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백성을 위로하신 하나님은 길을 만드시고 이제 너희가 믿고 의지한 “하나님을 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인생이란 거친 광야를 지날 때 좋은 일들을 생각하며 살아갈 수만은 없습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때, 실수를 반복했던 일들을 점검하고 서로 나눔을 통해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결단하며 살아가야 함을 배우며 나아갑니다.
지난 주 올해 은퇴를 앞둔 친구목사 집에 간 적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대화중인데 우편배달부 직원을 통해 후임자 청빙서류 봉투가 전달되었습니다. 1년 전부터 소개받은 부목사인데 청년사역을 통해 청년회가 건강해지고 부흥시킨 목사라며 청빙후보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친구목사와 함께 지난 과거 청년 사역을 돌아보며 부족했던 아쉬운, 다음 세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서로 공유하면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목회부분 외에도 제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 무너진 환경, 아픈 고난, 그리고 주님 사역을 통해 나의 자화상을 보며 찐한 아쉬움 그리고 부족함을 느끼며 주님앞에 고개 숙인 적이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사야 선지자가 유대백성들에게 외친 메시지가 영적인 삶을 진단하게 했고 지금 서 있는 자리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바벨론의 포로기를 지나 지치고 힘든 유대 백성들 그들의 눈에 비친 현실은 거대한 바벨론 벽 앞에 자신들의 모습은 초라함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는 절망의 한 복판에서 유대 백성들에게 외치기를........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 고개 숙인 저들에게 아름다운 소식!!~~ “너희의 하나님을 보라”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에 압도되어 크고 놀라운 하나님을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성 있는 믿음이란 환경이라는 렌즈를 통해 하나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렌즈를 통해 환경을 다시 보는 능력입니다.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천정은자매의 간증이 담겨진 책이 세상에 알려지고 유튜브로 그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천정은자매는 피아노를 전공하고 큰 어려움 없이 살았지만 기독교에 대해 철저히 배척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했던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서른이 조금 넘은 나이 2012년 유방암 4기 진단을 받고 온몸에 암세포가 퍼져 150번 항암치료와 4번 ‘시한부’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녀가 마주한 현실은 하루하루 차가운 죽음의 공포뿐이었습니다.
항암치료를 받으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그렇게 배척한 교회에 출석하고 요청한 중보기도를 통해 놀랍게도 항암 부작용이 없어지고 전이된 암이 사라져 암 절제 수술까지 받는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춘천한마음교회출석)
이후 천정은 자매는 주님과 깊은 교제의 시간을 가지는데 그녀가 있는 병실이 ‘예배의 처소’가 되었고 이런 모습을 바라본 의사들은 죽을 것 같은 고통 속에서도 늘 웃으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천정은 자매가 간증에서 고백하는데 "암은 나에게 저주가 아니라, 오직 주님 한 분만으로 가득 채워지는 축복의 통로였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거의 매일 암 환자들에게 예수님 부활의 복음을 전하면서, 그들이 질병과 죽음 앞에서 실족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의 길로 돌이키도록 간증하며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천정은자매가 건강이 악화되어 2025년 6월 52세로 별세하여 예수님품에 안겼지만 그녀의 고백 속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지금까지 예수님과 연애하며 살았다는 고백이” 저에게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복음주의자요 개신교목사요 저술가였던 A.W. 토저는 말하기를........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세상의 어떤 문제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에게는 문제보다 크신 하나님이 보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환경을 보면 절망하고, 사람을 보면 실망하며, 자신을 보면 낙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 하나님을 바라볼 때 비로소 모든 상황은 재 해석하게 됨을 믿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말씀 9절 하반절 ‘너희 하나님을 보라’는 외침은 단순히 눈을 뜨라는 말이 아니다. 우리의 초점을 두려움에서 신뢰로, 환경에서 창조주 하나님께 시선을 집중하라는 강력한 초대요 위로의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곧 아름다운 소식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을 “보라” 이 단어를 강조하며 10절 시작도 “보라” 명령하시고 다시강조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우리는 무엇보다 영적으로 강력한 무기는 너희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나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을 볼 때 능력 힘이 솟아나고 하나님을 바라며 하시는 일에 정말! 기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바라볼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까?
① 하나님의 '강하심'이 내 삶의 '약함'을 압도합니다.
10절을 다함께 다시 봉독합니다.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깨서 ‘강한 자’로 임하신다는 것은 단순히 힘이 세다는 의미를 넘습니다. 영적으로 대적하는 죄, 사망, 사탄의 세력, 모든 환경을 압도하고 승리하시는 구원자의 모습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절망할 수밖에 없었던 유대 백성들이 보는 바벨론은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철옹성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는 순간이라면 완전히 판도가 바뀝니다......... 오직 우주를 창조하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는 거대한 바벨론은 "통 안에 있는 한 방울의 물” 같은 것 뿐입니다.
성도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넘실거리는 홍해 앞에 가지 못하고 있을 때 모세가 두려워 떨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한 메시지가 무엇이었습니까?
