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주와 된장
국거리 혹은 양념 등에 널리 활용되는 된장은 우리 민족의 건강을 지켜온 중요한 단백질 식품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된장 담금이 중요한 집안 행사였으며, 모든 가족이 정결한 마음으로 임한 때도 있었다. 구황 식품으로서 우리를 지켜주었던 전통 된장이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신비는, 허기진 배를 채우려 뜯어먹은 잡초의 구토증을 삭여주기도 하였던 것이다. 비록 독초가 아니더라도 식용으로 하지 않은 풀을 씹어 보면 메스꺼움을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된장 속에 숨어 있는 미생물의 작용을 살펴보자. 된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메주를 만들어야 한다. 된장용 콩을 깨끗이 세척하고 불순물과 파손된 콩을 골라낸 후 가열하여 찌는데, 콩과 물을 같은 양으로 솥에 넣고 손가락으로 눌러 이스러질 정도로 익힌다. 생 콩보다는 익은 콩이 먹기 좋다는 것을 미생물도 알기 때문이다. 이때 콩에 묻어있는 바실러스 Bacillus 포자는 살아서 메주의 발효에 관여해야 하므로 압력밥솥으로 포자를 죽일 정도로 가열해서는 안 된다. 삶은 콩을 바구니에 넣고 물을 뺀 후 식기 전에 마쇄하여 적당한 크기의 사각형 모양으로 만든 후 통풍이 잘되는 곳에서 이삼일 동안 메주 표면을 말린다. 건조시키는 이유는 표면에 미생물 특히 곰팡이가 지나치게 증식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볏짚으로 묶어 매달아 자연적으로 발효시키는데, 이 때 볏짚으로 메 다는 것은 메주 발효와 관련 있는 바실러스가 볏짚에 많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종종 메주를 비닐 끈으로 메 다는 것을 보기도 하는데 이는 미생물의 역할을 무시하는 것으로, 이렇게 만든 된장 맛은 과연 어떨까. 전통 된장은 음력 10월부터 겨우내 매달아 놓지만, 개량식 된장은 30℃내외의 배양실에서 10~15일정도 발효시킨다. 이 과정에서 메주의 표면은 말라 갈라지고, 틈과 표면에는 털곰팡이, 거미줄곰팡이, 누룩곰팡이가 자라고, 메주 내부에는 볏짚과 콩에서 유래한 바실러스속의 세균이 생육하면서 단백질을 가수분해하기 시작한다.
개량식 메주는 Aspergillus oryzae 또는 Aspergillus sojae 라고 하는 누룩곰팡이를 배양하여 이를 메주에 접종하여 발효하지만, 전통 메주는 자연미생물의 발효에 의존하기 때문에 많은 종류의 미생물이 생육하고 있다. 전통메주에서 분리되는 미생물에는 Aspergillus, Rhizopus, Penicillium, Mucor, Scopulariopsis 속의 곰팡이, Rhodotorula, Torulopsis, Saccharomyces, Zygosaccharomyces, Kluyveromyces, Candida, Hansenula 등의 효모 그리고 Micrococcus, Pediococcus, Streptococcus, Lactobacillus, Bacillus 속 등의 세균이 있으며, 이 가운데 Bacillus 속의 세균은 전통 된장의 풍미와 관련되어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렇게 겨우내 매달아 논 메주나, 30℃에서 배양한 메주 표면의 곰팡이를 깨끗이 씻고 잘게 쪼개서 햇빛에 말린 다음 적당량의 소금과 물을 넣어 숙성시키면 된장이 되는 것이다.
2) 콩과 청국장
전시에 만들어 먹는 장이라는 뜻의 전국장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청국장은 된장과는 달리 2~3일이면 완성되는 속성 발효 식품이다. 즉 삶은 콩을 시루에 담고 볏짚을 구겨서 군데군데 꽂아 따뜻하게 보온해서 띄우는 것이다. 볏짚을 사용하는 이유는 된장처럼 볏짚에 청국장을 발효시켜주는 균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볏짚에 묻어있는 균을 고초균(枯草菌)이라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 의한 것이다. 보통의 균은 50~60℃에서 거의 사멸하지만, 내열성 포자를 생성하는 고초균은 열에 강하기 때문에 발효 시 발생하는 열로 인해 해로운 균이 전부 죽더라도 계속해서 청국장을 발효시킬 수 있다.
청국장의 일반적인 제조과정은, 대두를 잘 씻어 불려서 익힌 다음 볏짚이 깔린 시루에 삶은 콩을 담거나 콩 사이사이에 볏짚을 잘라 꽂은 후, 아랫목에 이불을 씌워 40~50℃에서 2~3일간 보온하면 볏짚에 붙어 있는 야생 고초균의 일종인 Bacillus subtilis가 번식하여 실 모양의 끈끈한 점질물이 생성되면 청국장이 완성되는 것이다.
청국장은 지방이나 가정마다 일정하지 않다. 그 이유는 발효 개시제라 할 수 있는 볏짚에 부착된 고초균의 종류가 다르기 때문이다. 즉, 단백질 가수분해 효소 활성이 강한 고초균이 많은 볏짚으로 담글 때는 청국장 맛이 좋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맛이 저하될 뿐만 아니라 부패변질되기 때문이다. 콩으로 만든 된장과 청국장의 다른 점은 된장은 주로 누룩곰팡이인 아스퍼길러스 Aspergillus 속을 이용한 것이고, 청국장은 세균인 Bacillus subtilis에 의한 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