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에서 사회인으로 나아가는 초입에 있는 요즈음.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도 하루에 적어도 한 번 정도는 ‘밥’을 먹을 시간을 만든다. 아무리 바쁘다 한 들 하루 세 끼 챙겨먹을 시간 없으련만, 여기서 말하는 ‘밥’은 단순하게 먹는 행동의 ‘밥’이 아니다. 음식물을 입에 넣어 영양분을 얻는 행위를 넘어, ‘식사’를 하는 시간에 의미가 있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찌개를 하나 앞에 두고 가족들은 도란도란 모여 하루의 피곤을 서로 어루만지는 시간을 가진다. 오랜만에 만난 연인들은 파스타를 서로 오물오물 먹여주며 조심스레 설레는 감정을 공유한다. 그래서 ‘밥’이 가지는 의미는 풍부하다. 밥을 함께 먹는 사람들이 누구냐에 따라, 언제 밥을 먹느냐에 따라,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그 의미는 천차만별이다.
이렇게 천차만별인 ‘밥’의 의미에도 한 가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같이’ 먹는다는 것안에 숨어있는 ‘공유’의 가치가 바로 그것이다. 밥상에서는 협동의 시간이 된다. 경쟁사회, 승자독식 사회라는 무서운 말들이 오가는 우리사회에서 ‘밥’을 먹는 순간만은 젓가락이 오가고, 대화가 오가면서 서로의 감정이 오간다. 고소한 밥 냄새는 코끝을 자극해 긴장을 완화시킨다. 따뜻한 밥의 온기는 마음을 열게 하고 조금은 거슬릴법한 왁자지껄 식당의 소음은 오히려 유쾌하다. 우리가 먹는 밥의 한 숟갈, 한 젓가락 안에는 찰진 밥알들, 오징어 한 조각, 깨소금 약간과 참기름, 그리고 고추장 한 스푼뿐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서 나누는 따뜻한 온정이 숨어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지나가는 말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같이 밥 한번 먹자.”
‘밥 한번 먹을 시간’도 따로 내야하는 사회에서와는 다르게, 학교에서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여 전교생이 똑같은 음식을 먹는다. 이 시간만큼 함께의 가치를 가르치기 좋은 기회가 있을까. 성적으로 서열이 정해지는 한국 학교에서, 1등이든 100등이든 어느 누구나 공부, 경쟁에 대한 스트레스를 가지고 있다는 한국 학생들이 ‘함께’의 가치를 배울 수 있는 순간이 또 언제 있을까. 마음을 열고, 감정을 공유하고, 서로의 온기를 공유 하는 데는 1등도, 100등도 없다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순간이 또 언제 있을까. 함께 나누면서 느끼는 것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다. 학교에서 ‘밥상머리 교육’은 바로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을 이해하게 하는 데 있다. 여기에는 경쟁도, 서열도, 소외도 없다.
내 옆 친구보다 한 문제 더 맞춰야 ‘내신 1등급’을 받을 수 있다는, 독한 ‘경쟁의식’을 배우는 한국 학생들에게 중요 한 것은 비단 ‘공평한 교육의 기회’뿐 만이 아니다. ‘같이’의 가치이고 ‘공유’의 즐거움이다. 그리고 그 가치와 즐거움은 모두에게 평등하게 분배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평등은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른 상대적 평등이 아니라 모두가 평등한 절대적 평등이다. 모두가 같은 조건 안에서 교류 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가졌냐가 아니라 자기 자신 있는 그대로 타인과 공감의 경험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그래서 ‘무상급식’은 모든 아이들이 밥을 먹을 수 있는 권리를 보장받는 것에 한하는 것이 아니다. ‘다 같은 밥을 먹을 권리’는 모든 학생들이 함께 우리 사회에서 '더불어 살아갈' 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