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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 설교

나라 사랑은 기도로부터 시작됩니다(디모데전서 2장 1~2절)

작성자손정호|작성시간26.06.20|조회수2 목록 댓글 0

나라 사랑은 기도로부터 시작됩니다(디모데전서 21~2)

 

지난 6월 13일 토요일에 서울시청 앞 잔디광장에 수천 명의 학생과 청년들이 모여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제이어스 찬양팀이 ‘왕께 만세’ ‘주님의 임재 앞에서’ 등을 부르자 학생들은 하늘을 향해 손을 높이 뻗으며 함께 찬양했습니다. “위대한 일 이 땅에, 더 놀라운 일 이 도시에 이뤄지리”라는 찬양 가사가 서울 도심에 울려 퍼졌습니다.
이번 집회에는 주최 측 추산 8000여명이 참석했습니다. 전국 5679개 중·고등학교마다 기도모임을 세우자는 취지로 마련됐으며, 현장에서 학생 450명이 학교 기도모임 참여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 영상을 봤을 때 눈물이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가 소망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라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학생, 청년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이 감동이었습니다.

 

1. '첫째로' 기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1"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여기서 '첫째로'는 시간적인 순서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하게, 최우선으로'라는 가치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교회가 세상 속에서 수행해야 할 많은 사역(구제, 봉사, 가르침 등)이 있지만, 그 모든 것에 앞서 '기도'가 가장 기본이자 최고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함을 강력하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기도의 지경을 '나'나 '내 가족', 혹은 '우리 교회 성도'에게만 제한하지 말고, 세상의 모든 사람을 향해 넓히라는 뜻입니다. 당시 초대 교회는 로마 제국의 극심한 박해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을 괴롭히고 핍박하는 원수들까지도, 그리고 하나님을 모르는 불신자들까지도 기도의 대상에 포함하라고 합니다. 이웃과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사랑의 표현입니다. 섬김은 기도로부터 시작됩니다. 사랑도 기도로부터 시작됩니다. 모든 축복도 이웃과 나라를 위한 기도로부터 옵니다.

 

바울은 기도의 다양한 형태와 깊이를 보여주기 위해 네 가지 단어를 연속해서 사용합니다. 각 단어에는 깊은 영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간구(데에세이스):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절박하게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결핍과 위기 속에서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바라는 애원입니다. 이런 간구가 있을 때 진정으로 하나님의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기도(프로슈카스): 가장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의미의 기도입니다. 단순히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고 대화하는 영적 소통을 뜻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입니다. 사람과만 대화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만나서 대화하는 기도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하늘의 은총이 임할 것입니다.
도고(엔튁세이스): 오늘날 표현으로 '중보기도(대신하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다른 사람의 사정과 아픔을 나의 것으로 여기고, 하나님과 그 사람 사이에 서서 다리를 놓아주는 기도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용서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화목한 가정, 교회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감사(유카리스티아스): 기도의 마무리이자 핵심입니다. 이미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할 뿐만 아니라, 아직 응답되지 않았더라도 하나님이 선하게 인도하실 것을 믿고 미리 드리는 고백입니다. 원망과 불평이 가득한 세상에서 교회가 가져야 할 구별된 태도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늘 개인적인 필요(건강, 재정, 자녀 등)에만 갇혀 있지 않은지 돌아보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눈을 들어 이웃과 사회, 나아가 나라와 민족, 세계 열방의 '모든 사람'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기독교인의 국가관은 비판이 먼저가 아니라 기도가 먼저여야 합니다. 눈물 어린 기도가 없는 비판은 냉소에 불과하지만, 기도가 담긴 애국은 영적인 힘이 있습니다. 기도가 나라 사랑의 시작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2.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2절 상반절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 말씀이 기록될 당시, 로마 제국의 '임금(황제)'은 기독교를 극심하게 박해하던 네로(Nero) 황제이거나 그 무렵의 통치자들이었습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 역시 그리스도인들을 체포하고, 재산을 압수하고, 사형에 처하던 로마의 관리들과 총독들이었습니다.

 

인간적인 감정으로는 그들을 향해 원망과 저주가 나와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도리어 그 통치자들과 권력자들을 기도의 명단 가장 윗자리에 두라고 명령합니다. 기도 수첩의 윗자리에 지도자들의 이름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정치적인 복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의 권력 구조를 뛰어넘는 영적인 성숙함을 가져야 함을 보여줍니다.

