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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유대 사역(1) ▪ 연 대 : 주후 29 ▪ 성 경 : 요 7-10
31.예루살렘-초막절(요 7:2,11-52)
초막절이 되어 사람들이 손에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가지, 탐스러운 열매 하씩을 들고 예루살렘으로 향하였다. 예수님은 술렁거리는 축제분위기가 있는 예루살렘을 처음부터 가지 않으시고 중간이 되어 성전에 올라 가셨다. 시간이 지날수록 예수님의 존재에 위협을 느낀 바리새인들과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보호하는 발언을 하였다가 따돌림만을 당한다. 그리고 갈릴리 사람들을 무시하는 발언이 공공연히 행하여졌다.
찾아보라.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하느니라 (요 7:52 중에서)
그러나 이 말은 선지서를 잘못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요나도 갈릴리 출신이었고 이사야도 가장 위대한 선지자가 갈릴리 지역(스불론과 납달리 땅)에 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사 9:1)
명절 끝날 곧 초막절이 최고조에 오르는 큰 날에 예수님이 큰소리로 외치며 말씀하신다.
초막절은 한 주간이지만, 거기 하루를 더하여 8일간 지켰다(레 23:36: 민 29:35). 대체로 첫 비가 내리는 초막절 기간에 유대인들은 매일 실로암못에서 물을 길어 가지고 행렬을 지어 성전 문에 돌아와서 번제단에 물을 붓는 행사가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선조들이 광야 생활을 할 때 반석에서 솟아 나온 물마시며 살았다는 것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한다.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은 초막절 행사와 관련된 영적 생수에 관한 즉흥 ‘시’를 낭송 하셨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내게로
와서 마시라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강이 흘러나리라 (요 7:37-38)
초막절 행사가 끝나고 예수님은 얼마동안 예루살렘 지역에 계셨다. 감람산 동쪽에 있는 베다니에서 머무셨던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 문제를 해결하시고 빛으로 오신 자신과 그리스도 문제에 대하여 가르치시고 논쟁하신다. 초막절 마지막 날 성전을 밤새도록 빛으로 밝히는 축제가 있다. 이를 염두에 두시고 분명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선언하셨을 것이다.
이 선언 후에 바로 소경을 고치심으로 빛되실 뿐아니라 생명의 빛을 주시는 분이심을 확증하신다(요 1:4)
9장에 소경 된 사람을 고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사건은 물과 빛이 하나되는 사건이다. 예수님이 어디서 소경을 고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소경이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실로암까지 가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을 것이다. 실로암으로 가는 길은 경사진 계단 길이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에서 진정한 샘은 실로암 뿐이었다. 이 실로암은 얼마 전 초막절 행사가 있었던 장소이기도 하다. 사실 실로암은 샘이 아니다. 샘의 근원은 실로암의 북동쪽 기드론 골짜기에 위치한 기혼샘이다.
예루살렘 성의 유일한 샘인 기혼샘은 다윗성의 동쪽기슭에 위치하였으나 적의 침입에 자주 노출되었다. 그런 이유로 히스기야 왕이 앗수르 침략을 예상하고 수로를 뚫어 성밖의 물을 큰 성안으로 끌어 들였는데 이 때 물을 모은 저수조가 실로암 연못이다. 기혼샘에서 실로암까지 이르는 히스기야 터널의 길이는 533m이다. 예수님 시대에 이 물을 저축하던 못을 실로암이라고 부른 것은 기혼샘의 물을 그 못까지 보냈기 때문이다. 실로암이라는 말은 히브리어의 ‘실로아흐(חלשׁ)’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기혼샘에서 나온 물은 또한 다윗성의 동쪽 가장자리, 기드론 계곡을 따라 난 약 400m에 달하는 계곡을 따라 난 실로암 터널을 따라 나가기도 한다. 이 터널은 기드론 계곡을 경작하기 위해 필요한 물을 공급할 목적으로 만들어졌고 우기 때에는 기드론계곡으로부터 물을 끌어들여 집수할 수 있도록 만들어 졌다. 현재까지 발굴된 터널의 길이는 약 120m 된다. 그러므로 실로암 연못은 성안에 위치했고 실로암 터널과 망대는 성밖에 위치하였다.
