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하는 자의 복(시편84:1-12절)
오늘 말씀을 통해 주님의 임재 안에 거하며 '찬송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세 가지 복을 함께 나누고, 찬송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1. 주의 장막에 거하는 복을 얻습니다.
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주의 장막은 역사적으로는 하나님의 임재가 머물던 성막이나 예루살렘 성전을 뜻합니다. 오늘날의 의미로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 '예배의 자리', '주님과 깊이 교제하는 모든 처소'를 상징합니다.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는 단순히 시각적으로 아름답다는 뜻을 넘어, 그 장소에 계신 하나님을 너무나 사모하여 마음이 벅차오르는 감격과 애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사모하는 영혼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은 하나님께로부터 왔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송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쇠약해지고 불안해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궁정, 저 하늘나라를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육체가 살아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기도와 찬송으로 우리의 영혼이 만족해야 합니다. 영혼이 잘되는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성경에서 '참새'와 '제비'는 흔하고 값어치 없으며, 스스로를 지키기 힘든 지극히 작고 연약한 피조물을 상징합니다. 그런 미물조차도 거룩하고 웅장한 하나님의 성전(주의 제단)에 둥지를 틀고 안식을 누립니다. 심지어 가장 조심스럽고 안전해야 할 '새끼 둘 보금자리'를 그곳에 마련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상처받고, 소외되고, 연약한 인간일지라도 하나님의 품(주의 제단)에 나아가기만 하면, 그 어떤 위협도 없는 완벽한 보호와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시를 쓸 당시 저자는 어떠한 상황(질병, 포로, 혹은 정치적 망명 등) 때문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갈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마음은 성전에 가고 싶어 미칠 것 같은데 몸이 갈 수 없으니, 성전 틈새에 집을 짓고 사시사철 주님의 임재 곁에 머무는 참새와 제비가 너무나도 부러웠던 것입니다. "저 미물들도 주님 제단 곁에 저렇게 평안히 사는데, 나는 왜 이리 멀리 떨어져 있는가" 하는 애틋한 그리움과 탄식이 묻어나는 대목입니다.
4.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주님을 모시고 주의 집에 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 마음에 오셨습니다. 우리의 삶의 주인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를 찬송하고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새 힘을 얻고 복을 받는 길입니다.
2.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습니다.
5.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찬송하면 주께 힘을 얻습니다.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펼쳐집니다. 찬송하면 영혼이 힘을 얻게 되고 육신이 강건해집니다. 마음에 소망이 있으면 육신도 힘을 얻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힘들게 하는 각종 시험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소망하며 찬송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마음에 평강이 임하고 기쁨으로 가득하게 하는 길입니다.
6.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게 하십니다.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줍니다. 그래서 힘을 얻고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미국 시카고에 스패포드라는 유명한 변호사이며 대학교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아내와 사랑스런 네 딸을 큰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한번은 아내와 네 딸이 프랑스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여객선 ‘하브호’가 영국 배와 충돌해 2백26명이 죽는 대참사가 발생했습니다. 네 딸은 모두 익사하고 아내만 겨우 생명을 구했습니다.
스패포드는 사고 현장에 도착해 딸들의 이름을 부르며 절규했습니다. 아내는 절망적인 슬픔 속에서도 남편의 손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여보, 딸들은 지금 천국에 있어요. 우리와 잠시 헤어져 있을 뿐이랍니다.” 스패포드는 이 말에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비극의 바다에서 시 한편을 지었습니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 늘 잔잔한 강 같든지 /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이것이 바로 찬송가 413장입니다.
7.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보통 사람이 먼 길을 걸어가거나 인생의 험한 여정을 지나다 보면 체력이 떨어지고 낙심하여 지치기 마련입니다. 출발할 때는 힘이 넘쳤어도 갈수록 지치는 것이 자연의 이치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은 다릅니다. 내 힘으로 걷는 것이 아니라, 걸음을 옮길 때마다 하나님이 새로운 은혜와 체력, 영적인 힘을 끊임없이 공급해 주시기 때문에 갈수록 더 강해지는 역설적인 은혜를 표현한 것입니다.
"나아가 시온에서", 역사적으로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시온산을 뜻하며,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합니다.
성도들의 인생길은 정처 없이 헤매는 방랑이 아니라, 목적지가 분명한 '순례의 길'입니다.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이 구절에서 가장 은혜로운 단어 중 하나는 '각기'입니다. 순례의 길이 아무리 험하고 멀지라도, 하나님을 사모하며 떠난 자들은 도중에 쓰러지거나 낙오되지 않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마침내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3.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십니다.
