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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주차 논술] 책임질 수 있는 자만이 ‘태극기를 태울’ 자유가 있다.

작성자뇌가섹시한사람|작성시간15.04.30|조회수79 목록 댓글 0

 

논제: 태극기를 태운 청년은 처벌 받아야 하는가? 표현의 자유로 인정받아야 하는가?

 

책임질 수 있는 자만이 태극기를 태울자유가 있다.

 

 

   여기 평소 곡물중개상이 가난한 사람에게서 지나친 이득을 취한다고 생각하는 A가 있다. A는 부조리함을 느끼고 본인의 의견을 신문지상에 게재한다. 같은 의견을 가진 B가 있다. B는 곡물중개상 집 앞에 모여든 폭도를 상대로 의견을 개진한다. 같은 대상에게 분노를 느낀 AB. 둘은 모두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했다. AB의 행동은 모두 표현의 자유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19세기 영국 철학자인 존 스튜어트 밀은 이렇게 답했다. “A의 행동은 표현의 자유로 인정되지만, B의 행동은 아니다.” ‘표현의 자유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인정되기 때문이다. A의 행동은 곡물중개상을 방해하지 못하지만, B의 행동은 그를 다치게 할 가능성이 높다. 존 스튜어트 밀은 우리가 쉽게 간과할 수 있는 사실을 알려준다. 표현의 자유 이면엔 타인의 권리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사실을.

 

   지난 418,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희생자 추모 집회가 열렸다. 이 날 동원된 경찰 병력은 모두 13700여 명. 행진에 참여한 시민의 수는 5천 명 남짓으로 추산된다. 동원된 병력만 보더라도 과하다라는 느낌을 주는데 거기다 광화문 곳곳을 차로 막는 이른바 차벽을 만들기까지 했다. 이후 이어진 물대포와 최루액 세례는 누가 봐도 과잉진압이었다. 이에 분노한 한 20대 남성은 길에 떨어져 있던 인쇄된 태극기를 주워 불태운다. 다음날, 이 장면은 최고의 판매부수를 자랑하는 조선일보 1면을 장식했다. 사진은 “418일을 보여주는 한 장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SNS를 통해 퍼졌다. 한 장의 강렬한 사진은 사건의 본질을 호도했다. 사진 한 장이 지겹고’, ‘삐딱한세월호 사건 시위자들을 비난할 수 있는 빌미이자, 경찰의 강경진압을 정당화할 수 있는 명분이 됐다.

 

  엄밀히 따지면 이 청년은 처벌받을 수 없다. 처벌은 법의 영역에 속해 있으며, 법은 사회통념이나 도덕과 엄연히 다르다. 법에는 엄격한 기준이 존재한다. 그 기준에 맞지 않을 경우 우리는 한 개인이 통념에 어긋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처벌할 수 없다. 법무부장관은 청년에게 형법 제105조에 해당하는 국기·국장 모독죄가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조항에 따르면 대한민국을 모욕할 목적으로국기를 훼손한 자는 법에 따라 처벌할 수 있다.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목적이다. 청년은 인터넷 매체인 슬로우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공권력에 대한 울분을 참지 못해태극기를 태웠다고 말했다. 청년이 애초에 태극기를 태울 의도가 있었는가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는 집회 현장에서 우연히 종이 태극기를 주웠다. 형법 제105조의 정의와 청년 행동의 고의성을 따져봤을 때 이 남성을 법적으로 처벌할 순 없다.

 

   청년의 행동은 법적 처벌로 이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것이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주었기 때문인가. 아니다. 단지 법이 정의한 불법행위에 해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이 경우 법적 처벌과 표현의 자유를 같은 선상에서 바라볼 수 없다. 처벌받지 않더라도 청년의 행동을 표현의 자유라고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는 뜻이다. 독백이 아닌 이상 공개된 장소에서 하는 표현에는 반드시 수용자가 있다. 표현은 타인과의 관계속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표현의 주체뿐 아니라 수용자와 표현으로 인해 영향을 받을 타인 또한 고려해야 한다. 관계에는 상대에 대한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청년의 행동은 유가족과 집회 참여자에게 폭력적 시위자라는 오명을 씌웠다. 그의 행동은 평화롭게 집회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쳤다. 아무 관계도 없는 타인에게 피해를 준 행동을 표현의 자유로 인정할 순 없다. 표현의 주체에게 표현할 자유가 있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엄연히 피해 받지 않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청년은 유가족과 다른 참여자들에게 피해를 줄지 몰랐다.”고 말할 것이다. 실제로 청년은 타인에게 피해를 줄 의도로 태극기를 태우지 않았다. 허나 충분히 이를 예측할 순 있었다. 남성은 집회에 참여할 만큼 세월호 사건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분명히 세월호 유가족과 집회 참여자에 대한 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르고 있단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가 진행한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한 기자가 라이터를 켜는 걸 도와줬고, 불이 붙자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했다. 청년은 행동 직전 주변에 기자들이 있다는 사실도 인지하고 있었단 말이다. 이 모든 단서를 통해 그는 본인의 행동이 유가족과 집회 참여자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예상해볼 수 있었다.

 

   혹자는 고의가 아닌 피해까지 고려해 청년의 행동을 비판하는 것은 가혹한 처사가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이에 대해 이렇게 답하고 싶다. “모든 상황은 맥락을 벗어나 존재할 수 없다.” 유가족과 진상규명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시민은 현재 다수에게 비난받는 약자다. 그들과 관계된 행동에 있어선 신중한 고려가 필요했다. 자신의 행동이 자칫 잘못하면 절대적 약자인 타인을 더욱 궁지로 몰아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청년은 공권력에 대한 분노로 태극기를 태웠지만, 자신의 분노가 타인에게 미칠 영향까진 생각하지 못했다. 그 또한 순간의 감정에 사로잡혀 쉽게 잊었던 것이다. 태극기를 태울 자유뒤에는 관계된 사람들에 대한 책임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태극기 훼손 사건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한다. “표현할 권리가 있다면, 부당하게 피해입지 않을 권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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