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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게(창21:8-13)

작성자김영석|작성시간26.06.22|조회수26 목록 댓글 0

260624 /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게 (21:8-13)

 

인과법칙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일이나 사물은 원인에서 발생한 결과이고 원인이 없이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법칙입니다.

성경에도 보면 스스로 원인을 만들었기에 스스로가 그 결과를 책임져야만 했던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아브라함의 이야기입니다.

예전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믿음의 길을 나선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두 가지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후손이 번성하리라는 것과 기업을 번창케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후 창세기의 아브라함 여정을 보게 되면 소돔과 고모라 앞에서 롯과 헤어질 때 그가 큰 기업을 이루었다고 한 것만 봐도 하나님의 기업을 번창케 하시겠다는 약속은 아브라함 본인도 느낄 정도로 부족함이 없이 응답해 주신 것 같습니다.

문제는 후손을 번성케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후손이 번성하려면 당장 아브라함이 아들을 낳는 것에서부터 그 후손이 시작되어야 했는데 약속을 받은 지 햇수로 11년이 다 돼가도록 아브라함에겐 자식이 없었습니다.

당시 하나님의 축복도 축복이지만, 일단은 인간적인 조급함이 앞섰던 아브라함은 당대에 자식이 없는 가정에서 후사를 얻기 위해 후처를 들였던 방법을 활용해서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을 얻게 됩니다.

 

이후 아브라함의 삶은 평탄한 듯 보였습니다. 아니, 행복했다고 봐야 할 겁니다. 자칫 무자 할 뻔했다가 귀한 아들을 얻었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또한 아들이 커가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행복했을까요?

그런데 그의 나이 100세가 되던 해에 약속을 잊어버리신 줄 알았던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본부인 사라를 통해 아들을 얻게 하신 겁니다. 그렇게 이삭이 태어났습니다.

노년에 늦둥이 아들을 하나 더 얻었다는 것만 놓고 보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겁니다. 문제는 하나는 후처가 낳은 아들이고 하나는 본부인이 낳은 아들이라는 게 아브라함의 고민입니다.

 

이 상황을 신앙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노력해서 얻은 아들이고 이삭은 하나님이 주신 아들이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이 바로 아브라함의 이런 상황을 정리해서 기록한 내용인데, 8절을 보면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큰 잔치를 베풀었더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이때 젖 떼는 날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아기가 태어나면 백일이나 돌을 기념하여 잔치를 하는 것과 같은 의미로, 당시 유목민들은 아기가 젖을 떼는 것을 아주 의미있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9절을 보면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고 했습니다.

 

이삭의 젖 떼는 날 잔치라면 이삭에겐 태어난 후 가장 중요하고 기쁜 날이라 할 수 있는데 하필 그날 주인공인 이삭이 이복형으로부터 놀림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겁니다.

이에 10절을 보면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고 분노하는 장면이 나오고, 11절에서는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라고 했습니다.

정리하자면 이삭이 젖 떼는 날 형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렸다는 거고, 그걸 본 사라가 분노했으며, 그로 인해 아브라함이 근심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문맥만 놓고 보면 그 일이 그렇게까지 가정 분란을 일으킬만한 사건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느 집에서건, 특히 아들들만 키우다 보면 형이 동생을 놀릴 수도 있지 뭘 그런 걸 가지고 사라가 그렇게 유별을 떠느냐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당시의 사회적인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 시대에는 본부인에게 아들이 없을 때면 종을 통해 아들을 낳는 경우가 있었고 그렇게 얻은 아들이 재산을 다 상속받을 수 있었습니다또한 후처를 통해서가 아니더라도 창15:2절에서 보듯 아직 이스마엘조차 얻지 못한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나와서 자기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겠다고 말한 것처럼 종을 양자로 삼아 후사를 이어가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후처의 아들이 태어났거나 종이 상속자로 지정되었을지라도 이후 본부인에게서 아들이 태어나면 종의 아들은 아무것도 받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예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런 시대였기에 본문의 이스마엘의 처지가 그랬던 겁니다. 이삭의 출생으로 인해 그간 당연시했던 상속은 물 건너간 겁니다.