 

왜 지도자들을 위해 특별히 기도해야 할까요?
첫째, 사회의 평안과 복음 전파를 위해서입니다. 지도자들이 지혜롭고 공의롭게 정치를 해야 사회가 안정되고, 사회가 안정되어야 성도들이 박해를 피해 안전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복음을 널리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도자의 안정이 곧 공동체의 평안으로 이어집니다.

 

둘째, 모든 권세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세상의 권력자들도 결국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으며, 그들이 세워진 이유는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고 악을 처벌하기 위함(로마서 13장)이라고 가르칩니다. 따라서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게, 공평과 정의로 나라를 다스리도록 기도로 영적인 영향력을 공급해야 합니다.

 

셋째, 그들도 구원받아야 할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비록 지금은 박해자이고 독재자일지라도, 하나님의 눈에는 그들 역시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정치, 경제, 사회의 모든 일들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데서 그 판도가 결정이 됩니다. 우리의 지도자들이나 다음 세대들이 악한 세력의 영향 아래 있게 하면 안됩니다. 그래서 기도의 불을 지펴야 합니다. 이 땅에 찬송이 울려퍼지고 거룩한 향기가 나게 해야 합니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지도자들이 나오게 해야 합니다. 악한 마귀 권세가 지도자들의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지 못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나치 시절 독일의 신학자 마르틴 니묄러목사님은 "2차 대전 책임백서"라는 책을 저술했습니다. 당시 독일에서는, 제 2차 세계대전의 책임을 나치에 전가를 하고, 나치의 잔재를 청산하자는 여론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세계대전의 책임이 독일 교회와, 기독교인들에게 있다는 내용이어서, 엄청난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그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저는 일곱 번이나, 이런 꿈을 꾸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심판대를 통과하고 있는데, 제 뒤에 있던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예수님은 히틀러에게 "너는 왜 나를 믿지 않았는가?"라고 물으셨습니다. 히틀러는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아무도 저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전해 주지 않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그 자리에는 히틀러가 있었습니다. 반복되어 꾸던 이 꿈이 저의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히틀러가 죽기를 바랐던 적은 셀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정녕 히틀러의 영혼을 위해서 기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이 목사님은 독일의 그리스도인들은 히틀러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모두 책임을 느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특정 왕이나 정당, 혹은 마음에 드는 정치가만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내가 지지하는 지도자든, 지지하지 않는 지도자든 상관없이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교회의 의무입니다. 왕이든, 대통령이든, 고위 관직이든 그 자리가 가진 무게와 책임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가 임하지 않으면 권력은 쉽게 타락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백성들에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교회의 담장 안에만 머무는 기도가 아니라, 나라와 민족, 정치와 사회 체계의 안정을 구하는 '공적인 기도'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그런 기도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선한 능력이 되어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마약과 놀음, 음란과 죄악으로 물들어 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탐욕과 향락, 교만과 다툼에 휘말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룩한 지도자들이 배출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 거룩한 지도자들을 배출해야 합니다. 

 

지도자 한 사람의 결정이 수천만 명의 삶을 좌우합니다. 잠언 21장 1절 말씀처럼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습니다." 지도자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공의를 행하도록 기도하는 것은 성도가 국가에 할 수 있는 최고의 영적 후원입니다. 기도하는 애국자가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각 분야의 지도자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3. 평안한 생활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2절 하반절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이것이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목적입니다. 우리가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하여 정치와 사회가 안정되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태도는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해야 합니다. 사회를 온전하게 하는 비결은 우리의 신앙이 아름다워지는 것입니다.
경건(유세베이아)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삶의 모든 영역을 그분께 맞추는 '수직적인 신앙의 태도'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예배와 삶을 뜻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이 계실 때 우리의 삶이 경건하게 됩니다.
그리고 단정함(셈노테스)은 세상 사람들 앞에서도 성도답게 행동하여 존경을 받는 '수평적인 도덕성의 태도'입니다. 말과 행동에 품위가 있고, 정직하며, 사회의 모범이 되는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오늘날 예배의 자유를 누리고 평안하게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권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기회입니다. 이 평안을 나의 육신적 안락함이나 성공을 위해서만 쓰는 것이 아니라, '경건과 단정함'을 훈련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이 애국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경건하고 단정한 자세로 간절히 기도하면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사회가 거룩해지고 아름다워집니다. 살만한 세상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복을 내려주십니다.
고요함(에레모스)은 외부적인 환경으로부터 오는 충돌이나 소란, 즉 '박해나 전쟁, 사회적 혼란이 없는 상태'를 뜻합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일순간에 혼란이 찾아옵니다. 전기가 끊기고, 생활용품의 공급이 어려워집니다. 우리는 지금 우크라이나와 이란 등의 전쟁에서 이런 상황을 보고 있습니다.
평안함(헤쉬키오스)은 환경적 안정 속에서 누리는 '마음과 정신의 영적 평정 상태'를 의미합니다. 당시 초대 교회 성도들은 로마 제국의 변덕스러운 박해 속에서 언제 재산을 빼앗기거나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우리나라도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의 참화 속에서 이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지금 평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더욱 열심히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바울은 지도자들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정부가 공의롭게 법을 집행하고 사회적 질서를 유지해 주기를 구하라고 합니다. 이 "고요하고 평안한 상태"는 단순히 아무 일도 없는 안일한 삶을 즐기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있는 '최적의 신앙 환경'을 확보하기 위함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라의 경제가 어려워지고 정치가 혼란해지면 지도자 탓을 하고 환경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혀 다른 공식을 말씀하십니다. '사람이 바뀌면 땅을 고치겠다'가 아니라, '내 백성이 낮아져 기도하면 내가 그 땅을 고치겠다'고 하십니다. 국가의 평안과 회복의 열쇠는 세상에 있지 않고, 오늘 디모데전서 말씀대로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우리 교회에 쥐어져 있습니다.”