8.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 (셀라)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는 온 우주 만물과 천군 천사를 다스리시는 '지극히 높고 위대하신 능력의 하나님'을 뜻합니다. 반면에 야곱의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과 허물을 다 아시고 품어주시는 자비롭고 친밀한 하나님'을 뜻합니다.
"온 우주를 다스리는 거대하고 전능하신 하나님(만군의 하나님)이, 동시에 야곱처럼 부족하고 나약한 나의 작은 신음에도 귀를 기울이시는 신실한 분(야곱의 하나님)이십니다"라는 놀라운 고백입니다.
"들으소서", "귀를 기울이소서", 동일한 요청을 다른 단어로 반복하는 것은 시인의 영혼이 얼마나 간절하고 절박한지를 보여줍니다.
9.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 보옵소서
성경에서 '방패'는 사방에서 날아오는 적의 불화살과 공격을 막아주는 유일한 방어 무기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단순히 '방패와 같은 분'이 아니라 "우리의 방패"라고 직접적으로 선포합니다.
인간의 힘이나 군사력, 재물이 우리의 방패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이 인생의 영적·육적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완벽하게 지켜주시는 분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얼굴을 살펴 보옵소서", 성경에서 하나님의 '얼굴'이 인간을 향한다는 것은 '은혜와 평강, 자비'를 베푸신다는 뜻입니다.
10.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한 날은 하나님의 임재가 가득한 성전에서의 단 하루를 뜻합니다. 다른 곳에서의 천 날은 하나님이 없는 세상에서 누리는 3년(약 1,000일)에 가까운 긴 시간을 뜻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더 오랜 시간 동안 쾌락과 풍요를 누리는 '천 날'을 복되다고 말하지만, 시인은 주님과 깊이 교제하는 '단 하루'가 훨씬 더 행복하고 가치 있다고 고백합니다.
시인은 세상의 화려한 지위보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거리를 선택합니다. 악인의 장막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화려하고 안락한 대저택에서 상석(높은 자리)에 앉아 사는 삶을 뜻합니다. 성전 문지기는 성전 문턱에 앉아 문을 열고 닫는, 가장 낮고 보잘것없는 수종자의 자리를 뜻합니다.
11.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해요 방패가 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십니다. 여러 가지 시험이나 문제를 막아주시는 방패가 되십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며 살아갈 때에 삶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찬양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인생에 은혜와 영화를 주십니다.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찬송하며 즐겁게 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복을 받는 비결입니다. 무엇을 가졌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높은 지위를 얻었다고 인생이 만족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찬송할 때에 행복합니다. 지금 주어진 삶에서 감사하며 살 때에 행복합니다.
12.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은 만군의 여호와이십니다. 모든 만물을 만드시고 섭리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온전히 찬양하고 믿고 의지하는 자는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함이 우리에게 복입니다. 하나님을 찬송하고 사는 사람이 삶이 형통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여셔야 인생이 잘 되고 번성하게 됩니다.
시편 84편에는 세 번에 걸쳐 "복이 있나이다"라는 선언이 등장하며 점진적으로 발전합니다.
첫 번째 복 (4절):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이다" 성전에 머무는 제사장이나 레위인의 복입니다.
두 번째 복 (5절):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성전을 향해 험한 길을 걸어가는 순례자의 복입니다.
세 번째 복 (12절):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앞선 복들이 '성전이라는 공간'이나 '순례라는 행위'에 집중되어 있었다면, 마지막 구절은 "상황과 장소가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고 인생을 맡기는 모든 자"로 복의 범위를 넓힙니다. 성전에 몸이 머물지 못하는 비참한 상황일지라도,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그 사람이 바로 가장 복된 사람이라는 위대한 선언입니다.
여기서 '의지하다(Trust)'는 히브리어로 '바타흐(בָּטַח)'인데, 이는 단순히 "믿습니다"라는 마음의 상태를 넘어 "자신의 온 체중을 실어서 완전히 기대어 버리다", "절대적으로 신뢰하여 아무 근심 없이 평안을 누리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힘, 내 재물, 내 경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주권이 온전히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전적으로 맡겨버리는 태도입니다.
찬송가
457장 494장 492장 449장 446장 441장 520장 516장 518장
기도 제목
1. 자신과 가정, 자손들을 위하여, 성도들의 가정과 하시는 일들을 위하여, 몸이 아프신 분들을 위하여
2. 군대와 경찰들을 위하여, 중고등학생들을 위하여, 청년들을 위하여
3. 6월 20일 국내선교부 연합행사 및 전도를 위하여, 지역복음화를 위하여
4. 선교사님들을 위하여, 우리 교회가 돕는 선교사님들과 가족들을 위하여, 그 나라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