실로암은 하나님을 버리는 이스라엘을 책망할 때 사용되었고 예수님은 자신을 거부하고 죽이려하는 유대인의 시도가 있은 후에 실로암의 역사적 의미를 부각시키신다.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암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니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 위에 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곬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창일하고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의 펴는 날개가 네 땅에 편만하리라 하셨느니라 (사 8:5-8)
예루살렘에 계실 동안 예수님은 유다의 대표적인 사업인 목양 사업을 잊지 않으셨다. 다윗이 목동생활을 하였던 유대지역에서 예수님은 양의 우리 비유를 하셨고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양의 우리에서 태어나 양들과 함께 동고 동락 그들과 같이 낮아 지셨다(양과 목자의 관계는 마태복음을 참고하라).
32. 70인 파송(눅 10:1-24)
열두제자를 파송하셨던 예수님은 후반기에 오면서 다시 70인의 제자들을 파송하신다. 이 전도훈련이 어느 지역에서 일어났는지 가늠하기가 힘들다.
다만 예수님이 언급한 지명들이 소돔, 고라신, 벳새다, 가버나움, 두로와 시돈인 점을 보아 예루살렘 이북지역으로 추정된다. 염해와 가까운 요단강 그처부터 갈릴리 북쪽까지 이르는 지역에 제자들을 넓게 파송한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이 사역을 마치실 때가 되자 제자들에게 실습을 시키는 시간을 자주 가지셨다.
예수님의 교육법은 이론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습을 겸하는 훈련이었다.
10 어느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거리로 나와서 말하되...
12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 날에 소돔이 그 동네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13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14 심판 때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눅 10)
예수님의 유대사역(2)▪ 연 대 : 주후 29년 후반
선한 사마리아인(눅 10:25-37)
예수님은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이동하실 때 벧산에서 요단동편으로 강을 넘고 남쪽으로 내려와 여리고 앞에서 다시 요단강을 넘어 여리고로 가셨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찍이 출발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가실 때도 마찬가지였기에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를 가실 때는 유대광야를 통과해야만 했다.
그 길은 쉬운 길이 아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눅 10:30)
현장에 가보면 누구나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이 험하고 무서운 곳인가를 알 수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을 이해할 때 이런 환경을 고려하여야 한다. 이웃을 도와준다는 것은 평범한 상황에서 자신이 여유가 있을 때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광야길에서 자신도 언제 강도를 만날지 모르는 두렵고 떨린 상황에서 다른 이를 도와주는 것이다. 이웃이란 본능을 억누르고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타인을 도와주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손해를 감수했고 실제로 여관으로 데려가 대접을 함으로 손해를 보고 끝까지 보살펴 주었다. 현대는 이런 이웃을 필요로 한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 15:13)
수전절(요 10:22-39)
예수님은 초막절부터 시작하여 두 달 가량을 예루살렘에 머무시면서 사역하셨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이르신 "수전절"은 유다의 마카비가 성전을 청결케 것을 기념하여 지키는 절기다(마카비 4:51, 마카비 10:5-8).
히브리어로 ‘하누카’라고 불리는 수전절은 유대력으로 가슬르(유대음력 9월) 25일로 우리나라 음력 10월 25일로 크리스마스와 비슷한 시기에 지켜질 때가 많다. 주전 2세기 마카비 가문이 주동이 되어 헬라 사람으로부터 예루살렘 성전을 되찾고 성전을 청결케 한 날이다. 성전을 청결케 하는 동안 하루밖에 못 사용하는 성전 촛대의 기름이 정신없이 일하던 8일 동안 타주었다고 하여 8일간 기념하며 하루에 1개씩 촛불을 켜간다. 이 때 사용되는 촛대는 총 9개지만 가운데 하나는 불쏘개 용도로만 사용한다. 이 때 사용하는 촛대를 하누키아라고 한다.
예수님도 이 절기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셨다(요 10:22-42).
