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벌도리공-
삼국사기 신라본기 시조 혁거세거서간조에는 "시조는 성이 박씨요 휘는 혁거세이다......
고허촌 촌장 소벌도리공(소벌공 이라고 하기도 한다)이 양산 기슭에 있는 나정 이라는 우물(井) 옆 숲(林) 사이에서 말(馬)이 무릎(膝)을 꿇고 울고있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가까이 가 보았더니 어느새 말은 보이지 않고 다만 큰 알(卵) 하나가 있어서 그 알을 깨어보니 어린아이(兒)가 나와(出) 데려다가 길렀다.
이 아이의 나이가 10여세가 되자 유달리 숙성하였고 6부의 사람들은 그의 출생이 신기하다 하여 존경하며 따르다가 이에 이르러 임금으로 세웠다......."라고 되어있다.
한편 삼국유사 신라 시조 혁거세왕조에는 "옛날 진한 땅에는 여섯 마을이 있었다.......둘째는 돌산 고허촌이니 촌장은 소벌도리이다.
처음에 형산에 내려왔으니 이가 사량부 정씨의 조상이 되었다.
지금은 남산부라고 부르는 곳으로 구량벌, 마등오, 도북, 회덕 등 남쪽 마을이 여기에 속한다.(지금이라고 한 것은 고려 태조 때 설치한 것이다. 이하 모두 같다)........"라고 했다.
또 삼국사기 신라 본기 유리이사금조에 "유리 이사금 9년 봄에 6부의 이름을 고치고 그들에게 각각 성(姓)을 주었다.
양산부는 양부로 고치고 그 성을 이씨로 하였으며
고허부는 사량부로 고치고 그 성을 최씨로 하였으며
대수부는 점량부(모부 라고도 함)로 고치고 그 성을 손씨로 하였으며
간진부는 본피부로 고치고 그 성을 정씨로 하였으며
가리부는 한비부로 고치고 그 성을 배씨로 하였으며
명활부는 습비부로 고치고 그 성을 설씨라고 하였다"
라고 기록하여 소벌도리공의 후손인 고허부를 사량부로 고치고 그들에게 최씨 성을 주었다고 했다.
한편 소벌도리공의 선조에 대하여 삼국사기는 "이보다 앞서 고조선 유민들이 산골짜기 사이에 나누어 살아 여섯 개 마을을 이루었으니...."라고 설명하여 소벌도리공을 비롯한 여섯 마을 사람들 모두가 고조선의 유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