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812 / 하나님 내가 믿습니다. (사사기 13:15-20)
오늘은 넌센스 퀴즈로 시작해 보겠습니다.
1. 그녀가 보내기 싫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답은 ‘주먹이나 가위’를 낸다입니다.
2. 미소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당기소’입니다.
3. 코끼리 두 마리가 코가 없으면? 정답은 ‘끼리끼리’입니다.
4, 팔이 네 개인 나라는? 네팔입니다. 그렇다면 손이 세 개인 사람은 누구일까요? ‘삼손’입니다.
오늘 말씀이 바로 삼손에 관한 내용입니다.
여러분은 삼손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십니까?
본문은 삼손의 탄생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나실인의 예고를 하는 장면입니다.
삼손과 관련한 성경의 내용만으로 보면 삼손은 분명 실패자입니다. 그러나 전체를 놓고 보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삼손을 사사로 세우시고 그런 그를 붙들어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절대 실패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때문에 삼손을 사용하신 하나님이 실패하지 않으셨으니 삼손 역시 실패한 인생은 아니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히브리서 11장에서는 삼손의 이름을 사무엘, 다윗, 기드온 등과 동급으로 배열하고 있습니다.
이는 삼손 역시 오늘 날 믿음의 성도들이 갖춰야 할 믿음의 교훈 중에 어느 한 파트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삼손은 우리에게 어떤 믿음의 삶을 보여주고 있을까요?
그 옛날의 삼손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는 하나님만 믿어라. 하나님의 사랑은 너의 실수보다 크시며 하나님의 은혜는 너의 실패보다 크시다!“
또 말하기를, "한번 넘어졌다고 신앙의 걸음을 포기하지 마라.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손만은 절대로 놓치지 말아라. 하나님이 너를 다시 일으켜 주실 것이다!"
이것이 삼손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믿음의 교훈입니다. 한마디로 삼손은 우리에게 다시 도전하는 믿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 13:1절을 보세요.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라는 말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다시 악을 행했다"는 말을 원문에서 보면 ‘악’이라는 명사 앞에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원문대로 다시 해석해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그 악’을 행했다라고 해야 맞습니다.
이렇듯 이스라엘이 ‘다시 그 악을 행하였다’면, 그 전에도 어떤 악인가를 행했다는 얘긴데, ‘그 악’이 과연 무엇일까요?
그것은 곧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바알을 섬겼던 악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미 배워 아시다시피 사사기 구조의 사이클을 보면 우선은 이스라엘의 범죄가 행해지며, 그 뒤에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이 따라옵니다.
그러다가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사사를 보내셔서 구원하시고 평안을 누리게 하시더라는 내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삼손 시대에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다시 그 악을 행했다고 했다면 그 다음에 따라오는 단계는 당연히 심판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40년 동안 블레셋의 손에 이스라엘을 넘겼다." 라는 말이 곧 범죄 뒤의 심판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때 40년이란 기간은 이스라엘이 전쟁에 패배하여 이방을 섬겼던 고통의 기간을 말하는 것인데, 이 40년은 이전까지 있었던 심판들과 비교하면 가장 긴 기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사기의 사이클대로 라면 ‘범죄 후 고통’. 그 다음에 와야 할 단계가 회개와 부르짖음입니다.
이것이 있어야 그 다음 단계로 사사가 출현하고 고통이 끝나고 다시 평안을 얻게 되는 것인데...
본문엔 어디를 봐도 삼손시대에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는 표현이 보이질 않습니다.
회개가 없던 삶!
이것이 그들에게서 심판의 기간이 40년까지 늘어난 이유입니다.