현대인은 이 절기를 기름의 절기로 생각하여 튀긴 도너스를 즐겨먹고 마카비 가문이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성경을 읽을 동안 감시병으로 아이들을 두어 팽이를 돌리게 하였다고 하여 팽이 돌리는 풍습이 많다.
예수님이 말씀을 전하신 곳은 주로 "솔로몬 행각"으로 겨울비를 피하기도 적당 했지만 모여 토론하기 좋은 시설이었으므로 소규모 집회 때 많이 사용되었다.
예수님의 사역의 첫 방문과 마지막 방문이 모두 성전청결과 관계된 사건이 있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예수님이 수전절에 오신 것은 분명 거룩을 소중이 여기셨음을 암시하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거룩을 통한 영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만 이루어진다. 그 사실을 예수님은 이 시기에 선언하신다.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
예수님의 관심은 우리의 성전이 청결하고 거룩하 하나님의 영원한 처소에 들어가는데 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들어갈 때도 수없이 거룩을 요구하셨던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의 거룩을 요구하고 계시다.
우리의 더러운 신을 벗고 예수님이 일하시도록 우리를 비우자.
33. 베레아-물러나심-잃은 것을 찾으심(요 10:40-42, 눅 13:22-17:10)
예수님은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단강 건너편에 있는 베다니 쪽으로 물러가셨다. 이 지역을 베레아 지역이라고 부른다. 베레아 지역이 어디인가 지도에서 확인하라.
알렉산더 대왕이 지중해 주변을 정복하면서 펼친 정책 중 하나가 이주정책이었다. 그리스지역에 있던 헬라인들이 대거 이주해와 요단동편에 헬라화 된 도시를 만들었을 뿐아니라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여 그 도시에 자신들이 살던 도시 이름을 가져다 붙였다. 특히 헬라화가 많이 된 지역일 수로 이러한 이름이 많았다; 펠라, 스키토폴리스, 빌라델비아 등. 베레아라는 이름도 마게도니아에 있는 도시이름이다. 그 이름이 요단강 동편 유대지역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에 나오는 베뢰아와 혼동하지 말라. 예수님 당시 이 지역은 갈릴리를 다스리던 헤롯 안디바스가 다스렸고 이곳에서 헤롯은 세례 요한을 잡아 베레아 지역에 있는 막켈라오 요새에서 그를 죽였다.
다른 복음에서는 이 지역에선 활동하신 예수님의 사역을 거의 다루지 않았으나 누가는 많은 지면을 할당하여 베레아 사역을 기록하였다.
세례 요한이 잡힌 지역에 왔을 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베레아 지역을 떠나 헤롯을 피하라고 한다. 좋은 충고라기보다는 예수님의 비겁한 모습을 드러나게 하려는 음모였다(눅 13:31).
바리새인의 음모는 계속되었다. 식사를 초대하고서도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가 시험하였다. 예수님은 식사하실 때도 사람들을 계속 가르치셨다. 식사자리에 맞게 겸손한 자리에 앉을 것을 가르치셨고 잔치에 대한 비유를 말씀하셨다.
잃은 것을 찾으시는 비유도 많이 말씀하셨다.
고위층이 베푸는 큰 잔치는 주로 유대지역에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 말씀이 유대 지역에서 일어 난 사건 같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종들을 보낼 때 ‘산울’로 가라는 말은 이 점을 뒷받침하여 준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눅 14:23)
요단강 동편의 베다니 부근은 세례 요한이 세례를 주던 곳이다. 세례 요한은 가고 없지만 세례 요한이 전파한 그 인물이 다시 와서 같은 장소에서 말씀하고 계셨다. 모세와 엘리야, 여호수아가 관계된 역사적인 장소에서 겨울을 나시고 계셨다.
세례 요한을 죽였던 헤롯 안디바스도 세례 요한이 사역했던 장소에 그보다 더 능력 있는 인물이 나타나 사역한다는 말에 간담이 서늘했을 것이다.