내 거였는데, 내 게 아닌 게 됐다.

누구 때문입니까? 이삭 때문입니다.

결국 이스마엘은 이삭으로 인해 심술도 났을 거고, 부럽기도 했을 거고, 꼴 보기도 싫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런 이스마엘의 심사가 8절에 있는 이삭을 놀리는지라.”로 나타났던 겁니다.

 

이렇게 보면 당시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렸다고 하는 것이 단지 메롱하는 수준만은 아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8절에서 놀리다는 말로 쓰인 히브리어 차하크비웃다, 조롱하다라는 뜻 외에 장난감처럼 갖고 놀다, 노리개로 삼다라는 의미가 있고 특정한 상황에서는 성적인 노리개로 삼다는 의미를 가지는 단어입니다.

이는 단순히 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렸다는 차원이 아니라, 이삭을 막 대했다는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기 아들에게 그런 행동을 하는 이스마엘을 보며 어미인 사라가 화가 안 날 수가 없었던 겁니다.

또한 10절에서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고 했던 말도 홧김에 한 말이 아니라 당시의 문화적인 관례에 따라 후처와 종의 아들을 처리하라는 당연한 요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들을 앞에 놓고 아브라함은 왜 근심하게 되었다는 건가요?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사라와 아브라함의 행동의 동기입니다.

사라의 경우, 자식을 낳지 못하는 여인으로서 죽기보다도 하기 싫은 후처를 남편에게 권할 때도 사라는 사회적인 관습을 내세웠습니다. 이후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 할 때도 사라는 철저하게 사회적 관습에 따라 처리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땠나요?

관습이고 뭐고는 다 핑계고 철저히 자식을 얻겠다는 자기 감정만을 앞세워 후처를 통해 아들을 얻었으며 내쫓아야 할 때도 14년간을 키운 정에 얽매여 이스마엘도 내 아들이라는 감정을 놓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이들 가정을 굽어보시는 하나님의 생각은 어떠실까요?

지지난 설교에서 살펴봤듯이 창세기 17장을 보면 아직 이삭을 얻기 전 아브라함이 이에 하나님께 아뢰되 이스마엘이나 하나님 앞에 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자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본문 12절에서도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얻은 이스마엘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이삭이 하나님이 인정하는 너의 아들이고, ‘너의 후사의 시작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못 박고 계십니다.

내가 주는 것만이 너의 복이 될 것이다!”

이게 창세기에서 이스마엘과 이삭의 얘기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주시는 교훈 앞에서 우리에게 있어야 할 다짐은 이래야 합니다.

나의 복은 오직 하나님께로부터만 오게 하자!”

그렇다고 해서 세상적으로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무작정 하나님이 복 주시기만을 기다리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10:31절에서 말하기를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권면했던 겁니다.

 

이 권면에서 우선 생각해 볼 것이 무엇을 하든지입니다.

이때 바울이 말한 무엇을이라는 말에는 어떤 것들이 포함되는 말일까요?

말 그대로 무엇이든지 다!’입니다.

현재 상황에서 이거 할까? 저거 할까? 하지 말라는 겁니다.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고민하지 말라는 겁니다.

말 그대로 무엇이든지 다하라는 겁니다.

그런 다음 바울은 이어서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영광을 뜻하는 헬라어 독사의 원래 의미는 드러남, 보여짐입니다.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것은 내 삶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세상에 보여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결과를 가지고 논하라는 말입니다.

누가 해 준 결과냐?’

이때 무엇을 했든지 다 하나님이 해 주셨다.’고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 것입니다.

한자로도 영광은 꽃부리 영자에 빛 광자를 써서 빛이 꽃처럼 아름답게 나타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와 관련해서 에베소서 5:10절은 성도들을 향해 세상에서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권면하면서 마지막엔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인즉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라는 뜻입니다.