출14:13-14....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넘실거리는 홍해만을 바라보면 문제인 홍해가 하나님보다 커 보입니다....... 암 선고를 바라보면 암이 하나님보다 커 보이고........ 통장 잔고를 바라보면 물질의 위기가 하나님보다 커 보입니다.
그러나 시선을 고정시켜 가만히 서서 강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순간, 나를 삼킬 것 같던 거대한 파도는 하나님 발밑의 작은 물보라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아멘
② 상급과 보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10절 하반절 "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라고 말씀합니다.
상급은 일 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상입니다...... 보응도 국어사전에서는 ”착한 일에는 상을 주고 악한 일에는 벌을 줌'으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성경 원어 히브리어로 보응을 “페울라” 라고 하는데 “일에 대한 대가, 보상” 이라는 뜻입니다. 즉 상급과 보응은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대백성을 위로하시는 것은 무엇보다 광야 같은 포로 생활 속에서 당한 고난과 눈물 그리고 수고를 잊지 않고 갚아 주시겠다는 상급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내가 수고한 것들이 다 헛된 것이 아닌가?" 낙심할 때 있습니다. 특히 저와 여러분이 교회를 섬김에 있어서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주를 위해 참아낸 눈물, 믿음을 지키기 위해 흘린 땀방울을 결코 잊지 않으시고 오직 영광스러운 하늘의 상급으로 채워주시는 은혜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미국의 선교사 부부가 아프리카에서 평생을 바쳐 사역하고 은퇴하여 배를 타고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침 그 배에는 아프리카에서 일을 하고 돌아오는 미국의 대통령도 타고 있었습니다. 항구에 도착하자 수많은 인파와 군악대가 대통령을 환영했지만, 평생을 헌신한 선교사 부부를 맞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남편되는 선교사가 씁쓸해할 때, 기도 중 마음속에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아들아, 낙심하지 마라. 너는 아직 진짜 '네 집'에 도착하지 않았다. 네가 집에 오는 날, 내가 줄 상급은 이 세상의 어떤 환영식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상급으로 바꾸시는 분입니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③ 하나님의 따뜻한 품 안에서 치유와 회복입니다.
11절....."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세상의 강한 자들은 약한 자를 밟고 올라설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강한 팔을 가지셨음에도, 그 강한 팔로 우리를 때리거나 억압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 위로가 되는 것은 강한 팔이신 하나님께서 "어린 양을 모아 품에 안아주시는 분"이십니다.
지치고 찢긴 양들, 거친 광야 길에서 지쳐 발이 부르튼 어린 양들을 향해 다가오셔서 품에 꼭 안아주십니다. 새끼에게 젖을 물리느라 지치고 예민해진 암컷들을 억지로 모이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암컷 걸음에 맞추어 "온순히 인도"해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볼 때, 이 세상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완벽한 안식과 위로가 시작됨을 믿으십시오
어느 목사님이 개척 교회를 섬기며 극심한 재정적 어려움과 성도들의 갈등으로 영육이 완전히 고갈된 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가장 사랑하는 막내 아이가 원인 모를 고열로 병원 응급실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병원 복도 차가운 의자에 앉아 하나님께 원망 섞인 기도를 토해냈습니다.
"하나님, 제가 주님의 일을 하느라 제 삶도, 제 가정도 다 무너졌습니다. 강하신 하나님이라면서 왜 제 삶은 이토록 철저하게 짓밟히고 무력합니까?"
그때 성령님께서 목사님의 마음속에 오늘 이사야 40장 11절 말씀을 떠올리게 하셨습니다. "그 팔로 어린 양을 모아 품에 안으시며...“
그 순간 목사님은 영적인 눈이 열려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늘 교회를 이끌어야 하는 '책임자'요 '강한 목자'여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자신이야말로 세상의 거친 풍파에 치여 피투성이가 된, 하나님의 도움이 절실한 '어린 양'이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목사님이 병원 바닥에서 눈물을 흘리며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저는 목자가 아닙니다. 저는 주님의 품이 필요한 철부지 어린 양일 뿐입니다. 저를 안아주십시오."
그렇게 시선을 목사님 자신 에게서 하나님께로 돌려 그분의 품을 바라보았을 때, 놀라운 영적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상황은 변한 것이 없었지만, 감당할 수 없는 평안이 밀려 왔습니다. '내가 교회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강하신 하나님이 나와 교회를 붙들고 계시는구나!'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날 밤 아이의 열이 기적처럼 내렸고, 목사님은 다시 일어설 영적인 새 힘을 얻어 교회를 잘 섬길 수 있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문제를 바라볼 때는 지옥이었지만, 목자 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을 때 그 자리는 이미 하나님의 품, 천국임을 믿습니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나를 낙심하게 만드는 환경입니까, 아니면 나를 품으시는 하나님이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볼 때, 세상의 강한 대적은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볼 때, 세상에서 상처받고 찢긴 우리의 심령은 목자 되신 주님의 따뜻한 가슴 속에서 치유될 것입니다.
한 주간, 삶의 자리에서 거친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고개를 들어 강하고 부드러운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시기를 축복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