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손이 함께 하십니다(행11:19~26절)
우리나라에 복음이 처음으로 전파되던 19세 말에는 전도인들이 매를 맞거나 돌팔매질을 당하는 사건이 자주 발생하였습니다. 1894년 4월 7일 평양에서 한석진과 김창식, 두 전도인이 투옥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수요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포졸들이 들이닥쳐 한석진과 김창식 등 여러 사람을 결박하여 잡아갔습니다. 그리고 민병석 평안감사는 ‘하늘을 향하여 주먹질을 하고 하나님을 욕하면 놓아주겠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한석진 전도인은 반대로 평안감사에게 주먹질하면서 그의 잘못을 꾸짖었습니다. 그러자 평안감사는 화가나 한석진을 사형에 처하라고 엄명하였습니다.
사태의 위급함을 알게 된 마펫 목사님과 홀(W.G.Hall) 선교사님은 급히 상경하여 영국과 미국 공사를 통해 외아문(지금의 외교부)에 교섭하여 석방될 것이라는 언질을 받기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평안도 감사는 강경히 불응하였습니다. 그래서 미국 공사는 고종에게 직접 구명을 아뢰었습니다.
고종 황제는 ‘내가 허락하는 것을 그대가 어찌 금하는가’라는 어명을 평안감사에게 내려 한석진은 구사일생으로 생명을 건졌습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평양에서의 전도는 중앙정부의 옹호를 받은 결과가 되어 전도의 문이 널리 개방되었습니다. 그 사건이 오히려 평양대부흥운동의 초석이 된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일은 주님의 은혜로 가능했습니다. 주님의 손이 함께 하신 것입니다.
1. 환난 때에 주님의 손이 함께 하셨습니다.
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스데반의 순교 후 예루살렘에 사는 기독교인들에게 대한 엄청난 박해가 있었습니다. 그 박해로 예루살렘에만 모여 있던 성도들이 이방 나라로까지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사람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렀습니다. 사방으로 퍼져나간 것입니다. 핍박이 심해지자 그들은 점점 더 멀리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져 갔습니다.
그들은 흩어진 곳에서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러한 환난은 복음을 위축시키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복음을 사방으로 더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부흥은 고난과 문제 가운데서 시작됩니다. 사람들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순간에 성도들은 간절히 기도하게 됩니다. 부르짖게 됩니다. 그때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이 임하게 됩니다. 부흥은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입니다.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교회는 너무 건재하며, 너무 자신만만하다. 더 열심히 활동하면 된다는 확신에 차 있는 것이 문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지혜나 능력을 더 의지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애굽 군대와 홍해 사이에 끼인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되게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앞으로도 못 가고 뒤로 물러날 수 없는 암담한 현실이었기에 그들은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불가능한 상황에 부닥쳐 궁극적인 절망을 경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교회의 부흥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안디옥교회의 부흥은 이런 고난 가운데서 찾아온 것입니다.
그렇게 환난을 피해 도망쳐서 시리아 안디옥에 이른 사람들은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여기서 유대인 성도들이 갖고 있는 이방인에 대한 편견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편협한 생각에 빠져 있으면 안됩니다. 복음은 유대인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교인들만을 위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모든 만민의 구원을 위한 복음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합니다. ‘나만 천국 가면 되지!’라고 하는 것은 편협한 생각에 붙들려 살면 안됩니다.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지옥에 가면 안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2. 주 예수를 전파할 때 주님의 손이 함께 하셨습니다.
20.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그런데 그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헬라인에게도 주 예수를 전파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안 몇 사람이 중요합니다. 그들이 안디옥에서 헬라인에게도 주 예수를 전파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소수, 몇 사람을 통해서 위대한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드디어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진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아니라 안디옥에서 이방인에 대한 복음의 문이 열린 것입니다. 안디옥교회는 이방 땅에 세워진 최초의 교회입니다. 이방 선교의 전초 기지가 된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 기지가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은 교회에서 은혜를 받고 세상을 향해 복음을 전하러 나가는 선교사들입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이 선교지인 것입니다.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주님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환난을 피해 흩어진 사람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의 목표는 주 예수를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그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전도하면 주님의 손이 함께 하신 것입니다. 기적이 동반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이 세상은 잠깐이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합니다. 죽음을 이기고 죽음 너머의 영원한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길은 오직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영혼 구원은 성령의 능력으로 됩니다. 부흥은 하나님이 손이 함께 할 때 되는 것입니다. 돈이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지식이 있어야 되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을 갖추어야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숫자가 많아야 되는 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도우시면 됩니다. 주님이 역사하시면 부흥합니다.
중국 내지 선교의 개척자인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 선교사님의 일화입니다. 그가 거대한 중국 대륙을 바라보며 선교를 결단했을 때, 주변 사람들은 무모한 짓이라며 만류했습니다. 그때 허드슨 테일러는 책상 위에 있던 얇은 종이 한 장을 집어 들고 세워보려 했습니다. 종이는 자꾸만 힘없이 쓰러졌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이 종이는 스스로 설 수 없습니다. 바람이 불면 날아갑니다. 저도 이 종이처럼 약합니다." 그리고는 긴바늘 하나를 가져와 종이에 꽂고 자신의 손으로 바늘을 꽉 붙잡았습니다. 그러자 종이가 꼿꼿이 섰습니다. 테일러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이 저를 붙잡아 주시면, 저는 중국 선교의 거친 바람 앞에서도 능히 설 수 있습니다."
핍박을 피해 도망치던 제자들은 바람에 날리는 종이처럼 연약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안디옥에서 입을 열어 예수님을 전할 때, 주님의 손이 그들을 붙잡아 주셨기에 이방 선교의 거대한 문을 열 수 있었습니다.
