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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칼럼

용안김씨(龍安金氏)

작성자정복규|작성시간07.11.15|조회수36 목록 댓글 0
 

제목: 평화광장 2007.11.16.금

용안김씨(龍安金氏) 

 시조 충장공(忠壯公) 김덕령(金德齡.1567-1596)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큰 공을 세워 익호장군(翼虎將軍)에 오른 인물이다. 용안김씨는 원래 광산김씨에서 갈라진 지파다.

 용안은 전북 익산시 용안면의 지명이다. 원래 함열현이었으나 고려 충숙왕 때 용안현으로 고쳤다. 1914년 익산군 용안면이 되었다.

 용안김씨족보(무오보.戌午譜)에 의하면 시조 김덕령은 광산김씨 분관조(分貫祖) 김흥광(金興光)의 31세손이다.

 김덕령은 광주시 충효동 성안마을에서 광산김씨 습독공 김붕섭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충용군(忠勇軍)이란 군호(軍號)까지 받았다. 그러나 간신의 무고로 옥사했다. 그의 부인 이씨도 벼랑에서 투신하여 자결했다. 홀로 남은 아들 김광옥(金光沃)은 전북 익산군 용안면에 피신, 본관을 용안으로 하고 신분을 감추고 살았다.

 그 뒤 외숙인 이인경(李寅卿)의 임지인 평안남도 숙천군 근처 안주군 운곡면 쇠꼴이란 곳에 정착한다. 이곳이 그의 제2의 고향이고 후손들의 영원한 고향이 되었다.

 김덕령이 용안김씨의 시조라는 사실은 신라김씨 대종사(大宗史)와 양주김씨(陽州金氏)의 족보에 의해 밝혀졌다. 그 이전에는 김덕령의 후손임을 알지 못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용안김씨는 해방 당시까지 평안남도 안주군 운곡면 일대에 15대까지 번창하며 살았다. 그러나 남북 분단으로 인해 소수의 후손들이 월남하여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실정이다.

 용안김씨는 조선시대에 김익수(金益秀,1788.戊申生).순조16년(1816), 김응간(金應簡,1792.壬子生).철종12년(1861) 등 2명의 사마시 과거 급제자가 있다. 용안김씨는 1985년에는 50가구 244명, 2000년에는 159가구 500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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