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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선택! 환난이냐, 믿음이냐(요일5:4)

작성자김영석|작성시간26.06.15|조회수31 목록 댓글 0

260614 / 선택! 환난이냐, 믿음이냐 (요일5:4)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운동 경기에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분명한 상대가 있고 확실한 승패가 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랬기에 운동선수라면 누구라도 이기는 걸 목표로 합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9:24을 보면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 권면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운동 경기와 마찬가지로 상대가 있고 이겨야 한다는 점에서는 신앙인의 믿음도 그렇다는 겁니다.

 

승부와 관련해서 예전에 누군가가 일본전에서는 가위바위보조차도 이겨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경쟁을 넘어 우리에게 악을 행했거나 고통을 주는 상대라고 하면 시합 이전에 정신에서부터 이겨야 함을 강조한 말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이기면 되지 않느냐는 결론이 나오는데, 문제는 어떻게 이기느냐 하는 겁니다.

이에 대해 오늘 본문 4절 말씀을 보면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린 두 가지를 알게 됩니다. 첫째는 그리스도인이 싸워야 할 대상이고, 둘째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기는 삶을 살기 위한 방법입니다.

 

그렇다면 우선은 4절 전반부에서 그리스도인이 싸워야 할 대상이 누구라고 했습니까?

세상이라고 했습니다.

헬라어 원문으로는 코스모스라는 단어를 썼는데 직역하면 영어로 월드 곧 세계를 의미하는 말이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사람들이 사는 장소나 영역으로서의 세계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코스모스의 의미를 이렇게만 알면 너무 막막합니다. 허공에 대고 주먹질하라는 것도 아니고 도대체 세상 누구와, 또는 무엇과 싸워야 한다는 말인지요?

그래서 코스모스가 가지는 또 다른 의미를 보면 이 말이 영적으로 사용될 때는 인간 세상 곧 타락한 피조물과 구원의 대상으로서의 세계를 나타낸다는 겁니다.

 

이러면 분명해집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우리에게 타락과 시험을 가져오는 소위 세상의 공중 권세 잡은 사탄의 세력이라는 겁니다.

사탄은 영적인 존재입니다. 따라서 육체만을 가진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싸워 이겨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랬기에 사탄은 사람의 육신의 약점을 너무도 잘 알고 공략해 옵니다,

이런 사탄의 시험은 예수님을 향한 세 가지 시험에서도 잘 보여지는데, 마태복음 4장을 보면 시험하는 자가 예수님께 접근했다고 분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곤 첫째, 이 돌들로 떡 덩이가 되게 하라고 시험합니다.

이는 육신의 정욕즉 인간에게 가장 원초적이고 필수적인 문제가 먹고 마시는 문제이기에 사람이 자기의 배를 채우는 것을 하나님보다 앞세우게 하려는 유혹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려 자신이 가진 능력을 증명하라고 시험합니다.

이는 이생의 자랑즉 사람의 자기 과시와 인정 욕구를 자극해서 사람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의 명예를 높이고 자랑하라는 유혹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탄은 세상의 모든 영광을 보여주며 자기에게 경배할 것을 요구하는 시험을 합니다.

이는 안목의 정욕즉 인간의 탐심과 소유욕을 공략한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보다 세상적인 화려함과 영광을 더 가치 있게 여기도록 유혹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세상 사람 중에 이 세 가지 시험 중에 하나 또는 그 이상에 걸리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누구에게나 약한 부분은 있고 누구라도 정말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없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그런 약함이나 바람이 사람이 살아감에 있어서 너무도 당연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바로 이런 부분이 사탄의 공격 지점이 된다는 겁니다.

실제로 삶의 현장에서의 실례를 들자면 그리스도인 중에서도 유독 물질에 약함을 가진 자가 있다면 사탄은 그에게 물질을 무기 삼아 공격합니다. 때론 물질이 넘치게 하거나 또는 물질에 궁하게 함으로 그를 시험합니다. 그리고 의외로 많은 사람이 그런 시험에 걸려듭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물질이 없는 것만이 시험이 아니라는 겁니다. 오히려 물질이 풍부한 것도 사탄의 시험에 포함되는 영역입니다.

이리 본다면 우리가 살면서 물질이 없다고 낙심할 것이 아니고 물질이 넉넉하다고 해서 방심할 일도 아니라는 겁니다. 어떤 게 사탄이 주는 시험일지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사탄을 상대로 우리가 어떻게 이길 수 있단 말인가요?

