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제. KBS 일베 기자 임용에 대한 본인의 생각 제시.
신뢰를 위해 신뢰를 저버리다. 소탐대실, KBS의 이해할 수 없는 선택
이것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기업, 그 외 모든 관계를 이어주는 기반이다. 따라서 이것이 깨지면 돈독했던 관계는 위태로워진다. 이것을 쌓아올리면 사람, 돈, 명예 모든 것이 뒤따른다. 이것을 얻는 덴 오랜 시간이 들지만, 잃는 것은 한 순간이다. 이것은 무엇일까? 바로 신뢰다. 신뢰. 타인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선 오랜 시간 기대를 충족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능력과 노력이라는 두 요소가 필요한 고된 작업이다. 친구라면 의리를, 연인이라면 변치 않는 사랑을, 기업이라면 소비자가 기대하는 이미지를 오랫동안 이어가야 한다. 방송이라면 어떨까? 공정성, 공익성, 창의성 같은 가치를 꾸준히 추구해야 한다. 특히, 공영방송이라면 시청자가 으레 기대하는 공정한 보도, 공익적 프로그램 제작에 정성을 쏟아야 한다. 그것이 소중한 수신료에 보답하고, 신뢰를 쌓는 길이다.
지난 2월, KBS엔 한 차례 소동이 벌어졌다. 신입으로 선발된 42기 수습기자 중 극우 성향 사이트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 회원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사건은 해당 기자가 KBS 기자만 접속할 수 있는 ‘블라인드앱’에 “여직원들이 생리휴가를 가려면 생리를 인증하라.”는 게시물을 올린 뒤 벌어졌다. 전에 없던 비상식적 발언에 성난 기자들은 해당 기자의 신상을 캤고, 그가 '일베' 유저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충격적인 일이었다. 국민의 방송을 슬로건으로 삼는 KBS 기자가 편향적 시각을 가진 집단의 구성원인 것도 모자라, 최근까지 제법 왕성한 활동을 한 것은. KBS 구성원들은 직군에 관계없이 집단 반발을 시작했다. “일베 기자가 KBS에서 일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KBS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그들은 공영방송으로서 KBS가 쌓아온 '신뢰'라는 가치가 훼손될 것을 누구보다 걱정했다. 곧 더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KBS가 지난 3월 31일 일베 기자의 임용을 확정해버린 것이다. 만우절을 앞두고 나온 거짓말 같은 결정에 KBS 구성원들은 절망했다. 한 번 잃은 신뢰는 다시 회복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KBS는 국민을 대상으로 불편부당한 보도를 약속했다. 국민의 수신료를 재원으로 하는 KBS는 공정한 보도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국민 또한 수신료의 가치를 알기에 KBS가 어떤 방송보다 공정하길 바란다. 그래서 세월호특별법, 공무원연금개혁과 같은 특정 이슈에서 KBS가 편향적인 보도를 했을 때, 국민들은 더욱 엄격한 잣대를 들이댔다. 공영방송 KBS만큼은 치우치지 않은 시선으로 이슈를 전달해줬으면 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기대를 무시하듯, KBS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일삼는 집단 '일베' 유저를 정식 기자로 임용했다. 혹자는 커뮤니티 가입은 개인의 취향일 뿐 한 조직의 신뢰도를 운운할 만큼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하지만 일베 기자의 행동을 개인의 취향 정도로 치부할 순 없다. 여성의 생리휴가에 대한 조롱, 광주민주화운동 비하, 故 노무현 대통령 비하까지, 그가 작성한 글은 그의 편향적이고, 배타적인 시선을 보여준다. 기자는 자신의 말과 글로 세상의 사건 사고를 전달한다. 말과 글은 자신의 가치관과 생각을 반영한다. 사실만을 전달한다 치더라도 전달해야 할 이슈를 고르고, 어느 부분까지 보여주어야 하는 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본인의 가치관이 투영된다. 그만큼 언론인으로서 기자의 가치관은 중요하다. 평소 여성을 비하하고, 특정 지역에 편견을 가지고 있는 기자가 공정한 보도를 할 수 있을까. 국민들은 그의 보도를 신뢰할 수 있을까. 국민들은 지원자의 가치관도 파악하지 못한 KBS의 기획과 보도를 신뢰할 수 있을까.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도 부정적이다.
KBS의 입장은 이렇다. 첫째, 임용과정에서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임용 취소를 할 어떠한 근거도 없다. 둘째, 그를 쓸 거지만, 취재는 안 시킬 것이니 걱정 말라. 함께 임용된 기자들은 사회부로 발령이 났지만 문제의 일베 기자는 정책기획본부 남북교류협력단으로 파견됐다. KBS측에서 일베 기자가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했다면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 아니다. KBS도 기자의 가치관이 기획·보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를 다른 부서로 배치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임용을 취소하지 않은 걸까. 임용 과정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KBS는 기자를 뽑기 위해 네 단계의 전형을 치른다. 서류, 필기, 실무자 면접, 경영진 면접 전형으로 이루어진 엄격한 시스템 하에서 웬만한 부적격자는 다 걸러진다. 편향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 끝까지 남았다는 사실은 채용과정에서 그의 가치관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 즉, 그의 임용을 취소한다면 KBS는 본사 채용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KBS는 채용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임용 취소 대신, 파견 발령이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KBS의 선택을 이렇게 말하고 싶다. 신뢰를 위해 신뢰를 저버린, 이해할 수 없는 선택. 벌써 누리꾼들 사이에선 '케일베스'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일베를 품은 KBS를 비하하는 말이다. 이것만으로도 이 사건으로 떨어진 신뢰도를 체감할 수 있다. KBS는 일베 기자의 임용을 취소할 수 있었다. 인사규정에도 수습기간 중 임용이 취소될 수 있다는 조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KBS는 국민들의 지원과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일베 기자 임용을 취소했어야 했다. 그리고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채용과정에 변화를 주겠다고 말했어야 했다. 물론 채용 시스템과 경영진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겠지만, 받아들였어야 했다. 그것이 국민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보도를 하지 않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기엔 공영성을 연구하는 정책기획본부의 책무가 크다. 이미 결정은 났다. KBS는 국민의 신뢰보다 경영진의 신뢰도를 선택했다. 그릇된 가치관을 지닌 인물임을 알면서도 이를 묵과한 것을 전국민이 알고 있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는 데에는 신뢰를 쌓는 것보다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든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