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눈을 뜨라(신명기1:19-33절)
보니페이스라는 선교사가 723년에 독일에 가서 선교할 때였습니다. 그 당시 독일은 온갖 미신에 빠져 있을 때였습니다. 어떤 마을에 갔는데 “천둥신의 거룩한 참나무”라고 추앙받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그 나무 앞에서 제사하고 빌었습니다. 보니페이스 선교사는 마을 사람들을 그 나무가 있는 곳으로 모이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도끼를 가지고 그 나무를 찍어 넘어뜨렸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보니페이스 선교사가 저주를 받아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보니페이스 선교사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습니다. 그 후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게 되었습니다.
참된 신앙은 눈에 보이는 어떤 형상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인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1. 믿음은 말씀대로 하는 것입니다.
19.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호렙 산을 떠나 너희가 보았던 그 크고 두려운 광야를 지나 아모리 족속의 산지 길로 가데스 바네아에 이른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처 없이 방황하다가 우연히 가데스 바네아에 이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이제 발행하여 행진하라"고 주셨던 '말씀과 명령에 철저히 순종하여' 움직인 거룩한 여정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장막을 접었고, 구름기둥을 따라 걸었습니다. 출발은 매우 모범적이었고 믿음으로 가득 찬 순종의 발걸음이었습니다.
시내산에서 가데스 바네아까지 이르는 길은 실제로 '바란 광야'라는 매우 황량하고 거친 지역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모세는 이 길을 그냥 광야가 아니라 "너희가 직접 눈으로 보았던 크고 두려운 광야"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가데스 바네아'는 광야의 끝이자,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남쪽 관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모진 고생과 두려운 광야를 다 견뎌내고 마침내 '약속 성취의 바로 코앞'까지 도달했습니다.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신 아모리 족속의 산지에 너희가 이르렀나니
그런데 그들 앞에 아모리 족속이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아모리족속은 강하고 처치하기 어려운 족속이었습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두려움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보다 현실적인 두려움이 그들을 불안하게 하였습니다.
21.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은즉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신 대로 올라가서 차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 한즉
'너희 앞에 두셨다'는 것은 가나안 땅이 이스라엘이 쟁취해야 할 불확실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의 손에 쥐여주신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비록 눈앞에는 거친 산지와 가나안 족속들이 버티고 있었지만, 영적인 현실 속에서 그 땅은 이미 이스라엘의 소유로 확정되어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비전과 승리는 우리가 힘겹게 따내야 하는 상품이 아니라, 주님이 이미 우리 앞에 준비해 두신 은혜의 영역입니다.
이 약속은 수백 년 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셨던 '대대손손 이어져 온 신실한 언약'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상황은 수시로 바뀌고 내 감정은 요동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하지 않습니다.
"올라가서 차지하라", 히브리어 원어에서 '차지하라'는 단어는 '상속받다, 소유하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이미 너희의 유산으로 결정되었으니 믿음으로 발을 딛고 영토를 취하라는 강력한 행동 촉구입니다. 하나님이 다 준비해 두셨을지라도, 백성들이 직접 발을 떼어 '올라가서 차지하는' 순종의 행동이 없으면 그 땅은 내 것이 되지 않습니다.
모세는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주저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חתת, 하타트)는 '마음이 깨어지다, 공포로 인해 낙담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장대한 적들의 기세에 눌려 마음이 꺾인 채 멈춰 서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2. 믿음은 말씀 앞에서 계산하지 않습니다.
22.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보다 먼저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알리게 하자 하기에
그냥 가면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께서 아모리 족속을 물리쳐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안 됩니다. 일단은 정탐꾼을 보내서 한 번 알아보고 그 다음에 올라가든지, 도망가든지 결정하자고 합니다.
얼핏 보면 철저한 준비 같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해 인간적인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정탐의 결과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불신앙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여기서 모세가 백성들의 요구에 밀립니다. 그래서 12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에스골 골짜기에 가서 정탐하고 돌아왔습니다. 그 땅의 과실이 잘 되는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정말로 살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에 사는 아모리 족속들이 자기들보다 장대하고 잘 생겼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자기들은 메뚜기 같았습니다.
23. 내가 그 말을 좋게 여겨 너희 중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둘을 택하매
영적인 지도자였던 모세조차도 백성들의 합리적인 제안 뒤에 숨은 '불신앙의 싹'을 온전히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백한 약속이 있을 때는 계산하거나 확인하려 하지 말고 곧바로 순종해야 합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기에 너무나 타당해 보이는 방법이 때로는 영적인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매우 공정하고 체계적인 방식을 취합니다. 어느 한 지파도 소외되지 않도록 12지파 전체에서 대표를 한 명씩 골고루 선출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조직적이고 완벽한 준비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믿음'이 아닌 '의심'에서 출발한 것이었습니다.
24. 그들이 돌이켜 산지에 올라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그 곳을 정탐하고
그들이 마주한 '산지'는 가나안 족속들이 견고한 성읍을 짓고 살던 요새화된 지역이었습니다. '에스골'은 히브리어로 '송이(특히 포도송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곳은 헤브론 근처에 위치한 골짜기로, 대단히 비옥하여 거대한 포도가 자라나는 풍요의 상징적인 장소였습니다.
이 정탐의 순간은 이스라엘에게 큰 기쁨이자 동시에 영적인 시험대였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진짜임을 눈으로 확인하는 축복의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그 풍요로운 땅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거민(아낙 자손)'과 '견고한 성벽'을 함께 보아야 하는 두려움의 시험대이기도 했습니다.
