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509 / 도피성 (여호수아 20:1-9)
지난 시간으로 여호수아서의 가나안 땅 정복 이야기와 각 지파별 땅 분배 이야기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땅 분배 이후의 마무리 내용에 관한 것들을 다루고 있는데 바둑으로 치면 끝내기에 해당되는 부분입니다.
그 첫 번째 언급되는 내용은 기업의 땅 중에서 도피성을 선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도피성은 이미 모세 때부터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것으로서 민수기 35:9-34을 보면 하나님은 도피성 에 관해 상세히 설명하셨고, 신명기 19:1-13에서 모세는 도피성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설명을 하였습니다.
도피성이라 함은 원어로 ‘미크라트’인데 ‘칼라트’에서 유래했으며, '피난처, 도피처, 수용소(보호)'를 의미합니다. 특히 ‘칼라트’는 ‘발육이 부진하다.’는 뜻으로, 도피성은 사람에게 있어서 무언가 부족한 부분에 대한 피난 또는 보호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그 부족함의 구체적인 사례로 비고의적인 살인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크라트는 피의 보복자로부터 피하는 장소입니다.
당시 비슷한 용어로 인간 또는 동물들을 위한 피난처인 마흐세, 사람이 도망하는 도피처인 마노스, 튼튼하거나 높은 장소, 따라서 접근할 수 없는 장소를 뜻하는 미스가브등이 있었지만 미크라트는 항상 부지중에 사람을 죽인 죄를 범한 자들에게 도피처를 제공하기 위하여 지정된 성읍들과 관련하여 사용됩니다.
'부지중'이란 말도 히브리어 '비쉬가가'를 직역하면 '과실로', '실수로', '알지 못한 채'를 뜻합니다. 민수기 35:16-23을 보면 이미고의적인 살인과 우발적인 살인에 관한 규정이 있습니다.
철 연장으로 사람을 쳐 죽이는 것, 사람을 죽일 만한 돌이나 나무 연장을 손에 들고 사람을 쳐 죽이는 것, 미워하는 것 때문에 밀쳐 죽이거나 기회를 엿보아 무엇을 던져 죽이는 것, 원한으로 인하여 손으로 쳐 죽이는 것 등이 고의적인 살인에 해당하며, 원한 없이 우연히 사람을 밀치거나 기회를 엿보지 않고 무엇을 잘못 던져 사람을 죽인 경우 등은 부지중 살인한 자에 해당합니다.
이렇듯 도피성은 동해 보복법과 같은 당시의 보복 율법의 남용을 방지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도피성 이전의 상황을 살펴보면 살인은 '인간 생명의 창조자이자 주인이신 분에 대한 범죄'입니다. 출애굽기 21:124에는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 했고 민수기 35:33을 보면 ‘피 흘림을 받은 땅은 이를 흘리게 한 자의 피가 아니면 속할 수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피 흘린 죄를 범한 자는 그로 인해 반드시 처형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21:13-14을 보면 고의적으로 살인을 저지르지 않은 자들은 제단으로 도피해서 살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렇더라도 그에게서 고의적인 살인이 드러나면 제단으로부터 끌어내 처형 했습니다.(왕상 2:28-31)
도피성의 언급은 민수기 35장에서 처음 나타납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서에서 그 실현을 보게 된 것입니다.
도피성으로 선정된 성읍들로는 요단 서편에 납달리 지파의 갈릴리 게데스, 에브라임 지파의 세겜, 유다 지파의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 등의 세 곳이었으며, 요단 강 동편에는 르우벤 지파의 베셀, 갓 지파의 길르앗 라못, 므낫세 지파의 바산 골란 등의 세 곳이었고 모든 도피성은 레위 지파의 성읍 중에서 선정되었습니다.