사람은 언제고 범죄 할 수 있습니다. 그로인해 고통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이라면 고통 중에 반드시 있어야 할 항목이 하나님을 찾고 회개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이쯤에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 할 교훈이 하나 있습니다. 흔히들 사람이 범죄 하면 하나님이 심판하신다고 생각하는데, 심판은 하나님의 두 가지 속성 즉 사랑과 공의 중에서 공의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를 진노나 심판 등으로만 해석 하다보면 자칫 하나님은 벌만 주고, 죽이기만 하는 분으로 오해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공의란 말을 해석할 때에는 그것을,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세우신 원칙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이란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은 당신이 세우신 원칙과 약속은 반드시 지키신다는 것이 신학적인 의미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이때, 하나님이 세우신 그 약속과 원칙이라 함은 다른 게 아닙니다. ‘믿는 자는 구원하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그렇다면 믿지 않는 자들은 당연히 심판하시겠네요?’라고 할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자에게 일지라도 하나님은 언제나 사랑이시고 공의로우십니다.
다만 그들에게는 믿음이 없기에 그 사랑을 받지 못하며 그 공의를 누리지 못하는 것뿐이고, 그 결과가 심판이고 저주일 뿐이지, 징계와 심판이 하나님 때문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를 통과할 때에 하나님은 광야의 온갖 위험과 고난으로부터 그들을 지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리하시겠다고 말씀하셨고 이스라엘은 그런 하나님을 믿고 순종했기에 그들은 광야를 잘 지나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턴가 이스라엘에게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보다는 광야에 대한 불만이 더 커졌습니다. 급기야 스스로의 결정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게까지 돼버렸습니다. 자원해서 믿음 없는 삶으로 돌아선 것입니다.
그 이후 성경에 보면 “여호와께서 불 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문자대로라면 하나님이 불 뱀을 보내셔서 이스라엘을 죽이신 것이라 봐야 하는데, 정말로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이 미워서, 심판하시려고 그러신 걸까요?
정말 그러셨다면 그 순간만큼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못되십니다.
때문에 본문을 문자대로만 본다면 하나님은 어떤 때는 사랑이셨다가 어떤 때는 무지막지하신 하나님이라고 해야 맞습니다. 그런데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에 모순이 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심판과 징계로만 해석해서 생기는 오해입니다. 하나님이 구원 안하셔서 우리가 구원을 못 받는 것과 우리가 구원을 못 받아서 구원되지 못하는 것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쉽게 정리하자면 하나님의 공의에 의하면 구원받고 못 받고의 기준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 맞습니다. 맞지만, 그 공의의 결과는 사람의 믿고 안 믿고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해서 성경은 한결같이 강조합니다. “너희는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다시 광야의 불 뱀 사건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불 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고 기록된 말씀은 결과론적인 표현입니다.
원인을 따져 보자면 불 뱀은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거기에 있던 것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불신이 스스로에게 불 뱀을 불러들인 꼴입니다.
쉽게 생각하세요. 한 겨울에 비닐하우스 안에 있던 식물이 비닐하우스 밖으로 나가게 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스라엘의 불 뱀 사건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하나님 탓이 아닙니다. 자업자득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린 어떻습니까?
‘범죄 후 심판, ‘회개 후 구원’의 사이클은 구약과 사사기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날도 마찬가집니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고통과 고난 중에 회개가 따라오고 믿음이 회복되면 우리는 하나님을 또 다시 사랑의 하나님으로만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답은 나왔습니다. 삼손 시대에 그들은 왜 고통의 기간이 사사시대 최다 기간인 40년이어야 했는가?
그들은 하나님의 공의에서 걸린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다시 그 악'을 행함으로, '다시 믿지 않는 자'가 되었고, 그런 상태로 40여 년 동안이나 하나님 앞에 나가 '다시 믿고 회개'를 부르짖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는 구원하신다.’가 하나님의 공의라면, ‘믿지 않는 자는 구원받지 못한다.’도 진리입니다.
이 하나님의 공의를 믿지 못하는 한 하나님은 사랑이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고통은 40년 아니라 400년까지도 계속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감사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공의에 걸렸다 할지라도 우리에게서 하나님은 여전히 사랑이시란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이 회개하지도 않고 기도하지도 않는 그 기간 동안 하나님은 무얼 하고 계셨을까요?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스라엘의 회개를 기다리며 손 놓고 계셨을까요? 믿고 기도하지 않는다고 고통과 징계만 잔뜩 퍼붓고 계셨을까요?