3. 아는 것과 믿는 것이 같아야 합니다.
25. 그 땅의 열매를 손에 가지고 우리에게로 돌아와서 우리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이 좋더라 하였느니라
정탐꾼들은 말로만 설명한 것이 아니라 에스골 골짜기에서 딴 거대한 포도송이와 석류, 무화과 등 눈으로 볼 수 있는 확실한 '증거물'을 손에 쥐고 돌아왔습니다.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땅이 좋더라", 이것은 12명의 정탐꾼 전체가 만장일치로 인정한 사실입니다. 믿음의 사람(여호수아, 갈렙)이든, 불신의 사람(나머지 10명)이든 상관없이 가나안 땅이 객관적으로 '대단히 좋은 땅'이라는 것에는 아무도 이견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는 것'과 '믿는 것'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땅이 좋다는 증거를 눈으로 보았고, 입술로도 "하나님이 주신 땅이 참 좋다"고 고백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땅으로 걸어 들어갈 '믿음'은 없었습니다.
26. 그러나 너희가 올라가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메뚜기 정신을 가진 이스라엘은 그 땅을 차지하러 올라가기를 싫어하였습니다. 올라가서 가면 죽을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보다, 하나님의 명령보다 자기들의 판단을 의지한 것입니다. 자기들 생각에 붙들려서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것입니다.
27. 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넘겨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그들은 장막 중에서 원망하였습니다. 자기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을 오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랑해서 불러냈는지 미워해서 불러냈는지 판단을 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그런 마음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자기들을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불러내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붙여 멸하시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28. 우리가 어디로 가랴 우리의 형제들이 우리를 낙심하게 하여 말하기를 그 백성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들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으며 우리가 또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노라 하는도다 하기로
10명의 정탐꾼의 믿음 없는 보고가 백성들을 낙심케 했습니다. 그 아모리 족속은 “우리보다 장대하며 그 성읍은 크고 성곽은 하늘에 닿았도다.”라고 보고를 한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백성들은 겁에 질렸습니다.
4.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29.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모세는 두 단어를 연이어 사용합니다. '무서워하다'는 적들의 외형적인 크기(아낙 자손의 장대함)에 압도당하는 감정이고, '두려워하다'는 그로 인해 마음이 꺾여 뒤로 물러서거나 도망치려는 태도를 뜻합니다.
가나안 땅의 거인들이 객관적으로 강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모세 역시 그들이 약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상황은 어렵지만, 그 환경 때문에 무서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30.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이스라엘이 마주할 가나안의 거인(아낙 자손)들과 험난한 산지를 하나님은 이미 그들보다 한 발 앞서 가셔서 먼저 마주하고 계십니다.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모세는 백성들의 기억을 출애굽의 기적들로 소환합니다. 애굽의 완악한 바로 왕을 꺾으셨던 열 가지 재앙, 사방이 막혔을 때 바다를 가르신 홍해의 기적을 그들은 다른 사람의 말이 아니라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똑똑히 보았습니다.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이 구절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이제도"입니다. 과거 애굽에서 기적을 베푸셨던 하나님은 과거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오늘, 지금 이 순간, 내 삶의 한복판에서도 여전히 살아 역사하시는 '현재의 하나님'이십니다.
31.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하나
여기서 '당하였거니와'는 히브리어 원어로 '너희가 직접 보고 경험하지 않았느냐'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낮에는 타는 듯한 더위, 밤에는 살을 에어내는 추위, 그리고 물 한 방울 없는 척박한 광야에서 이스라엘은 지난 2년의 여정 동안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직접 눈으로 보고 피부로 겪었습니다.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그들이 걸어온 모든 발자국마다 하나님의 안아주심이 배어 있었기에, 낙오되거나 멸망하지 않고 약속의 문턱인 이 곳 가데스 바네아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습니다.
32. 이 일에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믿지 아니하였도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신 것을 안 믿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미워해서 망하게 한다고 믿는 것이 문제입니다. 어떻게 믿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을 잘못 생각하면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원망하게 됩니다.
33.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
먼저' 걸어가시며 길을 개척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광야는 아무 데나 장막을 쳤다가는 밤새 전갈에 물리거나, 갑작스러운 홍수에 휩쓸리거나, 식수를 구하지 못해 생명이 위험해지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이 안심하고 쉴 수 있는 가장 안전하고 최적의 장소를 '미리 찾아놓으시는 분'이셨습니다.
또한 광야의 낮은 살을 태울 듯 뜨겁고, 밤은 뼈를 깎는 듯 춥습니다. 하나님은 낮에는 거대한 구름기둥으로 태양 빛을 막아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셨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맹추위를 녹이고 어둠을 밝혀주셨습니다.
길이 없는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길을 잃지 않고 40년을 버틴 이유는 구름과 불기둥의 움직임을 통해 하나님이 정확한 방향을 지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찬송가
262장 263장 266장 265장 268장 270장 358장 252장
기도 제목
1. 자신과 가정, 자손들을 위하여, 성도들의 가정을 위하여, 몸이 아프신 분들을 위하여
2. 민족복음화를 위하여, 한국 교회를 위하여, 선교사님을 위하여
3. 사역자들을 위하여, 봉사자들을 위하여, 새신자들을 위하여, 전도대상자들을 위하여
4. 6월 20일 국내선교부 연합행사 및 전도를 위하여
5. 장로님과 권사님들을 위하여, 전도사님과 교사들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