그래서 4절 후반부에서 요한 사도는 이기는 방법에 대해 이렇게 권면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세상을 이기는 방법이라는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믿음이 있어야만 우리가 세상을 이길 수가 있게 됩니다. 따라서 믿음이란 단지 믿는다는 것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승패가 있고 그에 따라 결과가 우리에게 있게 된다는 걸 알게 합니다.

 

그렇다면 믿음만 있으면 된다는 건데, 중요한 건, 우리에게 과연

세상을 이길만한 믿음이 있느냐 하는 겁니다.

4절을 다시 보세요. 이런 이유로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말하기에 앞서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는 말을 먼저 했던 겁니다.

이 말인즉 우리에게 세상을 이기기 위한 믿음이 있으려면 우린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렇게 보면 4절에서 세상을 이긴다는 말을 기준으로 앞에서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긴다.’ 했고, 뒤에 가서는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우리의 믿음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세상을 이기는 믿음이 같은 말이라는 겁니다.

이렇듯 둘이 같은 말이라면, 우리에게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 있으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가 될 수 있을지도 분명해집니다.

 

본문 1절에 그 답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린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왜일까요?

헬라어로 그리스도는 히브리어와 아람어로는 메시아입니다. 뜻으로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지만, 의미상으로는 구원자를 뜻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가 되기 위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언제든 우리 믿음이 예수님이 구원하신다.’에서부터 출발해야 함을 의미하는 겁니다. 가난 앞에서도 예수님이 구원하신다. 실패 앞에서도 예수님이 구원하신다. 환난과 낙심 중에도 예수님이 구원하신다에서부터 믿음이 시작되어야 하고 그런 믿음이라야만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이 우리에게도 세상을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요한복음 16:33에서도 보면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보세요. 세상에서는 우리가 무엇을 당한다고 했습니까?

환난을 당하나입니다. 이는 사탄이 주는 시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우리에겐 무어라 말씀하고 계십니까?

담대하라고 하십니다.

 

담대하라!’는 말은 단지 용기를 내라거나 힘을 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세상이 주는 어려움과 고민 앞에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이 구원하신다.’는 믿음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세상엔 사탄이 주는 시험이 있고 그로 인한 괴롬과 고통이 있겠지만, 세상엔 내가 그것들을 다 이긴 승리도 있으니 혹여 시험이나 환난이 있게 되면 너희는 나를 믿는 자가 되려고 하라는 말씀인 거고, 이렇게 보면 본문의 담대하라믿는 자가 되라,’이기는 자가 돼라.’는 말은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인 겁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앞엔 늘 두 존재가 있습니다. 하나는 사탄이고 한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환난을 주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김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누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고, 누가 세상에서 이김을 얻을까요?

그건 선택하는 사람들, 즉 저와 여러분의 몫입니다.

누구에게든 환난이 아예 없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환난 앞에서 두려움과 근심을 택하는 자는 환난을 당하나 설령 환난 앞에서일지라도 담대함과 믿음을 택한 사람은 이김을 얻는다는 겁니다.

이런 이유에서 사도 요한을 통해 예수님이 세상에 전하게 하신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이기는 자가 돼라!’입니다.

 

사도 요한이 쓴 다른 책 요한계시록을 보면 이런 사실이 더 잘 드러납니다. 예수님께서 일곱 교회에 편지하시면서 모든 교회에 공통으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기는 자에게는입니다.

각 교회의 이기는 자에게는 각 교회가 처한 환난들이 각 교회가 소망하는 복이 되게 해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계시록의 이기는 자라는 말을 오늘 본문의 내용과 연결시켜 보면 모두 예수님을 믿는 자로 바꿔쓸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일곱 교회에 공통으로 그리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예수님을 믿는 자는 누구에게든 환난이 변하여 복이 있게 하시겠다는 약속인 겁니다.

 

이때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기는 자가 돼라.’고 하시는 말씀은 내가 뭔가를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오로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라는 말씀인 겁니다. 즉 우리가 믿는 자가 되기만 하면 우리를 이기게 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시라는 말씀인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된다는 말인데, 우리에게 그런 믿음이 있기 위해 우린 뭘,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본문 1절 후반부를 보면 낳으신 이 즉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 곧 예수님을 사랑하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절을 보게 되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킬 때에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곧 예수님을 사랑하는 줄을 아느니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자가 되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되려면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이 말대로라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결국엔 예수님을 믿는 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로마서 10:17절에서 말하기를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던 겁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에게도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 있기 위해서라면 항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순종하려고 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국 환난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는 것이 믿음입니다.

다시 예수님이 받으신 세 가지 시험을 봐도 사탄의 매 시험마다 예수님이 그것들을 대적하신 무기가 무엇이었습니까?