34. 베다니-나사로(요 11:1-44)
요단강 동편에 있는 베레아지역의 베다니 근처에 계시던 예수님은 예루살렘 베다니에서 온 사람을 만나신다(두 베다니는 다른 곳이다).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가 위급하다는 전보가 왔다. 그러나 더 큰 뜻을 품으셨던 예수님은 이틀을 그곳에 더 계셨다. 제자들은 얼마 전 유대인들이 죽이려 했던 일을 생각하고 예수님이 신변상의 이유로 움직이지 않으시는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틀 뒤에 출발하려하자. 꼬집어 말하기 좋아하는 도마가 한 마디 던진다.
디두모라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요 11:16)
예수님이 베다니에 갔을 때는 이미 나사로가 죽은지 4일이 되었을 때다. 예수님이 나사로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들었던 날 나사로는 죽었다. 예루살렘의 베다니에서 나사로가 위급하다는 소식을 가지고 간 전령은 여리고를 내려가느라 1일을 소요하고 여리고에서 요단강 건너편까지도 한 나절 이상 걸렸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틀을 그대로 유하시고 베다니까지 2일이 걸렸으니 소식을 전한지 6일 만에 예수님은 오신 것이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무덤을 찾아가신다. 유대는 더운 곳이기 때문에 1일장을 지낸다. 더위에 시체가 바로 부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부패하기 쉬운 돼지고기 종류와 죽은 고기를 먹지 말라고 하셨다. 길을 가다보면 가끔 사고로 죽은 양이나 개를 보게 되는데 이 사체들은 강한 햇볕에 쉽게 부패하여 수 시간 내에 복강이 부풀어 오는 것을 볼 수 있다. 4일이 지난 시체는 그 썩는 냄새가 주위에 진동하게 만든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무덤을 돌로 막고 그 틈새를 회로 막게 된다. 그래서 회칠한 무덤이라는 말은 겉은 멀쩡해도 속이 시체 썩는 냄새로 진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이런 상황을 가지고 바리새인들을 저주 하셨다.
예수님은 사역 말기에 완전이 죽어 부패한 나사로를 살리시면서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이 되심을 증거하셨다.
두 번 죽어야하는 나사로는 불쌍하지만? 그의 부활은 예수님이 잠시 죽었던 야이로의 딸이나, 나인성 과부의 아들과 차원이 다른 부활의 주가 되심을 선언하신 것이다.
35. 에브라임-피신(요 11:54)
나사로가 다시 살아났을 때 민중들은 기뻐했지만 바리새인들은 큰 위협을 느꼈다. 기적의 효과는 긍정과 부정으로 나타났다.
믿지 않으려는 사람은 어떤 기적을 일으켜도 그것을 통해 더 해하려 할 뿐 기적이 사람들을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다만 믿으려는 사람의 믿음을 더 강화시킬 뿐이다. 그렇게 많은 기적을 경험했던 사람들이 예수님이 죽으실 때 끽 소리 하나내지 못한 것을 보면 사람이 얼마나 간사한가를 알 수 있다.
최고의 기적인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 예수님이 살아난 기적도 완악한 바리새인과 유대지도자들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없었다.
믿음은 은혜일뿐이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위협을 느끼신 예수님 일행은 유대광야와 접해 있는 에브라임이라는 마을로 가신다. 예수님이 가시던 길은 족장의 도로로 너무 많은 사연이 있었던 길이다. 예수님은 사울의 고향 기브아를 지나며 베냐민 지파의 전쟁(삿 19-21)과 사울의 일생과 다윗과의 관계 등을 생각했을 것이다.
거기서 조금 지나 사무엘의 고향 라마를 지날 때는 사사시대를 마감하던 사무엘의 고민을 이해하려 했을 것이다. 또 조금 지나 미스바에 이르렀을 때는 여자사사 드보라와 사무엘의 회개성회를 기억하며 이스라엘의 대각성을 다시 기대 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벧엘을 지날 때는 야곱의 꿈과 여로보암의 금송아지를 기억하셨으리라.
위 사건들 외에도 예수님이 지나신 베냐민 고원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끝없는 전쟁터였다. 에브라임 지파와 유다지파의 힘겨루기 장이었던 것이다.