3. 하나님의 은혜를 볼 때 주님의 손이 함께 하셨습니다.
22.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이방 지역에 있는 안디옥교회가 부흥된다는 소문이 예루살렘교회에 들렸습니다. 그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송한 것입니다. 안디옥은 바나바의 고향 구브로 섬에서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그의 고향 사람들이 안디옥에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당시 안디옥은 인구가 50만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23. 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당시 안디옥 교회는 예루살렘 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정통'이 아니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핍박을 피해 도망친 평신도들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생긴 미숙한 공동체였습니다. 잘못하면 율법의 잣대로 지적하거나 정죄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성령 충만한 바나바는 그들의 단점이나 미숙함 대신, 그곳에 역사하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보았습니다. 성도들의 얼굴에 있는 기쁨, 변화된 삶,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오는 기적 같은 현상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한 것입니다. 놀라운 은혜를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은혜가 있으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온 것입니다. 많은 이방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보는 사람은 기뻐하게 됩니다. 감사하게 됩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은 은혜를 보지 못합니다. 욕심에 빠지고 교만한 사람은 주님의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있으면 바울처럼 감옥 안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어떤 형편에 있든지 자족하는 사람이 됩니다.
바나바는 안디옥 교인들에게 꼭 필요한 영적 권면을 합니다. 굳건한 마음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굳건한 마음'이란 원어적인 의미로 '목적을 정한 마음', '확고부동한 결단'을 뜻합니다. 당시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아 고향을 떠나온 피난민들이었습니다. 환경적으로 늘 불안하고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 처지에 있는 성도들에게 바나바는 상황이나 감정에 따라 요동치지 말고, 믿음의 중심을 잡으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고 했습니다. '머물러 있다'는 말은 요한복음 15장의 "내 안에 거하라"는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주님과 연결된 끈을 놓지 말고, 주님께 딱 붙어 있으라는 뜻입니다. 포도나무 가지는 포도나무 원줄기에 꼭 붙어 있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신앙의 핵심은 대단한 업적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주님 곁에 붙어 버티는 것입니다.
‘주께 붙어 있으라’라는 말은 초기 기독교의 메시지로 예수님이 삶의 중심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모든 삶의 원리이며 기준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4. 착하고 믿음이 충만할 때 주님의 손이 함께 하셨습니다.
24.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먼저,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착하다'는 말은 단순히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 원어적 의미로는 '윤리적으로 흠이 없고, 타인에게 유익을 주며, 너그러운 성품'을 가졌다는 뜻입니다.
① 그는 포용의 사람이었습니다. 당시에 사도 바울은 과거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던 전력 때문에 모두가 무서워하고 의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바나바는 편견 없이 그를 찾아가 손을 잡아주고 데려와 함께 사역했습니다.
② 그는 위로의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의 원래 이름은 '요셉'이었지만, 사도들이 그에게 '바나바(위로의 아들)'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를 통해 위로와 격려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③ 그는 재물을 가지고 헌신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밭을 팔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썼습니다(사도행전 4장). 말과 혀로만 착한 게 아니라 삶과 물질로 착함을 증명한 사람입니다.
다음으로, 바나바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① 성령 충만은 내 감정이나 고집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 살았다는 뜻입니다. 말씀의 가치를 따라 산 것입니다.
유기성목사님의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이라는 책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한 집사님이 목사님을 찾아와서 이야기했답니다.
목사님, 저는 성령 충만을 받고 싶은 마음은 간절한데 체력이 약해서 성령 충만을 못 받아요."
"성령 충만하고 체력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체력이 있어야 되겠더라고요. 성령 충만을 받으려면 우선 엄청나게 빨리 박수를 칠 수 있어야 하잖아요."
몇번 부흥회에 참석해보니까 얼마나 찬송을 빨리 부르고 박수를 세게 치라고 하는지 따라 하다가 중간쯤 되면 팔이 아파서 더 이상 못하겠더라는 것입니다. 끝까지 따라 하기만 하면 역사가 일어날 것 같은데 못 따라해서 안되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크게 "주여!" 삼창을 하라고 하는데 자기는 "주여!"라고 한 번만 크게 외쳐도 목이 쉬어버린다고 합니다. 쉰 목소리로 "주여! 주여!" 하다가 결국 성령충만을 받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뭔가 오해한 것입니다. 성령충만함을 받는 것은 체질과 상관이 없습니다. 성령 충만은 영(靈)으로 육(肉)을 이기고 온전히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② 그리고 믿음이 충만하다는 것은 눈앞의 상황이나 사람의 조건이 아니라, 그 사람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한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가나안 땅의 입구였습니다. 이제 말씀에 순종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만 하면 됐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거기에 사는 아낙자손들을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죽이려고 출애굽시켰다고 원망했습니다.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그렇게 원망하던 사람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때 여호수아 갈렙은 환경이나 형편을 보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 두 사람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바나바도 문제를 보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이 충만한 것입니다. 문제나 주변 상황을 보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3)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졌습니다.
성경은 바나바가 대단한 설교를 했다거나 놀라운 기적을 행해서 부흥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나바가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왔다는 것입니다. 그 아름다운 성품을 주님이 쓰신 것입니다.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바나바는 고향 다소에 가 있는 사울을 안디옥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협력하여 안디옥 교회에서 사역하였습니다. 큰 무리를 가르쳤습니다. 그 결과로 안디옥교회는 놀랍게 부흥되었습니다. 주님의 손이 함께 하신 것입니다.
복음을 들은 안디옥 사람들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신상 앞에 가서 절하며 우상과 음란에 빠져 있던 사람들의 삶이 달라졌습니다. 그 달라진 사람들이 입만 열면 그리스도를 선포했습니다. 예수님께 미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별명을 붙인 것이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구별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중심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 오직 복음이 삶의 가치가 되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