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평화광장 2007.9.6.목
효령사공씨(孝令司空氏)
시조 사공도(司空圖)는 중국 당나라 희종 때 예부시랑을 지냈다. 그는 신라 때 8학사의 한사람으로 우리나라에 와서 귀화했다.
후손들은 고려 충숙왕 때 판의시사를 지내고 효령군(孝令君)에 봉해진 사공중상(司空仲常)을 중시조로 받들고 효령을 본관으로 삼았다. 효령은 경북 군위군 효령면의 지명이다.
사공중상의 아들 사공실(司空實)은 1353년(공민왕 2) 한림박사로 동방명현록에 수록되었다. 사공실의 아들 사공민(司空敏)은 공민왕과 창왕 대에 숭록대부로 문하시중에 이르렀다. 고려의 국운이 기울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로 돌아가 절의를 지켰다. 그의 아들 사공달(司空達)은 조선조에서 개성유수를 지냈다.
사공달의 아들 사공주(司空周)는 성균관사에 올랐으나 세조 왕위찬탈 때 낙향했다. 사공주의 아들 사공발(司空發)은 문종 때 통훈대부에 올랐으나 강직한 성품으로 미움을 받자 벼슬을 버리고 학문연구에 진력했다. 그의 아들 3형제가 각각 종파(宗派)· 중파(仲派)· 계파(季派)로 갈라진다.
사공발의 맏아들 사공비 는 성종 때 개성부 직장을 지냈다. 사공비의 아들 사공정(司空精)은 학문으로 명망이 높았다. 사공정의 손자 사공회(司空誨)는 선조 때 사재감첨정을 지냈다. 훈련원 봉사 사공선(司空銑), 평구도찰방 사공용(司空鎔)도 유명하다.
군자감 직장 사공습(司空習)의 아들로 형조정랑을 지낸 사공양(司空亮)과 홍문관 부응교를 역임한 사공기(司空琦) 형제도 뛰어났다.
찰방 사공용(司空鎔)의 손자 사공지(司空祉)는 숙종 때 용양위부호군을 역임했으며, 사공우(司空祐)는 동지중추부사를, 사공균(司空均)은 첨지중추부사를 지냈다.
2000년 현재 2,664명이 있다. 경북 군위군 효령면 노행동, 성동, 장군동이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