사역을 마치기 전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역사 중 가장 사연이 많았던 땅을 지나셨다.
예수님이 도착하신 구약시대에 오브라(기드온의 오브라가 아니다)로 불리던 에브라임은 여리고에서 에브라임 산지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다. 구약의 아이와 벧엘과 가깝고 실로와 그리 멀지 않은 장소이다.
특별히 아브라함이 롯과 헤어진 후 축복을 받았다는 바알하솔산 바로 아래 에브라임이 위치한다.
뿐만아니라 베냐민 지파가 기브아 전쟁 후 패하여 숨어 있었던 림몬 바위와 매우 가까운 곳이 에브라임이다(삿 20:47).
수많은 역사적인 사건이 있었던 장소에 예수님은 한 동안 은둔하셨다. 위협을 피해 있던 베냐민 자손처럼, 그러나 축복의 약속을 품은 아브라함처럼 에브라임에 머무셨다.
예수님이 실로 가까운데 계심은 의미있는 사건이다.
예수님이 말씀 자신이시고 하나님이시기에 그 생애 가운데 언약궤가 머물렀던 장소는 반드시 한 번씩 들르신다. 예수님 사역 말기에 실로 근처에 머무시면서 그분이 성전되시고 말씀되심을 다시 확인 시키심이 아닐까?
예루살렘으로 오르심 ▪ 연 대 : 주후 30년 초
36. 사마리아-열 문둥병자(눅 17:1-19)
에브라임에서 갈릴리로 잠시 물러나신 예수님은 유월절을 맞아 마지막 예루살렘 여행을 떠나신다.
17장 11-19절은 갈릴리와 사마리아 사이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정확히 말하면 이스르엘 평야를 빠져나가는 하롯계곡일 것이다. 이스르엘 평야 동쪽에 자리 잡은 3개의 산(다볼, 모레, 길보아) 중에 길보아산에서 흘러나오는 하롯샘은 기드온이 300용사를 뽑은 장소로 유명하다. 이곳에서 시작한 물은 길보아산 기슭에서 나오는 수십 개의 샘과 합치며 동쪽 요단강가로 흘러간다. 이 계곡을 하롯계곡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 개념으로는 작은 평야로 보는 것이 좋다. 넓게 펼쳐진 평야 남쪽에는 사마리아가 자리 잡고 북쪽으로는 갈릴리가 위치한다.
이 지역은 구약의 사울과 블레셋이 싸워 사울이 최후를 맞은 전쟁터였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기드온과 미디안이 싸운 장소이기도하다. 피로 얼룩졌던 마을들이었으나 후에 모레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수넴의 한 여인은 엘리사를 잘 공경하여 아들을 얻었고 아들을 다시 살게 하는 은혜를 입었다. 그러나 수넴의 맞은 편 이스르엘 성에서는 아합의 집안이 나봇의 포도원을 뺏으려 살인하는 등 갖은 죄악을 다하다 예후의 혁명으로 아합의 아들과 이세벨, 그의 추종자들 모두가 죽게 된다.
이와같이 성경의 중요한 사건들의 배경이 되었던 지역을 지나간 이방인 장군이 있었다. 아람(수리아)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자신의 문둥병을 고치려고 이 길을 지나 수도 사마리아에 있던 엘리사를 찾아갔다. 그는 엘리사의 말씀만을 듣고 다시 그 길로 돌아와 요단강에서 몸을 씻고 깨끗함을 받았다. 요단강에서 사마리아까지는 가까운 길이 아니다 하룻길은 족히 넘는다. 그러나 나아만은 자신의 병이 나은 것을 감사하려고 사마리아까지 돌아와서 엘리사에게 인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섬길 것을 다짐하였다.
