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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차 역사

보이차 연대 - 동경호 4

작성자다향|작성시간12.02.25|조회수309 목록 댓글 2

<출처 - 네이버 블로그 구름의 남쪽>

 

신중국이 들어서고 지주나 그 자식들은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혁등차산 소사축의 딸은 그 중의 한 예입니다.

같은 일은 동경호의 자손들에게도 일어났습니다.

동경호는 대략 1915년 이후부터 두각을 드러냈습니다.

이무와 석병에 각각 생산장과 본사가 있었고

이무의 사장과 석병의 사장은 사돈지간이었습니다.

 

동경호는 오늘날까지도 보이차를 대표하는 차입니다만

1백년 전에도 이무에서 가장 잘 나가는 상표였습니다.

사업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 의방에서 이무로 가는 길에 있는

강에 다리를 놓을 때 동경호에서 공사비의 반을 댈 정도였습니다.

 

 

 

 

석병에 있는 이 대저택은 동경호의 두 사장이 같이 세운 것입니다.

해방 후에 인민병원으로 쓰일 정도였다니 규모가 어지간히 큰 모양입니다.

이 대저택을 세운 때가 동경호의 최전성기였죠,

두 사장의 사이도 가장 좋았고요.

 

하지만 왠일인지 이 저택이 완성된 후에 두 사람은 돌연 원수지간이 되어 버립니다.

원인은 아직까지 알 수 없습니다.

어쨌거나 두 사장은 1938년과 1942년에 각각 죽었습니다.

이 두 사람이 1949년 이전에 죽은 것을 보니 여전히 복이 많았던가 봅니다.

1949년 이후까지 살아있었다면 지주신분으로 혹독한 시련을 겪었을 것입니다.

 

신중국 건국 후 동경호의 모든 재산은 국고로 몰수되었습니다.

물론 저 대저택도 포함되었습니다.

1956년 사회주의 개조가 완성된 후로 개인 차장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동경호라는 이름도 더이상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1966년부터 문화대혁명이 시작됩니다.

전혀 문화적이지 않았던 이 혁명은 10년이나 지속되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중국사람들은 과거의 것이라면 무조건 때려부수며 지냈습니다.

1977년 문화혁명이 끝나고도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중국은 사회주의 공산국가로 경제에 관한 모든 것은 정부에서 계획했습니다.

개인 차장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 보이차는 맹해차창, 하관차창, 곤명차창 등에서

만들어졌습니다...

 

동경호라는 이름이 다시 등장한 것은 2005년도의 일입니다.

이상의 내용을 살펴보면 1970년대에 만들어진 동경호 차는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버젓이 1970년대 동경호 차가 팔리고 있네요...

그것도 놀랄만한 가격에...

 

<출처 - 네이버 블로그 구름의 남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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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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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sircine | 작성시간 12.03.10 ㅎㅎㅎ~~^^
  • 답댓글 작성자다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3.11 1800년대에 만들어진 전차도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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