이는 제사장 지파를 통해 죄의 유무, 고의성 유무 등에 관한 것을 하나님께서 직접 판단하시겠다고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직접 하시는 일이었기 때문에 죽은 자의 고엘이 아무리 원한이 깊고 복수가 간절하다 할지라도 임의로 행동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도피성으로 안해 이제 부지중에 살인한 자들은 회중 앞에서 자신들의 비고의적인 살인을 입증하기 위해 재판을 받을 때까지 일시적인 도피를 제공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만일 정당성이 입증되면 그 도피자를 성읍에서 받아들이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거기에서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머물러 있다가 당대의 대제사장이 죽은 후에라야만 도피자는 '자유'인으로 고향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민수기 35:32에 보면 도피성에서 나오기 위한 어떤 속전도 가능하지 않다는 특별 규정을 고려해 볼 때 대제사장의 죽음만이 속전을 대신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즉 대 제사장의 죽음이 비고의적 살인자의 죄를 상쇄시켰던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도피자가 도피성 안에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이 정하신 도피성의 룰에 순종하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만약 그가 임의로 행동할 경우에는 복수할 권한을 가진 죽은 자의 고엘이 그를 그 지역 밖에서 합법적으로 그 도피자를 죽일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런 사전 지식을 토대로 이제부터는 도피성이 우리에게 주는 신앙적인 교훈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첫 번째는 그 성이 이스라엘 12지파가 사는 그 어느 곳에서든지 가장 최단 거리에 갈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예루살렘 성에만 있었다고 하면 거리상 많은 사람들의 성공적인 도피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예로 들어 도피성이 서울에만 하나 지정되었다고 하면 어땠을까요? 부산이나 제주도 을릉도에 사는 사람들은 서울이나 인근 지역 사람들보다 불공평했을 것입니다. 또 서울까지 오는 도중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장담할 수 없었을 거구요. 그래서 하나님은 도피성을 선정하실 때 이스라엘의 모든 성읍에서 이스라엘은 물론 함께 거하는 이방 거류민들조차도 공평하게 보호받고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각각의 위치에 6곳을 만들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런 도피성은 오늘 날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회개를 생각나게 합니다. 누구라도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고의적으로 죄를 지을 때도 많이 있습니다. 만약 율법대로였다면 우리 중 그 누구도 하나님의 구원이나 은혜를 받을 길이 없게 됩니다. 그런 우리를 보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죄 지을 때마다 그 죄 값을 용서받고 죄의 책임으로부터 보호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회개입니다.
구약에서의 도피성의 하나님은 오늘 날 우리에게는 회개를 통하여 언제 어디서나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 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한편 아무리 도피성이 있고 죄를 사함 받고 구원 받을 길이 있다할지라도 죄 지은 사람이 도피성에 가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늘 말씀드렸듯이 도피성도 그냥 그런 곳이 있나보다 하지 말고 그 도피성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를 따져 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단순히 율법이나 교훈을 얻으라고 주신 책이 아닙니다. 성경을 읽으며 거기에 기록된 말씀들이 나랑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습관이나 신앙 행위에 따라 읽으면 안 됩니다. 모든 말씀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말씀인가'를 생각하며 읽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신 말씀에 불순종이든 순종이든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 날 우리들의 도피성은 바로 회개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죄 사함 받고 은혜 받을 길이 있어도 내가 직접 회개하지 않으면 나는 여전히 죄인이요 직접 죄 값을 치러야 하는 형편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도피성을 누구나 가고자 하기만 하면 최단 거리로 도달할 수 있는 곳에 있게 하셨다고 했지요?
그렇다면 회개도 마찬가집니다. 누구든지 하고자 하기만 하면 최단 시간에 할 수 있는 것이 회개입니다.
예전엔 죄인이 도피성엘 찾아갔지만 오늘 날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있는 그 자리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회개할 수 있습니다.
오늘 날 우리에겐 찾아가는 도피성이 아니라 찾아오는 도피성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까지 우리가 죄로부터 구원 받고 은혜 안에서 사는 삶을 살게 하셨는데 이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은혜의 첫 출발은 회개에서부터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길 원한다면 예수의 이름으로 회개로부터 시작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회개가 있는 곳에 도피성의 은혜와 보호하심이 있을 것이고 그 곳이 여러분의 삶이 되게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본문 4절에 보면 ‘이 성읍들 중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어귀에 서서 그 성읍의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건을 말할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도피성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장을 허락받기 위해 자신의 절박한 사정을 장로들에게 말해야 했습니다. 이후 장로들이 판단해서 도피성에 들일만하다 여겨지면 그의 소원대로 해 준다는 것입니다.