이 지역에 나아만의 문둥병을 받은 게하시의 후손이 많았는지 문둥병자 10명이 예수님의 고쳐 주심을 바라며 소리 질렀다. 예수님은 엘리사처럼 말씀으로 명령하셨다. 그들은 제사장에게 자신들의 몸을 보이기 위하여 요단강을 넘어 예루살렘으로 가려고 나아만이 갔던 길을 가고 있었다. 나아만이 고침을 받았던 요단강에 몸을 잠그며 강을 지나려 할 때였을까, 그들은 몸이 나은 것을 깨달았다.
10명 중 유대인 9명은 그 시로 자기 갈 길을 가고 오로지 나아만과 같은 이방인 사마리아인만이 나아만이 감사하려고 돌아왔던 그 길을 따라 예수님께 나아왔다. 결국 육신과 영혼 모두 고침을 받은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뿐이었다.
예수님이 고향 나사렛에서 하신 말씀이 다시 메아리쳐 오는 순간이었다.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니라 (눅 4:27)
37. 여리고-부자 청년 (마 19:1-20:18: 막 10:1-31:눅 16:20-18:43)
예수님은 갈릴리의 사역을 모두 마치시고 마지막 사역을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향하신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사역을 갈릴리와 예루살렘으로 구분하고 있지만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사역하실 동안 수차례 예루살렘을 방문하셨다. 유대인의 전통에 따르면 예수님도 1년에 3번(초막절, 유월절, 오순절)은 예루살렘에 갔어야 했다. 그리고 초막절과 유월절 사이에 있는 수전절에도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을 보아(요 10:22) 예수님은 공생애기간 동안 1년에 서너 차례 예루살렘을 방문했다. 그러나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이런 자세한 방문을 기록하기보다는 지역별로 중요한 사건을 한군데 모아 기록하였기에 우리가 학습하는 마태복음은 예수님이 공생애 동안 예루살렘을 처음으로 방문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예수님은 이미 수차례 예루살렘을 방문 하셨고 이제 마지막 방문을 하시러 올라가시는 중이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정을 살펴보자.
예수님은 갈릴리 사역을 모두 마치시고 예루살렘으로 향하셨다.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려면 어떤 길을 택하여야 할까? 마 19:1은 그 경로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에서 떠나 요단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마 19:1)
예수님은 갈릴리를 떠나 이스르엘 평야로 나오신 다음 스키토폴리스(벧산) 앞에 있는 요단강을 넘어 여리고 맞은 편 요단강에 와서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 지역에 이르렀다. 마태는 이 지역을 ‘유대 지경’이라고 말하고 있다.
요단강에서 여리고에 이르는 거리는 그렇게 가깝지 않다. 그러나 갈릴리 사람들과 요단동편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향하려면 이 길을 가야 했으므로 사람의 왕래가 많은 도로였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여리고 지역에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은 군사적으로 중요하기도 했지만 세금을 거둘 수 있는 요지이기도 했다. 그래서 헤롯이 왕이 되기 전, 하스모니안 왕가 때부터 원래 여리고(구약시대 여리고)에서 남동쪽으로 가다가 산지로 올라가는 시점에 궁을 세워 놓고 예루살렘에 오르는 길을 관리했다. 헤롯은 이 중요성을 놓치지 않고 그 궁을 더 확장하고 이 궁을 위하여 10km 가까이 떨어진 파라 샘에서 물을 끌어오기까지 했다. 헤롯은 이 궁궐을 자신의 겨울 궁전으로 삼았다.
예루살렘은 해발 700m 정도에 있기에 여름에는 시원했지만 겨울에는 추운 약점이 있다. 그래서 역대 이스라엘 왕들이 그렇게 해 왔듯이 헤롯은 예루살렘보다 낮은 지역인 여리고(해발 약 -250m)에 겨울궁전을 짓고 겨울을 났다. 그러다 보니 일반인들이 살던 구약시대의 여리고와 관원들이 사는 신약 여리고가 양분되어 존재하였다. 신약에는 두 여리고가 존재하게 된 것이다.
예수님이 유대 지경에 들어오셔서 만나는 문제들은 갈릴리에서 만난 사건들과 성격이 조금 달랐다. 율법과 장로의 유전에 관심이 많았던 예루살렘 지역의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다가와 율법에 관계된 문제를 물어보며 예수님을 시험하였다.