 

세상을 향해 하나님이 해 주셨다.’고 간증할 수 있을 때, 그런 간증이야말로 하나님을 크게 기쁘시게 하는 것이기에, 그 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 것이 되는 겁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를 보자면, 이스마엘을 얻었습니다. 그렇다면 생각해 보세요. 당시 사람들이 아브라함에게 축하를 건넸겠지요. 그때 사람들이 뭐라고 하며 축하를 했을까요?

축하합니다. 드디어 아들을 얻으셨군요.’라고 했을 겁니다. 그런데 그때 아브라함이 얻은 그 아들은 누가 낳은 아들입니까?

하갈이 낳은 아들입니다. 결과를 보면 하갈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얻게 해 준 겁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보기에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얻게 한 이는 하나님이 아니라 하갈이 되고 만 겁니다.

이 경우, 원하던 아들은 얻었지만 하나님이 해 주셨다고 할 수 없으니,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지 못하는 것이기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기뻐하신 일을 하지 못한 겁니다.

 

반면에 이삭을 낳았을 땐 어땠을까요?

역시나 사람들이 축하를 건넸겠지요. 그땐 사람들이 뭐라고 하며 축하했을까요?

축하합니다. 그런데 어찌 그 연세에 자식을 얻을 수 있었습니까?’라고 했을 겁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뭐라 했을까요?

하나님이 해 주셨습니다.’라고 했을 겁니다. 따라서 이삭의 경우에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얻게 한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경우, 원하던 아들은 얻었는데 하나님이 해 주셨다고 할 수 있으니,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 것이기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기뻐하신 일을 한 겁니다.

 

이걸 기억하세요. 악행이나 범죄 등을 빼고 세상에서 우리가 해도 되고 안 되는 일이란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고 해야 하며 해내야 합니다. 단 명심할 건 결과를 생각했을 때 하나님이 해 주셨다.’고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하려 해야 하는 겁니다.

그럼. 이제 남은 건 뭘 하든지 하나님이 해 주셨다고 말할 수 있기 위한 방법만 알면 됩니다.

 

첫째. 하나님이 복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늘 말씀드리지만, 이왕에 믿을 거면 나는 응답 못 받을 거야.’ ‘나는 안 될 거야라고 믿지 말고, ‘나는 응답받을 거야.’ ‘결국엔 잘될 거야라고 믿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셨으며 성경은 말하기를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열심히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이고 필요하다면 피할 길도 예비하실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해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결국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내게도 이삭 주시기를기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이 해 주시리라 믿고, 하나님이 해 주시기를 기도한다면 예수님이 약속하신 대로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하신 응답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뭘 하든 하나님께는 언제나 이삭이 있으시다.’를 믿으세요. 그리고 그 이삭을 내게도 주시기를 기도하세요.

지금 하는 일이 당장엔 잘 안되고 안 풀릴지라도 하나님께 이삭이 있으심을 믿고 하나님께 이삭 주시기를 기도하면 하나님은 내게도 이삭의 응답이 있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이삭의 이름 뜻대로 결국엔 하나님이 나도 웃게 해 주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포기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전에 아들의 죽음의 목전에서 모세의 어머니가 가졌던 믿음을 우리도 가지자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아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절대 아들을 죽게 할 수 없다는 집념, 그리고 하나님이 내 아들을 절대 죽게 하지 않으실 거라는 믿음. 결국 이런 모세 어머니의 믿음의 끝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가 이제까지 하나님을 믿어왔고 또 앞으로도 하나님을 믿을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안 되는 곳에서부터 하나님은 시작하시기 때문입니다.

 

안 되는 일 앞에서 안 된다고 하는 건 믿음이 없어서입니다. 안 되는 일이 앞에 있으니 하나님이 해 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이 해 주시기를 기도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세상에선 직업의 귀천을 따지고 일의 성패를 논하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이 해 주셨다.’는 결과만 바라보는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됐고, 그렇게 다윗이 골리앗을 이겼으며, 그렇게 엘리야가 오랜 가뭄을 끝내고 비가 오게 했던 겁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이 해 주셨다는 결과를 간증하기 위해 우리도 오늘 무엇을 하든 믿음 안에서 열심히 그리고 기도하며 해내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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