아닙니다. 고통의 40년 기간 동안, 하나님은 그들의 불신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사사를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랬기에 그들이 회개하자마자 즉시 사사를 보내어 구원해 주셨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 사사가 언제 나타나서 당장의 고통을 그치게 하고 닥쳐온 고난을 이기게 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는 전적으로 이스라엘의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불신의 고집이냐? 믿음의 기도냐?
이 원칙은 오늘 날에도 동일합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회개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기간 동안에도 하나님은 쉬지 않으십니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며 우리의 구원을 위한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이는 우리가 언제 회개할지? 회개하면 곧바로 사랑을 베푸시기 위하여! 그리하시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구원이 언제 이루어질 것인가는 전적으로 저와 여러분의 회개와 믿음에 달려있습니다. 기도 응답과 축복,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하심 역시 우리의 믿음과 기도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믿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것이 오늘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행하실 것입니다.
‘너희는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하나님의 공의를 얻기 위해 우리도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행해야 합니다.
풀리지 않는 문제와 고민이 있습니까? 벗어날 수 없는 고통과 어려움이 있습니까?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는 나타납니다.
지금 여러분은 여러분이 겪고 있는 고난을 여러분 스스로는 어떻게 평가하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나를 심판 하셨다구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혼내시는 거라구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더 잘 믿게 하려고 연단하시는 거라구요?
그다지 맞는 말은 아니지만, 만약에 그렇다면 여러분은 더 잘 믿기 위해 무엇을 하려 하십니까?
앞서 살펴보았듯이 절망의 상황 속에서 지치고 낙심한 이스라엘이 불신과 불순종으로 하나님을 떠나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을 위한 구원자를 준비하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가 바로 삼손입니다. 그는 이스라엘이 불순종으로 고통 받는 40년의 기간 중에 이미 하나님에 의해 구별된 나실인으로 이스라엘 사람들 속에 태어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고통을 주셨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실상 하나님은 그들을 미워하지도, 그들에게 섭섭해 하지도 않으시고 오로지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구원자를 예비하고만 계셨던 것입니다.
다시 묻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그것들을 어떻게 해결하려 하십니까?
이미 모든 것의 준비를 끝내시고 저와 여러분의 회개와 기도만을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찾고 믿으십시오.
불 뱀에 물려 죽어갈 때 놋 뱀을 들고 찾아오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40년 고통의 기간 중에도 구원자가 될 삼손을 이미 태어나 자라게 하고 계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다 이루고’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 분이 바로 저와 여러분이 믿어야 할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께서 각종 문제로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우리에게도 해결책과 응답을 가지고 찾아와 계십니다.
우리가 고난과 질병 중에 신음하며 절망하고 있는 중에도 이미 승리와 치유를 예비하여 대기시켜 놓으신 채, 지금 저와 여러분의 회개와 기도만을 기다리고 계시기에,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40년의 고난을 당할 것이냐 아니면 그것을 4년으로 만들고, 4일 만에라도 끝낼 것이냐는 전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아니 저와 여러분의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안 되는 게 하나님 탓은 아닙니다. 회개는 빠를수록 좋고, 기도는 쉬지 말고 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너무 일찍 회개했다고 해서 하나님이 난처해하시며 “이 사람들아 이렇게 일찍 회개하면 어떻하냐? 삼손은 아직 어린앤데!” 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설사 그렇더라도 소년 다윗을 골리앗과 싸워 이기게 하신 하나님이시기에 설사 꼬마 삼손일지언정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축복하시는 데에는 부족함이 없게 역사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삼손의 이야기는 힘센 영웅의 이야기도, 약점과 실수로 쓰러지는 못난 사람의 이야기도 아닙니다.
삼손이야기는 늘 동행해 주시고 기다리시고 인내하시다가 기어이 성공하도록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비밀을 담은 성공하는 신앙의 이야기입니다.
언제나 역사의 최후 승리자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보지 마세요. 끝까지 가보면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이겼습니다.
“하나님을 믿을 때 나도 이긴다!”
이것이 은혜요, 이것이 우리가 가질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따라 하세요.) “하나님! 내가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