그 첫 번째가 이혼에 관한 문제였고 다음이 영생을 얻는 방법에 관한 질문이었다(마 19).
유대 지역 중에도 여리고 지역에 들어오신 예수님께 닥치는 사건들은 여리고의 주변 상황들을 잘 반영한다. 동서 무역으로 부유하게 된 여리고 지방에는 부자들이 많았고(예: 부자 청년), 날씨가 덥지만 계속 흘러나오는 오아시스로 인해 물이 풍족하여 포도원이 많았다(마 20:1-16). 엘리야와 엘리사가 선지자 생도를 가르치던 신학교가 여리고 지역(길갈 포함)에 있었다. 예수님이 오시기 수백 년 전 엘리사가 여리고에서 샘을 치료하는 사건을 보아도 물이 어느 정도 풍족하였는지 상상할 수 있다.
엘리사가 여리고에 머무는 중에 . . .
그 성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우리 주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터는 아름다우나 물이 좋지 못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엘리사가 가로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며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 좇아 다시는 죽음이나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짐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그 물이 엘리사의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날에 이르렀더라 (왕하 2:18-22)
예수님이 말씀하신 포도원과 품꾼들 비유에서 나오는 품꾼들의 불평은 그 지역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말이다. 먼저 온 품꾼들이 나중 온 품꾼들과 동일한 품삯을 받으며 하는 말을 보라.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마 20:11-12)
여리고 지역은 포도를 수확하는 여름에는 매일 40도가 넘는 더위로 사람이 기진하기 십상인 곳이다.
38. 바디메오(마 20:17-34: 막 10:32-52: 눅 18:31-43)
예수님은 일반인들이 살고 있던 구약시대 여리고를 떠나 이제 신약시대 여리고를 향해 올라가신 후 예루살렘으로 향하신다. 그래서 마 20:17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 하실 때에’라고 기록하고 있다. 여리고는 해발 -250m이고 예루살렘은 해발 700m 정도라는 것을 기억하라. 한 나절에 이 높이를 올라가야 하니 당연히 ‘올라간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여리고까지 오신 예수님은 이제 유대산지를 올라갈 준비를 하신다. 여리고에서 예루살렘까지는 고도 1,000m 정도를 올라가야 한다.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 한 맹인이 소리 질러 예수님을 찾았고 예수님은 그의 소원대로 그의 눈을 뜨게 해 주셨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문제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마가복음에 의하면 이 때 만난 소경은 바디매오이다. 그런데 이 장면을 설명하는 3복음서의 이야기가 일치하지 않는다.
저희가 여리고에서 떠나갈 때에 큰 무리가 예수를 좇더라(마 20:29)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막 10:46)
여리고에 가까이 오실 때에 한 소경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눅 18:35)
마태와 마가는 예수님이 여리고를 나가시다가 바디매오를 만났다고 하였고 누가는 여리고에 가까이 오시다 예수님이 바디매오를 만났다고 한다.
왜 이런 모순이 발견되는가?
이것은 여리고 지역의 지리를 이해하면 간단히 해결된다. 헤롯의 겨울궁전이 있고 행정관청이 있었던 신약시대의 여리고(T.Abu-el-Alaiq)는 서민들이 살던 구약시대의 여리고( T. es-Sultan)에서 약간 서쪽으로 올라가 위치하고 있었고 주민들은 구약시대 여리고에 많이 살았으나 행정적인 면들은 신약시대 여리고에서 이루어 졌다.
복음서 기자들이 어디에 위치하여 성경을 기록하였느냐가 여리고에서 나가느냐, 혹은 들어오느냐를 결정한다. 유대인이었던 마태와 마가는 유대인이 많이 살았던 구약시대 여리고를 진정한 여리고로 인정하여 구약시대 여리고에서 서서 성경을 기록하였기에 예수님이 여리고에서 나가다가 소경을 만났다고 적었고 이방인 누가는 삭개오같은 소외된 사람들 입장에 서다 보니 신약시대 여리고를 기준하여 성경을 기록하여 예수님이 신약시대 여리고로 들어오다가 소경을 만났다고 기록하였다.
