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世林下公(諱師哲)派
정명준 [ 鄭命俊 ]
분야유형지역시대출처
| 역사/근현대, 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 경상북도 칠곡군, 대구광역시 |
| 근대/근대 |
| 디지털칠곡문화대전-정명준 |
목차
정의
일제강점기 칠곡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1900년 7월 26일 칠곡군 지천면 신동에서 태어났다. 1925년 학생운동가 출신들로 무정부주의 진우연맹(眞友聯盟)을 조직하고 1926년 연맹 내에 파괴단(破壞團)을 만들어 주요 관서와 일인(日人) 점포 폭파 등을 추진하던 중에 체포되어 징역 2년형을 받았다.
활동사항
1925년 9월 29일 대구의 서동성(徐東星), 경남의 방한상(方漢相), 칠곡의 신재모(申宰模) 등 7명과 함께 대구에서 무정부주의 비밀결사인 진우연맹을 조직하여 항일 투쟁을 폈다. 진우연맹은 회원이 1,100여 명이나 되는 대구노동친목회(大邱勞動親睦會)를 지도하면서, 일본의 무정부주의 단체와 연계도 강구하였다. 1926년 4월 12~13일 신재모의 집에서 모임을 갖고 연맹 내에 파괴단(破壞團)을 만들어 대구의 주요 관서와 일인(日人) 점포 파괴, 수뇌부 암살 등을 하기로 하였다. 폭탄은 상해(上海) 민중사(民衆社)의 무정부주의자 유림(柳林)을 통해 입수키로 하였으나 연맹원이 경찰에 검거되면서 가택 수색 결과 전모가 드러나 1926년 7월에 체포되었다. 1927년 7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77년에 대통령표창,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재소자신분카드」
- 『고등경찰요사』(경상북도경찰부, 1934)
- 『동아일보』(1926. 8. 4·1926. 8. 5·1926. 8. 30·1926. 9. 4·1927. 6. 15·1927. 7. 6)
출처
제공처 정보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http://www.grandculture.net/
[네이버 지식백과] 정명준 [鄭命俊]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정명준
[ 鄭命俊 ]
생몰년월일내,외국인이명출신지운동계열관련 단체포상훈격(연도)
| 1900. 7. 26 ~ 1959. 8. 22 |
| 내국인 |
| 정흑도(鄭黑濤, 鄭黑陶) |
| 경북 칠곡(漆谷) |
| 국내항일 |
| 진우연맹 |
| 애족장(1990) |
목차
주요활동1924년 대구에서 사상 잡지 『혁조』를 발간하려다 당국의 인가불허로 좌절. 1925년 아나키스트 비밀결사 진우연맹 창립에 참여하고 일본의 아나키스트들과 교류생애 및 활동사항
1900년 7월 26일 경상북도 칠곡군(漆谷郡) 지천면(枝川面) 신동(新洞)에서 태어났다. 이명은 정흑도(鄭黑濤·鄭黑陶)이다. 무정부주의 계열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일본 도요대학(東洋大學)을 다니다 중퇴하였다. 1924년 대구(大邱)에서 『혁조(革潮)』라는 제호의 잡지를 발간하려 하였다. 그러나 내용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일제 당국의 인가가 나지 않아 좌절되었다.
1925년 9월 30일 대구 서성정(西城町) 노동공제회관에서 방한상(方漢相)·신재모(申宰模)·서동성(徐東星) 등의 주도로 진우연맹(眞友聯盟)이 창립될 때 동참하였다. 이 조직은 사상적 ‘진리’를 돈독한 ‘우정’으로 추구한다는 의미를 담은 명칭에다 ‘친목과 수양’을 내세운 합법단체로 가장했다. 하지만 실제 취지는 아나키즘에 기초한 신사회 건설에 두고 비밀결사로 운영되었다. 그해 10월 무렵 대구를 방문한 재일본 흑우회(黑友會)의 지도자 김정근(金正根)을 맹원들과 함께 만나 장래의 운동방법에 관해 협의하였다.
1926년 4월 일본의 아나키스트 비밀결사인 자아인사(自我人社)의 구리하라 가즈오(栗原一男)가 대구를 방문하니 맹원들과 함께 만나 일본흑색청년연맹(日本黑色靑年聯盟)의 활동상을 소개받고 상호제휴를 논의하였다. 그 해 5월 신재모·방한상·우해룡(禹海龍) 등의 맹원들과 함께 대구 신정(新町) 이금이(李今伊)의 집에서 향후 운동계획에 대해 논의하고 몇 가지 운동방침을 세웠다. “부호로부터 자금을 조달하여 2년 이내에 대구의 도청·경찰부청·경찰서·법원·우체국 등 주요 관서를 파괴하고 도지사·경찰부장·법원장 등 요인을 암살하며 일본인 시가지인 원정(元町)과 대화정통(大和町通) 일대를 파괴할 것, 그러한 거사를 실행키 위하여 ‘파괴단’을 조직할 것” 등이 그 내용이었다. 또한 파괴활동을 위한 준비로 상하이(上海)의 고백성(高白性)·김관선(金官善)에게 위탁하여 폭탄을 사들여 오기로 하고, 평양의 김원(金元)에게도 폭탄 구입 주선을 의뢰하였다.
1926년 5월 일제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던 맹원 안달득(安達得)이 모르핀에 취해 연맹의 이름을 발설한 것이 단서가 되어 일제 경찰의 주시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해 7월 유림단(儒林團)의 군자금모집사건 수사를 빙자한 검속으로 일본인 관련자 2명을 포함한 동지 12명과 함께 대구경찰서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몇 통의 서신 외에는 이렇다 할 물증이 없었음에도 같은 해 8월 25일 검사국으로 송치되었고, 1927년 3월 7일 예심이 종결되면서 이른바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
1927년 5월 26일 대구지방법원에서 방청과 사진촬영이 금지되고 기자와 가족원도 모두 퇴장시킨 비공개 재판을 받게 되자 이에 항의하여 동지들과 함께 형무소 내 단식투쟁을 벌였다. 그해 6월 14일 제2회 공판에서 징역 4년이 구형되었고, 같은 해 7월 5일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겪었다.
광복 이후 『대구시보(大邱時報)』·『대구신보(大邱新報)』·『(대구)매일신문(每日新聞)」의 주필(主筆)을 역임하며 언론인으로 활동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77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마지막 수정일
- 2026-03-23
집필자
- 김영범
참고문헌
- 「판결문」, 대구지방법원, 1927. 7. 5.
- 『동아일보』.
- 『매일신보』.
- 『중외일보』.
- 『중앙일보』.
- 『대한연감』.
- 慶尙北道警察部, 『高等警察要史』, 1934(안동독립운동기념관 편, 『국역 고등경찰요사』, 2010).
- 宋相燾, 『騎驢隨筆』(國史編纂委員會, 『韓國史料叢書』 2, 1971).
- 무정부주의운동사편찬위원회 편, 『한국아나키즘운동사』 전편, 형설출판사, 1994.
- 이호룡, 『아나키스트들의 민족해방운동』,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8.
- 박찬숙, 「일제하 무정부주의 단체 진우연맹 연구」, 국민대학교 국사학과 석사학위논문, 1995.
관련이미지
정명준 진우연맹 사건 관련 재판 보도(『중외일보』 1927. 5. 21)출처: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출처
제공처 정보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https://search.i815.or.kr/dictionary/main.do
[네이버 지식백과] 정명준 [鄭命俊]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