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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변의 역사

도미와 성주도씨

작성자정복규|작성시간07.03.04|조회수261 목록 댓글 0
 

제목: 정변의 역사 2007.3.6.화

71. 도미와 성주도씨

‘도미(都彌)설화’는 백제 때의 설화로 여인의 정절(貞節)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 설화는 백제 여성들의 굳은 절개를 잘 그려내고 있다.

 백제의 개루왕 때, 도미의 아내는 아름답고 품행이 얌전하여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개루왕이 이를 듣고 도미의 아내를 탐냈다.

 왕은 도미를 불러다가 "부인의 덕은 정절이 제일이지만 어둡고 사람이 없는 곳에서 좋은 말로 꾀면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사람이 드물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도미는 "사람의 정은 헤아릴 수 없지만 신의 아내 같은 사람은 죽더라도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아내에 대해 확신을 보였다.

 이를 시험하기 위해 개루왕은 도미를 잡아두고 신하를 왕으로 꾸민 후, 도미의 아내에게 보내 "도미와의 내기에서 이겨 너를 궁녀로 삼게 되었으니 너는 내 것이다"라고 속였다.

 그녀는 옷을 갈아입고 들어오겠다고 핑계를 대고 나가서 여종을 변장시켜 대신 들여보냈다. 왕은 속았음을 알고 노하여 도미의 두 눈알을 뽑고 배에 태워 바다에 띄우고 나서 그 아내에게 또 동침하기를 요구했다.

 그녀는 몸을 씻고 오겠다며 빠져나와 강가에 이르러 더 이상 갈 수가 없자 하늘을 우러러 크게 울었다. 그러자 어디선가 조각배 한 척이 밀려왔다. 올라타고 천성도(泉城島)에 가니 눈이 먼 남편이 살아 있어 같이 고구려 땅에 가서 살았다.

 현재 도미의 무덤은 경남 웅천(熊川)에 있는데 이 지방에서는 누구든 8월 초하룻날 제일 먼저 벌초를 하면 득남한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다.

 도미 부인의 정절은 우리 역사상 손꼽히는 여절부덕(女節婦德)의 상징이자 귀감이다. 지난 1984년 5월 창작 무용극 ‘도미 부인’으로 꾸며져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문화 행사 무대에 올려졌다. 그 후 18개국에서 1백여 회의 공연을 가졌다.

 한편 성주도씨(星州都氏)의 기세조(起世祖)는 도순(都順)이다. 그는 고려 명종 때 전리상서를 지냈다.

 도씨는 성산(星山). 성주(星州). 팔거(지금의 칠곡) 등 몇 본이 있지만 모두 동조동원(同祖同源)이다. 성산(星山)은 성주(星州)의 옛 이름이고 팔거는 옛날 성주의 속현(屬縣)이었기 때문이다.

 도순의 선대인 도조(都祖)는 고구려 유리왕 때 우리나라에 건너와 선정을 베풀었다. 그 뒤로 도유(都儒)는 신라에서 김유신을 도와 백제군을 격파하는 등 공을 세워 상천후에 봉해졌다. 도진(都陳)은 고려 태조를 도와 삼한통합에 공을 세워 성산부원군에 봉해졌다.

 도순의 아들 충박(忠朴)은 고려 원종 때 전리상서를 지냈다. 3세 도유도(都有道). 도유덕(都有德) 등 형제도 공조전서와 명경진사에 각각 올랐다. 뒤를 이어 4세 도효원(都孝源)이 전객령, 도효신(都孝臣)이 판서, 도효안(都孝安)이 동양창판관 등을 지냈으며, 도효정(都孝貞)의 손자 도천우(都千遇)는 경성수복공신이 되었다.

 고려 때의 도씨 인물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사람은 홍정(洪正)이다. 그는 공민왕 때 시중에 오르면서 정계의 중심인물로 활약했다.

 그의 아들 도길부(都吉敷)는 우왕 때 찬성사를 역임한 무신으로 당시 세도가 이인임의 인척이었다. 도길부는 1380년 왜구가 대거 침입해 충청. 전라도가 큰 화를 입게 되자 이성계 등과 함께 충청도에서 전투를 시작하여 지리산에서 왜구를 완전히 격퇴했다. 이것이 황산대첩이다.

 그러나 이인임이 실각하는 정변에서 그 일파로 몰려 죽음을 당하고, 일족은 풍비박산, 곳곳으로 흩어진다. 도씨들은 이 참변을 기사화변(己巳禍變)이라 부른다.

 도길부의 아들 청송당 도응(都膺)은 여말(麗末)을 대표하는 도씨 인물이다. 찬성사를 지낸 그는 이성계와 가까운 사이였다.

 기사화변 때 장인 우인열의 덕으로 화를 면했으며 고려가 망한 후에는 홍주 노은동에 은거했다. 태조 이성계가 수차례에 걸쳐 불렀으나 끝내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지조를 지켰다. 감복한 이성계는 청송당(靑松堂)이라는 호와 송절시(頌節詩)를 내려 그의 절의를 기렸다.

 도흥(都興)은 공민왕 때 무신으로 이름을 날렸다. 상원수로 전라도도순문사가 되어 왜구 방어에 공을 세웠다. 1392년 정몽주가 살해된 뒤 그의 일파로 몰려 유배를 당했다.

 도연(都衍)은 여말에 문장가로 이름을 날렸으며 공민왕 때 사헌부지평을 지냈다.

조선 초기에 도씨 사람들은 여말의 시련 때문에 출사(出仕)를 꺼렸다. 세조 때 도하(都夏)가 문과에 장원 급제, 정언. 교리. 부사를 지냈을 뿐이다.

 도성유(都聖兪). 도여유(都汝兪). 도응유(都應兪). 도경유(都慶兪). 도신수(都愼修). 도신징(都愼徵). 도형(都衡). 도균(都勻) 등 이름난 학자들이 모두 성주도씨 후손들이다.

주요파는 대구파(양직공파. 화재공파. 서재공파. 취애공파. 일암공파. 낙음공파. 경암공파. 지재공파. 주부공파. 판관공파. 경재공파. 처사공파. 효자공파. 평리공파. 백재공파. 만호공파), 죽곡파(교리공파. 예빈공파), 경주파(초재공파), 예천파(진사공파), 태천파(선략공파), 평양파(참의공파), 성주파(행정공파. 운재공파), 단성파(교수공파), 노포파(시승공파), 연로파(청송당공파), 용안파(판서공파. 한림공파) 등이다.

 경북 울진군 원남면, 경북 달성군 성서면, 군위군 의흥면, 경산군 하양읍, 청도군 각남면, 성주군 벽진면, 경남 고성군 회화면, 산청군 신안면, 거창군 신원면 등지가 집성촌이다.

 특히 경북 성주군 벽진면 해평4동 속칭 개대리 마을에 자손들이 많이 살고 있다.

1980년의 경우 개대리를 비롯, 운정. 봉학리 등 3개 자연부락 2백73가구 중 48가구를 뺀 2백 가구가 모두 성주도씨였다. 2000년 현재 46,186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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