이 한 부분만 보더라도 누가가 어떤 관점에서 성경을 기록하였는가 알 수 있다. 성경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예수님은 이와같이 여러 관점에서 조명되었다.
이 노중에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이야기 하지만 제자들 주변 사람들은 권좌에 오를 생각만 하고 차라리 소외당하고 예수님의 복음을 듣지도 못한 소경이 눈을 뜨고 예수님을 따라 나선다. 방금 말씀하신 비유의 결론으로 하신 말씀이 그대로 적용되는 순간이다.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마 20:16)
삭개오(눅 19:1-10)
신약시대 여리고에 들어가신 예수님은 이곳에서 세금을 거두는 세리들의 우두머리인 세리장 삭개오를 만났다. 그는 키가 작아 돌무화과 나무에 올랐다가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예수님을 맞이하였다. 여리고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상인들의 세금을 받는 요지였다. 어떻게 보면 유대인들의 가장 많은 돈이 오갔던 장소라 할 수 도 있겠다. 이집트의 여왕도 이 지역을 탐내어 얼마동안 차지했던 지역이다. 이곳의 세리는 일반 수입으로도 부유해 질 수 있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 후 완전히 회심하였다. 돌아온 탕자였다. 그의 소유 절반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나머지 남은 것은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배를 갚겠다고 하였다. 그러면 자신의 모든 재산을 다 내놓겠다는 말이다.
여기서 삭개오는 부당하게 빼앗긴 사람에게 본래의 것의 4배를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는데 율법에 의하면 남의 것을 도적질한 것은 4배로 갚아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출 22:1: 삼하 12:6).
사람이 소나 양을 도적질하여 잡거나 팔면 그는 소 하나에 소 다섯으로 갚고 양 하나에 양 넷으로 갚을지니라 (출 22:1)
따라서 삭개오의 이 같은 선언은 당시 율법이 정하는 도적질에 상당하는 배상을 하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삭개오 자신이 그 같은 정도의 죄를 범하였음을 고백하는 셈이다. 삭개오의 파격적인 결단은 자기중심적 삶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새로이 방향을 바꾸는 전적인 회개의 표시라고 할 수 있다. 참된 회개는 죄에 대한 참회나 단순한 고백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행위를 동반해야 한다.
방금 예수님을 만났던 어떤 부자 관원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묵상
여리고를 떠나기 전에 여리고에 관련된 사건들을 몇 개 살펴보자.
여리고는 여호수아 첫 번째로 점령한 가나안 도시다. 처음 것은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법이다. 여리고는 맏물이었으므로 여리고에 있는 모든 물건은 하나님께 드려야 했다. 그러나 유다지파의 아간은 여리고의 현란한 물질에 눈이 어두워 여리고 물건을 빼돌리다가 이스라엘을 패하게 하고 자신도 죽음을 맞게 되었다(수 7).
그 후 사울은 사무엘의 명령을 받고 아말렉을 멸하러 갔다. 그러나 사울도 아말렉의 물건들을 탐내어 좋은 것만 택하여 여리고 지역 길갈로 가져왔다. 이 사건으로 사울은 하나님이 주신은 왕권에서 멀어지게 되었다(삼상 15).
아간과 사울 그리고 부자 관원, 모두 여리고의 풍요로움에 빠져 롯의 아내와 같이 되었다.
이 모든 사건은 하나님의 것(헤렘)을 범한 일이다.
또한 가나안 초기생활과 왕국의 초기를 다루고 있다.
여리고에서 하나님의 것을 자신의 욕심 때문에 범한 사건은 결국 부자 청년 관원을 보며 극복되지 못할 것처럼 보였으나 예상치 못한 인물인 세리 삭개오에 의하여 역전되었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의 목적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여리고의 저주는 삭개오로 인하여 극복되었다.
오늘 물질문명으로 하나님의 것을 자기 것으로 주장하는 헤렘의 범죄를 극복하여 역전시킬 사람은 누구인가?
에벤에셀 하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