사정이나 소원을 말하고 응답을 받는다는 것! 어디서 들어 본 말 같지 않습니까?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 올리는 기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해야 하는 것이구요.
사정이 절박합니다. 어떤 이유나 형편으로든 죽게 생겼습니다. 그때 도피성을 생각하며 있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사정을 아뢰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이미 약속하셨습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을 구하라 그리하면 얻으리라.”고 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하신 오늘 날의 도피성은 단지 살인죄에만 적용되지 않습니다. 모든 죄에 다 적용됩니다. 그러므로 살고자 하는 자는 기도해야 합니다.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한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말했습니다. ‘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기껏 도피성에까지 찾아와서는 정작 내가 왜 왔는지 무엇을 원하는 지를 말하지 못한다면 도피성 안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 시간 여러분에게 원하는 것이 있습니까? 절박한 사정이 있습니까? 간절한 소원이 있습니까? 이룰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마지막으로 도피성 안에서 살던 사람들은 대제사장이 죽게 되면 죄 없는 신분으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됩니다. 즉 대제사장의 죽음과 죄인들의 죄가 맞교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 신약 히브리서를 보면 특히 3장 1절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대제사장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님의 죽으심과 우리의 모든 죄는 맞교환이 되었습니다. 이사야서를 보세요. 53장 5절에서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라고 했으며 고린도전서 15:55에서는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했습니다.
이렇듯 대제사장의 죽음은 도피성 안에서 살던 사람들에게 자유함을 위한 능력이 되었습니다. 이후 그가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예전의 복수자가 그를 죽이려고 한다면 그는 이렇게 선포할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의 죽음을 모르는가? 내 앞에서 물러가라.’
그리고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중에 또 다시 사탄 마귀가 찾아오게 되면 우린 이렇게 선포하면 됩니다. “날 위하여 대신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명하노니 사탄은 물러갈지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도피성을 주셨습니다. 죄로부터 보호받고 구원받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명하신 회개가 도피성입니다. 죄 지은 자들의 절박함과 죽을 위기에서 응답받고 살길을 열어 주시기 위해 우리에게 명하신 기도가 도피성입니다. 죄인들에게 자유함을 주시기 위하여 대제사장이신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게 하시고 우리에게 주신 능력이 도피성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도피성의 시작이요, 마무리가 됩니다.
참고로 주경가 메튜 헨리는 여섯 도피성들의 이름이 지니는 뜻을 그리스도와 연관시켜 ‘거룩한 곳'을 뜻하는 '게데스'는 성전이 되시는 그리스도를(요 2:19), '어깨'를 뜻하는 '세겜'은 정사를 어깨에 멘 그리스도를(사 9:6), '교제'를 뜻하는 '헤브론'은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과 교제케 하시는 그리스도를(고후 5:18, 19), '성채'를 뜻하는 '베셀'은 성도들이 피할 성채 되시는 그리스도를(시 91:2), '높은 곳'을 뜻하는 '라못'은 성도들로 하여금 높은 하늘에 앉게 하시는 그리스도를(엡 2:6), '기쁨'을 뜻하는 '골란'은 성도들에게 기쁨을 주시는 그리스도를(요15:11)각각 상징한다고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늘 날 우리들의 도피성입니다. 로마서 10:13은 선포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언제 어디서든 예수님의 이름으로 회개하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선포하세요. 그리하면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사38:17)‘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미7:19)‘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사1: 18)’고 하신 성경 말씀 곧 도피성의 은혜가 여러분에게도 응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 제목)
1. 하나님 앞에서 나를 돌아보며 사소한 것까지라도 생각나는 모든 죄를 회개
2. 지금 원하고 소원하는 것들을 위해 기도
3. 예수님을 믿는 내게도 주의 능력이 있음을 믿고 ‘예수의 이름으로 사탄아 물러가라!“고 선포.
(참고) ⇨
도피성.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