믿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시는 것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사도들이 다 같은 권면을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믿음은 말씀을 들음으로 난다.’고 했던 것처럼 사도 요한도 요한계시록 1:3절에서 말하기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했습니다.

보면 요한은 바울의 말에 더하여 말씀을 들음외에도 읽음지키는 것까지도 믿음에 필요한 요소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요한이 말한 세 가지를 다 해내야만 믿음이 있는 거고 복을 받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셋 다 잘하면야 좋겠지만, 우리에게 믿음이 있으려면 셋 중에 최소한 한 가지만이라도 있어야만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자로 살 수 있게 된다는 교훈인 겁니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자로 살기 위해 수시로 성경을 펼쳐 말씀을 읽으려 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요즘엔 세상이 좋아져서 휴대폰으로도 성경을 볼 수 있고 유튜브 등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주일에 설교 말씀 한 번 듣는 것으로 끝내지 말고 여러 매체를 이용해 수시로 설교 말씀을 들으려 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그렇게 읽은 말씀과 들은 말씀들을 다 지키려고 하신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의 믿음이 될 것입니다.

 

이후론 순서를 분명히 하셔야 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성경을 읽고 듣는 게 아닙니다. 믿음이 있기 위해 우선은 성경을 듣고 읽어야만 합니다. 그러니 누구에게든 믿음이 필요한 순간이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성경책부터 펼쳐 드는 겁니다. 다시 말해 환난 앞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고 선포하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리하면 우리에게 믿음이 있다는 증거가 기도로 나타나게 됩니다. 즉 믿음이 있어야 성경을 읽는 게 아니고 믿음이 있기 위해 성경을 읽어야 하는 것이며, 그렇게 해서 믿음이 있게 된 증거로 하게 되는 게 기도입니다.

억지로 하는 기도는 의미가 없습니다. 응답하실 것을 믿기에 기도하는 거지 믿지도 못할 거면 기도할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정리하자면, 믿으려면 말씀을 들어야 하고, 믿는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결국 우리에게 응답받는 기도가 있으려면 우린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의 말씀을 먼저 믿어야만 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믿고 기도할 수 있다면 그렇게 믿고 구한 것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대로 우리로 다 받게끔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을 이기는 믿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나, 없나가 중요한 변수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라고 했을 땐 반대편에 세상에 지는 믿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성도나 불신자 모두에게 있어서 믿음은 항상 비신앙적 믿음신앙적 믿음이라는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납니다.

 

비신앙적인 믿음은 사탄이 주는 믿음입니다. 예를 들면 내 힘만으로도 다 돼.’라든가, ‘다음에 하지.’라든가, ‘안 되면 어떡하지.’ 같은 것들 다 비신앙적인 믿음들입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만 생각이 믿음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빼고 하는 모든 생각은 비신앙적인 믿음이 되고 그런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 지게 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는 모든 생각은 신앙적인 믿음이 되어 우리로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되게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사탄이 시험했는데 그 시험에 넘어간다면 누가 가장 기뻐할까요?

사탄이 가장 기뻐할 겁니다. 성공했다고.

반대로 사탄이 시험했는데 그 시험을 믿음으로 이겨낸다면 누가 가장 기뻐할까요?

예수님이 가장 기뻐하실 겁니다. 잘했다고. 충성된 종이라고.

그래서 오늘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내 생각 안에서 환난이냐, 믿음이냐를. 사탄을 기쁘게 할 것인가, 예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가를.

 

바라기는 여러분이라면 어떤 경우에도 예수님이 구원하신다.’는 믿음을 붙잡기 위해 수시로 성경 말씀을 읽고, 들으시고, 그렇게 하는 중에 생긴 믿음으로 기도해서 결국엔 믿는 자로서 세상을 이기며 사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 가지 권면을 드린다면, 요즘엔 성경 읽기는 몰라도 듣는 건 마음만 먹으면 스마트 폰으로 어디서든 가능해졌습니다. 틈날 때 음악 감상도 좋고 유튜브 시청도 좋지만 가능하면 그것들을 성경 말씀 듣기로 전환해서 굳이 집중하지 않더라도 들리는 것만으로도 말씀에 담긴 능력으로 여러분의 영혼이 힘을 얻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많이 들어야 기도할 때도 믿음으로 힘이 있게 되고 그래야 응답도 있어 늘 이기는 자로 세상을 살 수 있습니다.

이런 믿음의 원리를 믿어 오늘부터는 말씀을 읽고 듣기에 가일층 힘쓰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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