 

현대 설교의 거장이라 불리는 영국의 찰스 스펄전(Charles Spurgeon) 목사님이 목회하던 19세기 후반, 영국의 국회의원 몇 명이 스펄전 목사님이 시무하는 메트로폴리탄 타버너클 교회를 방문했습니다.
의원들은 당시 전 세계에 거대한 영향력을 미치던 대영제국의 정치를 논하며, 국가의 복잡한 정세와 위기 앞에 지도자로서 큰 부담감을 토로했습니다. 이야기를 듣던 스펄전 목사님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의원님들, 영국의 정치를 움직이는 진짜 '보일러실(발전소)'이 어디 있는지 구경시켜 드리겠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의원들을 데리고 교회 지하로 내려갔습니다. 그곳에는 화려한 기계나 보일러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차가운 지하 바닥에는 수백 명의 성도들이 모여 땀을 흘리며 "영국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시고, 공의로 나라를 다스리게 하소서"라고 눈물로 부르짖으며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의원들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의원님들이 국회의사당에서 법을 만들고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힘은 바로 이 지하에서 나라와 지도자들을 위해 밤낮으로 부르짖는 성도들의 기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곳이 영국의 진짜 발전소입니다."

 

그렇습니다. 청와대나 국회의사당이 나라를 움직이는 것 같지만, 영적으로 보면 이 나라의 운명은 성도들의 기도에 달려 있습니다. 기도의 발전소가 멈추면 나라는 흔들립니다. 우리가 이 나라의 영적 발전소가 되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의 불을 지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애국은 왕의 보좌보다 높으신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정치를 비판할 때, 교회는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세상이 분노를 쏟아낼 때, 성도는 눈물의 중보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박해자 네로 황제 앞에서도 교회가 기도를 멈추지 않았을 때, 결국 로마 제국은 복음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칼과 총보다, 정치적 권력보다 강한 것은 성도들의 기도입니다.
 
기도가 세상을 바꿉니다. 기도가 기적을 일으킵니다.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가 능력입니다. 이번 모포지역을 위한 방충망 교체 작업과 지역 전도가 어제 은혜 가운데 잘 끝났습니다. 
이번 행사에서 제일 걱정이 되었던 문제가 날씨였습니다. 일기예보 상으로 하필 행사가 진행되는 20일(토)에만 비가 온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행사가 있는 날(어제), 새벽기도를 할 때까지만 해도 비가 많이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간절히 기도하는 성도들의 눈물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아침 8시쯤부터 비가 그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행사가 시작되는 9시부터는 일하기 좋은 날씨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비가 내리는 시간을 앞당겨서 미리 비가 내리게 하셔서 일하기 좋은 선선한 날씨를 주셨습니다. 노회 국내선교부 서기를 맡아서 일하시는 도구제일교회 이종선목사님이 하시는 말씀이 동해면에서 제2회 막걸리축제를 어제 하기로 했는데, 비 예보로 연기되었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이분들은 그대로 할껄! 하면서 후회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로 기적을 만드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나라 사랑은 기도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나라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도록, 이 땅에 갈등이 사라지고 고요함과 평안함이 임하도록 기도의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다. 날마다 나라와 민족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애국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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