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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 신학 일반

공의와 전도

작성자박창수|작성시간22.01.06|조회수42 목록 댓글 0

공의와 전도

 

제 컴퓨터에서 다른 자료를 검색해서 찾다가 우연히 오래 전에 쓴 글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지금부터 20년 전인 2002년에 ‘공의와 전도’에 대한 제 경험을 쓴 글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이방에 정의를 베풀게 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자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시는 ‘전도의 하나님’이십니다.

 

사 42: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요 15:26,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따라서 성령 하나님이 그 안에 계신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공의와 전도를 모두 힘쓰는 것이 자연스럽고 마땅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고 두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배타적으로 강조하고 다른 하나를 무시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20년 전에 쓴 아래 글의 요지는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공의 실천이 복음 전도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희년 토지평등권 원칙에 담긴 공의는 우리 사회의 빈곤과 불평등 문제에 분노하며 고뇌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얼마나 공의로우시며 하나님이 얼마나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시는지 깨닫게 해 주어 그들을 하나님께로, 교회로 이끌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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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근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오래전에 교회가 공의에 무관심한 것에 실망하여 교회를 떠난 한 형제가 있었는데, 이 형제가 신림동 고시원에 살며 감정평가사 공부를 하다가 우연히 ‘성경적 토지정의를 위한 모임’의 한 형제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형제로부터 성경의 토지법과 헨리 조지의 사상을 들은 이 형제는 성경을 다시 진지하게 읽으며, 하나님이 참으로 공의의 하나님이신 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되었고 교회에서 신실하게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2) 5년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 교회 대학부의 후배들과 함께 서울대 셔틀버스 승하차장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성경의 토지법과 헨리 조지의 이론으로 한국 경제 위기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전단을 나눌 때입니다. 저희만 있던 게 아니라 운동권 학생들도 옆에서 그들의 전단을 나누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한 여학생이 잠깐 쉬는 참에 담배를 한 대 꺼내서 입에 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얼굴에는 평안이 아닌 삶의 고뇌가 짙게 묻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와 함께 전단을 나누던 대학부 후배가 그 여학생에게 아는 체 하였습니다. 자초지종을 듣고 보니 대구에서 교회 고등부를 같이 다녔다고 합니다.

 

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고등부 때까지 교회를 다닌 학생들은 일반적으로 그 양심이 깨끗하고 일반 학생들보다 더 정의롭기 때문에, 대학에 들어와서 사회의 불의와 약자의 고통이라는 현실을 직면하게 되면, 그것을 외면하지 못하고 그 문제를 진지하게 고뇌하게 되며 교회에 와서 목회자와 선배들에게 그 답을 묻게 됩니다. 그러나 목회자와 선배들이 하나같이 공의에 무관심한 것을 보게 되면, 큰 실망을 하게 되고 급기야는 교회를 떠나는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 여학생의 경우가 그런 경우일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3) 3년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숙명여대의 학생회 간부 수련회에 ‘통일한국의 대안체제’라는 주제로, 성경의 토지법과 헨리 조지의 제 3의 체제에 대한 강의를 하러 갔습니다. 그 대학의 총학생회를 기독학생들이 섬기고 있었던 반면, 모든 단과대학 학생회는 운동권 학생들이 섬기고 있었습니다. 강단에 올라가며 강의안과 함께 일부러 성경을 들고 올라갔습니다. 이 대안이 성경에서 연원하였음을 밝히기 위해서였습니다.

 

강의초반에 성경의 이야기를 먼저 쭉 진행하였는데, 듣고 있던 한 여학생이 번쩍 손을 들고 아니꼽다는 식으로 공격조의 질문을 제게 했습니다. 나중에 듣고 보니 그 여학생은 어느 단과대학 학생회장이었습니다. 그 여학생의 질문의 의도는 이런 것이었습니다. “역사에 보수 반동적인 기독교인이 무슨 통일 이야기를, 그것도 성경을 가지고 이야기하느냐?”하는 것이었습니다. 총학생회의 자매들을 제외하고는 다른 약 30명의 단과대학 학생회 간부들은 모두 비슷한 반응이었습니다.

 

그런데 강의가 쭉 진행되면서 원래 약속한 시간 2시간을 초과하여 약 3시간여를 강의했는데, 처음의 공격조와 조소조의 눈초리들이 점점 바뀌며 눈빛이 빛나고 강의에 집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에 한 여학생이 어떤 질문을 하였습니다. 평소 많이 받는 질문이라 답변을 하려 하는데 세 시간여를 강의해서 지쳐서인지 입에서만 돌고 말이 잘 안 나왔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제게 공격조로 질문했던 그 단과대학 학생회장이 저를 대신해서 이렇게 답변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철학적으로 먼저 원칙적으로 헨리 조지의 지대조세제를 실시하면 되고 나중에 부가적으로 그 문제에 대한 부차적 정책처방을 내리면 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말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그 여학생이 저를 대신해서 정확하게 말한 것입니다.

 

(4) 4년 전 서울대 총학생회 선거시에 방송반 주최의 정책토론회에서 제가 새벽이슬 선본장으로서 토론할 때의 일입니다. “유엔 인권선언의 조항에 토지권이 빠져 있다, 그런데 토지권이 없는 인권은 노예가 될 권리, 즉 노예권에 불과하다.”라고 성경의 토지법에 기초한 요지의 이야기를 제가 하자, 듣고 있던 PD(민중민주주의) 내 비주류 마르크스주의 정파의 부총학생회장 후보였던 철학과 학생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참으로 새벽이슬의 사상이 심오하다고 생각한다.” 이 학생은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고민하는 정파에 소속해 있었기 때문에, 본질을 이야기하는 저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렴풋하게나마 감을 잡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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