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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기도회

감사로 제사를 드리라(시편 50:1~23절)

작성자손정호|작성시간26.06.10|조회수6 목록 댓글 0

https://youtu.be/eV8-Zg6B91I

감사로 제사를 드리라(시편 50:1~23)

 

오늘은 시편 50편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으시겠습니다.

시편 50편은 아삽의 시입니다. 아삽은 성전에서 찬양을 인도하던 예배 인도자였습니다. 누구보다 예배의 현장에 가까이 있었던 그가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충격적인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것은 바로 형식적인 예배, 마음이 없는 종교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경고이자 심판의 선언입니다.

 

1. 전능하신 하나님이 온 세상을 소환하십니다.

1. 전능하신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전능하신 이 (엘): 능력과 힘의 하나님을 뜻합니다.

여호와 (야훼):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스스로 계신 분을 뜻합니다.

하나님 (엘로힘):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를 뜻합니다.

 

전능하신 이 여호와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 엘로힘 야훼'입니다. 이것은 "지금 법정을 여시는 분이 단순한 지역 신이나 우상이 아니라, 천지를 창조하시고 능력이 무한하시며 언약에 신실하신 유일한 절대자"이심을 엄숙하게 공포하는 것입니다.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라는 표현은 단순히 시간적인 의미가 아니라,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온 세상 전체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심판의 영역에는 그 어떤 예외 지대도 없습니다. 온 인류를 향한 법정 소환령입니다. "세상을 부르셨도다"라고 합니다.

 

2.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비추셨도다

'시온'은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도성이며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그곳이 '온전히 아름답다'는 말은 그곳에 영광의 본체이신 하나님이 함께 하심 때문입니다. 결코 예루살렘 성 자체가 화려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죄악된 어둠의 세상을 밝히시기 위해 자신의 계시의 빛을 비춰 인간들로 하여금 참된 구원의 진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3. 리 하나님이 오사 잠잠하지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삼키는 불이 있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당장 죄를 벌하지 않으시면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다"라거나 "내 죄를 모르신다"라며 착각하고 죄를 거듭 짓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하나님의 침묵은 끝이 납니다. "잠잠하지 아니하시니"라는 표현은 더 이상 죄악을 묵과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공의의 판결을 내리시며, 두려운 심판의 목소리를 발하시겠다는 것입니다.

 

4.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을 판결하시려고 위 하늘과 아래 땅에 선포하여

이스라엘인들의 경우, 재판을 진행할 시에 그 공정성을 꾀하기 위하여 반드시 두 명 이상의 증인을 채택합니다(신 19:15).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심판의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위로는 하늘과 아래로는 땅, 즉 전 우주를 증인들로 채택하십니다. 그들 앞에서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5. 이르시되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 하시도다

하나님은 불신 세상이 아니라, 가장 가깝다고 자부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먼저 법정에 세우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라고 부르시는 것은, 그들에게 '특권'이 있었던 만큼 이제는 그에 따르는 '책임'을 물으시겠다는 뜻입니다.

백성들은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삶 속에서는 그 언약의 법(말씀)을 등 뒤로 던져버리고 이방인과 똑같이 살았습니다.

 

6. 하늘이 그의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 (셀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심판하실 때, '하늘'을 증인으로 삼아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게 하십니다. 하늘은 인간의 역사와 모든 행위를 위에서 다 내려다본 가장 객관적이고 확실한 증인입니다.

인간의 법정에서는 거짓 증언이나 뇌물로 판결을 뒤집을 수 있고, 법망을 피해 숨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온 세상을 덮고 있는 하늘이 증인이 되어 하나님의 공정하심을 선포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변명하거나 "이 판결은 억울합니다"라고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7.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이스라엘아 내가 네게 증언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여기서 '내 백성아'라는 호칭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대해 백성의 관계를 말합니다. 그분의 말씀에 절대 순종해야 할 입장에 있음을 새롭게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애굽의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을 구원하셔서 그들과 맺은 언약의 핵심 내용으로서(출 20:2)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절대 보호자와 주권자의 관계에 있는 분이심을 나타냅니다.

 

2. 형식적인 종교 행위를 거부하십니다.

8. 나는 네 제물 때문에 너를 책망하지는 아니하리니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

하나님은 지금 백성들이 제사를 '빼먹었거나' 제물의 '성별이 틀렸거나' 성의가 없어서 책망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네 번제가 항상 내 앞에 있음이로다"라는 말씀처럼, 그들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상번제를 드렸고, 절기마다 수많은 재물을 제단에 바쳤습니다.

"재물 때문에 책망하지 않는다"는 말은 뒤집어 생각하면 "문제는 재물이 아니라 바로 너희 자신이다"라는 뜻입니다. 감사도 없고, 사랑도 없고, 삶의 순종도 없이 그저 "제물만 바치면 복 주시겠지"라는 기복적인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 아무런 기쁨이 되지 못했습니다.

 

9.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숫염소를 가져가지 아니하리니

수소나 수염소는 하나님께 제사드릴 때에 희생 제물로 잡아 바치도록 모세 율법에 규정되어 있는 제물들입니다(레 1-7장). 그런데도 여기서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받지 아니하겠다고 하는 것은 그것들을 바치는 자의 행위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10. 이는 삼림의 짐승들과 뭇 산의 가축이 다 내 것이며

당시 고대 근동의 이방 종교들은 신들이 배가 고프거나 목이 마르면 인간이 바치는 제물을 먹고 마신다고 믿었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본 절을 통해 강력하게 반박하십니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깊은 숲속의 야생 동물들까지도 모두 하나님이 만드셨고 하나님의 소유라는 뜻입니다.

