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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칼럼

전주이씨 영성대군파

작성자정복규|작성시간08.08.10|조회수188 목록 댓글 0

제목: 평화광장 2008.8.11.월

전주이씨 영성대군파

 영성대군(永城大君) 이천계(李天桂.1333-1392)의 시호는 효민(孝愍)이며 태조 이성계(1335-1408)의 4촌 형이다. 그는 고려 때 정몽주, 길재 와 친분이 두터웠으며, 좌찬성을 추증 받았다. 1871년 (고종8년)에 영성대군으로 추봉되었다.

 이천계의 아버지는 완창대군 이자흥(李子興)이다. 이자흥은 이춘(李椿)의 큰 아들이다. 이춘 은 큰 아들 이자흥과 둘째 아들 이자춘(李子春)을 낳았다. 따라서 이자흥은 이성계의 큰아버지다.

 이자흥은 1305년(고려 충렬왕 31)에 출생하여 역동(易東) 우탁 에게 공부하고, 원나라 천호직과 고려 좌윤을 역임했으나 일찍 죽었다. 태조 이성계의 왕비 신덕왕후와 사촌인 상장군 강우(康祐)는 이자흥의 사위다. 

 훗날 이춘 의 기반은 작은 아들인 이자춘이 물려받게 되었다. 이자춘이 죽은 뒤에는 그의 세력이 모두 아들 이성계에게로 이어진다.

 이자춘(1315~1360년)은 형 이자홍이 죽자 어린 조카 이천계가 성장한 뒤에 벼슬을 돌려주기로 약속하고 형의 지위를 이었다. 아버지가 가졌던 다루가치(고려인이 받는 몽골 관직) 천호의 지위를 장남인 형 대신 자기가 받은 것이다. 당시의 관습은 장자 세습이었다. 그러나 이자춘은 조카 이춘계가 성장한 뒤에도 벼슬자리를 되돌려주지 않았다. 적장자 문제에 대한 이씨 왕조의 콤플렉스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실록에는 이천계가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사실이 아닌 듯하다. 이자춘이 죽은 뒤에 자신이 적장자임을 내세워 이성계를 죽이고 지위와 재산을 되찾으려고 시도하다 실패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천계는 고려에 귀부하여 관직을 얻었다. 그러나 노비를 죽여 살인혐의로 하옥된 뒤, 사형되었다.

( 정복규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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