스가랴와 여이엘과 스미라못과 여히엘과 맛디디아와 엘리압과 브나야와 오벧에돔과 여이엘이라 비파와 수금을 타고 아삽은 제금을 힘있게 치고
5 Asaph was the chief, Zechariah second, then Jeiel, Shemiramoth, Jehiel, Mattithiah, Eliab, Benaiah, Obed-Edom and Jeiel. They were to play the lyres and harps, Asaph was to sound the cymbals,

6 제사장 브나야와 야하시엘은 항상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나팔을 부니라
6 and Benaiah and Jahaziel the priests were to blow the trumpets regularly before the ark of the covenant of God.
 

본문 해설
☞ 하나님께 드린 제사 (16:1~3)
하나님의 궤가 3개월간 오벧에돔의 집에 있을 때 하나님이 그의 집안에 복을 주셨습니다(13:14). 이제 하나님의 궤는 다윗이 예비한 장막으로 옮겨졌습니다. 이스라엘의 참 왕이신 하나님의 보좌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궤가 성에 도착하자 다윗은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러고 나서 함께 제사에 참여한 백성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제사장들과 같이 베 에봇을 입고 하나님의 궤를 맞이했던 다윗이 백성을 축복하는 제사장적 기능을 행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 이스라엘을 지키시며 복을 주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평강 주시기를 간구한 것입니다(민 6:24~26). 그리고 모든 백성에게 음식을 나눠 주어 하나님 안에서 풍성한 교제를 나누며 함께 기뻐합니다.

☞ 하나님만을칭송하는 사람들(16:4~6)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참 왕으로 고백하며 예배를 드리고 백성을 축복한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계속 이어지도록 이끕니다. 그는 여호와의 궤 앞에서 섬길 레위 사람들을 세워 하나님을 칭송하며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리게 했습니다. 이들은 비파와 수금을 켜고 제금을 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들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나팔을 불어 백성을 인도합니다. 하나님이 참 왕으로 다스리시고 그의 백성에게 복을 주시는 분임을 아는 자만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할 수 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이름과 능력에 합당한 찬양을 드리며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존재하는 목적입니다(사 43:21).

● 나는 축복의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까? 형제, 자매를 축복하며 기쁨으로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까?
● 나는 찬양과 예배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까? 내 삶에서 찬양과 감사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언제 어디서든 주님을 찬양하는 주님의 자녀가 되게 하소서. 예배를 통해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를 다른 지체들과 교제하며 나누게 하시고, 서로를 축복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묵 상 에 세 이
☞ 하나님의 선하심을 찬양하라

잔디 깎는 기계를 수리점에서 찾아오는 길에, 어떤 목사가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말하는 것을 라디오에서 들었다. 그는 찬양은 감정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소리 높여 강조했다. “여러분은 주님을 찬양하고 싶을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됩니다. 감정에 상관없이 언제나 주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찬양하고 싶은 감정이 생기지 않을 때도 많을 것입니다.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찬양은 우리의 감정과 상관없이 우리가 하는 선택입니다.”
그의 말은 정말 옳았다. 주님을 찬양하기 위해 기다리지 말라.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 멈추어 주님을 찬양하라! 갈등 중에도, 일이 순조롭지 못할 때에도 주님을 찬양하라! 찬양은 당신의 영혼이 기쁨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성경은 바벨론에 유배되었다가 돌아온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는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스 3장). 예루살렘의 폐허 속에서, 성전의 기초만을 다시 건설해 놓고, 그들의 고향을 아직도 적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백성은 입을 모아 말했다. “(하나님은) 선하시다”(스 3:11). 이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상황이 완벽하지 못할 때, 자신의 삶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찬양할 수 있다면 정말 훌륭한 일이다. “이것은 내가 바라던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님은 나에게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다」/ 레이 프리차드

한절 묵상 ☞ 역대상 16장 4절
성도들은 항상 찬송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온 땅을 감사의 외투로 덮고, 찬송의 황금 띠로 그것을 굳게 묶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와 섭리, 그의 피조물에 대한 선하신 인도, 그리고 특별히 그 탁월하신 구속 행위와 거기서 흘러나오는 놀라우신 모든 축복으로 말미암아 항상 찬양받으실 합당한 자격을 갖고 계십니다. 하루가 다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그 큰 사랑에 대해 거룩한 기쁨의 찬송을 올려 드려야 합니다. 찰스 스펄전/ 19c 청교도 설교가

☞ 이무석 교수와 떠나는 내면 여행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귀하게 여기십시오


우울증에 빠진 여자 환자가 자살을 기도했지만 다행히 목숨을 건졌다. 자살하기 전에 그녀가 꾼 꿈이 자살 당시 그녀의 속마음을 잘 보여 주었다. 꿈에 그녀는 겨울 산에서 눈보라를 만났다. 게다가 발이 부러져서 목발을 딛고 있었다.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갑자기 저는 골짜기 건너편에 따뜻하고 평화로운 꽃동산이 있는 것을 보았어요. 그리고 저는 점점 기운이 빠져서 몸을 지탱하고 있던 목발을 놓치고 말았지요.” 이 꿈에서 우리는 환자가 삶의 눈보라를 만났는데, 따뜻하고 평화로운 다른 세상을 보고 삶의 투쟁을 포기해 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지난 40여 년간을 정신과 의사로 살아왔다. 그동안 자살을 시도했던 환자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은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죽으면 이 지독한 인생의 고통이 끝난다는 믿음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큰 오산이다. 예수님은 부자 나사로에 대해 이야기하시면서 꺼지지 않는 지옥 불의 고통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주신 생명을 사람이 끝낼 수 없다. 자살도 살인 행위이다. 죽으면 고통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영원한 고통이 시작되는 것이다. 또한 자살은 뒤에 남은 부모나 가족, 동료, 친구들에게 죄책감을 안겨 준다. ‘내가 잘못해서 자살한 거야. 내가 죽인 거야.’ 이런 죄책감은 씻을 방법이 없기 때문에 평생을 따라다니며 사람을 괴롭힌다. 남편이 자살한 뒤에 심한 우울증에 빠진 부인도 있었다.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고 하염없이 슬퍼 했다. 그런 의미에서 자살은 아주 이기적인 행위이다. 자기 혼자 편하자고 덜컥 자살하면 남은 자들은 지독한 고통 속에 빠진다.
‘오죽 고통스러웠으면 자살했을까’라고 자살자를 동정해서는 안 된다. 정신과 의사들은 이런 동정심이 자살을 부추긴다고 염려한다. 자살이 정당화되기 때문이다. “나는 자살할 만했다. 왜냐하면 내 고통이 컸기 때문에….” 자살이 정당화되면 자살자들은 더 증가할 수밖에 없다. 자살은 도피이다. 고통을 안고 인내하며 살기가 단번에 죽어 버리기보다 더 어려운 것이다. ‘살기’가 ‘죽기’보다 더 어려운 것이 인생이다.
인생의 현실은 지독하고 고통스러울 때가 많다.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자살 유혹을 느끼는 순간도 있다. 그러나 늘 마음에 새기자. 힘들지만 하나님께 기도하고, 인내하고 버티면 인생 상황은 변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무석 |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 국제정신분석가, 「30년 만의 휴식」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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