 

11. 산의 모든 새들도 내가 아는 것이며 들의 짐승도 내 것임이로다

이는 곧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동물이 다 하나님의 창조물이며 하나님의 소유라는 말입니다. 이처럼 뭇짐승을 다 소유하고 계신 하나님이 굳이 자기 백성들로부터 제물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제물을 바치도록 율법을 통해 명하신 것은 그 제물 자체 때문이 아니라 제사를 통해 제물을 바치는 자의 헌신과 충성을 요구하시기 위해서입니다.

 

12.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내 것임이로다

고대인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에게 부양물을 공급하는 행위를 큰 의무로 여겼습니다. 시인은 만약 이스라엘 백성도 이러한 사고를 가지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면 그 제사가 아무 소용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무엇에도 부족함이 없으신 분으로서 자기 백성에게 자신의 소용을 위해서 어떤 것도 요구할 필요가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13.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이교도들의 그릇된 신관이 일부 이스라엘인들에게도 만연되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즉 고대인들의 관념 속에는 신이 인간이 바친 음식을 먹고 즐긴다는 의식이 공통적으로 깃들어 있었습니다. 이에 시인은 여기서 이방인들이 자기 신들에 대해 생각하듯 여호와 하나님을 인간이 바친 제물을 먹거나 소유하는 분으로 잘못 알고 예배하는 자들의 그릇된 태도를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진정한 감사의 제사를 원하십니다.

14.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하나님께 상달되는 참된 제사는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와 찬양이 깃든 제사임을 밝힙니다. ‘서원을 갚으며’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제사에서 예배자가 가지게 되는 마음의 결심이나 다짐 등을 실생활 속에서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만이 그가 드린 예배가 진정한 예배가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하나님은 자기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가 환난 날에 부르짖을 때 그를 결코 외면치 않으시며 반드시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시 65:2,5).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성도가 환난 중에도 여호와만이 자신의 절대적인 구원자이시며 피난처이심을 확신하고 간구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그를 구원하십니다.

 

4. 삶이 뒷받침되는 예배를 요구하십니다.

16.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시인은 외형적인 제사 의식만을 경건의 전부라고 여기는 자들을 향해 매우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이런 악인들을 향하여 단호하게 하나님의 율법을 입술로만 거론하지 말라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17. 네가 교훈을 미워하고 내 말을 네 뒤로 던지며

여기서 '교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무사르(mûsār)'는 단순한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잘못된 길로 갈 때 바로잡아 주는 '징계, 책망, 훈육'을 의미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에 모여 예배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듣는 척했습니다. 하지만 성전 문을 나서는 순간, 그 말씀을 '아무 쓸짝에 없는 것처럼 등 뒤로 휙 던져버렸다'는 뜻입니다. 입에는 말씀이 가득할지 몰라도, 삶의 현장에서는 말씀에 대한 두려움도, 순종도 없었습니다.

 

18. 도둑을 본즉 그와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동료가 되며

여기서 '연합하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즐거워하다, 기쁘게 받아들이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즉, 이들은 자신이 직접 도둑질을 하지 않았을지라도, 타인의 부정한 이익이나 불의한 행동을 보았을 때 그것을 꾸짖거나 멀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렇게 하니까 쉽게 돈을 버네?" 하며 부러워하고, 그 죄의 대열에 기쁘게 동참했습니다.

 

'간음하는 자들과 동료가 되었다'는 것은 세상의 타락한 문화와 쾌락에 깊이 중독되어 그들과 한패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간음'은 육체적인 음란함뿐만 아니라, 하나님 외에 다른 세상을 더 사랑하는 '영적 간음'을 동시에 의미합니다.

 

19. 네 입을 악에게 내어 주고 네 혀로 거짓을 꾸미며

자신의 입을 모든 악한 말, 특히 사기와 속임수에 사용하는 데 내맡기고 있다는 뜻입니다. 적극적으로 행악하는 데 참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20. 앉아서 네 형제를 공박하며 네 어머니의 아들을 비방하는도다

여기서 '형제'는 이스라엘 동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공박하다'(디바르)는 말은 '치욕스럽게 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이 모여 앉은 자리에서 동족을 비방하며 멸시하고 중상 모략하기 일쑤인 악인들의 오만하고 강퍅한 모습을 지적한 말임을 알 수 있습니다.

 

21.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 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

하나님께서 악인들이 행악할 때마다 즉각적으로, 직접적으로 징벌하시지 않자 악인들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믿지 아니하고 더욱더 행악하기를 서슴지 않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죄악을 용납하고 계시는 것이 아니라 다만 심판을 유보하고 계실 뿐입니다. 하나님의 작정하신 때가 되면 엄정하고도 철저한 보응이 주어질 것입니다. 그 행위대로 엄정하게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22.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여기서 '잊어버리다'란 말은 형식적인 제사에만 마음을 쏟고 실제 삶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와는 대조적으로 '생각하다'는 말은 정녕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깊이 새기어 그 말씀대로 사는 삶을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이런 준엄한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는 결국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실제 삶이 일치하지 않는 위선적인 행위를 버리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인간의 창조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창한 업적이나 화려한 의식이 아니라,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 하나님께 드리는 '진정한 감사 예배'를 통해 하나님은 가장 큰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예배당 안에서의 감사는 반드시 예배당 밖에서의 '바른 삶'으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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